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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미나리 군락지를 끼고 있는 한 촌읍에 조그만 여자애가 살았다. 여자애 이름은 오산이. 아버지는 가죽점퍼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멋쟁이였고, 엄마는 보기드문 미인이었다. 집성촌 끝자락에 살던 그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일찌감치 바람 나서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오산이의 친구 남애 역시 집성촌 끝자락에서 아버지와 함께 가난하게 살았다. 남애 아버지는 술이 취한 밤이면 담벼락에 세워놓은 항아리 속에 들어가 노래를 불렀다.
어느 날, 둘은 물장구 치다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벌거 벗는다. 산이는 남애의 등에 있는 푸른 반점에 매료된다. 남애는 푸른반점을 부끄러워 했지만, 산이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산이는 남애를 사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잠시 뒤, 남애가 산이를 세차게 밀어내고 집으로 가버린다.
집으로 찾아간 산이에게 남애는 칼을 쥐어주며 닭의 목을 치라고 종용한다. 칠 수 없다면 가버리라면서. 산이가 닭의 목을 내리쳐 피가 사방에 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 남애는 산이를 만나주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오산이가 '꽃을 돌볼 여종업원 구함' 이라는 쪽지를 보고 화원으로 들어간다. 화원 주인은 말을 못했지만 사려깊은 사람이었다. 화원 주인은 산이를 채용하기로 결정한 뒤 간단한 인수인계를 해주고 농원으로 돌아간다. 대신 수애라는 이름의 동갑내기 아가씨가 화원으로 온다. 수애는 화원 주인의 조카였고, 휴가를 갔다 온 터였다. 둘은 곧 친해져 방을 함께 쓰는 사이가 된다.
산이가 사는 방 주인여자는 딸만 셋을 두었다. 큰 딸은 피아노를 치고 싶어했고, 막내 딸은 산이를 예쁘다고 생각해 산이 얼굴을 그리는 귀여운 아이였다. 하지만 주인여자의 남편은 툭하면 손찌검을 하고 아이들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패악질 중간중간 아들타령을 곁들이면서.
그동안 산이의 생일이 지나가고, 엄마로부터 편지가 온다. 엄마는 편지에 '이 어미를 안락사시켜다오'라고 썼다.
화원에서 일하는 동안 두 명의 남자가 산이에게 관심을 나타낸다. 한명은 최현리라는 이름의 도시적인 이미지의 남자였다. 그는 온몸에서 자신감이 넘쳤다. 아무 여자에게나 데이트하자고 청할 정도로 뻔뻔하기도 했다.
다른 한명은 꽃을 찍는 남자였다. 그는 바이올렛 꽃을 찍으러 화원에 왔는데, 산이에게 더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바이올렛이 이렇게 시시한 꽃인 줄 몰랐다면서 산이 사진만 열심히 찍는다.
어느 날, 꽃을 찍는 남자와 우연히 재회한다. 남자가 산이에게 떠듬떠듬 고백한다. 산이는 그 고백 때문에 신열에 들뜬다.
신열에 들뜬 그 시기에 산이 방 옆에 세들어 사는 청년이 불을 질러 자살을 시도한다. 전기기타를 치는 청년을 집안에선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 했다. 어느 날 밤인가는 경찰이 권하는 오토바이를 얻어 탔다가 겁탈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머리를 자른 산이가 예전에 남애 살던 집에 찾아간다. 남애는 수녀가 되었고, 그 집은 남애의 고모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신열이 내릴 무렵 산이는 남자를 찾아가지만 정작 남자는 산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무언가에 홀린 듯 산이가 최현리에게 전화를 건다. 최현리가 산이를 겁탈한다. 정신나간 것 처럼 거리를 배회하던 산이가 포크레인에 제 몸을 던져 살과 뼈를 상하게 하다가 포크레인 아가리 안으로 들어가더니 으깨진 팔꿈치를 감싸며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는 양을 하다가 눈물 젖은 얼굴을 푹 수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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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부터 간단히 버림받는다. 여자애에게 있어 아버지의 부재는 곧 '남성과의 관계맺기'를 배울 기회가 박탈되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최초로 욕망을 느낀 친구 남애 역시 산이를 밀어내는데, 그 과정에서 생명을 앗는 처참한 결단까지 요구받는다. 하지만 피가 튀는 그 행동 이후에도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가중처벌이다.
어머니는 생일날 먹는 미역국과 굴비를 차려준 뒤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나버린다. 생일날마다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게 성인이 된 산이는 아버지의 오토바이로 상징되는 도시로 나가, 어머니가 생계를 꾸렸던 미용일로 밥벌이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다. 그녀는 피로감을 느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은 이미 경험된 지옥이다.
그녀는 출판사 오퍼레이터를 욕망한다. 가능하다면 글도 써보고 싶다. 하지만 출판사는 그녀를 거절한다.
좌절된 욕망을 안고 그녀가 찾아간 곳이 화원이다. 말을 못하는 주인과, 역시 말을 못하는 화초들이 그녀를 받아들인다. 농원에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있다. 그들 역시 한국'말'을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녀는 화원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수애라는 친구를 사귄다. 하지만 수애가 친밀한 행동을 보이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 그녀를 밀어낸다. 그녀는 타인과 관계맺는 방법을 모른다.
바이올렛 꽃을 찍으러 왔다가 그녀의 사진을 찍은 남자가 고백하자 그녀는 신열에 들뜬다. 자신을 '예쁘다'고 말해주고, '의미 있는 사람' 이라고 알아봐준 최초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타인과 관계맺는 방법을 거의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남자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시효가 짧은 고백이었거나, 거짓고백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남자는 바이올렛 꽃도 별로라고 했다.
다른사람의 안위는 잘도 지켜주는 경찰이, 산이에게는 폭력을 가하려 한다. 요행 경찰의 폭력은 피하지만, 최현리의 폭행은 피하지 못한다. 그는 산이의 욕망을 '안다'고 했다. 산이도 잘 모르는 욕망을 그는 어떻게 그리도 잘 알까.
폭행당한 산이가 자신의 몸에 해를 가하다가 포크레인 아가리로 들어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노트였다. 무언가 끄적이려던 그녀는 곧 중단한다. 글쓰기가 그녀에게 구원이 되지 못함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얼마 전 다섯살 난 여자아이가 친아버지에게 발을 밟혀 걷지 못하는 상태에서 생활하다가 등을 짓밟혀 갈비뼈가 부러져 죽는 사건이 있었다.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지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어쩐지 세상 사는게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숙 소설을 읽으면 서럽고, 아프고,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나를 발견할 때 묘한 위로를 느낀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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