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품은 케이프 코드의 작가인 화자가 펜실베니아 주의 검사이자 과거 전우였던 버나드 V.오헤어를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이 장에서 화자는 '드레스덴 폭격에 관하여 글을 쓴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는데,  그 글은 2장에서 "들어보라.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해방되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빌리 필그림은 1922년 뉴욕 주 일리엄에서 한 이발사의 외아들로 태어나 일리엄 검안학교 야간반을 한 학기 다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징집당해 참전하게 된다. 얼핏 빌리 필그림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가 진행되는가 싶더니, 문득 1968년 비행기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1968년 초, 빌리를 포함한 검안사 일행이 비행기를 세내어 몬트리올로 날아가다가 버몬트 주 슈거부시 산꼭대기에 충돌하는데, 빌리 외에는 모두 죽고만다. 그 사건으로 빌리는 두개골 상부를 가로질러 끔찍한 흉터를 남긴 뇌수술을 받는다.

그런데 그 영향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빌리는 자신이 외계인인 트랄파도어인들에게 납치되어 알몸으로 동물원 같은 곳에 전시되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그뒤로 현재, 2차세계대전 참전 당시, 트랄파마도어인에게 납치되었던 이야기가 뒤죽박죽 전개된다.


------


1945년 12월 13일과 14일에 거쳐 영국과 미국 항공기 800여대가 폭격을 시작한다. 폭격은 4월 17일까지 계속되었고, 희생자 수는 5만에서 10만명 사이로 추정된다.(제5도살장에서는 135,000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폭격지는 독일 작센주의 주도인 드레스덴이었다.

히로시마 원폭으로 약 7만명, 나가사키 원폭으로 약 3만 5천명이 사망했으니, 폭격의 참혹상은 미뤄 짐작할만 하다. 그렇다면 왜 드레스덴에 이런 대규모 폭격이 이뤄져야 했을까? 드레스덴은 군사적 요충지도, 군수품 생산기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연합군의 폭격 이유는 독일군의 동부전선 이동을 막는다는 것이었지만, 엘베강 철교와 무관한 폭격이었으므로 궁색한 변명에 불과했다. 대량학살. 그것 말고는 폭격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이 사건이 미국인에게 알려진 것은 23년이나 지난 뒤였다. 미군은 이 가공할 폭격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고, 일부 생존자들이 이 대량학살에 대해 증언한다.


작가 커트보네거트는 1943년 유럽전선에 투입되었다가, 1944년 12월 22일 독일군에 생포된 뒤 드레스덴으로 압송된다. 그들은 그 도시에서 자신들이 갇힌 곳의 주소를 암기했다. "슐라흐토프-퓐프(Schlachthof-fünf)" 제5도살장이다. 최악의 공습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작가는 드레스덴 폭격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끔찍한 그 경험을 평범한 구성으로 담담히 이야기할 수는 없었으리라.


20여년이 흐른 뒤, 작가는 그때의 경험을 다소 비현실적인 공상과학소설 형식을 빌어 1969년에 출간한다. 베트남전쟁, 케네디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 반전운동과 인종폭동, 68혁명 등이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에 출간된 이 작품은 주류 지배계급의 대변자들로부터 "타락하고 음란하며 정신질환적이고 상스러운 반기독교주의 책"로 낙인 찍혀 배제되며, 수많은 검열 시도와 커리큘럼 배제 운동으로 탄압받는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여 사랑과 자유를 노래하던 젊은이들로부터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다. 이로써, 20년간 무명작가였던 커트 보네거트의 과거 작품이 하드커버로 재출간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에드리안 라인 감독의 <야곱의 사다리>가 계속 떠올랐다. 마약에 취해 동료를 살해하고 살아남은 제이콥의 정신이 현재와 베트남 정글을 끊임없이 떠도는 그 몽환적인 연출이. 극도의 공포와 아픔은 현재를 잠식할 뿐만 아니라 현재를 과거에 접붙혀 인간성이 파괴될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11756461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