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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굴지의 대기업 이마다 콘체른의 사위인 주인공 스기무라 사부로는 장인이 대기업 총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야심 없이 평범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물론 아내가 장인의 정실 소생이 아니라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스기무라의 소심함이 소박한 삶의 한 이유이다. 그는 사내보를 발행하는 그룹 산하 홍보실에서 말단직으로 조용히 살아간다.
어느 날 장인의 운전사인 가지타씨가 자전거에 치여 사망한다. 범인은 사건 직후 그대로 도주하여 행방이 묘연하고 경찰은 수사에 열의가 없어 보였다. 가지타씨의 딸 사토미와 리코는 아버지에 관한 책을 써서 펴낸다는 계획을 장인에게 상의하고, 장인은 전에 출판사에서 일했던 스기무라에게 일을 맡긴다. 사토미와 리코는 아버지에 관한 구체적인 기억들을 책으로 펴낸 후에 언론에 적극 홍보하여 '이름없는 누군가'가 사망한 사건이 아니라 '두 딸의 아버지'가 사망한 사건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렇게 된다면 범인도 분명히 심리적 압박을 느낄 것이고, 경찰도 계속 좌시할 수만은 없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언니인 사토미 쪽에서 스기무라에게 묘한 태도를 보인다. 그녀는 사실 책을 펴낼 의사가 별로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올바르게 살아온 것만은 아니었고, 특히 그녀가 네살때 유괴당한 기억도 있었는데 그때 자신을 유괴한 사람은 아버지를 탓하는 말을 했었다. 사토미는 사건 이후 지극히 소심한 사람이 되었고, 아버지의 사망도 과거의 특정 사건과 관련된 범행은 아닌지 의심한다. 특히 아버지가 결혼을 앞둔 사토미에게 '제대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을 한 직후 일어난 사고였다. 사토미는 책을 펴내더라도 아버지에 관한 일들이 과거 어느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원치 않았고 아버지의 어두운 과거가 동생 리코에게 알려지는 것도 원치 않았다. 스기무라는 사토미의 의사를 존중하여 리코가 최근 10여년간의 과거에만 한정하여 책을 쓰도록 유도한다.
한편 스기무라는 리코가 가져온 한장의 사진을 근거로 가지타씨의 과거를 추적하는데 그 과정에서 가지타씨가 완구 회사에서 떠나던 때에 함께 회사를 그만둔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여성의 아버지는 회사에 와서 딸 대신 가불을 해가는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가지타씨의 사고 현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여성이 있었다. 가지타씨는 과거 함께 일했던 여성을 찾아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녀의 망나니같은 아버지는 그녀와 다투던 중 사고로 숨졌고, 가지타씨와 그의 아내는 그녀를 딱하게 생각하여 시체를 유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시체를 유기하는 하룻밤 동안 그녀에게 맡겨졌던 사토미는 자신이 유괴당했다고 생각했고, 이성을 잃고 중얼거리던 그녀의 말 중 '아버지 때문이야'라는 말을 오해하여 자신의 아버지 가지타가 잘못하여 자신이 유괴되었다고 오해했던 것이다. 가지타씨를 사망하게 한 범인은 부근에 살던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고 다른 과거의 은원관계는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
사건이 마무리 될 즈음 스기무라는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한 곡의 음악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 노래의 제목은 <금요일의 아내들에게>로 불륜을 담은 노래였다. 그리고 그 노래를 착신음으로 쓰는 사람은 리코, 그리고 사토미의 약혼자였다. 사토미는 자신들의 부모가 어두운 과거와 전혀 관련이 없을 때 태어난 리코만을 귀여워하는 것 같아 속을 끓였지만, 리코는 뜻밖에도 부모가 어두운 과거를 공유한 사토미를 '전우'와 같이 대하는 것에 끊임없이 미움과 질투를 키워온 것이었다. 리코는 사토미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 그를 유혹하여 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어왔던 것이다.
104년 만의 가뭄이라고 한다. 하늘이 움찔거리기만도 며칠째건만 비 한줄금이 아쉽다. 재작년 여름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그리고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몸은 물론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서 하루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힘들었다. 그때 읽은 것이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이었다. 가능한한 긴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서 그 시간을 견디고 싶었다. 그 후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읽기가 겁이 났다. 당시의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았다.
<누군가>는 즐기면서 읽었다. 내가 과거의 아픈 기억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바로메터로서 유의미한 책이었다.
<누군가>는 수수께끼 풀이는 아니다. 어찌 보면 트릭이란 것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애초에 살의를 가진 자가 자전거 자체를 범행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휴대폰 착신음 부분도 쉽사리 눈치채도록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재미있다. 재미있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어두운 면은 어떠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읽으면서 문학이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일본 소설에서 작가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답에 대해 여러모로 궁구해보는 전통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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