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등나무 향기>

 

다이쇼 시대 말. 관동대지진과 오스기 사건(여섯 살 아이가 헌병대 대위에게 살해당한 사건) 으로 시대는 암울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당시 '나'는 세토 내해 항구도시의 홍등가 부근에서 오누이라는 이름의 여인과 동거하고 있었다.  

비가 내린 지 사흘 째가 되는 5월의 어느 날, 선착장 구석에서 쉰 살 넘어 보이는 노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단도에 찔린 뒤 돌로 얼굴이 짓이겨진 채였다.

얼마 뒤, 강 수로 위에 놓인 다리 근처에서 서른 두세 살 쯤 된 사내의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수법은 동일했다. 

세번 째 시신은 그로부터 이십 일 뒤에 발견된다. 

의외로 범인은 쉽게 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살해당한 사람이 대필가의 집이 어디인지 물었었다는 것이 드러났고, 대필가 역시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시인한 것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입 하나를 덜기 위해 창가로 팔려온 소녀들. 글자를 모르는 그녀들을 위해 편지를 써주던 대필가는 소녀들의 서러운 사연들에 슬퍼한다.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없을 것임을 깨달은 순간, 대필가는 소녀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한 살인을 저지른다.

 

<도라지꽃 피는 집>

 

로켄바시에서 '잇센마쓰'로 알려진 사내가 도라지꽃을 손에 든 채 시신으로 발견된다. 1928년 9월 말의 일이었다. 

형사인 '나'는는 쇼후칸이라는 작은 유곽을 돌며 조사하여 남자의 이름이 이다마쓰 고로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잇센마쓰'가 유곽을 나가자 후쿠무라 긴이치로라는 이름의 다른 손님이 따라 나갔다는 것도.

후쿠무라 긴이치로는 한 때 조루리 인형극의 인형을 다루었는데 화상으로 한 손을 쓰지 못한다고 했다. 손이 불편한 그가 어떻게 잇센마쓰를 살해했을까. 그런데 얼마 뒤 그 후쿠무라 긴이치로 역시 시체로 발견된다. 


<오동나무 관>

 

'내'가 곤궁하던 때 누키타 형님의 도움을 받게 된다. 당시 서른 초반의 형님은 면도날을 떠올리게 하는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였다.

당시 누키타 형님과 '나'는 가야바 구미 소속이었는데 도진 구미와 대립하고 있었다. 도진 구미는 군부와 손을 잡고 한창 힘을 키워나가는 중이었다.

어느 날인가, 형님이 '나'에게 기묘한 부탁을 한다. 기와라는 여인을 찾아가 관계를 맺고 오라는 것이었는데, 특이한 점은 형님이 입고 다니던 하오리를 걸치고 갔다오게 했다는 점이었다. 여인과 관계를 맺고 오면 형님은 '나'의 몸에 밴 여인의 체취를 취하려는 듯 '나'와 하오리를 취했다. 기와와 누키타 형님은 어떤 관계였을까. 그리고 형님이 두목을 죽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전쟁에 갔다 돌아온 뒤에야 그 이유를 짐작하게된다.


오야붕의 여인 기와와 불륜 관계가 되자 오야붕을 죽인 누키타. 하지만 그 사건으로 기와는 누키타를 멀리하게 된다. 

시체를 태우기 위해 관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을 태우려면 시체가 필요하다. 누키타는 관에 찍힌 범행증거를 없애기 위해 두목을 살해한다. 그리고 하나남은 자신의 손가락 마저 핑계를 만들어 잘라낸다.

전쟁에서 돌아온 '나'는 기와를 찾아가 전투 중 잃은 손가락을 보이며, 같이 살자고 말한다. 


<흰 연꽃 사찰>

 

어머니는 지주의 딸이었지만 '불운을 가져온다'는 이유 때문에 세이렌지의 주지였던 가기노 도모치카에게 시집온다. '내'가 다섯 살 때 그 세이렌지 본당은 큰 화재로 소실되고, 아버지 도모치카도 화재 중 사망하고 만다. 

그런데 '나'는 어릴 적 어머니가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어머니가 죽였던 사람은 노다 만키치라는 주지승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기억은 어딘지 모르게 들어맞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내' 기억 속 하얀 얼굴의 아이는 누구였을까.


아이를 바꿔치기 한 뒤 기억을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살인까지 하는 여인의 행동이 비정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불운을 이기내려 하는 인간의 의지 때문일까.


<회귀천 정사>

 

소노다 가쿠요는 다이쇼 원년(1912) 부터 다이쇼 말년(1926) 사이에 활발한 작품활동을 한 작가로 '정가(情歌)'와 '소생(蘇生)' 두 작품집으로 유명하다.

그는 1911년 열아홉에 무라카시 슈호에게 사사받았는데 초기작은 표면적 형태에 집착하고 기교에 빠져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후 1919년 슈호와 개인적으로 다투고 문하에서 빠져나와 <꿈의 자취>를 발표하는데, 이때부터 그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가 펼쳐진다.

그 후 소노다는 미네라는 부농의 셋째 딸과 결혼하는데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소노다는 아내가 병석에 누운 사이 은행가의 둘째 딸인 가쓰라기 후미오라는 여성과 정사(情死)를 벌이지만 실패하고, 집안의 반대로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정가(情歌)'는 사건 직후 발표된 작품이다.

얼마 뒤 소노다는 이바라기현 치요가우라에서 카페 여종업원인 요다 아야코와 다시 한번 정사를 벌인다. 아야코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구출된 소노다는 사흘 동안 '소생(蘇生)'을 집필한 뒤 자살한다.


소노다가 스승 슈호와 결별한 사건 이면에는 스승의 아내 고토에와의 불륜이 있었다. 고토에는 불륜 직후 불문에 귀의하고 소노다는 끊임없이 고토에의 그림자를 다른 여인에게서 찾았다. 두 번의 정사 사건도 사실은 고토에를 대신할 여자들과의 정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건을 더듬어 가던 '나'는 소노다가 철저히 작품의 감동을 위해 사건을 조작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가'와 '소생'이 씌여진 대로 소노다는는 현실을 꿰어맞췄던 것일지도 모른다.


------


가장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은 <도라지 꽃 피는 집>이다. 조루리 인형극에 <야채가게 오시치> 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린 소녀가 마을에 불이 나 우연히 몸을 피한 절에서 시동과 사랑에 빠진다. 다시 절에 가고 싶었던 소녀는 마을에 방화를 한다. 후쿠무라가 죽으면 다시 형사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에 살인을 하는 열여섯 창기 스즈에. 단지 뒤돌아 보는 모습이 보고 싶어 도라지꽃을 던졌던 어린 마음과 살인이 대비되는 수작이다.

  

유려한 문장과 섬세한 필치가 극도의 낭만을 그려낸다. 그 낭만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슬픔. 

사건의 이면에 진실을 위치시키고 그것이 드러났을 때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구성으로 <회귀천 정사>는 제 3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855610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하철
아사다 지로 지음, 정태원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25년 만의 동창회에 참석한 신지는 자신의 현재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아 술을 과하게 마신다. 취한 채로 지하철 역을 향해 걸어가는 신지가 무거운 수트케이스를 끌고가는 이유는, 그의 직업이 속옷 외판원이기 때문이다. 지하철 역에서 옛 은사인 노페이를 만난 신지는 잠시 과거를 떠올린다.

어렸을 때 신지는 좋은 집에 살았다. 신지의 아버지 고누마 사키치는 벼슬아치가 살던 고급주택가를 매입하여 부를 과시했다. 폭군인 아버지의 부는 날마다 늘어갔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렸고, 큰형을 윽박질렀다. 감수성이 예민한 큰형과 아버지가 크게 싸운 날, 큰형은 분함과 슬픔을 안고 지하철 선로에 뛰어내려 자살한다. 그 사건이 상처가 되어 신지와 어머니는 아버지와 의절한다. 아버지는 현재 일본에서 손꼽히는 그룹의 오너이지만 신지는 평범한 샐러리맨인 이유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던 신지가 문득 이상함을 느낀다. 역 주변 풍경, 지나치는 사람들...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 신지는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해로 시간여행을 온 것이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주변을 살피던 신지는 자신이 워프한 날이 형이 자살한 날이었음을 깨닫는다. 부랴부랴 형이 있을만한 곳을 찾아 헤매던 신지가 빠찡꼬 가게에서 형을 발견한다. 어른이 된 신지는 아직 어린 형을 운전기사 무라마츠의 집에 데리고 가 아버지와의 충돌을 피하도록 조치한다. 

꿈껼 같은 시간 여행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신지는 형이 살아있는지 확인한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형이 죽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얼마 뒤, 신지는 최근 깊은 관계를 맺게 된 미치코와 밤을 보내게 되는데 꿈 속에서 또 한번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신기한 것은 미치코도 함께였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워프한 시간대는 전쟁 직후였다. 엄청난 인플레 때문에 달러와 미군PX 물품을 손에 쥐면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였다. 신지와 미치코는 몇 차례 시간여행을 통해 처세에 능한 '아무르'라는 사내를 만나 사귀게 된다. 처음엔 약빠른 그 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살기 위해 아둥바둥 하면서도 신의를 지키는 모습이나, 전쟁통에 일본인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뀐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아무르'가 사실은 신지의 아버지 고누마 사키치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알고 싶지 않았던 또 하나의 비밀, '아무르'의 정부 오도키가 사실은 미치코의 어머니임도 알게 된다. 미치코와 신지는 배다를 남매였던 것. 사실을 알게 된 미치코는 임신한 오도키를 계단에서 밀어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킨다. 현재로 돌아온 신지는 미치코의 부재를 슬퍼한다. 그리고 살기위해 냉혹해진 아버지와 화해한다.


아사다 지로의 1995년도 작품으로 제16회 <요시가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수상작이다. 다소 작위적이고 세련된 맛도 덜하지만 아사다 지로 특유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현재의 '나' 보다 훨씬 어린 아버지가 전쟁에 끌려가고, 비참한 상황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안쓰러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 부모와 자식이 화해할 때 기본적으로 '안쓰러움'이 감정의 주조를 이루다는 사실을 작가는 잘 파악한 것 같다. 그리고 아사다 지로는 이런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려주는 재주가 뛰어난 작가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761483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 밀레니엄 (문학동네) 5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편 <거미줄에 걸린 소녀>에서 리스베트는 쌍둥이 여동생 카밀라가 이끄는 조직 '더 스파이더 소사이어티'에 맞서 승리를 거두지만, 그 과정에서 일으킨 몇 가지 문제 때문에 2개월 금고형을 선고받는다. 수감된 리스베트는 교도관 알바르 올센, 그리고 여러 건의 살인으로 종신형에 처해진 베니토의 주의를 끈다.

알바르 올센은 리스베트가 어딘지 모르게 비범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녀에게 지능검사를 시도하는 등 호의를 갖고 접근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할 뿐이었다.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기준을 강요하거나  테스트하는 것이야 말로 리스베트가 가장 싫어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리스베트는 교도소의 실권을 잡고 휘두르고 있는 것이 베니토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베니토가 최근 골몰하고 있는 것은 방글라데시 출신 파리아 카지를 괴롭히는 일이었다.

파리아 카지는 친오빠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중이었는데 거기에는 사정이 있었다. 파리아 카지의 부모와 오빠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심취한 자들로서 파리아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가족에게 있어 그녀의 효용가치는 방글라데시 본토에 섬유공장 세 개를 가지고 있는 육촌의 2번째 부인이 되어 집안에 돈을 끌어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파리아는 방글라데시 출신 망명자 청년 자말 초두리에게 반해 있었다. 그에 대한 사랑으로 애를 태우던 파리아가 집을 탈출하는데 성공하고 둘은 꿈과 같은 한 때를 보낸다. 하지만 행복한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자말 초두리가 지하철 선로에 떨어져 사망하고 만 것이다. 파리아는 자말 초두리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고 분개하여 오빠를 창문에서 떠밀어버린 것이다. 


리스베트는 베니토의 권력을 해제하고 알바르 올센이 교도소 시스템을 재건할 수 있도록 조치하지 않으면 파리아가 살해당할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때가 무르익자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한 행동에 돌입했다. 베니토를 알바르 올센이 지켜보는 앞에서 때려눕힌 것이다. 알바르 올센은 진상조사를 통해 '베니토가 교도소 내에 칼을 반입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을 쓸 수 밖에 없었다' 라고 진술함으로써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교도소의 권위를 바로 세운다.


한편, 리스베트는 교도소 복역 중 자신의 과거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과 카밀라가 분리되어 양육된 것과 같은 사례들을 발견한 것이다. 웁살라 유전자 및 사회환경 연구소의 '프로젝트 9' 은 쌍둥이를 분리 입양시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양육되게 함으로써 인간의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유전자인지, 아니면 양육환경인지 알아내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비인도적인 일들이 행해졌다. 분리 양육된 쌍둥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평생동안 자신이 느끼는 '불완전함'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괴로워해야 했다.

리스베트는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에게 분리 양육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레오 만헤이메르에 대해 조사해줄 것을 부탁한다. 레오 만헤이메르는 증권회사 알프레드 외그렌의 수석 분석가로 머리가 좋고 음악적 감각도 뛰어났다. 하지만 그가 입양되었다는 근거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삶에서 특이할 만한 사건이 몇 가지 발견되는데, 레오 만헤이메르의 라이벌인 이바르가 레오에게 '유랑민 새끼(로마)'라고 욕을 해 레오가 괴로워했다는 것과, 레오의 영민함에 대해 연구하던 칼 세게르라는 젊은 심리학자가 사냥 중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었다.

게다가 미카엘과 친분이 있는 말린 프로데가 레오 만헤이메르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이상했다. 그녀 말에 따르면 레오는 왼손잡이인데 최근 오른손잡이로 변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리스베트가 가장 사랑하는 변호사 홀게르 팔름그렌이 쌍둥이 분리 양육과 관련된 조사 도중 살해당하고, 리스베트에게 초주검이 되었던 베니토가 탈옥해 파리아의 오빠들 그리고 MC 스바벨셰와 연합하면서 사건은 숨가쁘게 돌아간다.


------


<밀레니엄> 시리즈는 <밀레니엄> 잡지라는 언론을 통해 사회 부조리를 파헤쳐 나가는 과정을 그릴 때 가장 매력적이다.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다소 엉뚱한 해커 리스베트의 조합이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작품은 여타 스릴러물과 다른 개성을 획득한다. 그런데, 본작에서 라게르크란츠는 리스베트의 존재를 너무 부각시킨 나머지 이러한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사실 해커라는 설정은 양날의 검이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는 흥미 유발에 도움이 되지만 작품의 현실성을 떨어뜨리고 구성을 불완전하게 할 소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리스베트가 해킹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부분은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본작에서는 리스베트의 해킹능력 뿐 아니라 맨몸전투 능력 마저 한층 끌어올려 놓았다. 희대의 살인마를 단 두번의 펀치로 녹다운 시키고, 유리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거구의 상대가 내뻗는 펀치를 몇 차례나 받아낸다. <밀레니엄> 시리즈가 여성 슈퍼히어로 소설이 되어 버렸다. 

또, 전체 시리즈의 연결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될 베니토의 스토리라인와 레오 만헤이메르의 스토리라인을 전면에 내세운 점도 그다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거미줄에 걸린 소녀>를 읽고 밀레니엄 시리즈가 계속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느꼈던 희망이, 이번 작품에서 급격히 사그러든다. 스티그 라르손의 요절이 안타깝다.


6월 20일부터 25일 까지 베트남 다낭 · 호이안 여행 중 읽었다. 더웠고, 볼 게 별로 없었다. 그래도 아이가 태어나고 첫 해외여행이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735707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트로베리 나이트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1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8월 12일, 도립 미즈모토 공원 인근 주택가에서 파란 천막지에 쌓인 시체가 발견된다. 도쿄 경시청은 즉시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주인공 히메카와 레이코 경위 역시 수사에 참가한다.

부검 결과 시체는 사망한 지 이틀 남짓 되었고, 사인은 경부 절창의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사였다. 사용된 흉기는 커터칼로 추정되었는데, 특이한 점은 상반신에 판형 유리를 올려 놓은 뒤 거대한 둔기로 위에서 내려치듯 구타한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복부에서 고관절을 향해 36cm 가량 절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얼마 뒤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진다. 성명은 카네하라 타이치, 종합 문구용품 영업사원이었다. 주변의 평판은 성실하고 무난하다는 것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최근 부쩍 일에 의욕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아내와 면담한 결과 카네하라 타이치는 최근 몇 달간 둘째 주 일요일에는 반드시 집을 비웠다고 했다. 그가 살해된 날 역시 둘째 주 일요일이었다.


수사가 잠시 답보에 빠지려는 시점에 히메카와 레이코가 미즈모토 공원 인근에 있는 우치다메 저수지에 꽂혀있는 '수질이 수영에 적합하지 않아 위험함' 이라는 문구를 보게된다. 그리고 연상작용으로 최근 물 속에 서식하는 파울러 자유아메바에 감염되어 사망한 사람을 떠올린다. 사망자는 후카자와 야스유키였고 그는 우치다메 저수지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히메카와 레이코는 시신의 복부에 나 있던 절창이 부패가스를 발생시키지 않으려는 목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가설을 발전시켜 후카자와 야스유키가 시신 운반자였으나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주택가에서 카네하라 타이치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추리했다.

히메카와 레이코의 가설에 따라 우치다메 저수지를 수색한 결과 시신이 한 구 더 발견된다. 발견된 시신의 신원은 나메카와 유키오로 대형 광고 회사 직원이었다. 그런데 나메카와 유키오에 대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발견된다. 최근 일에 의욕이 넘쳤고, 매월 둘째 주 일요일에는 스케줄이 있었다.


수사는 후카자와 유키치의 주변으로 확대된다. 후카자와 유키치는 사망 당시 73만엔이라는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 변변한 직업도 없던 후카자와 유키치가 이런 큰 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시신을 유기하고 받은 댓가가 아니었을까? 시신은 어쩌면 두 구가 아니라 수십 구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그에게는 유카리라는 이름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공황장애와 화병, 그리고 이인증과 자해행위 등의 증상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었다. 경찰은 유카리와 면담을 원했으나 담당의의 반대로 뜻한 바를 이룰 수 없었다.


단서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튀어나왔다. 성실한 타입의 수사관 오쓰카가 나메카와의 대학시절 친구를 조사하다가 "스트로베리 나이트" 라는 키워드를 얻은 것이다. 오쓰카는 전과자 타쓰미를 통해 "스트로베리 나이트"가 살인쇼를 중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라는 점을 파악하고  관계자 명단 일부도 입수한다. 그리고, 얼마 뒤 토다 조정경기장에서 아홉 구의 시체가 추가로 발견되어 대규모 살인 쇼에 대한 의심은 현실이 된다.


------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 중 하나로 그녀가 형사가 된 이유가 소개된다. 고등학교 시절 히메카와 레이코는 연쇄강간범에게 당한 뒤 두려워 움츠러 든다. 그때 초보 여형사 사타가 최선을 다해 레이코를 응원한 덕택에 조금씩 용기를 찾는다. 

사타는 연쇄강간범 체포에 지대한 공을 세우지만 범인에게 현장에서 살해 당하고 두 계급 특진하여 경위가 된다. 레이코는 자신은 살아서 경위를 달고 사타씨와 같은 훌륭한 형사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라는 다소 진부한 스토리다. 그런데 그 때문인지 히메카와 레이코는 자신이 경위임을 상당히 의식하는 모습이 소설 속에서 빈번히 나온다. 이것이 독자에게 긍정적으로 보일 지는 의문이다.

또, 소설은 상호 경쟁하느라 정보를 숨기고 공을 독차지 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 정보원을 매수하는 수사1과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우리나라 정서로 보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짐승의 성>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혼다 테쓰야의 소설을 한동안 피했는데 <스트로베리 나이트>는 드라마로 제작된 적도 있고 하니 정도가 덜하겠거니 하고 집어 들었다. 결론적으로 <짐승의 성>만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스트로베리 나이트>도 하드코어한 편이다. 수수께끼 풀이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607744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0이 넘는 키와 엄청난 왼손 완력으로 고교 시절 이미 프로야구단의 지목을 받았던 최현수. 하지만 정작 프로야구로 넘어간 뒤에는 2군을 전전하다 은퇴한다. 고질적인 왼손 마비증세 때문이었고, 그 때문에 별명은 '용팔이' 었다. 직업 야구 선수로서 치명적 결함이었다.

연봉이 800만원 밖에 안되는데도 장래성 하나를 보고 최현수와 결혼했던 강은주는 남편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이 되자 악바리가 되어 돈을 모은다. 몇 년이 흐른 뒤, 강은주는 일산에 전세를 끼고 빚을 얻어 아파트를 장만한다. 이자비용과 당장 살 집은 어찌할 것이냐는 최현수의 물음에, 강은주는 지방근무를 자원하여 사택에 들어가면 된다고 답변한다. 최현수가 야구선수를 은퇴한 뒤 취직한 보안업체는 지방근무 자원자가 모자랐다.


이사가기 전 사택을 보고 오라는 강은주의 바가지를 뒤로 한 최현수는 는적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과거 함께 운동했던 친구가 차린 술집에 가 술을 마시며 자신의 인생이 왜 이리 꼬였는지 괴로워하던 그는 취중에 운전대를 잡는다. 이미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한 버릇이었다.

비가 내리던 그 날, 최현수는 세령댐 부근 도로에 갑자기 뛰어든 무언가를 치고 만다. 여자아이였고, 기묘하게 뒤틀려 버린 몸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했던 여자아이는 상태를 살펴보는 최현수에게 '아빠'라고 중얼거렸다. 최현수는 자기도 모르게 여자아이를 질식시켜 죽인다. 그리고 강물에 빠뜨린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시간들이 지나고, 최현수는 부랴부랴 차를 수리한다. 강은주에겐 사택에 다녀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세령댐 근무를 취소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강은주에겐 씨알도 안 먹힐 얘기였다.


한편, 최현수와 한 집에 살게 될 승환은 사건 당일 날 밤 세령댐에 몰래 들어가 잠수를 하고 있었다. 승환의 아버지는 한강에 빠진 시신을 건져내던 것을 업으로 삼았었고, 아들인 자신도 SSU 출신이었다. 그날 승환은 한 구의 시신이 자신의 옆으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오영제가 있다. 세령의 아버지이자 하영의 남편. 세령수목원의 상속자로 인근 토지 대부분을 소유한 부자이며, 서울에 메디컬센터 빌딩을 가진 치과의사. 그는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족의 한 부분으로 아내와 딸을 끼워 넣었다. 원대로 되지 않으면 폭력을 통한 '교정'을 가했다.

참다 못한 하영이 집을 나가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오영제는 1심에서 패소했다. 그 분풀이를 딸 세령에게 퍼부었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세령은 엄마가 그리워 엄마의 옷을 입고 화장을 했었다. 오영제는 그런 딸을 '교정' 하였고, 세령은 오영제가 방심한 틈을 타 바깥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최현수의 차에 치여 숨진다.


세령호에서 시신이 발견되자 경찰은 오영제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오영제가 세령을 학대했다는 정황만 나왔을 뿐 살해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오영제는 경찰이 헛발질을 하는 동안 '서포터'를 고용해 별도로 조사를 시작한다. 처음엔 사건 당일 잠수를 한 승환을 의심한다. 하지만 CCTV에 나타난 차량 불빛과 새로운 보안팀장 최현수의 등장으로 오영제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었는지 깨닫는다.


오영제가 최현수를 요리하는 것은 무척이나 쉬웠다. 최현수는 자신의 범행을 감당하지 못해 술로 세월을 보냈고, 몽유병 증세까지 보였다. 자해로 왼손이 봉인되고, 오영제가 놓은 덫에 발까지 다친 최현수. 오영제는 서원을 세령호 한가운데 불룩 솟은 한솔등에 묶어놓고 댐 수문을 막아버린다. 물이 차오르면 서원이 죽을 것이고, 물을 빼기 위해 수문을 열면 마을 사람들이 수몰될 것이다. 최현수는 서원을 살리기 위해 수문을 연다. 그 결과 최현수는 희대의 살인마가 되어 사형을 언도 받는다.

7년이 지난 뒤, 형이 집행되고 최현수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 사이 서원은 살인마의 아들로 정상적인 생황을 하지 못하고 쫓겨다닌다. 그러다 어느 날, 승환이 쓴 소설을 읽게 된다. 최현수와 오영제, 그리고 승환과 자신이 주인공인 그 소설의 마지막 장은 엄마인 강은주의 챕터만 비어있었다.

아버지 최현수의 형이 집행되었다는 전보가 배달된 날, 사라졌던 오영제가 서포터와 함께 다시 나타난다. 붙잡힌 승환과 서원은 하영의 전화번호를 미끼로 마지막 도박을 시작한다.


------


정신병동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내 심장을 쏴라>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최근 작가들 답지 않게 경험과 취재가 글에 적절히 녹아 있어 진지함이 돋보였다.  그래서 <7년의 밤>을 사 놓고 벼르다 이번에 읽게 되었다.

한번에 쭉 읽어나가지 못하고 자꾸 책을 덮은 것은 그만큼 긴장을 고조시켜 나가는 작가의 솜씨가 훌륭했기 때문이리라. 호흡도 적절하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도 좋다.


그러나 선이 굵은 이 소설은 남성적인 영역에서 자주 취약점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사람을 치어서 보닛과 범퍼 등이 파손된 차를 동네 카센터에 오전에 맡겼다 오후에 찾아온다는 대목이나, 수리된 부분을 보고 15일에서 30일 사이에 수리된 차임을 정비공이 일러준다거나 하는 부분이 그렇다. 작가가 이런 분야에는 경험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또한, 일회용 면도칼의 칼날 부분을 분리한다는 대목 역시 아리송하다. 과거 안전면도기의 면도날을 말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일회용 면도기의 면도날은 별도로 분리할 수 없다.

소소한 부분이긴 하지만 입 안에 난 수포에 혀를 자꾸 대보는 것처럼 걸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7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사람은 미움이든 사랑이든 그렇게 오랜 시간을 자가발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싸이코패스의 이야기다, 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장르소설로서 특정 매니아를 표적으로 한 소설이 아닌 바에야, 작품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오영제에 대한 악마화는 디테일에서 완성되었어야 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507444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