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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살인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7년 11월 6일, 회사원 이치로이 고즈에가 자택에서 거구의 남성에게 습격 당한다. 남자는 덤벨로 이치로이 고즈에의 머리를 강타한 뒤 포장용 비닐끈으로 목을 졸랐다. 하지만 이치로이 고즈에가 강하게 저항하자 남자가 덤벨을 떨어뜨렸고, 이를 주워든 고즈가 괴한의 머리를 가격했다. 남자는 피를 흘리며 현장에서 도망쳤고, 그 과정에서 실수로 수첩을 떨어뜨린다.
수첩에는 하사타니 코지로(42세), 야토쿠라 미사토(12세), 가마츠카 요시부미(77세), 그리고 이치로이 고즈에(28세)가 순서대로 적혀 있었고 살해 방법과 범행 성명을 발표하는 방식 등이 적혀있었는데, 앞 선 세 명은 이미 시체로 발견되었기에 연쇄살인임이 확실했다. 그런데 그 수첩이 에키나가 고등학교 학생 수첩이었기에 범인은 금방 특정되어 잡힐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용의자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에서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갔고 사건은 끝내 미궁으로 빠지고 만다.
4년이 지난 2001년 12월 31일 월요일 오후 4시 30분, 모처에서 연미회라는 모임이 열린다. 모임 회원은 전현직 경찰, 탐정, 미스터리 소설가 등으로 목적은 과거 미궁으로 빠져버린 이치로이 고즈에 사건의 진범을 밝히는 것이다.
이치로이 고즈에는 모임에서 처음으로 용의자의 이름을 들었다. 구츠와 기미히코, 에키나가 고등학교 2학년. 범행 당시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비밀에 붙여졌던 정보다. 그는 범행을 벌이기 전인 1997년 2월 17일 가출, 6개월 뒤부터 상술한 인물 세 명을 죽인 후 이치로이 고즈에를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모임회원들은 각자의 추리를 시작해 나갔다.
미성년자에 불과한 구츠와 기미히코가 4년이나 행방이 묘연하다면 이미 자살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시작으로 사소한 단서들에 이야기의 살이 붙어 나갔다.
먼저 그가 범행 당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지 않은 점에 비춰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알리려는 목적이 있음이 분명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또 살해당한 사람들 사이에 미싱링크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설, 실제 살해하려 했던 것은 한 명일 뿐 나머지 사람은 위장일 것이라는 가설도 주장되었다.
이야기가 달아오르자 급기야 첫번째 희생자 하사타니 코지로의 내연녀 토네리 히로미가 구츠와 기미히코가 증오한 동급생과 동명이라는 점을 들어 사실은 토네리 히로미가 구츠와 기미히코였고 둘은 동성애 관계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되었다.
어떤 가설은 그럴싸 했고 어떤 주장은 근거가 미약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네 명 모두 신문 독자투고란에 글이 실린 이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연결고리였다.
밤이 깊도록 회원들은 이런저런 추리를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사건이 일어나기 전 이치로이 고즈에의 남자친구 시가타가 도로에 서 있다가 누군가에게 떠밀려 사망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발견되었지만 끝내 본래 사건과의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은 채 모임은 종결된다.
모임이 파한 후 현직 경찰이 이치로이 고즈에를 집에 바래다 주면서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자신의 추리를 들려준다. 구츠와 기미히코는 사실 그가 실종된 날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이치로이는 그제서야 모든 것을 털어놓고 경찰에 자수하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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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츠와 기미히코가 고즈에를 습격한 것은 1997년 2월 17일이었다. 하지만 고즈에의 강한 저항과 반격으로 오히려 치명상을 입어 사망하고 만다.
고즈에는 구츠와 기미히코가 누군지, 왜 자기를 습격했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시체를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에만 골몰하다 남자친구 시가타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시가타는 고지식하게 경찰에 자수할 것만을 권유했고, 화가 난 고즈에에게 떠밀려 운행중인 차량에 치어 사망하고 만다.
고즈에는 고심 끝에 수첩에 쓰인 두번째 범행 대상 하사타니 코지로를 찾아가 사건 일체를 고백하고 그와 함께 사체를 처리한다. 하지만 약점이 잡힌 고즈에는 하사타니 코지로의 성노예로 전락하고, 고즈에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수첩에 적힌 인물들을 죄다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첫 장을 찢어버린 뒤 자신의 이름을 제일 마지막에 적어 자신이 마지막 피해자인 척 행세한 것이다.
다소 억지스런 전개와 황당한 우연의 연속, 고즈에가 흑화해 경찰도 살해한 뒤 구츠와 기미히코와 같은 반이었던 여학생 전체를 범행 대상으로 확장하는 결말 등은 습작 티가 팍팍 나는 대목이지만, 단순해 보이는 사건 이면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들을 끌어모아 또 다른 진실로 접근하는 전개는 제수알도 부팔리노의 <그날밤의 거짓말>를 떠올리게 한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진실로 나아가지만, 진실 그 자체에 이르지는 못한다. 절대진리를 찾아가는 여행은 언제나 실패했고, 절대정신의 깃발을 들어올리는 순간 가장 반동적인 거짓이 되기 마련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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