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스터를 먹는 시간
방현석 지음 / 창비 / 200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o 존재의 형식(창작과 비평 2002년 겨울호)

 

주인공 재우는 과거 진보운동을 했던 사람으로 현재는 베트남에서 살고 있다. 베트남 말 뿐만 아니라 역사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우를 통하면 한국 기업들이 수월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베트남에 진출한 후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대하고 '돈이면 다'는 오만함에 빠져들어 우쭐거리기 시작했다. 재우가 이런 자들의 첨병 노릇을 한 자신을 주먹질하는 심정으로 쓴 글이 한국 신문에 보도되자 그는 한국인들로부터 배척받기 시작했고 일거리도 줄어들고 만다.

어느 날 베트남으로 함께 운동을 했던 친구 문태가 찾아온다. 문태는 단체일을 하다가 현재는 변호사가 되었다. 통역을 구해달라는 문태의 부탁에 친한 후배를 섭외해줬지만 문태 일행은 통역비가 비싸다며 재우에게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막말을 하면서 깎아댄다.

재우는 친구 문태의 속물적인 모습에 분개한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재우가 시킨 음식값을 보고 함께 작업하던 베트남인 레지투이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말한다. 왜냐고 묻는 재우에게 레지투이는 "몰라서 묻나. 자네들 지금 내 앞에서 돈자랑 하는 건가? 아니면 자네들도 서울에서 온 그 변호사들처럼 해보겠다 이건가. 자네가 하노이에 와 있는 변호사들에게 분개했던 이유는 도대체 뭔가?"라고 문는다. 

어느 날 레지투이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분개한다. 그는 증선산맥을 자본주의적인 색채로 그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1966년 자원입대하여 베트남전쟁에 뛰어 들었고 호치민 루트를 타고 사이공으로 들어간 부대원이었다. 그의 부대원 300명 중 295명이 죽었다. 레지투이는 시를 쓰고 싶었던 친구의 이름인 '반레'라는 이름으로 시를 썼고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재우는 과거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문제로 대립했던 문태와의 찜찜한 기억이 베트남에서 통역료 문제로 얽혀들자 못내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그러나 문태가 다른 변호사들과 골프를 치러 가지 않고 해방전선이 사이공을 중심으로 250km에 걸쳐 만든 땅굴인 구치터널을 보러 갔다는 말을 듣고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문태는 재우에게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를 베트남 말로 묻는다. "바이 꼬 떰 롬"이라고 알려주고 문태를 배웅한 재우는 택시를 탄다. 그리고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 무심코 "명동성당"이라고 답한다.

 

o 랍스터를 먹는 시간

 

베트남에 있는 한국 조선소에 근무하는 건석에게는 째보인 형이 있었다. 형이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 때 건석은 형을 옹호해주지 않고 부끄러워했다. 아이들은 형을 부추겨 나무에 올라가게 했고, 가지가 부러져 다친 형은 목숨은 건졌지만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된다. 건석은 자신이 형을 변호해 주지 않았다는 비겁한 마음보다는 형이 부끄럽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어느 날인가 형이 집 밖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일기를 형이 볼 수 있도록 펼쳐 놓는다. 일기를 본 형은 그날 이후로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형은 그후 공고에 진학하고, 졸업 후에는 D중공업에 입사하여 건석의 대학 학비를 댄다. 어머니는 언제나 형을 원수처럼 대하면서도 여름내 일한 돈을 모아 세 번이나 째보 수술을 시켜준다. 건석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베트남으로 온 건석은 리엔이라는 베트남 처녀와 사귀게 된다. 하지만 리엔의 집에서는 건석과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베트남 노동자 보 반 러이와 회사 김부장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다. 사태 수습을 위해 공안에 출두한 건석은 여느 때와 분위기가 다름을 느낀다. 설상 가상으로 김부장이 러이에게 '베트콩'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건석은 한국말을 아는 공안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뜻밖에도 시종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던 사복의 공안이 북쪽의 억양이 섞인 한국말을 한다. 그의 이름은 팜 반 꾹이었다. 그는 김부장들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다고 했다.

러이와의 일을 겨우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지만 러이는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버린다. 팜 반 꾹은 한국인들이 러이를 원직복직 시키지 않았다며 출두를 요구한다. 팜 반 꾹과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대화를 나누다가 건석은 도대체 그가 누구이길래 공안이 이렇듯 그를 감싸는지 묻는다. 팜 반 꾹은 답을 원한다면 그의 집에 함께 가자고 말하고 건석은 꾹과 함께 러이의 고향 자딘으로 간다.

러이는 제사를 준비 중이었다. 그 마을은 한 집도 빠짐없이 그날이 제삿날이었고, 희생된 사람들은 '박정희군대'에 의해 학살당한 것이었다. 러이와 팜 반 꾹은 그날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러이는 복수를 맹세하며 전투에 참가하고, 꾹은 호치민 장학생으로 북한에 유학을 떠난다. 러이는 전쟁 중 만난 이니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가 자신의 모험주의에 희생되었다고 생각하여 그녀를 찾는다.

러이의 고향에 다녀온 후 꾹은 건석의 진정성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사건을 유예한다. 리엔은 건석을 자신이 데리고 살아주겠다고 한다. 가족의 반대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외삼촌이 도와줄거라고 말한다. 그녀의 외삼촌은 팜 반 꾹이었다.

건석은 파업중 의문사를 당한 형의 가족사진을 떠올린다. 아버지의 옷에는 러이가 찢어죽여야 한다던 부대 마크가 달려 있었고, 그 옆에는 아오자이를 입은 여인과 형이 있었다. 건석은 "우린 왜 랍스터처럼 자신의 일부를 스스로 잘라낼 수 없을까?" 중얼거린다.

 

o 겨우살이(현대문학 1996년 5월호)

 

서선생은 아침 나절 좁은 도로에서 경적을 울려대더니 자신의 차를 무리하게 추월한 후 쌍욕을 내뱉는 중형차 운전자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 날 있는 집 딸인 최현미 엄마로부터 험한 말을 들은 후에는 작은 누님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까지 받는다.

5년간 해직교사로 살다가 항복하듯 탈퇴서를 제출한 서선생은 첫 해에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은 덕에 진학률을 여느 해보다 높였었다. 그러나 올해에는 말썽이 생긴다. 반장을 성적 10% 안에 드는 아이로 선출하라는 학교측 방침에 반해 아이들이 뽑은 박송미를 반장으로 앉힌 것이다. 그나마 상식 있는 교장이 박송미를 반장으로 하되, 임명장은 주지 않는 것으로 타협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창원으로 내려간 서선생 누나는 중환자실에서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었다. 가해자측인 여성운전자는 누나를 친 후 차를 후진까지 시켜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고, 남편되는 사람은 합의를 위해 한 번 찾아왔을 뿐이다. 다음 날 오겠다던 남편은 오지 않았고 어찌 된 영문인지 묻는 전화 건너편에서는 '법대로 하라'는 대답이 날아온다. 법대로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 본 서선생은 아연해진다. 4만원짜리 벌금 스티커 발부가 전부였던 것이다. 이럴 수는 없다며 가해자 집을 찾아간 서선생은 가해자의 차량에 붙어있는 '내탓이오'라는 스티커에 망연해진다.

 

o 겨울 미포만(창작과 비평 1997년 가을호)

 

미포조선소 노조일을 하다가 해직된 상모는 언제나 믿음직했던 후배 최이현이 사표를 냈다는 소식에 아연해진다. 이현은 상모에게 "이만 이천명 중에 이만 천칠백오십명이 가만히 팔짱 끼고 앉았는" 모습이 견딜 수 없어서 떠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급부로 성과급 받아서 신정연휴 즐기고 와서 뺀들거리고, 정문에 드러누운 파업참가자들을 타넘고 가던 그들을 견뎌낼 수 없다고 말한다. 살고싶어서, 자살이라도 할까 무서워 떠난다는 이현의 결심을 바꿀 수 없음을 알자 상모는 이현에게 줄 오토바이를 조립한다. 상모에게는 믿음직했던 선배 윤봉식 역시 팀장이 되고 현장 과장이 된 후 노조와는 소원해지더니 최소한의 양심만 지키며 생활하고 있다.

해직자로 살아가는 상모 역시 신경이 날카로와져 아내에게 큰소리를 치고, 어느 날인가는 아이에게 손찌검까지 하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에 보내는 아내의 눈길이 경멸의 그것임을 느끼자 상모는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이현이 불우한 애들을 돕던 통장 비밀번호를 불러주고 강원도로 떠난다. 비밀번호는 공팔일칠, 87년 8월 17일 그들이 누런 수건을 한 장씩 목에 두르고 남목고개를 넘으며 새로운 세상을 보았던 날이었다.

상모는 미포조선소 정문에 매일같이 출근 한다. 상모는 정문 앞에 서서 현장을 바라보며 자신이 몸을 일으켜세워야 할 곳이 어딘지 확인한다. 현강과의 술자리에서 상모는 언제인지 모르게 댓가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는지 물으며 소모임에서 인간적 신뢰를 쌓는 노력도, 공부를 하는 노력도 사라져버렸다고 말한다. 현강은 수련회에서 "박을 때 같이 박고 개길 때 같이 개기자, 개길 때 혼자 대가리 처박고 열심히 해서도 안된다"고 발제를 한다.

얼마 후 상모에게 이현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삼척을 8km를 남겨두고 상모와 봉식, 현강과 창연 등은 입을 굳게 다물고 길을 응시하고 있었다. 최도은의 노래가 차에서는 흘러나온다.

 

------

 

<내일을 여는 집>이 필독서이던 시절이 있었다. 정태춘의 음울한 목소리가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는 대목을 읊조릴 때에, 눈 안쪽으로 밀어 넣은눈물이 코를 막고 먹먹해진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헛기침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과거형으로 말해졌다는 것이 곧 그때와 지금이 다르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고쳐져야 할 모순들이 산적해 있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헌책방에 들렀다가 방현석의 책이 꽃혀 있어 집어들었다. 소설책을 펼치니 노동조합 위원장이 노조 간부에게 선물하며 쓴 편지가 적혀 있었다. 그런 책이 헌책방에 나와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자괴감이 일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간간히 접혀 있는 책 모서리가 나의 마음을 조금 가벼워지게 했다. 접힌 자국은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계속되었다.

<존재의 형식>과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베트남의 이야기를 주인공의 과거 아픔과 교차시켜 구성한 소설이다. <존재의 형식>은 약간 불만스럽다. 재우가 문태의 구치터널 방문에서 마음을 가볍게 하는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그것이 과거의 되새김으로서의 방문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이보다 정교하다. 소설적인 기교도 훌륭하고 세대를 건너 러이와 건석의 역사적인 아픔과 전망을 교차시키는 부분이 마음에 든다.

<겨우살이>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법대로 하라'는 것이 '사람이 이럴 수는 없다'가 되는 상황을 통해 법이라는 것이 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마련된 정교한 틀에 불과하다는 의식을 날카롭게 피력하고, 누님을 병문안 온 천주교 신자들과 가해자(그녀 역시 '내탓이오'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천주교 신자이다)를 대비시킴으로서 도덕률이라는 것이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환원되는 경우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겨울 미포만>은 방현석다운 작품이고, 그래서 반갑고, 그래서 불만족스러웠다. 책을 읽다가 문득 안성기가 선전하는 광고가 떠올랐다. 파업이 이십년 가까이 없다는 것이 자랑거리라던 그 광고, 그 회사에서 이십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 광고 말이다. 봉고차가 사람을 덮치고 식칼이 노조원의 옆구리에 박히던 회사는 이제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625802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