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묻는다
정용준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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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 저자의 작품을 읽을 때면 문학을 가까이 두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하나씩 찾게 된다. 삶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깨 닫은지 오래지만 인간마다 삶의 형태와 환경이 극심하게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궁금해왔다. 불교에서는 전생에 지은 업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하지만 전생 기억이 없는 한 인간은 그저 억울할 뿐이다. 정용준 저자의 신간 < 너에게 묻는다> 작품은 아동 학대에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마지막 문장까지 완주하고 나면 현기증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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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학대 문제를 다루고 있는 프로그램 <진실의 탐구>팀 작가 유희진은 '토기장이와 그릇'편 이후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이입된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녀는 방송을 통해 한 번 관심을 가진 이후에는 사람들의 열기가 사그라드는 게 못내 섭섭하다. 탄원서 몇 장에 출소가 가능하며, 부모들을 두둔하며 학대를 당한 아이들이 비는 모습을 볼 때마다 미칠 것 같다. 어느 날 솜방망이 처벌을 받 출소한 아동 학대 가해자들의 행적을 취재하던 중 이들의 행적이 묘연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유희진은 경찰에 신고하며 범죄를 막아야 하는지, 내버려둬야 하는지 고민한다.


모든 사건에는 피해자가 있고, 가해자가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아닌 가해자가 형벌을 받음으로써 죗값을 다 치렀다는 안인수의 말 앞에 나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작품은 사회 전체와 시스템이 오염되어 있어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을 용납할 수 있을까? 사적 복수의 경계는 어디까지 허용될까? 과연 범죄에 선한 동기라는 것이 있는지 저자는 묻는다. 더불어 폭력은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상처는 오래 지속될 수 있음을 주인공 유희진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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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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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사는 동안 그저 나는 어른이 필요했다. 긴 세월에 노출된 그저 그런 어른이 아니라 세월이 주는 민낯을 견뎌 낸, 세월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어른이 필요했다. 저자 에이모 토울스 <모스크바의 신사>의 주인공인 알렉산드로 로스로프 백작을 만난 이후 그동안 찾아 헤매던 어른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700장이 넘는 벽돌 책도 기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시간적 배경은 1922년 볼세비키 혁명 5년이 지난 모스크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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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은 현 정권의 몇 사람이 귀족으로 태어난 죄를 물어 여생을 모스크바의 메트로폴에서 보내야 하며, 호텔에서 벗어날 경우 총살형에 처한다는 선고를 받게 된다. 당시 서른세 살이었던 백작은 선고 이후 스위트룸에서 다락방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귀족으로 지내던 특혜가 사라지며 환경이 바뀐다. 백작은 남의 대화에 절대 끼어들지 않으며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법이 없었다. 의자를 뒤로 빼주거나 바닥에 떨어진 블라우스를 집어 옷걸이에 거는 등, 신사적인 면모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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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에서 백작은 아침이면 스무 번의 쪼그려 앉기와 스무 번의 스트레칭을 하고,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책을 읽었으며, 밤에는 사색에 젖었다. 공주가 되는 규칙을 가르쳐 주며 열세 살이었던 니나와 친구가 된 이후 호텔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마리나에게 바느질 수업을 받는다. 명한 영화배우인 안나 우르바노바와 연애를 하고, 당의 지도부인 글레브니코프에게 언어 과외를 해주며, 호텔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일을 하게 된다. 이후 니나의 딸인 소피야를 양육하게 된다. 성년의 문턱을 넘어선 소피야는 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텔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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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이 호텔에서 지내는 약 32년의 세월이 담겨 있는 작품은 자연스럽게 노년이 접어든 된 백작 모습도 비춘다. 나이가 들어가며 사교 범위가 줄어드는 것, 생활 방식이 쇠퇴하기까지 수 세대가 걸린다는 생각에서 위로를 찾으며, 인생이란 것은 성큼성큼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펼쳐지는 것이라는 알게 된다. 반생을 메트로폴 호텔에서 연금 상태로 살아온 백작은 사는 내내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 말하며 자신이 목표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궁리한다. 백작을 만나기 전에는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한 사람의 신념, 자아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에 인간은 환경을 지배할 수 없다 생각이 절대적이었는데, 작품을 다 읽은 후에는 절대적이라는 단어는 줄행랑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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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은 몽테뉴의 격언 "가장 현명한 지혜는 늘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처럼 살았지만 이별의 아픔을 털어놓는 일에 있어서 만큼은 감정을 억제하지 않았다. 어제 난임병원을 다녀온 뒤 우울에 잠식되어 이불 깔고 앓아누웠다. 나의 우울도 힘든데 시험관 카페에 다른 이들을 위로하는 댓글을 다는 나를 보면서 사는 동안은 마음가짐은 백작처럼 가져야지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에이모 토울스 저자의 작품 처음 읽어보는데, 꽤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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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지음 / 김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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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는 쉼표가 아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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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지음 / 김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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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개인적 견해를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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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시작되었다. 비가 주룩 내리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센치해진다. 리사의 그래도 될까요 노래를 들으며 백영옥 저자의 장편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 작품을 읽었다. 김영사 출판사에서 리뉴얼을 했는데, 양장본 판형을 선호하는 편이라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작품에서 나오는 안녕은 굿바이가 아니라 헬로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아는가?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존재하고, 이별이 있어야 만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세상의 이치다. 연인과의 이별, 부모님과의 이별, 자신의 꿈과의 이별 등 이별에도 종류가 다양하다. 같은 일을 겪더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고통의 크기는 제각각 다르다. 백영옥 저자의 소설 속 인물들은 실연의 고통 속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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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와 헤어진 사강은 일 년째 이별 후유증을 앓고 있으며, 십 년 가까이 사귄 현정의 외도로 헤어진 지훈은 현정의 환청이 들린다. 실연의 고통 속에 빠져있는 이들에게는 화해하지 못한 과거가 있었다. 사강의 아버지는 국제적인 미술상을 연달아 받은 유명인이었지만 자신의 부인의 이혼녀로 만들었고, 원치 않는 이복동생을 만들어주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사강이 연애하는 동안 내내 발목을 잡는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모님의 여의고, 외조부모가 연달아 죽음을 맞이하며 지훈은 실질적인 고아가 된다. 그의 옆에는 자폐증을 가진 명훈만 있을 뿐이다.



사강과 지훈은 우연히 트위터에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이라는 홍보 문구를 보게 된다. 아침 일곱시부터 모르는 이와 밥을 먹고, 밥을 먹은 뒤에는 상영하는 영화 네 편을 관람한 뒤, 실연의 기념품을 처리할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사강은 특별한 날에 배달되어오던 책을 가지고, 지훈은 연인과 함께 사용하던 카메라를 가지고,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 참가한다. 사내 커플이었던 미도는 이 모임의 기획자이자 참가자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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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한 상처를 지닌 사람들은 대체로 사랑의 부재 현상을 극복하는 법이 서툴다. 이는 곧 어떤 식으로든 발현되어 삶에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어떤 식으로든 상흔에 대한 적당한 값 혹은 치유가 이루어져야 다음 허들을 넘을 수 있다. 상처에 조금씩 연고를 바를 결심과 그로 인해 새살이 돋는 과정들은 한편의 러브스토리를 보는듯하였다. 이별을 맞이 하였는가?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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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세고 촛불 불기 ㅣ 바통 8
김화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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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5일 중 당신에게는 특별한 날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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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생일 혹은 기념일을 지목할 것이다. 은행나무 바통 시리즈 08 (셋 세고 촛불 불기>작품에서는 여덟 개의 특별한 날을 소개한다. 첫문을 열고 있는 김화진의 <축제의 친구들>은 축제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과 작업실을 같이 쓰면서 내적 성장을 겪게 되는 진주의 이야기다.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는 '루'가 작업실 멤버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는 진주는 괴로워한다. 작업실이 사라진 후 작업실 멤버인 규민을 다시 만난 이후 전개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김화진의 특별한 날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었다. 몰입이 가장 잘 되는 작품이었는데, 내가 특별하고 좋은 사람일 거라고 타인들이 나를 그렇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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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하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은 서울 고독사 박물관에 면접을 보러 간 윤호의 이야기다. 담당자의 부재로 인해 '고독과 죽음'이라는 전광판이 붙어 있는 전시장으로 둘러보게 된 윤호는 이모와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모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이모를 찾아갔으나, 배신에 이른다. 윤호는 고독사 방지 목적으로 개발된 올리를 파괴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발돋움하였다. 윤호의 '다음'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박연준의 <월드 발레 데이>은 삶은 포기했지만 발레를 포기하지 않은 죽은 무용수의 이야기다. 박연준의 특별한 날은 '종일'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여러 고비를 겪은 후 실력까지 두루 갖추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매일매일이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작가님의 시적이고 섬세한 문체로 인해 읽는 내내 마음이 울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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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은의 <위드 걸스>은 프리랜서였던 나는 신당을 찾아간다. 어릴 때 엄마가 애완동물 가게를 하는 바람에 동물들이 죽은 것을 많이 본 나에게 명화 아씨는 사령과 수호령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와 선주는 순찌(강아지) 임시 보호를 하고 있었는데, 순찌를 입양하기 위해 입양 신청서를 작성한다. 나는 입양자 선정이 되지 않은 이유로 선주가 입양 신청서 내용을 수정한 사실을 알게 된다. 순찌가 떠나며 모든 것을 원상으로 복구하며, 서고은의 특별한 날은 그저 살아내고 있는 오늘이 돌이켜보면 어떤 날이 될 것이라 말한다. 송섬의 <껍질>에서는 365일 중 3월 13일 하루만 기억이 나지 않는 '나'의 이야기가 이희주의 특별한 날은 유리가 전학 온 3월 2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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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성과 무력감에 지친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문득 드는 생각은 단순하고 신실하게 살자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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