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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겠어요, 이렇게 좋은데 - 시시한 행복이 체질이다 보니
김유래 지음 / 레드박스 / 2018년 8월
평점 :

나는 행복해지려고 조금씩 꿈을 꾸곤 했지만 운명은 보란 듯이 나의 삶을 손아귀에 쥔 채 마구 흔들었다. 나에게 일어난 불운들은 대부분 숙명적인 것들이었다. 행복해지고 싶었고, 잘 살아내고 싶었다. 적어도 내 삶 반경에서 주어지는 선택권 앞에서는 언제나 옳거나, 좋은 선택을 하고 싶었다. <어쩌겠어요. 이렇게 좋은데>작품은 자신의 삶 반경에서 옳은 선택을 결심을 한 김유래 작가의 '저低자극' 우붓 생활기를 담았다. 늘 쳇바퀴 돌아가던 일상을 보내던 그녀에게 어느 날 '갑상샘 항진증'이라는 병이 찾아왔고, 주변의 만류에도 과감하게 사표를 내던졌다. 그녀는 남들에게만 항상 친절했고, 완벽해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느라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왔기에 누구 탓도 아닌 자신 때문에 아픈 자신의 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인도네시아 발리섬에 있는 우붓 (Ubud)은 발리 고대어 '우바드(ubad)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약, 약초,자유'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우붓으로 향한다. 한 달 동안 우붓에서 생활하며 마지막 날 게스트 하우스에서 걸어 나와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탄 후 차문이 철컥하고 잠기는 소리에 갑자기 눈물을 콱 쏟고야 만다.
"우붓이 무엇이 나를 그렇게 울게 했을까?"
"우붓의 무엇이 나를 그렇게 강하게 끝었을까?"
라는 궁극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었고,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던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소중했던 우붓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몽키 포레스트를 가기 위해 걸어서 십분 거리의 잘 닦인 큰길을 두고, 왕복 네 시간이나 걸리는 숲길로 다니는 전형적인 길치였지만 툭하면 길을 잃은 자신 때문에 예상치 못한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수많은 장면들을 발견하고, 목격하기도 한다.
페인팅 수업을 신청하면서 선생 카덱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실수로 붓을 놓쳐 반얀트리 그림이 순식간에 반얀 괴물이 되어버린다. 어차피 망한 그림이란 생각이 들었던 그녀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림의 다른 부분을 칠하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카덱은 나무 요괴로 변한 그림에 하얀색으로 덧칠하고, 하늘색 물감으로 덧칠하여 성스러운 반야트리로 돌려놓았다. 그런 카덱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쓰쓰쓰 쯔쯔쯔" 찌작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리얼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휴식을 가져야 합니다. 일만 하면 아파요."라는 할아버지의 다정한 말씀으로 인해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는 일. 그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우붓엔 보물들이 숨겨져 있어 뭐든 자세히 보아야 하는데 그로 인해 어딜 가든 보물 찾기를 하는 즐거운 아이가 되기도 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자주 풍량 주의보와 풍량 경보, 풍량 특보 사이를 오고 간다. 가끔 풍량 특보를 만나게 되면 자신이 구축해놓은 세계관들이 무너지거나 휘청거리는 경험들을 겪는다. 스스로에게 빨간불이 들어왔을 때 저자 김유래는 우붓을 여행하면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을 던졌고. 그 해답을 하나씩 얻으므로써 자신을 다시 쌓아 올렸다. 그러한 과정들을 만날 수 있는 책 <어쩌겠어요, 이렇게 좋은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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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걸을 직업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인가? 나는 안타깝고 비참하고 슬프게 생각했다. 구걸이 삶의 한 방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크틋은그녀들의 구걸하는 삶을 직업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삶의 방식은 여러 가지다. 삶의 기준도 마찬가지이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누구든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 나는 어째서 삶의 방식을 어떤 틀 안에 넣고 그 안에서만 이뤄지는 거라 생각했을까? 때때로 인생은 원치 않은 방향으로 우리를 내몰 때가 분명 있다. 원하지 않았음에도, 심지어 끔찍하게 싫은데도 상황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그럴 때조차 자신의 삶을 판단하는 것은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 내에서 이루어질 일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파괴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감정도 언젠가는 결국 가라앉는다. 기다릴 뿐 그것에 화내고 맞서 싸울 필요는 없다. 선이 있다면 악이 있다. 최고점과 최저점으로 드러내기에 보지 못할 뿐이다. 악과 혼돈 속에서도 평온한 미소를 짓고 명상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내 안의 두 세계에서 들려오는 소리 모두를 들어야 하고죽음으로 탄생하는 커다란 청빛 뱀처럼 상반된 것들을 동시에 끌어안아야 한다.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지만, 도움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힘들면 힘들다 말해야 하고 '아니요'라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또 내 생각보다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해줄 수
있다는 걸 믿어야 한다. 생각처럼 순조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끔 경적소리가 나를 놀라게 한다 해도 그것으로 다치진 않는다. 그냥 옆으로 비켜주면 그만이다. 예의도 배려도 중요하다. 분명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 자신을 억압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잘 타지는 못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서툴지만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이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