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굴지의 대기업 이마다 콘체른의 사위인 주인공 스기무라 사부로는 장인이 대기업 총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야심 없이 평범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물론 아내가 장인의 정실 소생이 아니라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스기무라의 소심함이 소박한 삶의 한 이유이다. 그는 사내보를 발행하는 그룹 산하 홍보실에서 말단직으로 조용히 살아간다.

어느 날 장인의 운전사인 가지타씨가 자전거에 치여 사망한다. 범인은 사건 직후 그대로 도주하여 행방이 묘연하고 경찰은 수사에 열의가 없어 보였다. 가지타씨의 딸 사토미와 리코는 아버지에 관한 책을 써서 펴낸다는 계획을 장인에게 상의하고, 장인은 전에 출판사에서 일했던 스기무라에게 일을 맡긴다. 사토미와 리코는 아버지에 관한 구체적인 기억들을 책으로 펴낸 후에 언론에 적극 홍보하여 '이름없는 누군가'가 사망한 사건이 아니라 '두 딸의 아버지'가 사망한 사건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렇게 된다면 범인도 분명히 심리적 압박을 느낄 것이고, 경찰도 계속 좌시할 수만은 없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언니인 사토미 쪽에서 스기무라에게 묘한 태도를 보인다. 그녀는 사실 책을 펴낼 의사가 별로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올바르게 살아온 것만은 아니었고, 특히 그녀가 네살때 유괴당한 기억도 있었는데 그때 자신을 유괴한 사람은 아버지를 탓하는 말을 했었다. 사토미는 사건 이후 지극히 소심한 사람이 되었고, 아버지의 사망도 과거의 특정 사건과 관련된 범행은 아닌지 의심한다. 특히 아버지가 결혼을 앞둔 사토미에게 '제대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을 한 직후 일어난 사고였다. 사토미는 책을 펴내더라도 아버지에 관한 일들이 과거 어느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원치 않았고 아버지의 어두운 과거가 동생 리코에게 알려지는 것도 원치 않았다. 스기무라는 사토미의 의사를 존중하여 리코가 최근 10여년간의 과거에만 한정하여 책을 쓰도록 유도한다.

한편 스기무라는 리코가 가져온 한장의 사진을 근거로 가지타씨의 과거를 추적하는데 그 과정에서 가지타씨가 완구 회사에서 떠나던 때에 함께 회사를 그만둔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여성의 아버지는 회사에 와서 딸 대신 가불을 해가는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가지타씨의 사고 현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여성이 있었다. 가지타씨는 과거 함께 일했던 여성을 찾아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녀의 망나니같은 아버지는 그녀와 다투던 중 사고로 숨졌고, 가지타씨와 그의 아내는 그녀를 딱하게 생각하여 시체를 유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시체를 유기하는 하룻밤 동안 그녀에게 맡겨졌던 사토미는 자신이 유괴당했다고 생각했고, 이성을 잃고 중얼거리던 그녀의 말 중 '아버지 때문이야'라는 말을 오해하여 자신의 아버지 가지타가 잘못하여 자신이 유괴되었다고 오해했던 것이다. 가지타씨를 사망하게 한 범인은 부근에 살던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고 다른 과거의 은원관계는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

사건이 마무리 될 즈음 스기무라는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한 곡의 음악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 노래의 제목은 <금요일의 아내들에게>로 불륜을 담은 노래였다. 그리고 그 노래를 착신음으로 쓰는 사람은 리코, 그리고 사토미의 약혼자였다. 사토미는 자신들의 부모가 어두운 과거와 전혀 관련이 없을 때 태어난 리코만을 귀여워하는 것 같아 속을 끓였지만, 리코는 뜻밖에도 부모가 어두운 과거를 공유한 사토미를 '전우'와 같이 대하는 것에 끊임없이 미움과 질투를 키워온 것이었다. 리코는 사토미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 그를 유혹하여 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어왔던 것이다.

 

104년 만의 가뭄이라고 한다. 하늘이 움찔거리기만도 며칠째건만 비 한줄금이 아쉽다. 재작년 여름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그리고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몸은 물론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서 하루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힘들었다. 그때 읽은 것이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이었다. 가능한한 긴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서 그 시간을 견디고 싶었다. 그 후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읽기가 겁이 났다. 당시의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았다.

<누군가>는 즐기면서 읽었다. 내가 과거의 아픈 기억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바로메터로서 유의미한 책이었다.

<누군가>는 수수께끼 풀이는 아니다. 어찌 보면 트릭이란 것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애초에 살의를 가진 자가 자전거 자체를 범행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휴대폰 착신음 부분도 쉽사리 눈치채도록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재미있다. 재미있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어두운 면은 어떠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읽으면서 문학이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일본 소설에서 작가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답에 대해 여러모로 궁구해보는 전통은 부럽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630535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선 프롬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화자는 엔지니어로 메사추세츠주의 스타크필드에서 매일 간이역까지 태워다줄 사람을 물색하다가 이선 프롬을 알게 된다. 그는 오래 전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었는데, 과묵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쳐 어쩔 수 없이 이선 프롬의 집에 머물게 되고, 그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젊은 이선 프롬의 어머니가 병을 앓자 7살 연상의 사촌 지나가 병간호를 하러 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이선은 지나가 집에 계속 머물러 있길 바란다. 둘은 곧 결혼하는데 이번에는 지나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어머니를 간호할 때 보여주던 그 건강미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끊임없이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린다. 이선은 엔지니어가 되어 대도시에 살겠다는 희망을 버리고 척박한 농장과 목재소를 운영하며 빠듯한 생활을 꾸려 나간다.

결혼한 지 7년째 되던 해, 지나가 고아나 다름없는 친척 매티 실버를 집안에 들인다. 그녀는 무보수로 집안일을 도왔는데 일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이선은 그녀가 어쩌다 스타크필드로 마실을 나가면 마중을 나갔다. 이선은 그녀에게 청년들이 추근댈 때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좋지 않은 걸 느낀다.

매티가 언젠가 결혼을 하고 집을 나갈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이선은 가슴이 아팠다. 어느 날 매티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둘은 서로에 대한 애틋한 정을 느낀다.

지나가 새로운 의사를 보기 위해 집을 비운다. 이선은 저녁 때 매티와 함께 난롯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한다. 그날 저녁 매티는 지나가 아끼는 그릇들로 저녁을 차려 낸다. 하지만 고양이가 그릇을 깨버리고, 이선은 그릇을 본드로 붙여 눈가림을 해놓는다.

다음 날 돌아온 지나는 자신의 병이 매우 위중한 상태이므로 새로운 하녀를 고용하고 매티를 내보내겠다고 선언한다. 이선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릇을 깬 사실마저 들통이 난다. 이선은 밤새도록 매티와 함께 도망칠 궁리를 한다. 모든 것을 지나에게 남겨두고 서부로 도망가는 공상을 하던 이선은 자신이 매티를 데리고 서부로 갈 여비도 없다는 것을 알고 절망에 빠진다.

마침내 새로운 하녀가 오기로 한 날, 이선은 매티는 기차역까지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매티는 전날 이선이 '모든 것을 지나에게 남겨두고 서부로 떠난다'는 내용의 메모를 우연히 발견했다고 말한다. 이선과 매티는 눈물을 흘리며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서러워한다. 달이 뜨는 날 함께 썰매를 타자고 했던 기억을 상기하며 그들은 작별을 유예한채 썰매를 탄다. 그리고 썰매를 탈 때에 언제나 위협이 되었던 느릅나무에 생각이 미친다. 썰매를 탄 둘은 느릅나무를 향해 달린다.

 

화자가 이선의 집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등뼈를 다쳐 불구가 된 매티와 그다지 아파보이지 않는 지나였다. 이선은 그 두 여성을 각기 다른 방에 둘 수도 없었다. 겨울에는 난방비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

 

서부로 데리고 갈 여비조차 없는 것을 알고 절망에 빠진 이선과 자신이 갈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매티가 동반자살을 결심하는 장면에서 가슴이 먹먹해졌고, 잘 쓰여진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은 거기서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매티가 불구가 되고 지나와 다름없이 이선을 옭아매는 또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을 화자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그 뒷장면이 있었고, 온몸에서 전율이 일었다. 바로 그 부분이 있었기에 <이선 프롬>이 쓰여진지 거의 백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읽히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룰 수 없는 상태의 지속이야 말로 사랑의 원동력이고, 그것이 하나의 틀이 되는 순간 그 사랑은 불구가 되기 십상이다. 윤색과 덧칠이 가능한 것은 언제나 과거의 엇나감이지 현재의 완성형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첫사랑이란 누구에게나 있다. 첫사랑과 결혼한 사람조차 그저그런 한때의 동경을 첫사랑으로 재구성할 것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양 - 벌레 이야기
이청준 지음, 최규석 그림 / 열림원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한쪽 다리가 불편한 초등학교 4학년 일암이의 귀가가 늦어진다. 사교적이지 못하고 무언가에 열중하는 것도 없던 일암이가 최근 주산에 흥미를 보여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으니 거기부터 갔으려니 했으나 오히려 원장이 아이가 오지 않았다며 전화를 걸어온다. 하루가 지나고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고 나서도 별다른 소식 없이 시간이 흘러 간다. 아내는 교회와 절 등에 돈을 갖다 바치며 아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무너지려는 자신을 다잡는다. 그러나 두달 스무 날이 지나고, 일암이의 시체가 근처 한 2층 건물 지하실 바닥에서 발견된다.

유력한 용의자로 주산 학원 원장이 지목되지만 그에게는 어느 정도의 알리바이가 있었다. 아내가 일암이를 찾겠다는 희망과 기원으로 자신을 지탱해 왔다면 이제 범인을 향한 원망과 분노와 복수의 집념으로 무서운 의지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일암이가 실종될 때부터 아내를 교회로 이끌고자 했던 이웃의 김집사 아주머니는 일암이가 죽고 난 후에도 전도를 계속했고, 아내는 마침내 교회에 의지하기 시작한다. 경찰의 집요한 수사 끝에 주산 학원 원장이 범인으로 밝혀진 후 김집사 아주머니는 아내에게 범인을 용서하라고 말한다.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은 주님만 가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김집사 아주머니의 말에 반발하던 아내가 그녀의 끈질긴 설득과 권유에 마침내 범인을 찾아가 용서하기로 마음 먹고 면회를 다녀온다. 범인의 사형이 집행되고 아내는 이틀 뒤 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범인은 옥중에서 신을 받아들이고 평온한 얼굴로 아내를 맞이한다. 그는 자신의 신장과 두 눈을 기증하기로 하였고, 자신이 피해자 가족의 어떠한 복수나 원망도 같은 신의 자녀로서 용서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범인의 평온한 얼굴을 대하고 돌아온 아내의 절규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 있어요?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인간에게서 구원받지 못한 자가 신에게서 구원받을 수 있을까? 과연 범인은 평온을 얻었으니 신에게서 구원을 받은 것일까? 사람 사이에서 얽힌 매듭을 당사자들 사이에서 풀지 못했는데, 그가 얻은 평온이 곧 구원으로 이어질 것인가?

주의 기도문 중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란 구절을 다시 되새겨본다. 그 단순한 구절이 얼마만큼 큰 각오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소설을 읽으며 깨닫는다.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를 이창동 감독이 <밀양>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최규석의 그림을 더해 책으로 발간했다. 낯간지러운 상술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629125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전쟁 메피스토(Mephisto) 8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임종기 옮김 / 책세상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화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반대쪽에 놓이는 충(opposition) 상태에 접근했을 때, 화성에서 거대한 가스 폭발이 관측된다. 얼마 후 한줄기 불꽃이 윈체스터 동쪽으로 사라진다.

사람들은 유성이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여 떨어진 장소로 몰려갔다가 거대한 원통에서 나온 화성인들에게 공격받아 사망한다. 그들은 문어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고 레이저 광선을 쏘며 사람들을 살해하고 건물을 파괴한다. 화성으로부터 추가로 미사일이 발사되어 지구로 속속 도착하자 군부대가 파견된다.

사람들은 화성인들이 중력에 적응하지 못해 그들이 추락한 구덩이로부터 기어나올 수 조차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틀린 예측이었고, 군부대는 화성인을 상대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주인공 '나'는 아내를 사촌의 집으로 피신시킨 후 말을 되돌려주기 위해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거대한 삼각대 모양의 전투기계가 마을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살해하는 와중에 주인공은 아내와 떨어지게 된다. 더 많은 전투 부대가 배치되고 미미한 전과를 올리기도 하지만 화성인들은 독가스를 살포하며 군부대를 괴멸시키고 만다. 이제 정부도, 군부대도 없는 상태가 되고 화성인들이 뿌린 붉은 식물이 물이 있는 곳을 따라 급속도로 번식하기 시작한다. 화성인들은 자신들의 혈관에 직접 지구인들의 피를 주사하는 것으로 영양분 공급을 대신했다. 화성인들로부터 피난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도로 곳곳은 아비규환으로 변했고 약탈이 공공연히 자행된다.

'나'는 우연히 만난 목사와 빈집에 몸을 피했다가 그곳에 화성인의 비행선이 착륙하는 바람에 집안에 갖히게 된다. 목사는 굳건한 신앙으로 의연한 자세를 보이기는 커녕 미친사람처럼 횡설수설했고, 그로 인해 화성인에게 발각될 위험에 처한다. 그를 폭력으로 제압한 직후 화성인의 촉수가 집안으로 뻗어들어와 그를 죽인다. 극도의 공포로 집 안에서 기아와 갈증에 시달리던 '나'는 어느날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급속도로 퍼져가던 화성인들의 붉은 식물이 말라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곳곳에 화성인들이 죽어있거나 무기력하게 서서 '올라 올라 올라'하는 신음을 내는 것을 보게된다. 화성인들은 지구인이 오랜 기간에 걸쳐 면역체계를 갖게된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죽은 것이었다.

우연히 다시 만난 군인이 장황한 이론을 펼쳐 '나' 역시 처음에는 솔깃했지만 곧 그가 과대망상에 빠져 있음을 깨닫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 '나'는 그곳에서 아내와 재회한다.

 

1898년 발표된 <우주전쟁>이 쓰여질 당시 영국은 약소국을 침략하여 제국주의적 식민주의를 전세계에 펼치고 있었다. 침략당하는 약소국의 입장에서는 영국이야말로 화성인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아무런 필연도 없이 어느 날 무력을 앞세워 자신들을 살해하고 모든 질서를 붕괴시킨 후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영국인이 화성인과 무엇이 달랐을까. 다만 화성인이 박테리아에 의해 자연도태된 반면 영국인들은 피지배 사회 민중의 크나큰 희생 없이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달랐을까?

그런 의미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우주전쟁>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가 작가가 아닌 노동자로 나오는 점은 우연일까 아니면 감독의 의도일까. 거기서 작업 기준 시간이 끝났다며 톰 크루즈가 크레인 조정을 그만 두는 장면이 생각난다. 화려한 볼거리와 달리 화성인들이 박테리아에 의해 자연소멸되어 버리는 것이 허무했던 이유는 소설과 달리 영화가 '침략과 극복'이라는 단선적인 전개로 이루어졌기 때문인 듯 하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628692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랍스터를 먹는 시간
방현석 지음 / 창비 / 200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o 존재의 형식(창작과 비평 2002년 겨울호)

 

주인공 재우는 과거 진보운동을 했던 사람으로 현재는 베트남에서 살고 있다. 베트남 말 뿐만 아니라 역사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우를 통하면 한국 기업들이 수월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베트남에 진출한 후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대하고 '돈이면 다'는 오만함에 빠져들어 우쭐거리기 시작했다. 재우가 이런 자들의 첨병 노릇을 한 자신을 주먹질하는 심정으로 쓴 글이 한국 신문에 보도되자 그는 한국인들로부터 배척받기 시작했고 일거리도 줄어들고 만다.

어느 날 베트남으로 함께 운동을 했던 친구 문태가 찾아온다. 문태는 단체일을 하다가 현재는 변호사가 되었다. 통역을 구해달라는 문태의 부탁에 친한 후배를 섭외해줬지만 문태 일행은 통역비가 비싸다며 재우에게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막말을 하면서 깎아댄다.

재우는 친구 문태의 속물적인 모습에 분개한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재우가 시킨 음식값을 보고 함께 작업하던 베트남인 레지투이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말한다. 왜냐고 묻는 재우에게 레지투이는 "몰라서 묻나. 자네들 지금 내 앞에서 돈자랑 하는 건가? 아니면 자네들도 서울에서 온 그 변호사들처럼 해보겠다 이건가. 자네가 하노이에 와 있는 변호사들에게 분개했던 이유는 도대체 뭔가?"라고 문는다. 

어느 날 레지투이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분개한다. 그는 증선산맥을 자본주의적인 색채로 그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1966년 자원입대하여 베트남전쟁에 뛰어 들었고 호치민 루트를 타고 사이공으로 들어간 부대원이었다. 그의 부대원 300명 중 295명이 죽었다. 레지투이는 시를 쓰고 싶었던 친구의 이름인 '반레'라는 이름으로 시를 썼고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재우는 과거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문제로 대립했던 문태와의 찜찜한 기억이 베트남에서 통역료 문제로 얽혀들자 못내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그러나 문태가 다른 변호사들과 골프를 치러 가지 않고 해방전선이 사이공을 중심으로 250km에 걸쳐 만든 땅굴인 구치터널을 보러 갔다는 말을 듣고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문태는 재우에게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를 베트남 말로 묻는다. "바이 꼬 떰 롬"이라고 알려주고 문태를 배웅한 재우는 택시를 탄다. 그리고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 무심코 "명동성당"이라고 답한다.

 

o 랍스터를 먹는 시간

 

베트남에 있는 한국 조선소에 근무하는 건석에게는 째보인 형이 있었다. 형이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 때 건석은 형을 옹호해주지 않고 부끄러워했다. 아이들은 형을 부추겨 나무에 올라가게 했고, 가지가 부러져 다친 형은 목숨은 건졌지만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된다. 건석은 자신이 형을 변호해 주지 않았다는 비겁한 마음보다는 형이 부끄럽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어느 날인가 형이 집 밖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일기를 형이 볼 수 있도록 펼쳐 놓는다. 일기를 본 형은 그날 이후로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형은 그후 공고에 진학하고, 졸업 후에는 D중공업에 입사하여 건석의 대학 학비를 댄다. 어머니는 언제나 형을 원수처럼 대하면서도 여름내 일한 돈을 모아 세 번이나 째보 수술을 시켜준다. 건석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베트남으로 온 건석은 리엔이라는 베트남 처녀와 사귀게 된다. 하지만 리엔의 집에서는 건석과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베트남 노동자 보 반 러이와 회사 김부장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다. 사태 수습을 위해 공안에 출두한 건석은 여느 때와 분위기가 다름을 느낀다. 설상 가상으로 김부장이 러이에게 '베트콩'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건석은 한국말을 아는 공안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뜻밖에도 시종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던 사복의 공안이 북쪽의 억양이 섞인 한국말을 한다. 그의 이름은 팜 반 꾹이었다. 그는 김부장들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다고 했다.

러이와의 일을 겨우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지만 러이는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버린다. 팜 반 꾹은 한국인들이 러이를 원직복직 시키지 않았다며 출두를 요구한다. 팜 반 꾹과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대화를 나누다가 건석은 도대체 그가 누구이길래 공안이 이렇듯 그를 감싸는지 묻는다. 팜 반 꾹은 답을 원한다면 그의 집에 함께 가자고 말하고 건석은 꾹과 함께 러이의 고향 자딘으로 간다.

러이는 제사를 준비 중이었다. 그 마을은 한 집도 빠짐없이 그날이 제삿날이었고, 희생된 사람들은 '박정희군대'에 의해 학살당한 것이었다. 러이와 팜 반 꾹은 그날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러이는 복수를 맹세하며 전투에 참가하고, 꾹은 호치민 장학생으로 북한에 유학을 떠난다. 러이는 전쟁 중 만난 이니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가 자신의 모험주의에 희생되었다고 생각하여 그녀를 찾는다.

러이의 고향에 다녀온 후 꾹은 건석의 진정성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사건을 유예한다. 리엔은 건석을 자신이 데리고 살아주겠다고 한다. 가족의 반대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외삼촌이 도와줄거라고 말한다. 그녀의 외삼촌은 팜 반 꾹이었다.

건석은 파업중 의문사를 당한 형의 가족사진을 떠올린다. 아버지의 옷에는 러이가 찢어죽여야 한다던 부대 마크가 달려 있었고, 그 옆에는 아오자이를 입은 여인과 형이 있었다. 건석은 "우린 왜 랍스터처럼 자신의 일부를 스스로 잘라낼 수 없을까?" 중얼거린다.

 

o 겨우살이(현대문학 1996년 5월호)

 

서선생은 아침 나절 좁은 도로에서 경적을 울려대더니 자신의 차를 무리하게 추월한 후 쌍욕을 내뱉는 중형차 운전자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 날 있는 집 딸인 최현미 엄마로부터 험한 말을 들은 후에는 작은 누님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까지 받는다.

5년간 해직교사로 살다가 항복하듯 탈퇴서를 제출한 서선생은 첫 해에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은 덕에 진학률을 여느 해보다 높였었다. 그러나 올해에는 말썽이 생긴다. 반장을 성적 10% 안에 드는 아이로 선출하라는 학교측 방침에 반해 아이들이 뽑은 박송미를 반장으로 앉힌 것이다. 그나마 상식 있는 교장이 박송미를 반장으로 하되, 임명장은 주지 않는 것으로 타협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창원으로 내려간 서선생 누나는 중환자실에서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었다. 가해자측인 여성운전자는 누나를 친 후 차를 후진까지 시켜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고, 남편되는 사람은 합의를 위해 한 번 찾아왔을 뿐이다. 다음 날 오겠다던 남편은 오지 않았고 어찌 된 영문인지 묻는 전화 건너편에서는 '법대로 하라'는 대답이 날아온다. 법대로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 본 서선생은 아연해진다. 4만원짜리 벌금 스티커 발부가 전부였던 것이다. 이럴 수는 없다며 가해자 집을 찾아간 서선생은 가해자의 차량에 붙어있는 '내탓이오'라는 스티커에 망연해진다.

 

o 겨울 미포만(창작과 비평 1997년 가을호)

 

미포조선소 노조일을 하다가 해직된 상모는 언제나 믿음직했던 후배 최이현이 사표를 냈다는 소식에 아연해진다. 이현은 상모에게 "이만 이천명 중에 이만 천칠백오십명이 가만히 팔짱 끼고 앉았는" 모습이 견딜 수 없어서 떠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급부로 성과급 받아서 신정연휴 즐기고 와서 뺀들거리고, 정문에 드러누운 파업참가자들을 타넘고 가던 그들을 견뎌낼 수 없다고 말한다. 살고싶어서, 자살이라도 할까 무서워 떠난다는 이현의 결심을 바꿀 수 없음을 알자 상모는 이현에게 줄 오토바이를 조립한다. 상모에게는 믿음직했던 선배 윤봉식 역시 팀장이 되고 현장 과장이 된 후 노조와는 소원해지더니 최소한의 양심만 지키며 생활하고 있다.

해직자로 살아가는 상모 역시 신경이 날카로와져 아내에게 큰소리를 치고, 어느 날인가는 아이에게 손찌검까지 하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에 보내는 아내의 눈길이 경멸의 그것임을 느끼자 상모는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이현이 불우한 애들을 돕던 통장 비밀번호를 불러주고 강원도로 떠난다. 비밀번호는 공팔일칠, 87년 8월 17일 그들이 누런 수건을 한 장씩 목에 두르고 남목고개를 넘으며 새로운 세상을 보았던 날이었다.

상모는 미포조선소 정문에 매일같이 출근 한다. 상모는 정문 앞에 서서 현장을 바라보며 자신이 몸을 일으켜세워야 할 곳이 어딘지 확인한다. 현강과의 술자리에서 상모는 언제인지 모르게 댓가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는지 물으며 소모임에서 인간적 신뢰를 쌓는 노력도, 공부를 하는 노력도 사라져버렸다고 말한다. 현강은 수련회에서 "박을 때 같이 박고 개길 때 같이 개기자, 개길 때 혼자 대가리 처박고 열심히 해서도 안된다"고 발제를 한다.

얼마 후 상모에게 이현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삼척을 8km를 남겨두고 상모와 봉식, 현강과 창연 등은 입을 굳게 다물고 길을 응시하고 있었다. 최도은의 노래가 차에서는 흘러나온다.

 

------

 

<내일을 여는 집>이 필독서이던 시절이 있었다. 정태춘의 음울한 목소리가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는 대목을 읊조릴 때에, 눈 안쪽으로 밀어 넣은눈물이 코를 막고 먹먹해진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헛기침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과거형으로 말해졌다는 것이 곧 그때와 지금이 다르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고쳐져야 할 모순들이 산적해 있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헌책방에 들렀다가 방현석의 책이 꽃혀 있어 집어들었다. 소설책을 펼치니 노동조합 위원장이 노조 간부에게 선물하며 쓴 편지가 적혀 있었다. 그런 책이 헌책방에 나와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자괴감이 일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간간히 접혀 있는 책 모서리가 나의 마음을 조금 가벼워지게 했다. 접힌 자국은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계속되었다.

<존재의 형식>과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베트남의 이야기를 주인공의 과거 아픔과 교차시켜 구성한 소설이다. <존재의 형식>은 약간 불만스럽다. 재우가 문태의 구치터널 방문에서 마음을 가볍게 하는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그것이 과거의 되새김으로서의 방문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이보다 정교하다. 소설적인 기교도 훌륭하고 세대를 건너 러이와 건석의 역사적인 아픔과 전망을 교차시키는 부분이 마음에 든다.

<겨우살이>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법대로 하라'는 것이 '사람이 이럴 수는 없다'가 되는 상황을 통해 법이라는 것이 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마련된 정교한 틀에 불과하다는 의식을 날카롭게 피력하고, 누님을 병문안 온 천주교 신자들과 가해자(그녀 역시 '내탓이오'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천주교 신자이다)를 대비시킴으로서 도덕률이라는 것이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환원되는 경우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겨울 미포만>은 방현석다운 작품이고, 그래서 반갑고, 그래서 불만족스러웠다. 책을 읽다가 문득 안성기가 선전하는 광고가 떠올랐다. 파업이 이십년 가까이 없다는 것이 자랑거리라던 그 광고, 그 회사에서 이십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 광고 말이다. 봉고차가 사람을 덮치고 식칼이 노조원의 옆구리에 박히던 회사는 이제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625802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