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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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렉싱턴의 유령

작가인 '나'에게 케이시라는 이름의 건축가가 개인적인 만남을 제안하는 편지를 보내온다. 충실한 재즈 컬렉션이라는 말에 흥미가 생긴 '나'는 렉싱턴에 사는 그와 교유를 시작한다. 케이시는 어렸을 적 어머니를 여의였고 15년 전에는 아버지 역시 췌장암으로 사망한다. 어느날 케이시가 여행을 떠나면서 일주일간 집을 봐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 집에 머문 첫날 밤, 유령들이 나타나 파티를 벌이는 것을 목격한다.

되돌아온 케이시로부터 어머니가 사망한 후 아버지가 3주일 동안 잠만 주무셨다는 이야기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 자신도 2주일쯤 잠만 잤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당시 잠의 세계가 진짜 세계고 현실 세계는 잠시 지나가는 세계에 지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나'는 때때로 당시를 떠올리곤 하는데, 기묘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연의 아득함 탓에 조금도 기묘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o 녹색의 짐승

어느날 녹색의 짐승이 나타난다. 짐승의 눈만은 인간의 눈처럼 생겼으며 감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서려 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어쩐 일인지 알아차리는 듯 하다. 나는 나에게 프러포즈 하고 싶어하는 녹색의 짐승에게 꼴사나운 짐승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점점 짐승의 겉모습이 변하고 눈에서는 눈물 같은 것이 흐른다. 나는 더욱 짐승을 괴롭힐 만한 생각을 거듭거듭 반복하고 결국 짐승은 점점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사라져버리고 만다.

 

o 침묵

권투를 하는 오자와씨에게 '나'는 누군가를 때린 적이 있는지 질문한다. 이에 오자와씨는 한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권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오자와씨는 영어 시험에서 1등을 한다. 같은 반에서 공부도 잘하고 요령도 있던 아오키는 나와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었는데 오자와씨가 1등한 사실을 참지 못하고 그가 컨닝을 했음에 틀림 없다는 헛소문을 퍼뜨린다. 참지 못한 나는 아오키를 때리게 되고 그 후 둘 사이는 서먹한 관계가 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같은 반 급우가 자살을 하자 오랫동안 복수를 생각하고 있던 아오키는 담임선생에게 자살한 급우가 오자와씨에게 폭행당해왔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끔 이야기 한다. 이로서 이지매를 당한 오자와씨는 어느날 전철에서 아오키와 마주치고 둘은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아오키의 눈이 흔들린 순간 오자와씨는 문제는 깊음이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며 아오키에게는 그런 것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오자와씨가 끝내 공포를 느꼈던 것은 아오키 같은 인간이 아니라 다른 이의 말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은 후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무리들이었다.

 

o 얼음사나이

얼음사나이와 결혼한 주인공은 어느날 일상의 따분함을 참지 못하고 남극으로 여행할 것을 제안한다. 주저하는 얼음 사나이와 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남극에서 홀로 남아 유폐된 느낌을 갖는다. 그리고 임신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이 얼음사나이와 똑같은 아이를 낳을 것임을 알게 된다. 얼음사나이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지만 나는 얼음의 눈물을 계속 흘릴 뿐이다.

 

o 토니 다키타니

태평양 전쟁 직후 태어난 토니 다키타니의 아버지는 다키타니 세이사부로라고 하는 사람으로 재즈 트롬본 연주자였다. 좋아하는 트롬본을 불면서 그다지 큰 어려움도 없이 인생을 즐기던 그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아내가 곧 죽어버렸고 친하게 지내던 미군이 아이 이름을 토니로 지어준다.

토니 다키타니는 정밀한 그림 그리는 일에 흥미를 느꼈고 전공투 바람이 불던 시기에도 이와 무관하게 묵묵히 자기 일만 하였다. 그 결과 그 분야에서 명성을 얻고 돈도 많이 벌게 된다. 어느날 거래처의 여직원에게 반하여 결혼하였는데 그녀는 옷을 맵시있게 입는 여성이었다. 결혼한 후 옷을 사들이는 일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던 아내가 어느날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토니 다키타니는 그 옷을 입어줄 여성을 고용한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끝나버린 일들이 되돌려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옷을 처분한다. 또, 아버지가 남긴 많은 재즈 음반도 처분한다. 그리고 그는 진짜 외톨이가 되었다.

 

o 일곱 번째 남자

태풍이 몰아닥치던 날 이웃에 사는 K와 해변에 놀러갔다가 밀려오는 해일 앞에서 공포에 사로잡혀 혼자 도망친 주인공은 파도의 꼭대기에서 K가 웃음을 던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생각한다. 그 후로 주인공의 인생은 바다에 대한 공포와 K에 대한 죄책감으로 점철된다. 어느날 되돌아간 고향에서 K의 수채화들을 다시 본 주인공은 K가 자신을 보고 미소를 보낸 것이 어쩌면 영원한 작별 인사는 아니었는지, 그리고 K의 표정에서 느꼈던 강한 증오의 표정이 사실은 그 순간 자신을 사로잡았던 공포의 투영은 아닌지 생각한다. 공포를 극복한 나는 인생에서 정말 무서운 건 공포 그 자체라기 보다는 공포를 향해서 등을 돌리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o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도쿄에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진 주인공 '나'는 잠시 고향에 돌아온다. 그곳에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촌동생을 병원에 데려다 주면서 8년전의 일을 떠올린다.

'나'는 당시 친구와 함께 친구의 여자친구 문병을 간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한 시를 들려준다. 장님 버드나무의 꽃가루를 묻힌 파리가 여자의 몸 속에서 살을 먹어들어가는 이야기이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사촌동생은 존 포드 감독의 <아파치 요새>에 나오는 이야기를 한다. 그곳에서 존 웨인은 인디언을 보았다는 장군에게 '걱정 마십시오. 장군께서 인디언을 보았다는 건, 바꿔 말하면 인디언은 거기 없다는 뜻입이다'라는 대사를 이야기하며, '누구의 눈에나 다 보이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말을 한다.

그리고 '나'는 그날 문병을 갔다가 농담만 주고 받다 헤어진 일을 생각한다. 괜찮냐는 사촌동생의 물음에 나는 '걱정할 것 없어'라고 말해준다.

 

발리 여행 여섯째날 부터 마지막 날까지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다른 나라에 간다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왠지 읽어보고 싶었져서 가지고 갔다. 특이하게도 작가 자신의 설명이 권말에 수록되어 있다. 

작품집 중 <토니 다키타니>는 어디선가 한번 읽은 기억은 나는데 어떤 책이었는지 가물가물했었다. 권말의 해설을 읽어보니 각각의 작품들이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른 책에도 수록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가장 하루키 다운 작품은 아무래도 <침묵>과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가 아닐까 한다.

집단 행동에 대해 의문을 품고 동참할 수 없는 작가의 성향을 잘 드러내는 <침묵>, 그리고 <노르웨이의 숲>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하는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가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게 했다. 확실히 어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인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나보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문체를 베끼고 피츠제럴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국적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느꼈던 시기가 꽤 오랫동안 있었는데, 최근 나의 삶이 '절도' 라는 것에서 많이 벗어난 이유인지 무라카미 하루키에 조금은 공감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4226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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