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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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당포 주인 기리하라 요스케가 버려진 건물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격투의 흔적이 없고 정면에서 예리한 칼에 찔린 점, 100만엔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근거해 경찰은 돈을 노린 면식범의 소행이라 생각했다. 유력한 용의자는 전당포 점원 마츠우라였다. 그는 기리하라 요스케의 아내 야에코와 불륜 관계가 의심되었다. 하지만 범행 시점에 마츠우라가 예고에 없었던 한 통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 확인되어 마츠우라의 알리바이가 입증되자 경찰은 후미요라는 여자에 주목한다.

후미요는 마츠우라 전당포에 이런 저런 물건들을 저당 잡히고 근근히 살아 가는 여자였는데 기리하라 요스케가 그녀의 집에 종종 들렀다는 소문이 있었다. 경찰은 후미요의 곤란한 처지를 알게 된 기리하라 요스케가 그녀에게 일정한 경제적 도움을 주는 대신 욕망을 채웠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알리바이가 입증된다. 

그 즈음 수면으로 떠오른 것이 데라사키였다. 후미요가 일하는 국수집에 노상 드나드는 데라사키를 집요하게 추궁한 결과 후미요를 좋아한다는 진술을 확보한 경찰은 그가 질투심 때문에 기리하라 요스케를 죽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데라사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그의 소지품에서 기리하라 요스케가 분실한 것과 동일한 라이터가 발견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죽어버려 낙심하고 있던 경찰은 후미요마저 가스 중독으로 사망해버리자 사건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담당 형사 사사가키만이 씁씁할 뒷맛을 내내 곱씹을 뿐이었다. 


당시 후미요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유키호였다. 유키호는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쪽 사촌 집에 입양된다. 꽃꽂이와 다도를 가르치는 양어머니 밑에서 유키호는 비교적 부족한 것 없이 자란다. 한편 기리하라 요스케에게도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은 류지였다. 류지는 조용하면서도 음울한 성격의 아이였다. 소설은 두 아이가 서른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로 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사회를 '범죄'를 화두로 그려내고 있다. 류지가 벌인 범죄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저작권 문제, 비대면채널 금융서비스의 취약점, 내부정보를 이용한 증권 거래, 해킹 등 '지능 범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류지와 아키호의 지능 범죄와 기리하라 요스케 사망 사건의 진상은 사사가키의 끈질긴 수사로 결국 밝혀진다. 하지만 왜 두 아이가 소설의 제목처럼 '하얀 밤을 끝없이 걸을 수' 밖에 없었는지도 밝혀지면서 소설은 쓸쓸하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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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류지는 계좌번호와 암호를 현금카드에 자석가루를 뿌리는 단순한 방법 만으로 알아낸다. 현금카드 시스템 자체가 허술했고, 이를 포착한 류지가 부정출금 범죄를 벌인 것이다. 최근 농협에서 폰뱅킹 부정 출금 사례가 있었지만 농협에서는 부정 출금되었다는 것을 고객보고 입증하라고 했다. 입증할 수 있을리가 없다. 

비슷한 사례로 급발진 문제가 있다. LPG 차량 구입 때문에 급발진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알아봤는데, 그야말로 '요령부득' 이라는 생각이다. 급발진은 차량이 출발, 혹은 주행 중 갑자기 연료 공급 쓰로틀 벨브가 최대로 열리면서 급가속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브레이크등이 들어온 CCTV 자료도 많지만 제동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단 급발진 현상이 일어나면 운전자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어 보인다. 기껏 대처법이라고 나온 자료들도 기어를 중립으로 넣는다거나 브레이크를 한번만 꾹 밟아야 한다든가 하는, 언제든 급발진이 일어날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운전하다가 마침내 급발진이 일어나면 초인적인 순발력을 발휘하라는 공허한 얘기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ECU의 납땜 불량이나 전원공급 불량으로 소결을 낸 모양이나 우리나라에서는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 제조사에서는 운전자가 브레이크페달과 엑셀러레이터 페달을 혼동했다거나, 두 페달을 동시에 밟았다는 따위의 말로 얼버무릴 뿐이다. 

아직도 우리는'입증 책임'이 권력의 크기와 무관하게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는 부당한 사회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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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어둠 후마니타스의 문학
아서 쾨슬러 지음, 문광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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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쾨슬러는 1905년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 유대계 부모 아래 태어나 1931년 독일 공산당에 참가해 활동하다가 1938년 환멸 속에 탈퇴한다. 그리고 1940년 <한낮의 어둠>을 발표했다.

<한낮의 어둠>을 통해 아서 쾨슬러가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소설은 러시아 혁명에 대한 통찰력 있는 해석서이자, 스탈린이 표방한 일국사회주의론의 허구를 예리하게 파해친 고발서이다. 


혁명 전에 러시아에서는 이론적·실천적 선결 조건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곧바로 가능하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기존의 정설은 봉건제사회에서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고, 그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갈등이 촉발되어 마침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발발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러시아는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된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부르주아 혁명을 거치지 않은 상태였다. 

혁명을 단계적으로 수행해야 하는가(단계적 혁명론), 아니면 부르주아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가(영구혁명론) 하는 논쟁은 곧 영구혁명론 쪽으로 기울었다. 단계적 혁명론을 지지했던 레닌이 영구혁명론을 주장했던 트로츠키의 의견으로 선회하면서 1917년 혁명은 세계 최초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되었고 소비에트 사회가 건설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첫번째 문제는 영구혁명의 전제 조건인 '혁명의 수출' 문제였다. 영구혁명을 주장한 트로츠키는 전세계 경제가 결합 발전하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가능하다고 보았고, 그런 이유로 러시아의 수호를 위해서는 주변국 혁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보았다. 

두번째 문제는 극히 소수였던 볼셰비키의 지도력 문제였다. 볼셰비키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소수파' 였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독재' 라는 이상적인 개념 만으로는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통치력을 갖기 어려웠다.


이 문제를 단칼에 해결한 것이 바로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레닌이 병으로 쓰러지자 후계자를 자처한 후 두 문제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해결해버린다.(레닌은 유서에서 스탈린이 후계자가 되는 것에 대해 경계하였고 오히려 트로츠키의 재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탈린은 국제적이고 영구적인 사회주의는 환상에 불과하다며 일국사회주의를 주장하고, 1929년에는 히틀러와 불가침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 때문에 전세계 인민의 해방을 표방한 러시아에 파시즘 국가 독일의 전쟁 수행 물자를 실은 배가 경유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다음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환상에 불과하다며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일당 독재는 '당은 무오류'라는 원칙 하에 집행 되었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가 된다.


<한낮의 어둠>은 이러한 러시아 혁명의 변질 과정에서 한 고참 혁명가가 투옥된 후 끝내 스탈린식 사회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내면화한 후 비참하게 처형당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루바쇼프는 어느 날 투옥되는데, 그 자신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는 투옥 중 러시아 혁명의 변질에 대해 문제제기 했던 리하르트나 리틀 뢰비, 알로바 등을 지켜주기는 커녕 사망케 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 후 루바쇼프는 함께 혁명에 투신했던 1세대 혁명가 이바노프에게 심문 당한다. 그런데 이바노프가 하는 말은 루바쇼프 자신이 희생당했던 사람들에게 취했던 태도를 설명해주는 것 같다. 이바노프는 말한다. 


......학살 행위를 없애기 위해 학살자가 되고, 양을 도살하지 않기 위해 그 양을 희생시키고, 인민을 매로 채찍질함으로써 그들이 채찍질당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그래서 신중함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신중함을 빼앗고,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인류를 감히 증오하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사랑이네......


이바노프의 이 발언은 곧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상적 형태로 나아가지 못하고 '외부로부터의 주입' 개념에 골몰한 볼셰비키의 이야기이며, 인류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을 깨달은 당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자만심의 고백이다. 


그러나 이바노프는 루바쇼프 심문에서 동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글레트킨에게 고발당하고 곧 처형당한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를 상징하는 글레트킨이 2차 심문을 시작한다.


루바쇼프는 이바노프와 글레트킨의 논리를 내면화하기 시작한다. 그는 '문법적 허구'를 버리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투신하기로 마음 먹는다. 거짓 자백서에 사인을 하면서 루바쇼프는 자신이 당을 위한 희생, 역사를 위한 희생을 했다고 생각한다.


<한낮의 어둠>은 12주간의 교육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읽었던 책이다. 천안 교육원 숙소에서 책을 읽다 밖으로 나가 보면 가로등에 눈발이 날리는 날이 많았었다. 12주라는 긴 시간이 끝나갈 즈음, 교육을 함께 받던 68명의 교육생들은 저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면서 여기 저기 모여 술판을 벌이거나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거나 했다. 그 이면에는 불안감이 있었다. 교육이 끝난 후 어디에서 일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도 불안했겠지만,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될 사람' 취급을 받으며 유예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도 불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새해가 밝았다. 올해 어떤 책들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읽고,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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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갈릴레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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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 가장 걸작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용의자 X의 헌신> 이지만 유가와 시리즈는 대체로 불만족스럽다. 이유는 유가와라는 인물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과, 과학적 해명에 초점을 맞춘 How done it 구성이 다소 심심하기 때문이다.

 

(타오르다) 매일 밤 한가한 주택가에서 오토바이 굉음을 내는 아이들 중 한 명의 머리에서 불이 붙는다. 게다가 휘발유통이 폭발하기까지 한다. 레이저를 이용한 방화 사건.

 

(옮겨 붙다) 호숫가에서 알루미늄으로된 데드 마스크를 중학생들이 줍는다. 그런데 이 데드 마스크가 실종된 사람의 얼굴과 꼭 닮았다. 번개가 치면서 죽은 사체에 알루미늄판이 달라 붙은 사건.

 

(썩다) 가슴 부위의 세포가 괴사된 것 외에는 별다른 흔적이 없는 심장마비 사체. 범인은 초음파 발생기를 가슴에 쏘아 심장을 정지시킨 것.

 

(폭발하다) 나트륨은 물과 반응하면 폭발을 일으킨다. 원자력 발전에 쓰이던 나트륨이 위험한 물질로 취급되면서 생긴 이중의 살인.

 

(이탈하다) 알리바이를 주장하는 사람의 차를 꼬마가 보고 그렸다는 그림. 유체이탈이라며 아이 아버지는 메스컴에 광고해대지만 유가와는 빛의 굴절 현상 때문에 생긴 신기루였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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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올빼미 농장 작가정신 소설향 19
백민석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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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잘못 배달된 편지에 '나'는 발신지를 찾아가보기로 마음 먹는다. 편지 내용은 동생과 어머니가 형에게 보내는 두 통의 편지였는데, 형은 무슨 일인가로 엄마와 동생을 떠나 따로 살고 있었다. 편지를 보낸 곳을 엄마와 동생은 '죽은 올빼미 농장' 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와 '인형'은 올빼미 농장을 찾으려 했지만 그곳에는 말라버린 샘과 황무지만 펼쳐져 있었고,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20~30년 전쯤에야 농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해아리라는 신인 가수에게 줄 가사를 썼고 그럭저럭 마무리를 짓는다. 하지만 작곡을 맡은 동성애자 손자는 자신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실장을 폭행한 후 자살하고 만다.

'나'는 위안을 얻기 위해 생활을 규칙적으로 관리하는 '민'을 찾아간다. '민'에게 농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니 '민'은 재개발 때문에 사람이 빠져나간 아파트 단지들을 보여준다. 농장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곳에 살았지만 지금은 없는 곳' 이라면, 지금의 세대에게는 '없어질 아파트'도 향수를 불러일으킬 대상이라는 듯이.

'나'는 농장에 중장비 기사를 불러 샘을 다시 파 물을 끌어 올리고 그곳에 '인형'을 내던진다.

 

<죽은 올빼미 농장>은 이런 저런 상징은 짐작이 가지만 도무지 재미가 없는 소설이다. 무엇을 쓰고 싶었는지 아리송하다. 차라리 <헤이, 우리 소풍 간다>는 신선한 맛이라도 있었지만.

 

이 작품을 끝으로 백민석은 10년간 절필한다. '전위, 신세대 문학, 뉴웨이브의 아이콘' 등 수식어를 달고 등단했던 그는 언젠가부터 자신이 '이런 걸 쓰면 안되는데 싶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방송통신대에 들어가 영어를 공부하고 일반회사에 다녔다고 한다. 최근 <혀끝의 남자>를 내면서 다시금 펜을 들었는데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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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테일러스 동서 미스터리 북스 7
도로시 L. 세이어스 지음, 허문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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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앞둔 밤, 눈보라가 몰아치는 궂은 날씨 탓에 피터 윔지 경과 시종 번터를 태운 차가 도랑에 처박히고 만다. 가장 가까운 마을인 펜처치 세인트 폴로 간 피터와 번터는 베나블스 교구장의 집에서 필요한 도움을 얻는다.

펜처치 세인트 폴 교구성당에는 8개의 종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각각 가우데, 사베오스, 존, 제리코, 주빌리, 디미티, 배티 토머스, 테일러 폴이었다. 성당은 이 8개의 종으로 전좌명종술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다. 새해를 앞두고 교구장은 9시간에 걸쳐 15840전좌의 켄트 트레블 봅 8종을 울릴 계획으로 마음이 들 떠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종을 담당한 사람 중 하나인 윌리엄 소디가 독감에 걸려 계획은 부득이 취소될 위기에 처한다. 때마침 피터 윔지 경이 명종술을 익혔다는 사실이 알려져 그가 윌리엄 소디를 대신해 9시간 동안 종을 울리게 되고, 이로써 마을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된다.

독감은 마을을 광포하게 휩쓸었고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 붉은 저택에 사는 소프 부인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얼마 후 남편인 헨리 경도 사망하여 가엾은 힐러리는 고아가 되고 만다. 헨리 경은 유언으로 아내의 무덤에 함께 묻히고 싶다고 했고, 일꾼들은 유언을 받들어 소프 부인의 묘소를 파기 시작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알 수 없는 시체가 한 구 있었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게 일그러져 있었고, 양 손목이 절단되어 지문도 뜰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교구장은 즉각 경찰에 신고하고, 피터 윔지 경에게도 서신을 띄워 사건해결에 도움을 달라고 요청한다.

 

사망한 헨리 경은 다소 기이한 사건에 휘말려 가세가 기운 사람이었다. 과거 윌브러험 부인이라는 친척이 헨리 경의 집에 행사 때문에 왔다가 에메랄드 목걸이를 도난당한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범인은 제프리 디콘이라는 집사와 크렌턴이라는 외부인이었다. 제프리 디콘은 아내인 메리로부터 윌브러험 부인이 어디에 보석을 숨기는지 우연히 들은 후 범행을 하였는데 경찰에 잡힌 후 진술이 엇갈린다. 디콘은 에메랄드 목걸이를 공범인 크렌턴에게 넘겼다고 했고, 크렌턴은 자기가 넘겨받은 것은 빈 상자뿐이었다고 진술한 것이다. 헨리 경은 에메랄드 목걸이 도난 사건에 자신이 데리고 있던 하인이 연관된 데 대한 책임을 통감하여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윌브러험 부인에게 물어주고 그 후로 경제적 빈곤에 시달린 것이다.

목걸이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에서 범인들은 10년 가까운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는데, 크렌턴은 형기를 마쳤지만 디콘은 탈옥하였다. 디콘은 간수를 죽이고 탈옥하는 데 성공했지만 곧 시체로 발견된다.

 

발견된 시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으나 대체로 정월에 일자리를 구하러 나타났던 스티븐 드라이버라는 외부인이 아닌가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밧줄에 묶인 후 사망한 것 같았는데 사망 원인은 명확하지 않았다.

피터 윔지는 시체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우체국에 유치 우편이 있는지 조사해본 결과 프랑스에서 보낸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이를 단서로 프랑스쪽을 조사해 편지 보낸 여성을 찾아낸다. 그녀에 의하면 시체는 자신의 남편으로 르그로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세계대전 중 부대에서 이탈하여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고 했다. 그가 스티븐 드라이버인지 사진으로 대조하였으나 그녀는 알아보지 못한다.

 

전좌명종술(Change Ringing)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묵직한 스토리를 직조해 미스테리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작품에서 세이어스는 암호 해독에 전좌명종술의 수법을 차용하고 종의 울림에 의해 사람이 사망한다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결말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 홍수가 범람하는 장면은 마치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떠올리듯 장엄하게 펼쳐지는데, 인간의 기예가 대자연(혹은 신)에 비해 얼마나 초라한지를 극명하게 대비하여 보여주고 있으며, 인간이 대자연과 신에 대해 일정한 법칙에 따라 준비를 해나간다면 다소나마 재앙을 벗어날 수 있으리란 점을 시사하고 있다.

 

무덤에서 나온 시체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던 디콘으로 그는 군인을 죽여 신분을 세탁하고 프랑스에서 숨어 지내다가 에메랄드 목걸이를 찾으러 펜처치 세인트 폴에 갔다가 과거 아내의 새로운 남편에게 사로잡혀 종방에 갇히게 된다. 그 날 9시간동안 종이 울려대는 바람에 그는 사망한 것이다. 스티븐 드라이버는 크렌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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