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어둠 후마니타스의 문학
아서 쾨슬러 지음, 문광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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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쾨슬러는 1905년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 유대계 부모 아래 태어나 1931년 독일 공산당에 참가해 활동하다가 1938년 환멸 속에 탈퇴한다. 그리고 1940년 <한낮의 어둠>을 발표했다.

<한낮의 어둠>을 통해 아서 쾨슬러가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소설은 러시아 혁명에 대한 통찰력 있는 해석서이자, 스탈린이 표방한 일국사회주의론의 허구를 예리하게 파해친 고발서이다. 


혁명 전에 러시아에서는 이론적·실천적 선결 조건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곧바로 가능하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기존의 정설은 봉건제사회에서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고, 그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갈등이 촉발되어 마침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발발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러시아는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된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부르주아 혁명을 거치지 않은 상태였다. 

혁명을 단계적으로 수행해야 하는가(단계적 혁명론), 아니면 부르주아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가(영구혁명론) 하는 논쟁은 곧 영구혁명론 쪽으로 기울었다. 단계적 혁명론을 지지했던 레닌이 영구혁명론을 주장했던 트로츠키의 의견으로 선회하면서 1917년 혁명은 세계 최초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되었고 소비에트 사회가 건설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첫번째 문제는 영구혁명의 전제 조건인 '혁명의 수출' 문제였다. 영구혁명을 주장한 트로츠키는 전세계 경제가 결합 발전하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가능하다고 보았고, 그런 이유로 러시아의 수호를 위해서는 주변국 혁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보았다. 

두번째 문제는 극히 소수였던 볼셰비키의 지도력 문제였다. 볼셰비키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소수파' 였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독재' 라는 이상적인 개념 만으로는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통치력을 갖기 어려웠다.


이 문제를 단칼에 해결한 것이 바로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레닌이 병으로 쓰러지자 후계자를 자처한 후 두 문제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해결해버린다.(레닌은 유서에서 스탈린이 후계자가 되는 것에 대해 경계하였고 오히려 트로츠키의 재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탈린은 국제적이고 영구적인 사회주의는 환상에 불과하다며 일국사회주의를 주장하고, 1929년에는 히틀러와 불가침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 때문에 전세계 인민의 해방을 표방한 러시아에 파시즘 국가 독일의 전쟁 수행 물자를 실은 배가 경유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다음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환상에 불과하다며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일당 독재는 '당은 무오류'라는 원칙 하에 집행 되었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가 된다.


<한낮의 어둠>은 이러한 러시아 혁명의 변질 과정에서 한 고참 혁명가가 투옥된 후 끝내 스탈린식 사회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내면화한 후 비참하게 처형당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루바쇼프는 어느 날 투옥되는데, 그 자신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는 투옥 중 러시아 혁명의 변질에 대해 문제제기 했던 리하르트나 리틀 뢰비, 알로바 등을 지켜주기는 커녕 사망케 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 후 루바쇼프는 함께 혁명에 투신했던 1세대 혁명가 이바노프에게 심문 당한다. 그런데 이바노프가 하는 말은 루바쇼프 자신이 희생당했던 사람들에게 취했던 태도를 설명해주는 것 같다. 이바노프는 말한다. 


......학살 행위를 없애기 위해 학살자가 되고, 양을 도살하지 않기 위해 그 양을 희생시키고, 인민을 매로 채찍질함으로써 그들이 채찍질당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그래서 신중함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신중함을 빼앗고,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인류를 감히 증오하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사랑이네......


이바노프의 이 발언은 곧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상적 형태로 나아가지 못하고 '외부로부터의 주입' 개념에 골몰한 볼셰비키의 이야기이며, 인류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을 깨달은 당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자만심의 고백이다. 


그러나 이바노프는 루바쇼프 심문에서 동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글레트킨에게 고발당하고 곧 처형당한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를 상징하는 글레트킨이 2차 심문을 시작한다.


루바쇼프는 이바노프와 글레트킨의 논리를 내면화하기 시작한다. 그는 '문법적 허구'를 버리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투신하기로 마음 먹는다. 거짓 자백서에 사인을 하면서 루바쇼프는 자신이 당을 위한 희생, 역사를 위한 희생을 했다고 생각한다.


<한낮의 어둠>은 12주간의 교육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읽었던 책이다. 천안 교육원 숙소에서 책을 읽다 밖으로 나가 보면 가로등에 눈발이 날리는 날이 많았었다. 12주라는 긴 시간이 끝나갈 즈음, 교육을 함께 받던 68명의 교육생들은 저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면서 여기 저기 모여 술판을 벌이거나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거나 했다. 그 이면에는 불안감이 있었다. 교육이 끝난 후 어디에서 일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도 불안했겠지만,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될 사람' 취급을 받으며 유예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도 불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새해가 밝았다. 올해 어떤 책들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읽고,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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