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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트 마지막 사건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34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 지음, 손정원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월가의 거물 시그즈비 맨더슨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마다 일대 공황의 폭풍우에 휩쓸렸다. 물가는 지진으로 탑이 무너지듯 폭락했고, 월가는 아비규환에 찬 지옥을 연상케 했다. 투자기업이 많은 미국 곳곳에서 파산하는 사람이 나타나 숱한 사람들이 허무하게 자살했고, 유럽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전개되었다. 월가가 폭락에 빠지는 것을 시그즈비 맨더슨이라는 거물이 가까스로 억누르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레코드> 신문사는 이 사건을 파헤쳐 진상을 밝혀 낸다면 특종은 따논 당상이라고 생각해 전직 화가이자 현직 탐정인 트렌트를 초청한다.
이에 응한 트렌트는 사건 현장으로 가기 전 나다니엘 버튼 카플스씨와 면담을 하는데, 그는 맨더슨의 아내 메이벨의 고모부였다. 카플스 씨는 맨더슨이 메이벨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맨더슨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카플스를 통해 알아낸 바에 따르면 맨더슨은 눈에 총을 맞아 사망했는데 권총이 주변에 떨어지지 않은 점, 양쪽 손목이 벗겨져 멍이 든 점 등으로 보아 살해된 것 같았다. 옷은 그런대로 차려입은 상태였지만 평상시와 달리 서두른 흔적이 있었고, 구두끈도 평상시와 달리 흐트러진 상태였다. 또 회중시계가 반대 주머니에 들어있고 틀니를 착용하지 않은 점 등이 특이했다. 그가 서둘러 외출했다고 생각한다면 납득할 수도 있었지만 어딘지 이상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트렌트는 맨더슨이 아내 메이벨과 소원하게 지냈다는 점, 그가 비서 존 머로우와 아내 메이벨의 관계를 의심했던 점 등에 착안해 조사를 시작하고, 사건 현장에서 지문을 채취하여 증거를 확보한 뒤 범인이 머로우라는 결론에 이른다.
사실 머로우는 맨더슨이 사망한 시각 알리바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머로우가 자신이 맨더슨인 것처럼 꾸민 뒤 집에 돌아온 것으로 집안 사람들을 속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알아낸 트렌트는 자신이 알아낸 사실 일체를 메이벨에게 편지로 남긴 뒤 맨더슨의 저택을 떠난다. 트렌트는 메이벨에게 반해 그녀가 공범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사건을 덮어버린 것이다.
시간이 흘러 트렌트는 메이벨에 관한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다. 그녀는 자신의 예측과 달리 비서 존 머로우와 결혼하지 않았으며, 조용한 곳으로 이사 해 예술에 몰두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존 머로우 역시 어떤 여성과 결혼한 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맨더슨 집안과 관계를 단절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트렌트의 가정, 즉 메이벨과 존 머로우가 내연관계를 맺었고 이에 대부호 맨더슨을 살해하고 유산을 노렸다는 전제 자체가 완전히 틀렸다는 말이 아닌가! 이에 트렌트는 메이벨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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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는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과 매우 절친한 사이였는데, 그가 <목요일의 남자>를 벤틀리에게 헌정하자 벤틀리는 1912년 이 책 <트렌트 마지막 사건>을 체스터튼에게 헌정한다.
작중 탐정 트렌트는 전직 화가로 사물을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안락의자형 탐정인데, 제목과 달리 트렌트가 등장하는 시리즈가 있는 것은 아니다. 벤틀리는 본업이 소설가가 아니었으므로 계속 책을 낼 가망이 없다 보고 이렇게 제목을 지은 것이라 한다.
작품은 두 번의 반전이 있는데, 첫번째는 트렌트가 메이벨과 만나 진상을 들은 뒤 비서 존 머로우의 진술을 듣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맨더슨은 자신의 아내와 비서 존 머로우가 내연관계라고 의심하여 존 머로우를 없애기로 한다. 그래서 다량의 현금을 인출하고 다이아몬드를 매입한 뒤 상자에 담아 존 머로우에게 건낸다. 그리고 사업상 비밀을 요하는 일이라는 전제를 단 뒤, 밤새 운전해 가야 하는 장소로 가서 가명으로 투숙한 뒤 누군가를 만나 상자를 건내주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이는 존 머로우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략이었다. 맨더슨은 그가 떠나고 나면 자살하여 존 머로우를 강도살인범으로 몰 작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존 머로우가 맨더슨의 행동을 수상히 여겨 그와 헤어진 장소로 다시 갔다가 맨더슨의 사체를 발견하면서 고민에 빠진다. 자신이 진실을 말해도 배심원들이 받아들여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 머로우는 그의 시체를 옮기고 자신이 맨더슨인 양 집안에 들어갔다 나와 알리바이를 만든다.
이상의 진실을 알게 된 트렌트는 메이벨의 자조 섞인 고백, 자신이 재혼하면 상속 유산이 무효가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을 듣고 그녀에게 청혼한다.
다른 반전은 이와 같은 사실을 메이벨의 고모부 카플스씨에게 고백했을 때 드러난다. 카플스씨는 심드렁하게 자신은 처음부터 존 머로우가 범인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이유를 묻자 뜻밖에도 '맨더슨을 쏜 것이 자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아닌가.
사실 맨더슨은 자살하려던 것이 아니라 총으로 자신을 쏘아 존 머로우의 강도상해로 몰려 했는데 그 일을 실행하려던 순간 카플스씨에게 목격당해 격투를 벌이다가 사고로 눈을 맞고 사망한 것이다.
이와 같이 안락의자 탐정의 추리 곳곳에 헛점이 발견되어 진실이 몇 번이나 뒤바뀌는 상황을 설정한 작가는 이 책을 쓴 의도에는 첫째, 기존 안락의자 탐정들이 독자와 모든 단서를 공유하지 않는 점, 둘째, 그들의 추리가 무오류가 아닌 이상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비판하는 목적도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976847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