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 벌레 이야기
이청준 지음, 최규석 그림 / 열림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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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쪽 다리가 불편한 초등학교 4학년 일암이의 귀가가 늦어진다. 사교적이지 못하고 무언가에 열중하는 것도 없던 일암이가 최근 주산에 흥미를 보여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으니 거기부터 갔으려니 했으나 오히려 원장이 아이가 오지 않았다며 전화를 걸어온다. 하루가 지나고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고 나서도 별다른 소식 없이 시간이 흘러 간다. 아내는 교회와 절 등에 돈을 갖다 바치며 아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무너지려는 자신을 다잡는다. 그러나 두달 스무 날이 지나고, 일암이의 시체가 근처 한 2층 건물 지하실 바닥에서 발견된다.

유력한 용의자로 주산 학원 원장이 지목되지만 그에게는 어느 정도의 알리바이가 있었다. 아내가 일암이를 찾겠다는 희망과 기원으로 자신을 지탱해 왔다면 이제 범인을 향한 원망과 분노와 복수의 집념으로 무서운 의지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일암이가 실종될 때부터 아내를 교회로 이끌고자 했던 이웃의 김집사 아주머니는 일암이가 죽고 난 후에도 전도를 계속했고, 아내는 마침내 교회에 의지하기 시작한다. 경찰의 집요한 수사 끝에 주산 학원 원장이 범인으로 밝혀진 후 김집사 아주머니는 아내에게 범인을 용서하라고 말한다.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은 주님만 가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김집사 아주머니의 말에 반발하던 아내가 그녀의 끈질긴 설득과 권유에 마침내 범인을 찾아가 용서하기로 마음 먹고 면회를 다녀온다. 범인의 사형이 집행되고 아내는 이틀 뒤 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범인은 옥중에서 신을 받아들이고 평온한 얼굴로 아내를 맞이한다. 그는 자신의 신장과 두 눈을 기증하기로 하였고, 자신이 피해자 가족의 어떠한 복수나 원망도 같은 신의 자녀로서 용서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범인의 평온한 얼굴을 대하고 돌아온 아내의 절규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 있어요?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인간에게서 구원받지 못한 자가 신에게서 구원받을 수 있을까? 과연 범인은 평온을 얻었으니 신에게서 구원을 받은 것일까? 사람 사이에서 얽힌 매듭을 당사자들 사이에서 풀지 못했는데, 그가 얻은 평온이 곧 구원으로 이어질 것인가?

주의 기도문 중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란 구절을 다시 되새겨본다. 그 단순한 구절이 얼마만큼 큰 각오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소설을 읽으며 깨닫는다.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를 이창동 감독이 <밀양>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최규석의 그림을 더해 책으로 발간했다. 낯간지러운 상술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62912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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