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스 문도스 밀리언셀러 클럽 6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식림>


150cm의 작은 키에 뚱한 외모의 미야모토 마키. 의약품과 화장품을 취급하는 '프랭탕'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동료 료코는 마키에게 고압적으로 굴었고, 사사키는 마키에게 "땀 냄새가 난다"며 면박을 주었다. 집에서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부모님 집에 오빠 내외가 얹혀 살기 시작했는데, 슬슬 조카가 커감에 따라 마키의 방을 탐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키는 어렸을 적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1984년, 마키는 윗집 사는 스즈키라는 여자를 따라가서 어떤 문장을 시키는 대로 읽은 기억이 났다. 과자회사 협박사건의 범인들이 돈을 놓아둘 장소를 마키에게 읽게하여 녹음한 뒤, 이를 과자회사에 들려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마키는 자신이 중요한 사건에 개입되었었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그 뒤 마키의 태도가 변한다. 일터 동료들에게 받은 만큼 돌려줬고, 학창시절 자신을 놀렸던 동창에게 쏘아붙여주었다. 조카를 놀렸던 아이에게는 몰래 다가가 자신이 진짜 엄마라고 속삭여 아이를 공포에 떨게 만든다.


<루비>


노숙자면서 양복을 입고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도키오. 어느 날 루비라는 아가씨를 만난다. 그녀는 하룻밤 재워주는 댓가로 몸을 팔았다. 노숙자 그룹의 리더 이안이 루비와 자고 난 뒤 도키오의 차례가 왔다. 도키오는 루비가 노숙자들의 노리갯감이 되는 것은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루비에게 도망치자고 제안한 다음 날, 루비는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는다. 노숙자들이 모여있는 자리로 가보니 루비는 태연하게 머리를 감고 있었다.


<괴물들의 야회>


여성지 작가 미네기시 사키코는 다구치 유사쿠라는 남자와 9년째 불륜중이다. 그는 아내를 버리고 사키코에게 오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을 번번히 어겼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사키코가 다구치의 집에 찾아가 모든 것을 폭로하며 뒤집어 놓는다. 하지만 정작 다쿠치의 식구들은 사키코에게 떠나 줄 것을 요구할 뿐, 큰 충격을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전박대를 당한 뒤 누군가 다가와 "기분 풀렸어?"라고 묻는다. 다구치였다. 사키코는 그가 정말 자신이 9년 동안이나 사랑한 남자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사키코는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을 뿐 정작 그사람의 아픔에는 무관심한 루이코의 집에 찾아간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키코는 목 메달아 자살한다.


<사랑의 섬>


야마모토 쓰루코, 요시에, 나오코 세 여자는 매년 타이뻬이, 서울, 상하이 등지를 골라 여행을 다니고 있다. 어느 날, 세 명의 여자가 진실게임을 한다.

먼저 나오코가 자신은 아버지에게 강간당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좋아했었다며 피학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다음으로 요시에는 자신이 레즈비언적 성향이 있음을 고백한다.

쓰루코는 어떤 섬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돈을 주지만 하룻밤은 성노예로 전락하는 섬에 대해. 나오코와 요시에는 이를 농담으로 받아들인다. 쓰루코는 올해도 해외여행 경비를 위해 섬에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부도의 숲>


아이코는 유명한 소설가 기타무라 게이치로의 딸이다. 기타무라는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그런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가 시인 아카기 쇼키치와 재혼한다.

기타무라 게이치로가 죽자 출판사에서는 아이코에게 회고담을 쓰도록 권유한다. 중요한 문학사적 자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코는 회고록을 쓸 생각이 없었다.

어느 날, 자신의 나이가 어느새 어머니가 이혼하던 시기의 나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이코는 주위 어른들이 자신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를 겨우 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독동>


절에서 어머니와 계부, 남동생과 살고 있는 게사코는 가족들이 싫었다. 특히 계부는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게사코는 절에 독초를 심었다. 그 독초로 무엇을 할 생각이라기 보다는 심는 것 만으로도 분이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추레한 남자가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다. 그 남자는 게사코가 독초를 심은 이유를 알 것 같다며 돈을 주면 아이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아이가 울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죽는다고 했다.

게사코는 아이를 빌린다. 계부가 멀리서 다가오자 아이만 두고 자리를 뜨자 곧 아이가 울었다. 아이에게 다가서던 계부가 즉사한다. 아이를 다시 아버지에게 데려가려던 게사코는 아이가 잘 따라오지 않자 위협한다. 아이가 울어버린다.


<암보스 문도스>


초등학교 여교사 하마사키는 교감과 불륜 관계이다. 그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몰래 쿠바의 <암보스 문도스> 호텔로 여행을 떠난다. 새롭고 낡은 세계, 즉 양쪽의 세계를 뜻하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하마사키 반의 한 아이들이 산에 놀러갔다가 한 아이가 실족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귀국 날 그들의 불륜이 폭로되고, 교감은 사표를 낸 뒤 자살하고 만다. 하마사키는 사고에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조사를 한다.

죽은 아이가 살해된건지, 아니면 실족한 아이의 구조를 일부러 지연시켜 죽게 만든건지,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실종사건을 일으켜 이목을 집중시킨 뒤 자신과 교감의 불륜을 폭로하려 한건지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었다. 그때의 아이들은 중학교에 진학한 뒤, 5학년 때 느꼈던 흥분 따위는 잊어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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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이면 아이가 발레를 배우러 홈플러스 문화센터에 간다. 한 시간 배우는 건데도 꽤 좋아한다. 그러면 나는 그 시간 동안 서점에서 느긋하게 책을 고를 수 있다. 평화로운 시간이다. 보통은 두 권씩 책을 사는데 한권은 미스터리책, 한권은 순수문학책, 이렇게 산다. 이 책도 그때 산 책이다.

작가 기리노 나쓰오는 에도가와 란포 상과 일본 추리 작가 협회 상,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가로 여성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빼어난 작가다. <암보스 문도스>는 미스터리와 기담, 우화가 섞인 소설집으로 밤에 자기 전에 한 두편씩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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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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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군락지를 끼고 있는 한 촌읍에 조그만 여자애가 살았다. 여자애 이름은 오산이. 아버지는 가죽점퍼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멋쟁이였고, 엄마는 보기드문 미인이었다. 집성촌 끝자락에 살던 그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일찌감치 바람 나서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오산이의 친구 남애 역시 집성촌 끝자락에서 아버지와 함께 가난하게 살았다. 남애 아버지는 술이 취한 밤이면 담벼락에 세워놓은 항아리 속에 들어가 노래를 불렀다.

어느 날, 둘은 물장구 치다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벌거 벗는다. 산이는 남애의 등에 있는 푸른 반점에 매료된다. 남애는 푸른반점을 부끄러워 했지만, 산이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산이는 남애를 사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잠시 뒤, 남애가 산이를 세차게 밀어내고 집으로 가버린다.

집으로 찾아간 산이에게 남애는 칼을 쥐어주며 닭의 목을 치라고 종용한다. 칠 수 없다면 가버리라면서. 산이가 닭의 목을 내리쳐 피가 사방에 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 남애는 산이를 만나주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오산이가 '꽃을 돌볼 여종업원 구함' 이라는 쪽지를 보고 화원으로 들어간다. 화원 주인은 말을 못했지만 사려깊은 사람이었다. 화원 주인은 산이를 채용하기로 결정한 뒤 간단한 인수인계를 해주고 농원으로 돌아간다. 대신 수애라는 이름의 동갑내기 아가씨가 화원으로 온다. 수애는 화원 주인의 조카였고, 휴가를 갔다 온 터였다. 둘은 곧 친해져 방을 함께 쓰는 사이가 된다.

산이가 사는 방 주인여자는 딸만 셋을 두었다. 큰 딸은 피아노를 치고 싶어했고, 막내 딸은 산이를 예쁘다고 생각해 산이 얼굴을 그리는 귀여운 아이였다. 하지만 주인여자의 남편은 툭하면 손찌검을 하고 아이들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패악질 중간중간 아들타령을 곁들이면서.

그동안 산이의 생일이 지나가고, 엄마로부터 편지가 온다. 엄마는 편지에 '이 어미를 안락사시켜다오'라고 썼다. 


화원에서 일하는 동안 두 명의 남자가 산이에게 관심을 나타낸다. 한명은 최현리라는 이름의 도시적인 이미지의 남자였다. 그는 온몸에서 자신감이 넘쳤다. 아무 여자에게나 데이트하자고 청할 정도로 뻔뻔하기도 했다.

다른 한명은 꽃을 찍는 남자였다. 그는 바이올렛 꽃을 찍으러 화원에 왔는데, 산이에게 더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바이올렛이 이렇게 시시한 꽃인 줄 몰랐다면서 산이 사진만 열심히 찍는다.

 

어느 날, 꽃을 찍는 남자와 우연히 재회한다. 남자가 산이에게 떠듬떠듬 고백한다. 산이는 그 고백 때문에 신열에 들뜬다. 

신열에 들뜬 그 시기에 산이 방 옆에 세들어 사는 청년이 불을 질러 자살을 시도한다. 전기기타를 치는 청년을 집안에선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 했다. 어느 날 밤인가는 경찰이 권하는 오토바이를 얻어 탔다가 겁탈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머리를 자른 산이가 예전에 남애 살던 집에 찾아간다. 남애는 수녀가 되었고, 그 집은 남애의 고모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신열이 내릴 무렵 산이는 남자를 찾아가지만 정작 남자는 산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무언가에 홀린 듯 산이가 최현리에게 전화를 건다. 최현리가 산이를 겁탈한다. 정신나간 것 처럼 거리를 배회하던 산이가 포크레인에 제 몸을 던져 살과 뼈를 상하게 하다가 포크레인 아가리 안으로 들어가더니 으깨진 팔꿈치를 감싸며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는 양을 하다가 눈물 젖은 얼굴을 푹 수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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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부터 간단히 버림받는다. 여자애에게 있어 아버지의 부재는 곧 '남성과의 관계맺기'를 배울 기회가 박탈되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최초로 욕망을 느낀 친구 남애 역시 산이를 밀어내는데, 그 과정에서 생명을 앗는 처참한 결단까지 요구받는다. 하지만 피가 튀는 그 행동 이후에도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가중처벌이다.

어머니는 생일날 먹는 미역국과 굴비를 차려준 뒤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나버린다. 생일날마다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게 성인이 된 산이는 아버지의 오토바이로 상징되는 도시로 나가, 어머니가 생계를 꾸렸던 미용일로 밥벌이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다. 그녀는 피로감을 느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은 이미 경험된 지옥이다.

그녀는 출판사 오퍼레이터를 욕망한다. 가능하다면 글도 써보고 싶다. 하지만 출판사는 그녀를 거절한다.


좌절된 욕망을 안고 그녀가 찾아간 곳이 화원이다. 말을 못하는 주인과, 역시 말을 못하는 화초들이 그녀를 받아들인다. 농원에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있다. 그들 역시 한국'말'을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녀는 화원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수애라는 친구를 사귄다. 하지만 수애가 친밀한 행동을 보이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 그녀를 밀어낸다. 그녀는 타인과 관계맺는 방법을 모른다.


바이올렛 꽃을 찍으러 왔다가 그녀의 사진을 찍은 남자가 고백하자 그녀는 신열에 들뜬다. 자신을 '예쁘다'고 말해주고, '의미 있는 사람' 이라고 알아봐준 최초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타인과 관계맺는 방법을 거의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남자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시효가 짧은 고백이었거나, 거짓고백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남자는 바이올렛 꽃도 별로라고 했다.


다른사람의 안위는 잘도 지켜주는 경찰이, 산이에게는 폭력을 가하려 한다. 요행 경찰의 폭력은 피하지만, 최현리의 폭행은 피하지 못한다. 그는 산이의 욕망을 '안다'고 했다. 산이도 잘 모르는 욕망을 그는 어떻게 그리도 잘 알까.


폭행당한 산이가 자신의 몸에 해를 가하다가 포크레인 아가리로 들어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노트였다. 무언가 끄적이려던 그녀는 곧 중단한다. 글쓰기가 그녀에게 구원이 되지 못함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얼마 전 다섯살 난 여자아이가 친아버지에게 발을 밟혀 걷지 못하는 상태에서 생활하다가 등을 짓밟혀 갈비뼈가 부러져 죽는 사건이 있었다.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지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어쩐지 세상 사는게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숙 소설을 읽으면 서럽고, 아프고,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나를 발견할 때 묘한 위로를 느낀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 아닐까 싶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1180719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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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삶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3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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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로마 외곽의 빈민촌 피콜라상하이에서 태어난 톰마소는 말초적인 욕구 충족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창녀들이 몸을 파는 모습을 엿보며 자위하고, 동성애자 담임선생에게 몸을 팔아 돈을 벌려 하며, 촌에서 올라온 순박한 올리브 장수에게 시비를 걸어 돈을 우려낸다. 그것이 톰마소와 친구들의 일과이다.

그들의 악행은 점차 조직적인 범죄 양상을 띄어 가는데, 여행객의 짐을 훔쳐 장물아비에게 넘기거나 차를 훔쳐 타고 몰려다니며 주유소를 털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절친했던 렐로는 전차사고로 불구가 되고 다른 친구들도 일제 검거로 체포된다.

겨우 체포를 면한 톰마소가 다른 동네에서 이레네라는 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썩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톰마소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이레네 역시 톰마소가 싫지 않았다. 그러나 톰마소가 이레네를 대하는 태도에서 신사적인 면을 찾긴 어려웠다. 처음 영화관에 데려간 날, 톰마소는 이레네의 몸을 더듬고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하는 등 그녀를 함부로 대했다.

어쨌거나 톰마소는 그녀에게 구애하여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기타를 멋드러지게 칠 줄 아는 친구를 대동하고 그녀에게 세레나데를 불러주러 간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에 휘말리고 마는데, 그 동네 사는 건달같은 우편배달부가 끈질기게 톰마소를 욕보이려 하자 화를 참지 못하고 칼을 휘두르고 만 것이었다. 톰마소는 체포되어 형무소에 갇힌다.


제2부


형무소에서 나온 톰마소는 자신의 집에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두 동생인 티토와 토토가 병으로 죽은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었지만, 아버지가 깨끗한 이나카세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이레네와 재회하여 다시 사귀게 된 것도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운명은 톰마소의 편이 아니었다. 징병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결핵 판정을 받은 것이다. 톰마소는 포를라니니 병원에 강제로 수용된다.

그곳에서 톰마소는 베르나르디니라는 활동가의 죽음에 대해 듣게 된다. 톰마소는 생전 처음으로 타인을 위해 무언가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되고, 실제로 굴리엘미와 페초라는 공산당 세포의 도피를 돕게 된다.

톰마소는 병원 퇴원 후에도 공산당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지부를 찾아가지만, 간부들이 횡령을 모의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어찌어찌 공산당에 입당은 하지만 톰마소의 생활에는 변화가 없었다. 예전처럼 극장에 가서 호모를 겁박으로 돈을 우려내 데이트 자금을 만들었고, 순진한 이레네에게는 손찌검을 하며 못되게 굴었다.

그러던 중, 피콜라상하이에 큰 물난리가 난다. 구조대원들은 마을 지리를 잘 알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톰마소는 주저하지 않고 구조에 참여하여 마을 사람들을 구조한다. 그날 물에 흠뻑 젖어 감기가 걸린 톰마소는 결핵이 악화되어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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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마소의 삶은 책 제목처럼 매우 폭력적이다. 그런데, 조금만 주의깊게 보면 톰마소 주위에는 본이 되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부모세대는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뿐 자식 교육에 관심이 없고, 심지어 몸을 팔아 돈을 벌기도 한다. 선생은 학생을 성적으로 남용하여 욕망을 채우는 변태이고, 창녀들은 동네 아무곳에서나 몸을 판다.

그런 톰마소가 이레네를 만나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찰나이기는 하나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이 제시된다. 하지만 '또 다른 삶' 역시 학습과 준비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는 성당에 가서 신부에게 '결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답변에 만족한다. 로마카톨릭으로 대표되는 기존 질서에 편입되기 위해서 톰마소는 신부에게 '필요 서류'를 물을게 아니라, 미사와 세례로 표현되는 제의에 참여했어야 했다. 하지만 톰마소는 그러지 않았다. 

다음으로 톰마소는 이레네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할 줄 몰랐기에 성적 대상으로만 대했다. 세레나데를 부르러 갔다가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더라도 톰마소의 '또 다른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2부에서 톰마소가 집에 돌아왔을 때 톰마소는 번듯한 아파트에서 또다시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깨끗한 주거환경과 주변의 점잖은 이웃들 덕에 자신도 중산층에 편입되었다는 환상을 품게된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결핵요양병원으로 팽개치고 만다.

병원에서 톰마소는 공산당 활동가 베르나르디니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사망한 사람이었다. 톰마소는 그가 몸담았던 공산당에 가입하지만 그곳은 이미 협잡꾼과 부패한 자들이 득실거렸다. 이 점은 매우 상징적인데, 작가는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이 그 이데올로기의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의 정당성까지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작가는 민중이 순진함과 폭력성 모두를 지닌 존재이며, 그들이 비참한 삶에서 탈출하도록 돕는 것은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영웅적 행동을 통한 각성'임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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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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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케이프 코드의 작가인 화자가 펜실베니아 주의 검사이자 과거 전우였던 버나드 V.오헤어를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이 장에서 화자는 '드레스덴 폭격에 관하여 글을 쓴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는데,  그 글은 2장에서 "들어보라.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해방되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빌리 필그림은 1922년 뉴욕 주 일리엄에서 한 이발사의 외아들로 태어나 일리엄 검안학교 야간반을 한 학기 다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징집당해 참전하게 된다. 얼핏 빌리 필그림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가 진행되는가 싶더니, 문득 1968년 비행기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1968년 초, 빌리를 포함한 검안사 일행이 비행기를 세내어 몬트리올로 날아가다가 버몬트 주 슈거부시 산꼭대기에 충돌하는데, 빌리 외에는 모두 죽고만다. 그 사건으로 빌리는 두개골 상부를 가로질러 끔찍한 흉터를 남긴 뇌수술을 받는다.

그런데 그 영향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빌리는 자신이 외계인인 트랄파도어인들에게 납치되어 알몸으로 동물원 같은 곳에 전시되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그뒤로 현재, 2차세계대전 참전 당시, 트랄파마도어인에게 납치되었던 이야기가 뒤죽박죽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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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13일과 14일에 거쳐 영국과 미국 항공기 800여대가 폭격을 시작한다. 폭격은 4월 17일까지 계속되었고, 희생자 수는 5만에서 10만명 사이로 추정된다.(제5도살장에서는 135,000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폭격지는 독일 작센주의 주도인 드레스덴이었다.

히로시마 원폭으로 약 7만명, 나가사키 원폭으로 약 3만 5천명이 사망했으니, 폭격의 참혹상은 미뤄 짐작할만 하다. 그렇다면 왜 드레스덴에 이런 대규모 폭격이 이뤄져야 했을까? 드레스덴은 군사적 요충지도, 군수품 생산기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연합군의 폭격 이유는 독일군의 동부전선 이동을 막는다는 것이었지만, 엘베강 철교와 무관한 폭격이었으므로 궁색한 변명에 불과했다. 대량학살. 그것 말고는 폭격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이 사건이 미국인에게 알려진 것은 23년이나 지난 뒤였다. 미군은 이 가공할 폭격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고, 일부 생존자들이 이 대량학살에 대해 증언한다.


작가 커트보네거트는 1943년 유럽전선에 투입되었다가, 1944년 12월 22일 독일군에 생포된 뒤 드레스덴으로 압송된다. 그들은 그 도시에서 자신들이 갇힌 곳의 주소를 암기했다. "슐라흐토프-퓐프(Schlachthof-fünf)" 제5도살장이다. 최악의 공습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작가는 드레스덴 폭격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끔찍한 그 경험을 평범한 구성으로 담담히 이야기할 수는 없었으리라.


20여년이 흐른 뒤, 작가는 그때의 경험을 다소 비현실적인 공상과학소설 형식을 빌어 1969년에 출간한다. 베트남전쟁, 케네디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 반전운동과 인종폭동, 68혁명 등이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에 출간된 이 작품은 주류 지배계급의 대변자들로부터 "타락하고 음란하며 정신질환적이고 상스러운 반기독교주의 책"로 낙인 찍혀 배제되며, 수많은 검열 시도와 커리큘럼 배제 운동으로 탄압받는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여 사랑과 자유를 노래하던 젊은이들로부터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다. 이로써, 20년간 무명작가였던 커트 보네거트의 과거 작품이 하드커버로 재출간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에드리안 라인 감독의 <야곱의 사다리>가 계속 떠올랐다. 마약에 취해 동료를 살해하고 살아남은 제이콥의 정신이 현재와 베트남 정글을 끊임없이 떠도는 그 몽환적인 연출이. 극도의 공포와 아픔은 현재를 잠식할 뿐만 아니라 현재를 과거에 접붙혀 인간성이 파괴될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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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벽 - 개정판, 서울대 교수진이 추천하는 통합 논술 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이문구 지음, 정소연 그림, 방민호 논술, 조남현 감수 / 휴이넘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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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벽> 1972年


충청도 해안의 조그만 어항 사포곶에 사는 조등만씨는 올해로 쉰다섯이다. 얼마 전까지는 어업조합장을 하면서 고향을 좀 번듯하게 가꿔보려고 애를 썼다. '사포곶 수산 고등학교'를 세우라며 선산까지 내줬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진 탓에 그의 노력들은 주민들에게서조차 환영받지 못했다.

먼저 마을 숭산에 미군부대가 들어오며 토목공사 따위가 활발해지니 사람들은 자연 그쪽으로 돈벌이를 하러 갔다. 양공주들이 동네에 몰려 들었고, 양장점과 양화점이 어물전을 대신했다. 그 와중에 황승태 며느리가 미군들에게 윤간을 당하자 황승태와 아들이 분을 참지 못해 미치거나 자결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인심이 흉흉해졌다.

게다가 정부는 식량증산을 목표로 농업 활성화에 골몰하고 있었기에, 어항을 폐쇄한 뒤 간척사업을 벌이고자 했다. 박창식 까라 등은 이때다 하고 조등만을 몰아내고 어업조합을 차지했다.

이런 저런 일로 심난한 조등만씨에게 결정타가 된 것은 애지중지하던 배가 떠내려간 일이었다. 결국 조등만씨는 두손 탁탁 털고 아무것도 없는 신세가 되었지만, 끝내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건간망을 쌓는 등 어촌에서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나마 부여잡으려 한다.


<추야장> 1972年


모래미 동네에서 부양가족을 줄줄이 달고 하루벌어 하루먹는 윤만이는 어떻게든 능애랑 결혼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최근 약간의 문제가 생겼는데, 그것은 능애가 덜컥 임신을 해버린 것이다. 다리 뻗을 방 한칸 없었으므로 애를 지우기로 합의했으나, 애를 지울 돈을 어디서 마련하느냐가 또 문제다.

한편, 능애의 어머니 뚝셍이댁은 행실이 좋지 않기로 소문이 파다했는데, 최근 그녀가 천상교라는 사이비 종교를 설파하는 신아불이라는 자에게 푹 빠져 있다. 신아불은 자꾸만 능애 어머니를 꼬여 어디로 가자고 했는데, 윤만이는 그렇게만 된다면 어영부영 능애네 오막살이에 들어가서 살림을 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윤만이는 차일피일 애 지우는 문제를 뭉개면서 상황 변화를 볼 요량이었는데, 능애가 곰곰 생각해보니 윤만이 믿고 시집 갔다가는 신세가 알쪼라 밤도망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마침내 능애가 도망치는 날 밤에, 윤만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수술비 마련을 위해 소금가마에서 소금을 훔친다.


<이 풍헌> 1967年


이 풍헌이 최근 솔깃해 한 이야기가 있으니, 그것은 군청에서 추진하는 사업으로 "고아원 애들을 데려다가 두어달 같이 살면서 가족의 정을 알려준 뒤 다시 고아원에 돌려보내고, 시때때로 찾아가서 놀아줘라"는 것으로, 일종의 자매결연 같은 것이었다.

이 풍헌은 마침 집에 일손이 모자라던 차라 냉큼 가서 아이 하나를 물어오는데, 하필이면 소아마비다. 이 놈을 데려가봐야 양식이나 축낼 게 뻔하므로 떼내려했으나, 아이가 영악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있는데, 요놈이 개구리 잡아다 축생들 먹이고 제법 도움이 된다. 그런 한삼이가 오리를 좋아해서 풍헌은 오리도 두 마리 구해다 주고 지켜보는데, 제법 하는 짓이 귀엽다.

그러던 어느 날 늑대가 나타나자 풍헌은 한삼이가 상했을까봐 화들짝 놀라는데 당행히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한삼이에게 군밤을 먹인다.


<임자수록> 1972年


촌에서 국민학교를 함께 나온 동창생들이 서울에서 다시 모여 '한심회'를 만든다. 회라 봐야 특별히 하는 것은 없고, 천원씩 회비를 걷어 술추렴하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그렇게 모여 먹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어느 날인가는 오리고기를 원없이 먹어보려 했는데 전보가 잘못 배달되는 바람에 산통이 깨지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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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아껴서 읽는 작가가 있다. 이문구 선생이다. 이문열 따위의 작가가 매우 훌륭한 줄 알고 있던 스무살의 나에게 문학이 무엇인지 시야를 넓혀 주었던 작가인데, 타계한지 어느덧 15년이나 흘렀다. 

'어느덧' 이라는 부사를 붙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나이. 사람이 나이를 거꾸로 먹을 수 없으니, 우리는 언제나 '가장 늙은 나'로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그것을 인식하느냐, 인식하지 못하느냐가 나이먹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겠지.

그건 그렇고 아껴 읽다 보니 2008년 <부끄러운 이야기> 이후 10년만에 선생의 작품을 읽었다. '아껴 읽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좋은 것 부터 읽어야 할'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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