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내인 -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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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홍콩 방옥서의 공공주택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누군가 아스팔트 위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던 아이(어우야이)를 누군가 소리쳐 부른다. 아이는 군중을 헤치고 들어간다. 하나뿐인 동생 샤오원(어우야원)이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다.

아이의 아버지는 2004년 지게차 운전 중 사망했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고, 어머니도 병으로 사망했다. 아이는 어쩔 수 없이 학업을 포기한 뒤 도서관에 취직해 동생을 돌봤다. 경찰은 샤오원의 죽음을 자살로 종결지었지만, 아이는 납득할 수 없었다.

2014년 11월 7일 도심은 시위로 혼잡했고, 대중교통은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 상태였다. 그날 아이는 샤오더핑이라는 중년 남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다행히 한 아주머니가 경찰 신고 후 적극적으로 증언해주어 샤오더핑은 체포된다.

그는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사진촬영이 취미였는데 어린 여성에 대한 성적 기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처음에 범행을 부인했으나 목격자 증언 등이 확실했기 때문에 2월 26일 자신의 범행을 시인하고 2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는다.

사건은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인터넷 '땅콩 게시판'에 뜬금 없는 글이 올라오면서 사건은 재조명된다.

'열네 살 인간쓰레기가 우리 외삼촌을 징역살이 시켰다' 라는 kidkit727의 글은 이랬다. 그는 자신이 샤오더핑의 조카라고 밝힌 뒤, 삼촌은 경찰의 겁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죄를 인정한 것 뿐이다, 샤오원은 친구의 남자친구를 빼앗은 뒤 차버리는가 하면 불량배와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는 질이 나쁜 아이다, 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마약이나 원조교제 의혹도 있다고 넌지시 암시했다. 이 글은 여기저기 퍼졌고, 급기야 샤오원의 신상이 털리기에 이른다. '사이버불링'은 집요하게 샤오원을 괴롭혔다.

아이는 샤오원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찾기 위해 탐정을 고용한다. 모다마오라는 이름의 탐정은 아이의 사이버불링을 조사한 결과, 샤오더핑은 조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사이버 전문 탐정을 소개하며 물러난다.

새로 소개받은 탐정의 이름은 아녜(阿浬). 하지만 아녜는 아이와 만나기를 꺼렸을 뿐 아니라 사건 맡기도 거부하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다. 게다가 조폭들이 그를 노리는 통에 일상적인 대화도 수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아녜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되고, 동생의 죽음과 관련한 비밀을 풀기 위해 전재산을 의뢰비로 지불한 뒤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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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샤오원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범인이 누군지 찾는 전반부와 범인을 밝혀낸 뒤 복수하는 후반부로 나뉘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초기작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범행 동기는 사소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악의는 어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건의 시작은 두쯔위라는 모범생이 고자질쟁이로 소문이 나면서다. 두쯔위는 소문을 퍼뜨린 장본인이 샤오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 소문을 낸 것은 당시 샤오원과 사귀던 자오궈타이였다. 그가 샤오원의 스마트폰을 빌려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이다. 이 일로 자살까지 시도한 두쯔위는 음울한 성격으로 변하고 만다.

후에 도서실 임원이 된 두쯔위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충전을 하는 동안 스마트폰에서 정보를 빼냈다. 그러다 우연히 샤오원이 데이트강간 약물에 당해 술집에서 찍힌 사진을 입수하게 되자 이를 게시판에 뿌린 것이다. 하지만 결론은 이렇게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샤오원을 성추행한 진범은 스중난이라는 벤처기업 직원이었다. 야심찬 스중난을 아녜가 혼내주는 스토리와 스중난이 두쯔위의 오빠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서술트릭이 더해져 소설은 사뭇 복잡한 양상을 띤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은 샤오원의 자살 원인이 두쯔위의 사이버불링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죽음과 언니의 희생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동성을 더 사랑하는 말못할 사정으로 인한 우울증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2014년 9월, 홍콩은 정부의 선거법 개혁 방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우산혁명 중 도심점령운동이 펼쳐지던 시기이기도 하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고용의 질은 낮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도시를 무겁게 짓누르는 그 시기, 스마트폰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사람들은 익명의 참호 속에서 이론상 무제한의 대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SNS 따위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유통기한이 너무 짧아 그 메시지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밝히려는 사람들이 적거나, 밝혀진 후에는 이미 용도폐기된 후였다. 작품은 홍콩의 불투명한 미래와 암물한 전망에 대한 반발인지 모든 것을 명확히 파헤치고 진실을 찾아내는 아녜를 주인공으로 삼아 모더니즘적인 결론으로 독자를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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