세계사 편력 2 -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 주는 세계사 이야기, 개정판 세계사 편력 2
자와할랄 네루 지음, 남궁원 외 옮김 / 일빛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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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초대수상이었던 네루는 간디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정치가로서, 인도의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위인이다. 단, 간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간디는 비폭력독립운동을 주장한 반면 네루는 좀 더 현실적으로 독립을 위해서는 폭력투쟁도 필요하다고 한 점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책을 쓰려고 계획하고 지은 책이 아니다. 그가 독립운동으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딸에게 편지를 쓰면서 딸의 올바른 세계관과 역사관을 키워주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쓴 것을 엮은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네루의 개인적인 역사관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특히 세계사가 유럽사로 편입되어 그들이 바로 세계 역사의 중심인 듯한 분위기에도 제3세계의 역사 또한 소개하고 글을 썼다는 것은 오히려 좀 더 세계사에 대해 객관적이기도 하지만 또한 네루의 주관적인 사상이 있지 않나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역사 책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역사를 따분한 옛날 이야기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고 혹은 그냥 다큐멘터리에나 나오는 일부 사건을 전체 역사인양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란 살아 있는 실체이며 또 일부 사건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하나의 큰 물줄기처럼 흐르는 것이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 관망하며 큰 줄기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에 그 세밀한 곳을 들여다보며 이곳에 어떤 물고기가 살고 있고 또 토질은 어떻고 하는 식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런 생각에 역사 책을 읽을 때 가장 처음으로는 좀 두껍더라도 전체 역사를 자세히 그리고 빠뜨림 없이 구술한 책을 읽어야 할 듯 싶다. 그리고 큰 줄기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따라서 어떤 일이 발생한 이유를 파악한다면 그 당시에 일어난 사건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차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손을 잡았다 등등의 사건은 몇 년도에 일어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시 그 세계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이런 사건은 금방 생각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일차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세계는 피폐해지고 당시 승리국이었던 일본이나 이탈리아는 그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 독일의 경우는 혼란한 틈을 타 정치적으로 강한 힘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런 배경하에 이 삼개국은 손을 잡게 된 것이다. 기타 여러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생략하겠다.

따라서 역사 책을 읽을 때 전쟁사나 사건을 읽는 것보다는 문화사나 그에 대한 의의를 먼저 파악해야 할 듯 싶다. 그다음에 세부적으로 자세히 기술된 역사 책을 읽고 관심을 가진다면 아마 역사에 대한 새로운 흥미가 생기지 않을까? 여하튼 이런 역사에 대한 개괄서로, 네루의 세계사 편력이란 책은 훌륭하며 또한 개인적으로 네루의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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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문화 인류학 3부작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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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는 인류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 교양서적으로 읽으면 괜찮을 책이다. 인류학은 군국주의의 첨병학문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식민지를 개척하고 또 그 식민지를 지배하는 데 인류학을 이용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례로 인류학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식민지를 많이 확보한 나라라고 봐도 무관하다. 따라서 세계화와 민주화와 지역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요즘 인류학은 점점 설 곳을 잃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인류학이란 특정 지역의 민족성이나 습관, 습성 등을 분석하는 학문이기에 이를 좋은 방향으로 활용한다면 상대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 마음을 열어 줄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 같다. 이는 문화란 문명인, 야만인의 구분이 없으며 자연에 그리고 사회에 적응하면서 선택한 최선의 생활양식임을 인지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된다는 의미다.

이런 의미에서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는 우리가 말하는 어떤 나라의 특이한 습성이나 또는 풍속을 과학적 근거를 들며 착실히 설명해주는데 이는 문화 인류학이란 이런 거구나 하고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느끼게 할 것이다. 일부는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기에 약간은 고리타분하기도 하지만(인도의 암소 숭상이나 아랍계의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 등) 텔레비전에서 자주 방송되는 미지세계 탐험을 보면서 얻는 즐거움과 흡사한 즐거움을 줄 것이다.

단 한 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의해야 할 사실은 이 마빈 해리스의 주장이나 논리나 연구방법 등은 인류학의 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아, 인류학에는 이런 분야가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해야지 이것이 인류학이다, 라고 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마빈 해리스의 업적은 인정하면서도 그의 논리나 학문의 한계가 드러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마빈 해리스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동물성 단백질에 대한 절대적 신뢰라든가 인류학 연구에 있어서의 방법적 문제라든가 하는 것들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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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3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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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많이 인용하고 또는 많이 들어 익숙함에도 정작 원작을 읽지 않은 책들이 수없이 많다. 나에게는 국부론, 자본론 등이 그러한데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역시 마찬가지다.

어쨌든 그래서인지 자유론을 읽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마음속 께름칙한 것을 지운 듯한 후련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했던 탓일까? 저작 시기와 독서 시기의 시차로 인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주장이나 논리가 다소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조금 지루함을 느꼈다.

그러나 읽는 내내 즐거웠던 점은 역시 언급한 내용들과 우리네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끔 했다는 점이다. 특히 인간의 자유라는 것이 인간의 발전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특히 사상과 출판, 언론의 자유를 거의 최초로 언급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할 듯 싶다.

얼마 전 강정구 교수가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정구 교수가 북침을 주장했든 남침을 주장했든 중요한 것은 그의 발언이 과연 우리 사회를 얼마나 위험하게 만들었느냐 혹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느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대학 강의실에서 자신의 연구 증거를 바탕으로 한 발언 때문에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형평성도 문제다. 실로 엉뚱하고 교수로서 저런 행동과 발언이 옳은가 하는 자질이 의심되는 교수들도 많지만 유독 대북발언에 관한 것은 민감하게 작용하는 것이 과연 문제 없는 것일까?

자유론에서는 말한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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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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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위대한 개츠비는 매력적인 소설이 아니다. 그냥 밋밋했고 또 솔직히 재미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개츠비가 위대한 소설인 이유는 그 소설이 발표되었을 당시 상황이자 소설 속 시대적 배경인 1920년대 중반을 이해하면서 명확해진다는 생각이다.

1920년대는 어땠는가? 우리나라는 일제 치하에 있었다. 그나마 3.1운동을 계기로 일본이 식민지 정책을 문화정책으로 전환하여 어느 정도의 문화예술적 숨통은 트였던 시대다. 세계는 어땠는가? 당시 소위 말하는 제국주의 열풍에 세계열강은 식민지 개발에 힘을 쏟던 시대다. 또한 사회경제 체제는 자본주의가 한창 발전해 가던 시대다.(물론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공산주의 역시 제3국으로 많이 퍼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사항보다 중요한 세계대공황이 있었다.. 물론 위대한 개츠비 발표가 대공황 이후이긴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에 드러난 문제의식과 세계대공황이 일어난 배경이 같기 때문에 작품 이해에 중요하다. 대공황은 1929년 10월 뉴욕의 주가 폭락으로 시작되었고 2차 대전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다. 이 대공황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 배경이다. 세계대공황은 자본주의에 대한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세계대공황 이전의 자본주의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철저한 맹신이었다. 이들의 국가관은 야경국가! 그리고 도시화, 인구증가, 근대화 등이 진행되었을 뿐 아니라 산업적으로는 생산량에 비해 소비량이 큰 구조였다. 이는 생산을 하면 그것이 전부 팔리기 때문에 생산은 가능한 한 많이 하는 것이 좋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경영학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하느냐가 핵심 과제였다. 그래서 작업동작을 분석하고 어떤 환경이 생산량이 많은가를 연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세계는 점점 더 도시화 되어 가고 또한 전통적 가치는 사라지고 금권주의가 만연했다. 개인주의는 심화되었고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도 생겨났다. 도시화가 진행되었지만 도시빈민 역시 생겨난 것이다. 일부 졸부들도 등장하고 사회적 소외현상도 일어난다. 그러던 중 전체 생산량은 소비량을 넘어선다. 그러나 생산자들은 시장이 자동으로 조절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계속해서 생산하고 재고량이 늘어난다. 언젠가 다 팔릴 것으로 믿었지만 점점 재고만 쌓여가게 된다. 그러던 중 뉴욕 증시 주가가 폭락하고 그 여파가 전 세계를 휩쓴다. 엄청난 혼란이 가중되어 회사는 부도나고 실업자는 증가하고 물가는 올라가는 엄청난 고통이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이때 위대한 경제학자가 등장하니 그가 바로 케인즈다. 케인즈의 안은 사실 간단하다. 문제의 원인은 생산량에 비해 소비량이 적은 것이니 소비량을 늘리는 것이다. 소비량을 늘리는 것을 시장에 맡길 수 없으니 바로 국가가 개입할 것을 제안하고 미국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처음엔 시장에 국가가 개입하는 주장으로 인하여 일부 학자들에게 공산주의자라는 욕도 먹지만 당시 문제 해결안을 제안한 사람은 케인즈밖에 없었다.(여기서 참고할 것은 당시 식민지가 있는 국가들은 식민지의 자원 강탈을 통해서 자국의 경제적 혼란이 그나마 적었지만 식민지가 없거나 적었던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고통이 더 컸고 이것이 2차세계대전의 원인 중 하나다.)

위대한 개츠비는 바로 세계대공황이 일어나기 직전의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감각적으로 드러낸 소설이다.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이었던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와 금권주의, 물질만능주의가 드러난다.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주인공이 찾고자 하는 것이 사랑이었고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물질만능주의자가 추구하는 것이 정신적인 것이라니.. 위대한 개츠비의 문학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불완전했던 당시 초기 자본주의 혹은 초기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위대한 개츠비에 완전하게 녹아 있다. 마치 우리나라에 홍길동전이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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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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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것.. 많이 따분하고 또 때로는 자기 논리에 빠져 있는,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학문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철학이 중요한 것은 그 시대에 팽배해 있는 철학사조에 따라 우리의 삶의 양식이 많이 달라질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철학이란 붕 뜬 관념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각각의 개인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나라에, 그리고 우리 지구촌 가족에 즉,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학문이다. 그것을 우리가 인지하든 아니든 말이다. 과학 역시 철학사조에 따라 발전의 방향이 달라지며 우리가 만든 법과 삶의 양식도 달라진다. 따라서 철학을 학문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현재 철학의 주류나 관심 연구 분야도 아니며 다른 사조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많은 논리적 허점을 지적당했고 또 역사적으로 이미 검증받은 학풍인 실존주의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당시 실존주의에 대한 많은 비난에 대응하고 또 진정한 실존주의의 의미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주장하고자 한다.

실존주의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자면(아주 교과서적인 표현이지만) 당시 혼란스러운 시대에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연구를 했던 학풍으로 가장 실존주의를 잘 표현한 말로는 실존은 본질을 앞선다라는 사르트르의 발언이 있다. 실존 즉, 존재가 존재하는 것의 의미보다 더 우선적이다, 라는 뜻으로 이는 인간이 기계나 공구와 달리 우선 인간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이 먼저이지 가위처럼 종이를 자르기 위해 즉, 인간이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런 인간은 우선적으로 이 실존을 자각해야 하는데 이 자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가 실존주의자의 연구과제였다.

이 실존 인식에 따른 학풍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와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로 나뉘는데 사르트르는 개인적으로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전체적인 실존주의에 대한 의미와 설명을 하기 때문에 무신론적이다 유신론적이다, 라는 것에 대한 구분은 없다. 당시 실존주의가 주류를 이루면서 바로 암울하던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했기에 그에 대한 오해가 많았는데 그것에 대한 반론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책에 대한 배경 말고도 저자인 사르트르는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아주 흥미로운 사람이다. 당시 최초로 개약결혼이라는 것을 했었고 또 까뮈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가 학문적 이견으로 인하여 절교를 하는 등 그의 개인적인 행동들 역시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했다. 그는 당시 살아 있는 지성으로, 지성을 대표한다는 명예로운 호칭도 얻었고 또한 소설가로서도 명망을 얻었던 사람이다. 이 책 외에도 구토라는 소설이 유명하며 그 책 또한 그의 사상과 소설적 상상력과 재미가 훌륭한 책이다.

실존주의를 뒤늦게 접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실존주의를 진정한 의미에서 접하지 못했고 변형되어 원래의 학풍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받아들여서 좌절주의나 혹은 비관주의의 철학으로 오해했다. 실제로 60~70년대  이후에도 실존주의적인 소설과 시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소설과 시들은 당시 우리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비관적 대안책으로 제시되어 창작되었다.

실존주의가 진정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든지, 아니면 오해가 발생하여 다른 방향으로 접했든지 간에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던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역사와 잘못된 길을 바로잡는 것이 후세의 도덕적 의무라면 바로 그 작업을 위해서라도 바른 의미와 바른 뜻을 알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실존주의에 대한 개론서 역할을 하는 책으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 실존주의에 대해 또 철학책의 딱딱한 문체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금방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 사고의 폭이 넒어짐과 동시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철학사조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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