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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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가미코(嬉神湖) 별장지에서 네 아이의 학부모들이 사립 중학교에 보내기 위한 합숙 과외를 한다. 아내 미나코와 의붓아들 쇼타를 찾아간 순스케는 다른 학부모들의 열성적인 분위기에 좀처럼 섞여들지 못한다. 그날 밤 뜻밖의 손님이 방문한다. 순스케의 부하직원인 에리코라는 미모의 여성은 순스케에게 일거리를 전달해 주기 위해 찾아왔다고 밝힌다. 다른 남성 학부모들은 그녀의 미모에 달뜬 분위기가 되고, 계속되는 권유에 그녀는 별장에서 묶어갈 것 같은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에리코는 순스케에게 누가 상대방인지 알아냈으니 레이스사이드 호텔에서 만나자는 언질을 준 후 별장지를 떠난다. 에리코는 순스케의 불륜 상대였고, 그녀가 알아냈다는 상대는 다름 아닌 미나코의 불륜 상대였다. 미나코의 불륜 상대와 증거를 갖게 된다면 그녀와 자연스럽게 이혼하고 에리코와 결혼할 심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호텔에서 만나기로 한 에리코가 끝내 나타나지 않자 순스케는 별장으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경악할 만한 현장을 목격한다. 미나코의 방에 에리코가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미나코는 에리코가 순스케를 내놓지 않으면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협박하자 순간 이성을 잃고 그녀를 살해했다고 털어 놓는다. 그런데 경찰에 알릴 수 밖에 없다고 체념한 순스케에게 뜻밖에도 다른 학부모들이 시체 유기를 돕겠다고 자청한다. 그들은 시체 유기와 증거 인멸에 적극 협조한다. 도를 넘어선 그들의 행동에 의구심을 품던 순스케는 에리코의 집에서 학원 관계자와 사립 중학교 직원들이 함께 찍힌 사진을 발견하고 그들이 부정 입학을 모의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에리코가 미나코의 불륜상대를 알아내기 위해 조사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그 사실 때문에 살해당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마침내 모든 것을 경찰에게 털어놓겠다는 순스케의 선언 앞에서, 학부모들은 또 한번 순스케가 놀랄 만한 진실을 털어 놓는다. 범인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아이들 중 한 명 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머리가 좋아진다는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의 신발이 에리코의 시신 옆에 찍혀 있었고 그들은 범인이 아이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 앞에서 누가 진짜 범인인지 밝혀내는 <러시안 룰렛>과 같은 도박은 차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순스케는 경찰을 찾아가기 직전 문득 자신을 친아버지처럼 따르는 쇼타야말로 에리코를 죽이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순스케는 모든 것을 덮어두고 살인과 시체 유기의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입시 경쟁의 대리전을 치르는 부모들의 욕심이 성상납과 난교, 마약의 문제로 확산되고 급기야 살인으로까지 귀결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방과후>나 <악의>등을 통해 청소년의 순수한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악마적 속성을 그려냈는데, <호숫가 살인사건>에서는 아이가 범인이라는 약간은 충격적인 결말을 제시한다. 아오야마 신지 감독이 영화로도 제작하였는데 이름만 들어도 불륜이 연상되는 야쿠쇼 코지가 출연한다. <실락원>의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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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노네 고만물상 (보급판 문고본)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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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부터 옛날 소품들을 파는 <나카노네 古만물상>, 그곳의 주인 나카노와 그의 누님 다미야, 아르바이트생 다케오와 화자 히토미가 그려내는 담백한 수채화 같은 이야기들이다. 열두 편의 에피소드들은 기승전결을 갖고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자극적인 소재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어느 날 오후 여느 평온한 가게에서 있었을 법한, 그냥 그런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그들 각각의 연애담이 끼어든다. 

부인이 있지만 세련된 사키코라는 여자와 불륜을 벌이는 나카노, 한때 자신이 차버렸던 이혼남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는 다미야, 괴롭힘을 당하다 새끼손가락을 사고로 잃고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버린 과묵한 나카노와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화자 히토미의 어설픈 연애담까지 각각의 연애는 또한 그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우연히 한 장소에 모인 사람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고 배려하고 걱정하는 것, 그리고 우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그것이 생계와 관련된 공간일 경우에는 말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나카노네 古만물상>을 거쳐가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사장인 나카노마저  정식 앤티크 취급을 위해 가게를 그만 둔다. 그래서 그들은 우정으로 맺어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본다.    


소설을 읽는 동안 시이나 깃페이가 내내 떠올랐다. 나카노 역으로는 시이나 깃페이 외에 누가 어울릴지 생각할 수가 없다.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큰 히트를 치지는 못하겠지만 고정팬을 확보할 것이 틀림없다. 소설 뒷 표지에 쓰여 있는 <마이 페이스 인생>이라는 말을 몇번이고 되뇌어 본다. 듣기 좋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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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파스티스 -상
피터 메일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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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쇼는 영국 광고업계에서 성공한 후 미국 광고계의 거물인 지글러와 손을 잡고 글로벌 광고계로 진출한다. 하지만 사이먼은 막상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하자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고 허탈해한다. 사이먼은 살던 집은 사치가 심했던 전처 캐럴라인에게 넘겨주고, 동료인 어니스트가 휴가를 다녀오라는 조언에 따라 프랑스 남부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다.

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프로방스에 머물게 된 사이먼은 니꼴이라는 여자를 만나고 호감을 느낀다. 수리된 차를 니꼴이 영국까지 몰고 와준 인연으로 둘은 만남을 갖게 되고 니꼴은 사이먼에게 호텔 경영을 권유한다. 사이먼은 새로운 도전에 기꺼이 뛰어들고 어니스트와 니꼴의 조력에 힘입어 곧 그럴듯한 호텔을 짓는다. 이름은 그 지방에서 인기 있는 술 이름을 따서 '호텔 파스티스'라 짓는다. 하지만 난관이 몇 가지 있었는데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저널리스트 엠브로스 크라우치가 '호텔 파스티스'는 고풍스러운 도시를 망치는 개발 사업이라며 딴지를 걸어왔고 거물 마피아 앙리꼬는 '동업 제의' 라는 명목 하에 이권을 요구해 온 것이다.

한편 전과범인 '대장'과 죠죠 등은 저축 은행 경비에 허점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곳을 털 준비를 착착 진행한다. 그들의 계획은 대혁명 기념일인 7월 14일 불꽃놀이와 록음악으로 시끄러운 틈을 타 하수구를 통해 은행 바닥으로 잠입하여 폭발시킨 후 다음날 교통정체가 극에 달한 때에 사이클로 탈출한다는 계획이었다. 7월 14일 그들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다음날 사이클을 타고 빠져나오는 그들을 경찰은 교통체증에 막혀 눈뜨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겼으니 사이클을 타고 달리는 그들을 본 호기심 많은 미국 청년 분 파커가 자신도 대열에 끼어 라이딩을 한 것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헐떡거리는 그들의 주머니에서 빠져 나온 돈 뭉치를 본 파커는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예감대로 '대장'은 파커를 납치해 몸값을 요구한다. 파커는 미국계 거물 기업인의 아들로 잠깐 '호텔 파스티스'에 머물던 청년이었다. 사이먼은 몸값을 대신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돈을 받은 '대장'과 죠죠 일당은 프랑스를 뜬다.

엠브로스 크라우치는 죠죠 일행이 턴 은행에 자신의 포르노 사진을 남겨둔 탓에 곤경에 처할 것이고, 앙리꼬 역시 죠죠 등에게 여권을 만들어주고 받은 현찰 때문에 세관에 잡혀 불쾌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었다. 파커는 아들을 구하는데 애써준 사이먼을 자신의 기업 광고 책임자로 일해줄 것을 권하고 사이먼은 이를 수락한다. 어니스트는 호텔 경영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것을 알고 남기로 한다.


<호텔 파스티스>는 헐리우드 영화의 잘 쓰여진 각본과 같은 소설이다.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허구의 이미지를 제공한다. 주인공 사이먼은 모든 것을 소유한 부유한 기업인이고 오직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 전직을 한다. 집사 역의 어니스트는 젠틀한 영국 신사 이미지로 시종 일관 사이먼을 보좌하고, 아름다운 니꼴은 세심하고 자상한 성격마저 지녔다. 심지어 도둑놈 일당도 유쾌한 이미지로 사이먼의 골칫거리들을 말끔히 해결해주고 퇴장한다. 시간 때우기용 소설로는 그만이다.  


오랫동안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 승진과 동시에 발령이 났고,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낯선 업무에 적응해야 했다. 새로운 발령지까지의 거리 때문에 4륜 구동 화물차를 팔고 연비를 생각해서 승용차를 사야했다. 전철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이런 생활이 적어도 일년 이상 지속될 것이다. 우울하다.


차를 세차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팔기 전에 제 값을 받기 위해서는 세차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차값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은 알고 있었다. 그저 정든 차와 함께 했던 기억들도 떠나가는 것 같아서 오밤중에 세차장에 간 것 뿐이다. 팔아버린 차는 구식 차다. 오토미션을 달고 있긴 했지만 VDC같은 안전 장치는 물론이고 흔한 ABS나 에어백도 없었다. 딸랑 두 명만 탈 수 있어서 여자동료는 옆자리에 앉고 화물칸에는 남성 주취자들이 앉아서 어디론가 갈 때도 있었다. 그래도 차와 내가 서로를 잘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새로 산 차는 버튼을 누르면 시동이 켜지고 자동으로 뒤차의 라이트불빛을 감지하는가 하면 브레이크로 없어지는 에너지를 전기로 충전까지 한다. 너무 똑똑하다. 그래서 나는 차를 타면 황송한 기분이 든다. 팔아버린 차가 한동안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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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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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6월 마리오 히메네스는 우체국 창에 붙어 있는 구인 광고를 발견하고 들어간다. 국장인 코스메는 당장에 그를 채용하고, 마리오는 이슬라 네그라를 담당할 우체부가 된다. 마리오가 편지를 배달할 곳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집 단 한 군데 뿐이었지만 편지는 몇 킬로그램이나 되었다.

시인과 친해지고 싶었던 마리오는 첫 월급으로 시집 <일상 송가>를 사서 멋진 사인을 받고자 한다. 쭈뼛거리기만 하던 어느 날 스웨덴으로부터 온 편지에 관해 둘은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 날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메타포'를 알려준다. 

당 중앙위원회에서 네루다에게 대통령 후보로 나서 줄 것을 요청하는 전보가 온 날, 마리오는 동네 주점에서 한 눈에 홀딱 반한 베아트리스라는 아가씨를 꼬시는데 조력해줄 것을 요청한다. 

민중연합이 아옌데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승리하자 네루다는 파리 대사에 임명되어 떠난다. 마리오는 방해 공작을 피해 베아트리스와 '신바람 난 대회 개막식 이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합을 열'었고 곧 결혼한다. 

베아트리스가 임신하고 얼마 후 네루다로부터 편지와 소포가 도착한다. 네루다는 녹음기에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들을 녹음해서 보내주길 원하고, 마리오는 열일 제쳐두고 종루의 바람소리를 비롯하여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 소리 등과 마지막으로 네루다의 이름을 딴 자신의 아들,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살레스의 울음 소리를 녹음해 보내준다. 

마침내 네루다가 노벨상을 타게 된 날 마리오는 마을 사람들 모두를 모아 잔치를 벌인다. 하지만 좋은 날들은 흘러 가고, 칠레의 상황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네루다는 건강이 악화되어 이슬라 네그라로 돌아오고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아옌데가 살해당한다. 건강이 악화된 네루다는 끝내 사망하고 마리오는 어느 날 방문한 사람들에게 끌려간다.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일포스티노>의 원작으로, 영화를 보던 당시에는 원작이 있는지 몰랐었다. 그때 당시 학교 앞 비디오방에서 후배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특정 시간대에 가면 원하던 영화를 마음껏 볼 수가 있었다. <일포스티노>와 <거미여인의 키스>, <지중해>, <시네마 천국> 처럼 그 후로도 오래오래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영화들을 그 당시에 봤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민중연합이 아옌데를 후보로 내세워 선거에 승리한 후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일어난 시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시인과 우체부의 따뜻한 우정과 기층 민중들의 소박한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후반부로 가면서 혁명이 아닌 선거로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우파와 자본가들의 사보타주와 군부의 쿠데타에 가로 막혀 결국 이상일 뿐이었다는 것이 판명되고 네루다는 병사, 마리오는 연행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소설은 어떠한 공산주의적 이념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대한 비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끝장내 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 독자들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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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구) 문지 스펙트럼
윤후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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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명의 <여우사냥>을 읽다 중도에 흐지부지 된 것은 반은 게으름 때문이고 반은 잘 읽히지 않아서였다. 그러다 얼마 전에 읽은 <제리>의 작가 후기에서 김혜나가 '윤후명 선생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쓴 것을 보고, 때로는 감사의 표시가 감사받을 사람을 도리어 욕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귤>은 이주일 전에 집어든 책이니 다 읽는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읽으면서 윤후명의 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소재와 이야기가 짜맞춰졌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소설집의 작중 인물들은 대게 현실에서 실패를 경험한 상태에서 특정 사물의 기억과 사건이 겹치며 내적 성찰로 나아간다.  그런데 그 사건들이 대게 개연성 없이 끼어들기 때문에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작위적인 혹은 우연한 사건과 소재의 결합, 그리고 그에 따른 상념은 소설 전체를 무척이나 '소설적'이게 만든다.

<귤>에서는 자신의 아이를 가졌던 여자와 헤어진 후 어렸을 적 그토록 갖고 싶었으나 결국 가질 수 없었던 귤에 관한 기억이 사건과 오버랩되는데 그 과정에서 생전 처음 만난 여자와 관계를 맺게 되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는 국화 재배에 실패한 후 주인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을의 무용학과 여대생과 관계를 맺은 후 헤어진다. <새의 肖像>에서도 민박집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와 관계를 맺고,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에서도 절집 딸과 아무런 개연성 없이 키스를 한다. 그의 소설에서 여자는 단지 사건의 촉매제일 뿐이다. 여자로부터 촉발된 사건은 소재와 연결되어 관념적인 '소설적 결말'을 만들어 나가는 식이다.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다.


o 귤(원문 <부활하는 새> 中, 문학과지성사, 1985)

 

삼년 쯤 전,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의 애까지 뱄던 여자와의 이별이 겹치면서 화자 '나'는 암울한 기분에 빠져 있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본 술집 작부에게 오랬동안 찾아 헤메었다는 희떠운 수작을 부리자 작부는 자신이 지금까지 거쳐온 지역을 대며 과거를 더듬는다. 너무나 진지한 작부의 태도에 장난이었음을 말할 기회를 놓쳐버린 '나'는 결국 작부에게 한바탕 욕을 얻어먹고 쫓겨난다.

쫓겨난 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신 '나'는 40대 과부의 집에서 깨어난다. 그녀는 '내'가 귤 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극구 한 개를 권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50년대 초반 전쟁중이던 때에 강릉의 바닷가에서 귤을 기다리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과는 달리 무척 귀한 귤이 미군 함정에서 바닷가까지 떠내려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토록 먹길 갈망했지만 '나'의 차지까지는 오지 못했다. 당시 '나'는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나'는 소녀를 원했고, 소녀는 귤을 달라고 했었다. '나'에게는 귤나무가 있었다.

과부의 집에서 깨어난 아침 과부의 아들이 불쑥 찾아와 '나'는 무척 민망한 처지가 된다. 아들은 이십대로 섹소폰을 불고 싶어했고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그냥 말하고 싶었다며 섹소폰은 훔친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나에게 가끔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고, '나'는 그의 어머니와 하룻밤 상관한 죄로 불편한 만남을 지속한다.

그가 마침내 군대에 가서 '나'는 그와의 불편한 만남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대한 그가 전화를 걸어온다.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과 귤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귤의 비밀을 알고 있는 그의 어머니가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o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원문 <부활하는 새> 中, 문학과지성사, 1985)


임씨와 동업하여 국화를 재배하던 초기만 해도 글을 쓰며 원예 농원을 한다는 거창한 꿈을 꾸었지만 곧 그것이 실현 불가능한 꿈임을 알자 '나'는 절망한다. 기술은 전수받지 못했고 투자금도 회수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즈음 우연히 서울에서 무용학과를 다니는 여대생이 물에 빠진 것을 구해주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둘은 몇 번의 밀회를 갖는다. 어느 날, 여자가 서울로 함께 떠나자는 말에 '나' 역시 떠나야 하리라는 예감에 응낙한다. 하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여자가 오는 모습을 본 '나'는 몸을 숨기고 만다. 실패로부터 떠나려는 마음과 여자와의 동행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자 역시 나를 기다리지 않고 버스에 오른다. 그녀 역시 자신의 문제로부터 떠나는 것이었다. 시흥으로가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어린 기생을 껴안고 잔 후 서울로 온 '나'는 서울이 정든 노예선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다.


o 새의 肖像(원문 <부활하는 새> 中, 문학과지성사, 1985)


'나'는 팔색조(八色鳥)를 찾으러 작은 섬에 갔다가 그녀를 만난다. 사실 꼭 팔색조를 찾겠다는 결심은 아니었으나 굳이 팔색조를 찾는 것이라고 명분을 내세우려 한다. 섬으로 들어갔다가 막배 시간에 슬렁슬렁 대다가 놓친 '나'는 민박에 드는데 그곳에서 여자를 만난 것이다. '나'와 여자는 술을 나눠 마신다. 그녀는 '나'에게 "날 박제로라도 해서 갖고 싶으신가요? 그건 안 될 말이에요. 오늘밤만 우리는 서로의 것이에요" 라고 말한다. 관계를 갖고 난 다음 날 둘은 따로 섬을 빠져 나온다. 

다음 날 우체국에서 그녀를 발견하고 알은 채를 하지만 그녀는 '나'를 외면한다. 문득 '나'는 그녀의 섬에서의 행동은 결코 일상의 행동이 아니었고 사로잡힌 몸으로서 새로이 자유롭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음을 깨닫는다. 일상의 그녀를 찾은 나는 그녀를 내 박제로 하려던 데 지나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 섬에 팔색조가 깃들이는가, 안 깃들이는가. 그대의 마음이 영원히 그 새가 우는 소리를 듣고자 원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o 검은 숲, 흰 숲(원문 <부활하는 새> 中, 문학과지성사, 1985)


크리스마스 이브, 충청도 지역에 관한 개괄서를 쓰는 일을 맡게 된 '나'는 마침 중원군에서 발견된 비석에 대한 취재를 앞두고 있다. 우연히 올갱이국을 먹기 위해 들른 집에서 일하는 계집아이가 교회에 가기 위해 위험한 고개를 넘겠다며 떼를 쓰는 것을 듣는다. '나'는 자청하여 주인 여자를 설득하여 계집아이를 데리고 고개를 넘는다.

검은 숲을 넘으며 '나'는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예전의 여자를 생각 한다. 그녀는 5년에서 7년을 기다려 달라고 했고 모국어로 편지를 쓰며 절절한 감상을 보내오더니 2년이 지나자 루드비히라는 독일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편지를 보낸다. 편지를 받은 '나'는 그녀를 기다릴 자신이 없었기에 마치 숨겨둔 패를 보여주지 않은 도박꾼과 같은 심정을 느낀다.

고개를 넘던 '나'는 앞서 가던 스님을 불러 말동무로 삼으려 한다. 하지만 교회에 다닌다는 소녀가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태도를 보여 '나'는 눈치를 보게 된다. 스님은 뜻밖에도 호의적인 태도로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말을 한다. '나'는 카톨릭과 개신교, 불교를 전전했지만 모든 것이 엉터리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웅얼거린 말,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가자 가자, 높이 가자, 더 높이 가자는 그 말을 떠올리며 '불쌍한 녀석, 불쌍한 루드비히'라고 말하려다가 루드비히에 들어갈 사람이 바로 자신임을 깨닫는다. 눈이 쏟아져 흰 숲이 되고 있었다.


o 원숭이는 없다(원문 <원숭이는 없다> 中, 민음사, 1989)


아파트 정기소독으로 집에 있을 수 없게 된 '나'와 연출가 김, 배우 김은 공원에 모인다. 셋은 이렇다 할 직장 없이 마누라 등을 쳐서 먹고 사는 '등처가' 처지이다. 무슨 얘기 끝에 월남 이야기를 하고 원숭이 골 요리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어릴 적 의붓 아버지와 함께 곡마단 구경을 가서 원숭이를 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원숭이에게 우호적인 포즈를 취한 것이 원숭이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졌는지 원숭이는 손을 뻗어 스웨터 자락을 움켜쥐며 위협했고 그 후로 '나'는 자신이 아무리 외로운 상태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고 함께 나누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나'는 충동적으로 두 김씨를 부추겨 원숭이를 구경 가자고 한다. 연출가 김은 집으로 돌아가고 배우 김은 따라 나선다. 장터에 가면 원숭이를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올라탄 택시에서 둘은 각자의 상념에 빠진다. 문득 자기보다 아래 위치로 보았던 배우 김이 생각하는 바가 자신의 생각과 비슷함을 알게 되자 '나'는 불쾌함을 느낀다.

막상 도착한 장터에 원숭이는 없었고, '나'는 이제 원숭이 따위는 괘념치 않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배우 김은 원숭이를 보는 것에 집착한다. 술집 아낙에게 원숭이를 데리고 다닌다는 약장수가 사는 곳을 물어 둘은 그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은 빈 동네였고 유일하게 한 가구만 남아 살고 있었다. 그곳 사내는 원숭이 운운하는 둘에게 마뜩찮은 표정으로 대했고, 함부로 돌아다니다가는 간첩으로 오인받아 총을 맞게 되리라고 경고한다. 둘은 두려움에 길을 되짚어 가는데, 문득 서로의 얼굴을 보고 놀라고 만다. 둘 다 원숭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둘은 자신들이 어떤 힘에 의해 봉쇄되고 무력하게 되었으며 진실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하며 극도의 공포 속에서 사력을 다해 걸음을 옮겨 놓는다.


o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원문 <돈황의 사랑> 中, 문학과 지성사, 1983)


아버지의 묫자리를 향하는 버스는 위험한 벼랑길을 위태롭게 달렸고, 아버지가 '나'에게 어눌한 말로 유언과도 같이 내뱉은 '법을 공부해라, 늦지 않았다'는 말을 생각한다.

아버지는 변호사였으나 모종의 일에 연루되어 자격정지 5년을 받는다. 집안 살림은 급격히 어려워져 급기야 봉천동 인근의 집에다가 돼지와 닭 따위를 키우기에 이르고, 돼지를 먹이기 위해 마차를 사들이는데 말은 족보가 있는 말이라 했다. 당시 큰아버지뻘 되는 이가 기식하고 있었는데 그가 마차를 몰겠노라 하였다. 하지만 혈통있는 말은 곧 경주에 쓰일 때 의미가 있을 뿐 마차를 끌기에는 적당치 않았고 큰아버지도 그 말을 다룰 역량이 되지 못함이 판명된다. 마차는 팔리고 큰아버지도 떠난다. 

당시 '나'는 시를 쓰고자 했고 실존주의적 고민을 했었다. 그는 그런 실존주의적 고민에서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는 케플러의 가설을 믿고자 한다. 

법을 공부하길 바라는 아버지와 대립각을 세우던 나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은 채 아버지와 보이지 않는 자존심 싸움을 한다. 아버지는 자격정지가 사면으로 풀리자 큰소리를 치지만 왠일인지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그 모든 것이 사무장의 농간과 사기 때문임이 밝혀진다. 아버지는 고혈압으로 쓰러진다. 재기를 위해 일어선 후에도 사무장에게 고용된 사실이 드러나 또 다시 자격정지를 받고 아버지는 끝내 자리보전을 하게 된다. 

어느덧 아버지의 묫자리에 도착한 '나'는 아버지가 자신의 몰락과 파멸을 자신의 신념으로 자초했다면 그 인생 또한 패배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변호사 아버님'이라 나직이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아버지의 별은 어떤 음악 소리를 내며 빛날지 생각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68644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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