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벽 - 개정판, 서울대 교수진이 추천하는 통합 논술 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이문구 지음, 정소연 그림, 방민호 논술, 조남현 감수 / 휴이넘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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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벽> 1972年


충청도 해안의 조그만 어항 사포곶에 사는 조등만씨는 올해로 쉰다섯이다. 얼마 전까지는 어업조합장을 하면서 고향을 좀 번듯하게 가꿔보려고 애를 썼다. '사포곶 수산 고등학교'를 세우라며 선산까지 내줬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진 탓에 그의 노력들은 주민들에게서조차 환영받지 못했다.

먼저 마을 숭산에 미군부대가 들어오며 토목공사 따위가 활발해지니 사람들은 자연 그쪽으로 돈벌이를 하러 갔다. 양공주들이 동네에 몰려 들었고, 양장점과 양화점이 어물전을 대신했다. 그 와중에 황승태 며느리가 미군들에게 윤간을 당하자 황승태와 아들이 분을 참지 못해 미치거나 자결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인심이 흉흉해졌다.

게다가 정부는 식량증산을 목표로 농업 활성화에 골몰하고 있었기에, 어항을 폐쇄한 뒤 간척사업을 벌이고자 했다. 박창식 까라 등은 이때다 하고 조등만을 몰아내고 어업조합을 차지했다.

이런 저런 일로 심난한 조등만씨에게 결정타가 된 것은 애지중지하던 배가 떠내려간 일이었다. 결국 조등만씨는 두손 탁탁 털고 아무것도 없는 신세가 되었지만, 끝내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건간망을 쌓는 등 어촌에서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나마 부여잡으려 한다.


<추야장> 1972年


모래미 동네에서 부양가족을 줄줄이 달고 하루벌어 하루먹는 윤만이는 어떻게든 능애랑 결혼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최근 약간의 문제가 생겼는데, 그것은 능애가 덜컥 임신을 해버린 것이다. 다리 뻗을 방 한칸 없었으므로 애를 지우기로 합의했으나, 애를 지울 돈을 어디서 마련하느냐가 또 문제다.

한편, 능애의 어머니 뚝셍이댁은 행실이 좋지 않기로 소문이 파다했는데, 최근 그녀가 천상교라는 사이비 종교를 설파하는 신아불이라는 자에게 푹 빠져 있다. 신아불은 자꾸만 능애 어머니를 꼬여 어디로 가자고 했는데, 윤만이는 그렇게만 된다면 어영부영 능애네 오막살이에 들어가서 살림을 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윤만이는 차일피일 애 지우는 문제를 뭉개면서 상황 변화를 볼 요량이었는데, 능애가 곰곰 생각해보니 윤만이 믿고 시집 갔다가는 신세가 알쪼라 밤도망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마침내 능애가 도망치는 날 밤에, 윤만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수술비 마련을 위해 소금가마에서 소금을 훔친다.


<이 풍헌> 1967年


이 풍헌이 최근 솔깃해 한 이야기가 있으니, 그것은 군청에서 추진하는 사업으로 "고아원 애들을 데려다가 두어달 같이 살면서 가족의 정을 알려준 뒤 다시 고아원에 돌려보내고, 시때때로 찾아가서 놀아줘라"는 것으로, 일종의 자매결연 같은 것이었다.

이 풍헌은 마침 집에 일손이 모자라던 차라 냉큼 가서 아이 하나를 물어오는데, 하필이면 소아마비다. 이 놈을 데려가봐야 양식이나 축낼 게 뻔하므로 떼내려했으나, 아이가 영악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있는데, 요놈이 개구리 잡아다 축생들 먹이고 제법 도움이 된다. 그런 한삼이가 오리를 좋아해서 풍헌은 오리도 두 마리 구해다 주고 지켜보는데, 제법 하는 짓이 귀엽다.

그러던 어느 날 늑대가 나타나자 풍헌은 한삼이가 상했을까봐 화들짝 놀라는데 당행히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한삼이에게 군밤을 먹인다.


<임자수록> 1972年


촌에서 국민학교를 함께 나온 동창생들이 서울에서 다시 모여 '한심회'를 만든다. 회라 봐야 특별히 하는 것은 없고, 천원씩 회비를 걷어 술추렴하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그렇게 모여 먹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어느 날인가는 오리고기를 원없이 먹어보려 했는데 전보가 잘못 배달되는 바람에 산통이 깨지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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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아껴서 읽는 작가가 있다. 이문구 선생이다. 이문열 따위의 작가가 매우 훌륭한 줄 알고 있던 스무살의 나에게 문학이 무엇인지 시야를 넓혀 주었던 작가인데, 타계한지 어느덧 15년이나 흘렀다. 

'어느덧' 이라는 부사를 붙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나이. 사람이 나이를 거꾸로 먹을 수 없으니, 우리는 언제나 '가장 늙은 나'로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그것을 인식하느냐, 인식하지 못하느냐가 나이먹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겠지.

그건 그렇고 아껴 읽다 보니 2008년 <부끄러운 이야기> 이후 10년만에 선생의 작품을 읽었다. '아껴 읽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좋은 것 부터 읽어야 할'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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