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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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사는 동안 그저 나는 어른이 필요했다. 긴 세월에 노출된 그저 그런 어른이 아니라 세월이 주는 민낯을 견뎌 낸, 세월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어른이 필요했다. 저자 에이모 토울스 <모스크바의 신사>의 주인공인 알렉산드로 로스로프 백작을 만난 이후 그동안 찾아 헤매던 어른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700장이 넘는 벽돌 책도 기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시간적 배경은 1922년 볼세비키 혁명 5년이 지난 모스크바다.

백작은 현 정권의 몇 사람이 귀족으로 태어난 죄를 물어 여생을 모스크바의 메트로폴에서 보내야 하며, 호텔에서 벗어날 경우 총살형에 처한다는 선고를 받게 된다. 당시 서른세 살이었던 백작은 선고 이후 스위트룸에서 다락방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귀족으로 지내던 특혜가 사라지며 환경이 바뀐다. 백작은 남의 대화에 절대 끼어들지 않으며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법이 없었다. 의자를 뒤로 빼주거나 바닥에 떨어진 블라우스를 집어 옷걸이에 거는 등, 신사적인 면모를 선보인다.

메트로폴에서 백작은 아침이면 스무 번의 쪼그려 앉기와 스무 번의 스트레칭을 하고,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책을 읽었으며, 밤에는 사색에 젖었다. 공주가 되는 규칙을 가르쳐 주며 열세 살이었던 니나와 친구가 된 이후 호텔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마리나에게 바느질 수업을 받는다. 명한 영화배우인 안나 우르바노바와 연애를 하고, 당의 지도부인 글레브니코프에게 언어 과외를 해주며, 호텔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일을 하게 된다. 이후 니나의 딸인 소피야를 양육하게 된다. 성년의 문턱을 넘어선 소피야는 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텔을 떠난다.

백작이 호텔에서 지내는 약 32년의 세월이 담겨 있는 작품은 자연스럽게 노년이 접어든 된 백작 모습도 비춘다. 나이가 들어가며 사교 범위가 줄어드는 것, 생활 방식이 쇠퇴하기까지 수 세대가 걸린다는 생각에서 위로를 찾으며, 인생이란 것은 성큼성큼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펼쳐지는 것이라는 알게 된다. 반생을 메트로폴 호텔에서 연금 상태로 살아온 백작은 사는 내내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 말하며 자신이 목표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궁리한다. 백작을 만나기 전에는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한 사람의 신념, 자아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에 인간은 환경을 지배할 수 없다 생각이 절대적이었는데, 작품을 다 읽은 후에는 절대적이라는 단어는 줄행랑쳐버렸다.

백작은 몽테뉴의 격언 "가장 현명한 지혜는 늘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처럼 살았지만 이별의 아픔을 털어놓는 일에 있어서 만큼은 감정을 억제하지 않았다. 어제 난임병원을 다녀온 뒤 우울에 잠식되어 이불 깔고 앓아누웠다. 나의 우울도 힘든데 시험관 카페에 다른 이들을 위로하는 댓글을 다는 나를 보면서 사는 동안은 마음가짐은 백작처럼 가져야지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에이모 토울스 저자의 작품 처음 읽어보는데, 꽤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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