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등나무 향기>

 

다이쇼 시대 말. 관동대지진과 오스기 사건(여섯 살 아이가 헌병대 대위에게 살해당한 사건) 으로 시대는 암울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당시 '나'는 세토 내해 항구도시의 홍등가 부근에서 오누이라는 이름의 여인과 동거하고 있었다.  

비가 내린 지 사흘 째가 되는 5월의 어느 날, 선착장 구석에서 쉰 살 넘어 보이는 노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단도에 찔린 뒤 돌로 얼굴이 짓이겨진 채였다.

얼마 뒤, 강 수로 위에 놓인 다리 근처에서 서른 두세 살 쯤 된 사내의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수법은 동일했다. 

세번 째 시신은 그로부터 이십 일 뒤에 발견된다. 

의외로 범인은 쉽게 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살해당한 사람이 대필가의 집이 어디인지 물었었다는 것이 드러났고, 대필가 역시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시인한 것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입 하나를 덜기 위해 창가로 팔려온 소녀들. 글자를 모르는 그녀들을 위해 편지를 써주던 대필가는 소녀들의 서러운 사연들에 슬퍼한다.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없을 것임을 깨달은 순간, 대필가는 소녀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한 살인을 저지른다.

 

<도라지꽃 피는 집>

 

로켄바시에서 '잇센마쓰'로 알려진 사내가 도라지꽃을 손에 든 채 시신으로 발견된다. 1928년 9월 말의 일이었다. 

형사인 '나'는는 쇼후칸이라는 작은 유곽을 돌며 조사하여 남자의 이름이 이다마쓰 고로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잇센마쓰'가 유곽을 나가자 후쿠무라 긴이치로라는 이름의 다른 손님이 따라 나갔다는 것도.

후쿠무라 긴이치로는 한 때 조루리 인형극의 인형을 다루었는데 화상으로 한 손을 쓰지 못한다고 했다. 손이 불편한 그가 어떻게 잇센마쓰를 살해했을까. 그런데 얼마 뒤 그 후쿠무라 긴이치로 역시 시체로 발견된다. 


<오동나무 관>

 

'내'가 곤궁하던 때 누키타 형님의 도움을 받게 된다. 당시 서른 초반의 형님은 면도날을 떠올리게 하는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였다.

당시 누키타 형님과 '나'는 가야바 구미 소속이었는데 도진 구미와 대립하고 있었다. 도진 구미는 군부와 손을 잡고 한창 힘을 키워나가는 중이었다.

어느 날인가, 형님이 '나'에게 기묘한 부탁을 한다. 기와라는 여인을 찾아가 관계를 맺고 오라는 것이었는데, 특이한 점은 형님이 입고 다니던 하오리를 걸치고 갔다오게 했다는 점이었다. 여인과 관계를 맺고 오면 형님은 '나'의 몸에 밴 여인의 체취를 취하려는 듯 '나'와 하오리를 취했다. 기와와 누키타 형님은 어떤 관계였을까. 그리고 형님이 두목을 죽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전쟁에 갔다 돌아온 뒤에야 그 이유를 짐작하게된다.


오야붕의 여인 기와와 불륜 관계가 되자 오야붕을 죽인 누키타. 하지만 그 사건으로 기와는 누키타를 멀리하게 된다. 

시체를 태우기 위해 관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을 태우려면 시체가 필요하다. 누키타는 관에 찍힌 범행증거를 없애기 위해 두목을 살해한다. 그리고 하나남은 자신의 손가락 마저 핑계를 만들어 잘라낸다.

전쟁에서 돌아온 '나'는 기와를 찾아가 전투 중 잃은 손가락을 보이며, 같이 살자고 말한다. 


<흰 연꽃 사찰>

 

어머니는 지주의 딸이었지만 '불운을 가져온다'는 이유 때문에 세이렌지의 주지였던 가기노 도모치카에게 시집온다. '내'가 다섯 살 때 그 세이렌지 본당은 큰 화재로 소실되고, 아버지 도모치카도 화재 중 사망하고 만다. 

그런데 '나'는 어릴 적 어머니가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어머니가 죽였던 사람은 노다 만키치라는 주지승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기억은 어딘지 모르게 들어맞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내' 기억 속 하얀 얼굴의 아이는 누구였을까.


아이를 바꿔치기 한 뒤 기억을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살인까지 하는 여인의 행동이 비정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불운을 이기내려 하는 인간의 의지 때문일까.


<회귀천 정사>

 

소노다 가쿠요는 다이쇼 원년(1912) 부터 다이쇼 말년(1926) 사이에 활발한 작품활동을 한 작가로 '정가(情歌)'와 '소생(蘇生)' 두 작품집으로 유명하다.

그는 1911년 열아홉에 무라카시 슈호에게 사사받았는데 초기작은 표면적 형태에 집착하고 기교에 빠져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후 1919년 슈호와 개인적으로 다투고 문하에서 빠져나와 <꿈의 자취>를 발표하는데, 이때부터 그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가 펼쳐진다.

그 후 소노다는 미네라는 부농의 셋째 딸과 결혼하는데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소노다는 아내가 병석에 누운 사이 은행가의 둘째 딸인 가쓰라기 후미오라는 여성과 정사(情死)를 벌이지만 실패하고, 집안의 반대로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정가(情歌)'는 사건 직후 발표된 작품이다.

얼마 뒤 소노다는 이바라기현 치요가우라에서 카페 여종업원인 요다 아야코와 다시 한번 정사를 벌인다. 아야코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구출된 소노다는 사흘 동안 '소생(蘇生)'을 집필한 뒤 자살한다.


소노다가 스승 슈호와 결별한 사건 이면에는 스승의 아내 고토에와의 불륜이 있었다. 고토에는 불륜 직후 불문에 귀의하고 소노다는 끊임없이 고토에의 그림자를 다른 여인에게서 찾았다. 두 번의 정사 사건도 사실은 고토에를 대신할 여자들과의 정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건을 더듬어 가던 '나'는 소노다가 철저히 작품의 감동을 위해 사건을 조작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가'와 '소생'이 씌여진 대로 소노다는는 현실을 꿰어맞췄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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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은 <도라지 꽃 피는 집>이다. 조루리 인형극에 <야채가게 오시치> 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린 소녀가 마을에 불이 나 우연히 몸을 피한 절에서 시동과 사랑에 빠진다. 다시 절에 가고 싶었던 소녀는 마을에 방화를 한다. 후쿠무라가 죽으면 다시 형사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에 살인을 하는 열여섯 창기 스즈에. 단지 뒤돌아 보는 모습이 보고 싶어 도라지꽃을 던졌던 어린 마음과 살인이 대비되는 수작이다.

  

유려한 문장과 섬세한 필치가 극도의 낭만을 그려낸다. 그 낭만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슬픔. 

사건의 이면에 진실을 위치시키고 그것이 드러났을 때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구성으로 <회귀천 정사>는 제 3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855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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