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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타카하타 이사오 지음, 유성운 옮김 / 마르코폴로 / 2022년 3월
평점 :
다카하타 이사오는 1935년생으로 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1959년 도에이동화에 입사한 뒤, 1968년 첫 작품 영화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을 필두로 <알프스 소녀 하이디>, <빨강머리 앤>, <반딧불이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가구야 공주 이야기> 등 다수의 애니메이션을 감독, 연출하거나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이 중 <반딧불이의 묘>는 한국과 홍콩 등지에서 반발을 불러일으킨 작품인데, 전쟁으로 인해 불쌍한 처지에 빠진 어린 남매의 모습이 피해자로 부각되었으나 정작 가해자인 일본은 어디에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신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에서 다카하타 이사오는 이 점에 대해 첫 장에서 언급하는데, 자신의 본래 의도는 전쟁의 비참함을 묘사해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결과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참한 처지에 빠졌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작품은 반전기류 형성에 별 도움은 안 됐다. 이유는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사람도 "그렇게 비참하게 되지 않기 위해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다" 따위의 논리로 자기 주장을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히로시마 위령비에 "과거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라 쓰여 있는 점에 주목한다. 주어가 애매한 이 문구가 일본이 자신이 가해자임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일본인의 '분위기를 읽는 성향', '우물쭈물 하는 체질', '책임지지 않는 풍토' 때문에 일본은 평화헌법 제9조를 지켜내지 못할 경우 언제든지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걱정한다.
그러면서 "Si tu veux la paix, prépare la guerre" 고대 로마시대에 생겨나 전해온 말로 "If you want peace, prepare for war" 라는 인식을, 영화 <천국의 아이들>의 각본과 <고엽(Les feuilles mortes)>이라는 샹송을 쓴 20세기 프랑스 국민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Si tu ne veux pas la guerre, répare la paix" 즉,
"If you don't want war, repair peace"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2014년 7월 아베 신조 내각은 헌법 9조에 대해 '일본에 대해 무력 공격뿐 아니라 일본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국가에 대한 공격이나 심각한 위협에도 자위대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새로운 해석을 담은 결의안이 통과된 후 일본 내 양심적인 지식인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군군주의화, 우경화 경향에 강하게 반발했다.
80의 나이가 된 다카하타 이사오는 거창한 말로 전쟁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공습의 피해자로서 느꼈던 비참함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서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나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