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뱀파이어 연대기 1
앤 라이스 지음, 김혜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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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루이스가 하룻 밤 동안 인터뷰를 하며 지나온 생애를 들려준다.

 

루이스는 루이지애나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그의 동생이 비전을 보았다며 가산을 모두 처분하여 선교 활동에 써야 한다고 조르지만 루이스는 응낙하지 않는다. 동생은 사망하고, 원인이 자살인지 사고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루이스는 이 사건이 무척 자기중심적인 데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성자가 자신과 가까운 곳에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뱀파이어 레스타에 의해 뱀파이어가 된 루이스는 레스타와 기묘한 생활을 시작한다. 레스타는 루이스의 농장 쁘앙뜨 둘락으로부터 안정적인 수입을 취할 수 있고,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모시기에도 적당하다고 생각하였다. 레스타는 루이스 역시 뱀파이어의 성정으로 자신과 함께 살인의 쾌락을 즐길 것을 기대하였지만 루이스는 인간적인 본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람의 피를 거부한 채 동물의 피로 연명한다.

 

사색적이고 인간적인 루이스는 선과 악에 대한 인간적 기준과 뱀파이어로서의 본능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이 때문에 레스타와 사사건건 마찰한다. 루이스의 인간적인 면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루이스가 떠날 것을 두려워한 레스타는 고아 소녀 끌로디아를 뱀파이어로 만든다. 루이스의 사색적인 면과 레스타의 야수적 본성을 모두 가진 끌로디아는 뱀파이어의 영생과 사멸, 동족의 존재 등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 한다. 그리고 레스타가 사실은 뱀파이어의 비밀에 대해 아무 것도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점과 자신을 어린 아이 상태에서 뱀파이어로 만든 것에 대한 증오가 겹쳐 창조자 레스타를 살해한다. 끌로디아를 지키기 위해 살해에 가담한 루이스는 끌로디아와 함께 뱀파이어의 발생지로 종종 지목되는 동유럽으로 건너가지만, 그곳에는 살인 욕구만 남은 분별 없는 하급 뱀파이어들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프랑스로 건너간 그들은 뱀파이어 아르망을 만나게 된다. 아르망은 극장 떼아뜨르 드 빵삐레를 거처로 삼고 여러명의 뱀파이어를 거느린 인물로 확신에 찬 그의 언행에 루이스는 매혹 된다. 아르망 역시 인간적인 고뇌를 하며 답을 구하는 루이스에게 끌리게 되고, 끌로디아는 루이스를 독차지하려는 욕심에 아르망이 자신을 제거할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떠나게 될 것을 예감한 루이스는 끌로디아의 청에 따라 마들린느를 뱀파이어로 만들어 끌로디아와 함께 있도록 한다. 레스타가 부활하여 극장으로 찾아와 그들이 자신에게 한 짓을 알리자 뱀파이어들이 마들린느와 끌로디아를 살해하고, 그제서야 루이스는 자신이 끌로디아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해뜨기 직전에 극장을 불살라 뱀파이어들을 살해하여 복수한다.

 

뉴 올리언즈로 아르망과 돌아간 루이스는 그곳에서 레스타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레스타는 영생의 몸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죽어가는 인간처럼 모든 정렬을 소진한 존재가 되어버렸고,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아르망에게 실망한 루이스는 상실감만을 안게 된다. 

 

인터뷰를 마친 루이스에게 지금껏 듣고 있던 젊은이는 뱀파이어의 영생체에 매혹 당해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들어줄 것을 간청하지만 루이스는 그의 피를 마실 뿐이다. 가까스로 살아난 젊은이는 뱀파이어가 되기 위해 레스타의 소재지를 루이스의 인터뷰로 부터 알아 내고, 그곳을 찾아 떠난다.

 

1994년 닐 조단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기도 한 작품으로 <뱀파이어 연대기 The Vampire Chronicles> 첫째 권이다. 프랑스 인들이 정착한 미국의 뉴 올리언즈를 떠나 유럽으로 가지만 그곳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공간적인 이동을 한 축으로, 자신의 창조자(레스타)를 부정하여 죽이고 다른 창조자(아르망)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 모두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이야기를 다른 한 축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루이스는 아르망에게 한때 매혹되어 그를 따라나서지만 이는 자신의 인간적 고뇌, 악을 행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인간의 피를 마시고 뱀파이어면서도 인간적 고뇌에 괴로워하는가 하면

신을 찾아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신부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때 나타난 아르망은 루이스에게 강력하고 아름다우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아르망 역시 루이스를 독차지 하기 위해 끌로디아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었음을 알게 된 후 그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식어버린다.

자신을 창조하고 사랑했던 레스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끌로디아를 죽게 만든 루이스의 인간적 고뇌와, 초인간적 영생이 대비되어 루이스의 슬픔은 더욱 부각된다.

 

인간들과 더불어 사는 시간과 자신을 드러내는 삶을 포기하는 대신 영생과 권능을 얻는다는 뱀파이어 모티프는 무척 매력적인 계약이다. 하지만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저주와 아픔으로  부각되는 것은 '뱀파이어가 된 후에도 인간적 고뇌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라는 가정 때문이다. 영생을 살기에 찰나의 관계 맺기가 두렵고, 영원을 전제로 맺은 관계는 깨어질 때 견뎌내기 더욱 힘들다. 고통은 죽음이라는 망각과 함께 사라지지 못한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중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라는 시구가 떠오르며, 새삼 한용운님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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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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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렉싱턴의 유령

작가인 '나'에게 케이시라는 이름의 건축가가 개인적인 만남을 제안하는 편지를 보내온다. 충실한 재즈 컬렉션이라는 말에 흥미가 생긴 '나'는 렉싱턴에 사는 그와 교유를 시작한다. 케이시는 어렸을 적 어머니를 여의였고 15년 전에는 아버지 역시 췌장암으로 사망한다. 어느날 케이시가 여행을 떠나면서 일주일간 집을 봐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 집에 머문 첫날 밤, 유령들이 나타나 파티를 벌이는 것을 목격한다.

되돌아온 케이시로부터 어머니가 사망한 후 아버지가 3주일 동안 잠만 주무셨다는 이야기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 자신도 2주일쯤 잠만 잤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당시 잠의 세계가 진짜 세계고 현실 세계는 잠시 지나가는 세계에 지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나'는 때때로 당시를 떠올리곤 하는데, 기묘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연의 아득함 탓에 조금도 기묘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o 녹색의 짐승

어느날 녹색의 짐승이 나타난다. 짐승의 눈만은 인간의 눈처럼 생겼으며 감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서려 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어쩐 일인지 알아차리는 듯 하다. 나는 나에게 프러포즈 하고 싶어하는 녹색의 짐승에게 꼴사나운 짐승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점점 짐승의 겉모습이 변하고 눈에서는 눈물 같은 것이 흐른다. 나는 더욱 짐승을 괴롭힐 만한 생각을 거듭거듭 반복하고 결국 짐승은 점점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사라져버리고 만다.

 

o 침묵

권투를 하는 오자와씨에게 '나'는 누군가를 때린 적이 있는지 질문한다. 이에 오자와씨는 한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권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오자와씨는 영어 시험에서 1등을 한다. 같은 반에서 공부도 잘하고 요령도 있던 아오키는 나와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었는데 오자와씨가 1등한 사실을 참지 못하고 그가 컨닝을 했음에 틀림 없다는 헛소문을 퍼뜨린다. 참지 못한 나는 아오키를 때리게 되고 그 후 둘 사이는 서먹한 관계가 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같은 반 급우가 자살을 하자 오랫동안 복수를 생각하고 있던 아오키는 담임선생에게 자살한 급우가 오자와씨에게 폭행당해왔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끔 이야기 한다. 이로서 이지매를 당한 오자와씨는 어느날 전철에서 아오키와 마주치고 둘은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아오키의 눈이 흔들린 순간 오자와씨는 문제는 깊음이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며 아오키에게는 그런 것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오자와씨가 끝내 공포를 느꼈던 것은 아오키 같은 인간이 아니라 다른 이의 말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은 후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무리들이었다.

 

o 얼음사나이

얼음사나이와 결혼한 주인공은 어느날 일상의 따분함을 참지 못하고 남극으로 여행할 것을 제안한다. 주저하는 얼음 사나이와 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남극에서 홀로 남아 유폐된 느낌을 갖는다. 그리고 임신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이 얼음사나이와 똑같은 아이를 낳을 것임을 알게 된다. 얼음사나이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지만 나는 얼음의 눈물을 계속 흘릴 뿐이다.

 

o 토니 다키타니

태평양 전쟁 직후 태어난 토니 다키타니의 아버지는 다키타니 세이사부로라고 하는 사람으로 재즈 트롬본 연주자였다. 좋아하는 트롬본을 불면서 그다지 큰 어려움도 없이 인생을 즐기던 그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아내가 곧 죽어버렸고 친하게 지내던 미군이 아이 이름을 토니로 지어준다.

토니 다키타니는 정밀한 그림 그리는 일에 흥미를 느꼈고 전공투 바람이 불던 시기에도 이와 무관하게 묵묵히 자기 일만 하였다. 그 결과 그 분야에서 명성을 얻고 돈도 많이 벌게 된다. 어느날 거래처의 여직원에게 반하여 결혼하였는데 그녀는 옷을 맵시있게 입는 여성이었다. 결혼한 후 옷을 사들이는 일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던 아내가 어느날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토니 다키타니는 그 옷을 입어줄 여성을 고용한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끝나버린 일들이 되돌려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옷을 처분한다. 또, 아버지가 남긴 많은 재즈 음반도 처분한다. 그리고 그는 진짜 외톨이가 되었다.

 

o 일곱 번째 남자

태풍이 몰아닥치던 날 이웃에 사는 K와 해변에 놀러갔다가 밀려오는 해일 앞에서 공포에 사로잡혀 혼자 도망친 주인공은 파도의 꼭대기에서 K가 웃음을 던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생각한다. 그 후로 주인공의 인생은 바다에 대한 공포와 K에 대한 죄책감으로 점철된다. 어느날 되돌아간 고향에서 K의 수채화들을 다시 본 주인공은 K가 자신을 보고 미소를 보낸 것이 어쩌면 영원한 작별 인사는 아니었는지, 그리고 K의 표정에서 느꼈던 강한 증오의 표정이 사실은 그 순간 자신을 사로잡았던 공포의 투영은 아닌지 생각한다. 공포를 극복한 나는 인생에서 정말 무서운 건 공포 그 자체라기 보다는 공포를 향해서 등을 돌리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o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도쿄에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진 주인공 '나'는 잠시 고향에 돌아온다. 그곳에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촌동생을 병원에 데려다 주면서 8년전의 일을 떠올린다.

'나'는 당시 친구와 함께 친구의 여자친구 문병을 간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한 시를 들려준다. 장님 버드나무의 꽃가루를 묻힌 파리가 여자의 몸 속에서 살을 먹어들어가는 이야기이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사촌동생은 존 포드 감독의 <아파치 요새>에 나오는 이야기를 한다. 그곳에서 존 웨인은 인디언을 보았다는 장군에게 '걱정 마십시오. 장군께서 인디언을 보았다는 건, 바꿔 말하면 인디언은 거기 없다는 뜻입이다'라는 대사를 이야기하며, '누구의 눈에나 다 보이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말을 한다.

그리고 '나'는 그날 문병을 갔다가 농담만 주고 받다 헤어진 일을 생각한다. 괜찮냐는 사촌동생의 물음에 나는 '걱정할 것 없어'라고 말해준다.

 

발리 여행 여섯째날 부터 마지막 날까지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다른 나라에 간다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왠지 읽어보고 싶었져서 가지고 갔다. 특이하게도 작가 자신의 설명이 권말에 수록되어 있다. 

작품집 중 <토니 다키타니>는 어디선가 한번 읽은 기억은 나는데 어떤 책이었는지 가물가물했었다. 권말의 해설을 읽어보니 각각의 작품들이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른 책에도 수록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가장 하루키 다운 작품은 아무래도 <침묵>과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가 아닐까 한다.

집단 행동에 대해 의문을 품고 동참할 수 없는 작가의 성향을 잘 드러내는 <침묵>, 그리고 <노르웨이의 숲>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하는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가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게 했다. 확실히 어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인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나보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문체를 베끼고 피츠제럴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국적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느꼈던 시기가 꽤 오랫동안 있었는데, 최근 나의 삶이 '절도' 라는 것에서 많이 벗어난 이유인지 무라카미 하루키에 조금은 공감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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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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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소읍 알텐하인에서 촉망받던 젊은이 토비아스가 두 명의 여학생을 살해한 혐의로 법정 최고형을 받은 뒤 10년만에 출소한다. 유일하게 그에게 편지를 보내고 면회를 왔던 사람은 어렸을적 부터 친구였던 나탈리 뿐이다. 그녀는 나디야로 개명하고 유명한 배우가 되었다.

10년 전 알텐하인에서 로라와 슈네베르거라는 여학생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었다. 로라는 토비아스의 전 여자친구였고, 슈네베르거는 토비아스가 새로 사귄 여학생이었다. 특히 슈네베르거는 얼굴이 예쁜데다가 발음도 비슷한 까닭으로 백설공주라고 불렸던 여학생이다. 여학생들이 실종되던 날 토비아스의 방에서 가방이 발견되고 차 트렁크에서 혈흔이 발견되는 등 온갖 증거가 토비아스를 범인으로 지목하였고 그는 술에 취해 사건이 일어나던 밤의 기억 마저 없었다. 마을 주민들의 진술은 토비아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여 결국 토비아스가 살인범으로 몰렸던 것이며, 시체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토비아스는 아버지가 경영하던 식당 황금수탉이 망해서 폐허가 되어 버렸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을의 자산가 테를린덴은 겉으로는 토비아스 가족을 돌보아 주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제로는 모든 재산권을 빼앗았을 뿐이었다. 돌아온 토비아스에게 마을 주민들은 갖은 협박을 가하며 마을을 떠날 것을 종용한다. 게다가 토비아스의 어머니가 낯선이의 습격을 받아 육교에서 떨어지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그러던 어느날 군비행장에서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시체가 로라로 판명되고 마을 친구들이 뒤늦게 자신들이 로라를 강간한 후 살해했음을 자백한다. 또한 새로 이사온 아멜리가 자폐증을 앓고 있는 티스로부터 사건 당일 범인들을 묘사한 그림을 보게 되면서 복잡한 과거사가 새로이 드러난다.

사건 당일 로라는 토비아스의 친구 세 명에게 강간을 당했고 나디야는 이를 모두 지켜보았다. 토비아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테를린덴의 아들인 라르스와 부딪힌 로라가 돌에 머리를 찧어 피를 흘리자 라르스는 그대로 도망치고 세 명의 친구들은 로라를 비행장에 유기한다. 유기할 때에 로라는 아직 살아있었지만 그대로 흙을 덮어 살인하고 세 친구의 부모들은 이를 철저히 은폐하기로 한다. 한편 슈네베르거는 당시 교사였고 현재는 교육부장관이 된 라우터바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라우터바흐가 그녀와 다투다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병원 원장인 라우터바흐의 부인은 이를 은폐하기로 작정하고 사건 당일 모든 것을 목격한 티스에게 정신병 약을 먹게 하여 발설하는 것을 막는다. 한편 나디야는 이 모든 사실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토비아스에 대한 비뚤어진 소유욕으로 그를 감옥에 가도록 내버려둔다.

결국 마을 사람 대부분이 토비아스의 무죄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이를 은폐하면서 때로는 토비아스에게 호의를 베풀고 때로는 린치를 가해온 것.

 

발리 여행 넷째날과 다섯째날에 읽었다. 출발 당시 챙긴 세권의 책으로는 부족할 듯 하여 공항 안에 있는 서점에서 좀 두꺼워 보이는 책으로 고른 것인데 속도감 있게 읽혀 애초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했다. 범인을 추적하고 추리하는 과정은 부족하지만 헐리우드 액션 영화와 같은 다이내믹한 전개가 매끄럽게 이어진다. 

소설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낸다. 알텐하인의 평범한 주민들이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악을 실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비뚤어진 사랑, 금전적인 동기, 처벌받고 싶지 않다는 공포 등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악의적인 동기들은 하나로 뭉쳐서 집단적인 광기로 나타난다.  

서로 다른 성격의 경찰 피아와 보텐슈타인의 개인적 고뇌와 에피소드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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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물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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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편지와 쿨피스

주인공 나는 일정한 직업 없이 애인 아키코의 집에 얹혀 살고 있다. 하지만 곧 질려서 피트니스 센터의 접수 카운터에서 일하는 여자로 애인을 바꾼다. 나의 삶은 여자를 갈아치우고 그 여자의 집에 얹혀 사는 식으로 계속되고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수영부였던 나는 사귀던 여자 부원과 관계가 틀어진 후 수영복 도둑으로 몰렸고 그 사건을 계기로 수영부를 탈퇴한다. 하지만 어쩌면 탈퇴의 이유가 엄마의 죽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기요쓰키 나오라는 50대 여자가 때때로 편지를 보낸다. 원래는 엄마의 펜팔 친구였지만 엄마가 죽고 난 후에는 나와 편지를 주고 받고 있다. 그녀가 도쿄로 가는 조카를 한 번 만나달라는 부탁에 응한 나는 조카인 유리카를 만나고 그날 유리카를 집으로 데려가면서 '지금 당장 이 여자를 밀쳐내 어딘가로 도망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o 올리비아와 빨간 꽃

아이와 남편과의 일상에 싫증을 느끼고 있는 서른일곱 살의 나는 채팅에서 만나기로 한 남자들을 바람 맞히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으며 예전에 좋아했던 남자인 '오카'씨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다.

나이에 비해 자신의 몸매에 자신을 갖고 있던 나는 새로온 피트니스 센터 접수창구 아가씨의 외모와 몸매에 밀린다는 느낌을 받은 후 신경이 쓰여 수영 대표로도 뽑히지 못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화단에 조화를 심으면서 예쁘다고 말하는 딸아이의 말에 나도 예쁘다고 말하며 손뼉을 친다. 그리고 오카씨를 중얼거린다.

 

o 운동화와 처녀 소설

주인공 나는 단무지 회사에 다니다가 이제는 명예퇴직하고 고서점을 시작하려 한다. 그리고 초보자의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자신이 그토록 찾던 소설책을 싼 가격에 매입했을 뿐만 아니라 피트니스 클럽의 카운터에서 일하는 젊고 예쁜 치마코와도 연인 사이가 된다.

어느날 치마코가 아이를 가졌다고 하자 가정을 버리고 그녀와 새로 출발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를 치마코에게 말하지만, 의외로 치마코는 아이를 지웠다면서 그에게 돈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가 싼 가격에 샀다고 생각한 소설들은 자신만 그렇게 높은 가치를 매겼을 뿐 실제로는 헐값에 거래되는 책들이었다. 아내는 운동화를 사서 나와 함께 피트니스 센터에 나오겠다고 한다.

 

o  사모바르의 장미와 어니언그라탱

올해 일흔이 된 엄마와 매일 수영장에 가서 걷기 연습을 하는 주인공 나는 그곳에 오는 젊은 남자를 사모하고 있다. 엄마는 한 때 재능 있는 화가였지만 지금은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게서 주문받은 그림만을 그릴 뿐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와 동갑인 여자와 재혼하려 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사모하던 남자가 여자를 차는 장면을 목격하고, 선을 본 남자에게 그날 밤 처녀를 버린다.

 

o 클랩턴과 납골 단지

남편 하루히코와의 사이에 생긴 아이 레이라가 죽고 난 후 하루히코도 자살한다. 그리고 레이라의 유령이 항상 내 주위를 떠도는 것 같다. 이런 저런 남자들과 관계를 갖은 후 아이가 생기면 낙태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센지의 친구가 진실을 말한다. 나는 하루히코와 결혼한 적도 없고, 레이라를 낳은 적도 없다. 나는 아이를 가질 수가 없다. 레이라의 유골을 담았다고 생각했던 과자 깡통엔 남자들에게서 받은 만엔 짜리 지폐만 가득하다.

 

o 플라멩코와 다른 이름

피트니스 센터의 지배인이자 수영강사인 나의 아내 사에미가 사라진 지 벌써 10개월 남짓이 되어 간다. 사에미는 어느날 부터 자신이 가쓰코라 주장하며 사에미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것과 같이 행동을 하고 있다. 기묘한 동거 생활을 계속하던 어느날 가쓰코라고 부른 그에게 사에미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아내는 다시 돌아온 것 같다. 그리고 사라진 것이 사에미인지, 가쓰코인지 이제는 나도 알 수가 없다. 다만 모델하우스의 방명록에 내 이름인 신도 쓰구미를 쓸 뿐이다.

 

발리 여행 둘째날과 셋째날 읽었다. 피트니스 클럽에 다니는 인간 군상의 얘기들을 연작 소설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각 장의 주인공들은 다른 장에 교차하며 등장하는데, 타인에게 비춰지는 모습과 실제 모습이 다르게 등장한다. 주인공 각각은 '실제 모습'과 '비춰지는 모습' 사이에서 긴장하고, 그들의 삶도 그 긴장관계 속에서 공허함을 드러낸다. 그들은 좁은 공간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도 관계 속에서 충만하지 못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편지와 쿨피스> 주인공은 어머니의 죽음과 연애의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 여자에서 저 여자로 옮겨 다니는 피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도 분명 가지고 있지만 그런 일상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올리비아와 빨간 꽃>, <운동화와 처녀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허구의 삶을 지향하다가 작은 일상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는 얘기이다. <올리비아와 빨간 꽃>의 주인공은 서른일곱살이면서도 처녀적 감상에 빠져 첫사랑마저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 여자에게서 패배감을 맛보고 현재의 자신을 자각한 후 화단에 조화를 심으면서 '예쁘다'고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첫사랑 이름을 중얼거림으로서 현재의 삶의 변화 가능성만을 암시한다. <운동화와 처녀 소설>은 좀 더 극적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후 일견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모두 허구였음이 드러난다. 결국 아내와 함께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는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그것이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다.

<사모바르의 장미와 어니언그라탱>의 주인공은 첫 연애에서 처녀라고 놀림받은 후 인생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린 주인공 얘기이다. 그녀가 처음 맞선을 본 상대에게 처녀를 버리는 것은 진부한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일까?

<클랩턴과 납골 단지>와 <플라맹코와 다른 이름>은 몽환적인 이야기이다. 실제로는 아이를 가질 수 없기에 사랑하던 남자와 가상의 아이를 가졌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주인공과, 자신이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되어버린 사에미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사이에 부조화를 겪고 있다. 과거를 극복해 나가려 하지만 실제로는 잘 되지 않거나, 현재를 인정하지 못하여 환상으로 도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매력적인 이야기들이고 잘 읽힌다. 다른 소설을 읽어보고 싶어지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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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정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재벌 이치가하라가 사망하자 직계 존비속 혈육이 없는 그의 재산은 친척과 지인에게 상속되게 되었다. 유언장 공개를 위해 회랑정 여관에 혈족들이 모이고 주인공 기리유 역시 70대 노파로 변장하여 그곳으로 간다.

반년 전 회랑정 여관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그 화재사건 와중에 기리유의 애인 지로가 사망하고 기리유 역시 온몸에 화상을 입는다. 경찰은 기리유가 목 졸린 흔적이 있다는 점과 지로가 청산가리를 먹은 점, 그리고 회랑정 여관으로 오기 직전 지로가 교통사고를 내 노인을 사망케 한 정황으로 보아 교통사고를 낸 지로가 두려움에 질려 기리유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기리유는 자신들을 살해한 범인이 따로 있음을 짐작하고 복수를 다짐한다. 자살한 것으로 위장한 후 이미 사망한 기쿠요 부인으로 신분을 세탁한 그녀는 회랑정으로 가서 기리유가 유서를 남겼으며 그녀가 반년 전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었다는 암시를 풍긴다. 누군가 유서를 훔치러 올 것이라 생각하고 벌인 일이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그날 밤 유서를 누군가 훔쳐간다. 유서를 훔쳐간 범인은 유카, 그리고 유카 역시 그날 밤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유서는 찾을 수가 없다.

기리유는 화재 사건이 나기 전, 이치가하라로부터 자신의 친자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다. 기리유는 고아원을 뒤지던 끝에 이치가하라의 친자인 지로를 발견해내고 그와 연인 사이가 된다. 하지만 기리유가 발견한 것은 진짜 지로가 아닌 히로미라는 인물로 지로에게 온 편지를 중간에 가로채어 지로 행세를 했던 것이다. 히로미는 회랑정 여관의 지배인 고바야시 마호와 작당을 하여 진짜 지로와 자신의 얼굴을 아는 기리유는 화재 중에 살해하고,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던 친부는 교통사고를 위장하여 죽인 후 모든 유산을 가로채려 한 것이었다.

 

발리로 여행을 가면서 아무래도 가벼운 책이 잘 읽힐 것 같아서 들고 갔다. 첫날 다 읽어버렸고, 약간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 일부는 문하생과 같은 사람들이 필명을 빌려 쓰는 것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만큼 작품의 기복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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