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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고백록 ㅣ 현대지성 클래식 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8월
평점 :

대표적인 러시아 작가 세계적인 소설가인 톨스토이는 톨스토이 가문의 영지 야스나야 폴랴냐에서 태어났다. 1862년 소냐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결혼했다. 이 기간에 그의 대표작인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출간했다. 안나 카레니나 집필을 마칠 무렵 삶의 목적에 관한 의문으로 정신적 위기를 겪게 되며 1879년 정신적 위기를 절정에 이르렀고 톨스토이는 자살을 생각했다. 방황하던 그는 마침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야말로 삶의 의미에 관한 해답을 담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의 찾은 해답과 확신을 <고백록>책에 담았다.
그는 늘 현실적인 것들을 추구했으며 평생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 이 책은 어린 시절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톨스토이는 정교회라는 기독교 신앙 속에서 세례를 받고 유년기에 시작해서 청소년 이르기까지 신앙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하지만 18살 때 기독교 신앙과 관련해 가르침을 받았던 모든 것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 열한 살 되던 해에 블라디미르 밀류틴이라는 이름을 지닌 고등학생이 찾아와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하느님에 대한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은 단지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이야기했다. 형들은 이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였고, 톨스토이 역시 형들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톨스토이는 그리스도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무엇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는지는 자신조차 알 수가 없었다. 한편 톨스토이는 온 마음을 다해서 선한 사람이 되고자 했고, 자신이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 진심을 얘기할 때마다 사람들을 그를 향해 경멸하며 비웃기 시작했다. 반면 비열한 욕망들에 굴복해서 거기에 따라 행동했을 때에 사람들은 톨스토이를 향해 칭찬하고, 격려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톨스토이에게 이상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란스러운 순간들을 문득문득 경험하게 되고, 그런 순간들이 찾아올 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는 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되어버리곤 했다. 마치 삶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고, 그는 절망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순간들이 이내 지나갔고, 이전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갔지만 혼란스러운 순간들은 언제나 동일한 형태로 점점 그를 찾아왔다. 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염증 같은 사소한 증상들이었지만 결국에는 그 고통이 점점 더 극심해지고 자연스레 자살에 생각을 미치게 된다. 이 문제의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기 원했기 때문에 경솔하게 자살을 감행하지 않았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톨스토이가 삶의 의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들과 생각들을 나열하고 있다. 전반부에는 자신의 삶과 사람들에 대한 회의가 들어있었고, 후반부에는 그가 찾은 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물음에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도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만을 위해서 일하는 경우에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동물들과 다릅니다. 그리고 인간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일할 때, 나는 그런 인간은 행복하고 그의 삶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느낍니다.”
진지하고도 무게감 있는 톨스토이의 고백을 통해 나의 삶의 방향성,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지적으로 내 자신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나의 삶 속에서 접하게 된 모든 것을 연구하고자 했고, 내가 따라야 할 규칙들을 스스로 설정해놓고서 나의 의지를 완전하게 하고자 했으며, 육체적으로도 내 자신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나의 힘과 민첩성을 발전시켜 줄 온갖 운동들을 시도하고 온갖 어려운 일들을 일부러 겪음으로써 끈기와 인내를 기르고자 했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완전함을 추구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도덕적인 완전함이었지만, 그것은 이내 모든 것에서 완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고, 그것은 내 자신이나 하느님이 보시기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욕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또다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 즉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유명하고 더 중요하며 더 부유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전에 그토록 경멸하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 배척해왔던 바로 그 신학을 연구하는 일로 눈을 돌렸습니다. 전에는 내가 분명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의미로 충만하다고 생각한 삶의 일들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신학을 말도 안 되는 쓸데없는 내용들을 잔뜩 모아 놓은 것으로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삶의 일들이 내 마음과 정신을 건강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기꺼이 다 버리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후에 내가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할지를 몰랐지만, 내가 알게 된 삶의 유일한 의미는 이 종교적인 가르침에 달려 있거나, 적어도 그 가르침과 떼려야 뗄 수 없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철학자가 내 안에 존재하고 모든 것 안에 존재하는 삶의 본질을 "이데아","실체","영혼","의지",등으로 각기 다르게 부르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실 다음과 같은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존재하고, 내가 그 본질이라는 것, 하지만 그 철학자는 그 본질이 어떻게 해서 존재하게 되었고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그가 진정한 사상가라면 거기에 대답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본질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본질이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 도대체 뭐 어쨌다는 것인가?" 철학은 이 의문에 대해 대답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자신도 그 동일한 질문을 계속해서 하고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