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더듬이 주교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7
얼 스탠리 가드너 지음, 장백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변호사 페리 메이슨에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윌리엄 맬로리 주교가 찾아온다. 그는 과실치사의 공소시효에 대해서 묻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22년 전 줄리아 블래너라는 여성이 교통사고를 내는데 사건 발생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가 4개월이나 지난 후 그녀에게 과실치사의 죄가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그녀는 랜월드 C.브라운리라는 재력가의 아들과 결혼한 직후였는데 며느리를 탐탁치 않게 여긴 랜월드가 손을 쓴 것이다. 줄리아는 남편을 랜월드에게 빼앗기고 딸을 하나 낳는다. 딸을 키울 자신이 없던 줄리아는 윌리엄 맬로리 주교에게 딸을 맡기고, 주교는 딸을 믿을만한 사람에게 주어 키우게 한 후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친다.

윌리엄 맬로리 주교는 미국으로 오는 배에서 랜월드의 손녀라 자칭하는 젊은 여성을 만난 후 곧 그녀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건을 맡은 페리 메이슨은 윌리엄 맬로리 주교가 말을 더듬는다는 사실 때문에 혼동을 겪는다. 말을 더듬는 사람이 과연 주교가 될 수 있을까, 그는 가짜가 아닐까. 혼란스러운 와중에 멜로리 주교가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 후 사라지고 랜월드가 가짜 손녀딸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하기 전날 새벽에 부두에서 살해당한다. 유력한 용의자로 줄리아가 지목되고 사건은 한층 미궁 속으로 빠지고 만다.

 

원제는 <The Case of the stuttering Bishop>으로 1936년에 쓰여진 작품이며 페리 메이슨 시리즈의 9번째 작품이다. 페리 메이슨 시리즈는 20세기 미국 미스터리 소설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발행 부수 역시 그러했다. 페리 메이슨은 변호사로 의뢰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현명하고 용감한 여비서 델라 스트리트, 솔직하고 부지런한 사립탐정 폴 드레이크와 더불어 발로 뛰며 사건을 해결한다.

페리 메이슨은 수임료보다는 미스터리적 요소가 있고 시적(詩的)인 정의를 느끼게 하는 사건에만 뛰어든다. 아마도 그러한 면이 미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함께 실린 <위험한 과거(Danger out of the past)>는 과거 질나쁜 동료의 협박과 위협을 스텔라라는 현명한 애인 덕분에 무사히 넘기는 짧은 단편이다. 조지는 래리 지픈으로부터 과거 범죄를 폭로하겠다는 위협을 받는데 스텔라는 래리에게 가게 금고 비밀번호를 순순히 알려준다. 래리가 떠나자 스텔라는 금고가 털린 것처럼 부순 후 조지를 데리고 다른 주로 넘어가 결혼식을 올린다. 순찰 중이던 경찰이 가게가 털린 것을 발견하고 래리의 지문을 채취하여 그를 사살한다.

 

루스 렌들의 <열병나무(The Fever Tree)>는 아뜩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포드는 마그리트라는 여성과 좋아 지내다가 아내인 트리시아에게 돌아온다. 둘은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트리시아의 행동들이 포드를 짜증스럽게 만들었고 그때마다 포드는 마그리트를 떠올린다. 그는 트리시아의 어떤 점도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차에서 밖에 나가지 말라는 경고를 트리시아는 무시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돌아다닌다. 포드는 문득 트리시아를 차 밖에 남겨둔 채 자신만 돌아간다면 야행성 동물인 표범이 트리시아를 죽일 것이고, 독수리들이 그녀의 시체를 남김 없이 처리할 것이란 공상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뻔한 순간마저 있었다.

그런 포드의 심정을 트리시아는 알아차린다. 트리시아가 포드의 카메라를 부주의하게 다뤄 깨뜨리자 포드는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붓는다. 트리시아는 포드를 바깥에 남겨둔 채 차 키를 돌려 차를 출발시킨다. 그녀는 면허를 따지는 못했으나, 위급한 상황에 운전을 할 수는 있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894306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0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브로크백 마운틴>은 애니 프루가 1997년부터 쓰기 시작한 와이오밍에 대한 단편 모음집이다. 문체는 건조하고 간명하다. 목장과 카우보이, 로데오가 주된 소재를 이루며 등장인물들의 삶은 신산하고 절망적이다. 작가는 그들에게 애써 한가닥 희망을 선사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삶은 와이오밍의 척박한 환경을 닮아 쉽게 분노하고, 격정적이며, 음험하다.

<어느 가족의 이력서> 와이오밍에서 태어난 리랜드 리의 일평생을 요약해서 나열해 놓은 짧은 소설이다. 다른 소설들과 어우러져 삽화를 보는 느낌이다.

<블러드 베이>는 와이오밍에 전래되는 이야기 '나그네를 잡아먹은 송아지'가 모티프이다. 어느 날 나그네가 죽은 시체에서 부츠를 벗겨 신으려 하지만 동사한 탓에 벗겨지지 않는다. 그는 시체의 다리를 부츠와 함께 잘라간다. 녹으면 부츠를 벗기려는 심산이다. 난로 가에 다리를 녹이기 위해 놓아둔 채 하룻밤을 보낸 나그네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우체국에 간다. 오두막 주인인 그리스 노인은 부츠만 남은 발을 보고 자신의 말이 나그네를 먹어치웠다고 오인한다. 노인은 나그네의 동료들에게 돈을 주어 무마하고, 동료들은 침묵과 평화에 대한 값으로 기꺼이 돈을 받아든다.

<목마른 사람들>은 사고로 정신이 허물어져 버린 라스가 성년이 되어 성욕을 느끼고 적절치 못한 처신으로 여자들을 놀라게 하자 누군가가 라스의 성기를 마을 사람들이 잘라버리는 끔찍한 이야기이다. 엽기적인 사건과 사형(私刑) 이야기는 <브로크백 마운틴>과 <주유소까지 55마일>에서도 등장한다. 1998년 스물두 살의 대학생 매튜 셰퍼드가 동성애자를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무참하게 맞아 숨지는 사건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언급되고, <주유수까지 55마일>에서는 남편이 감금 살해한 여인들을 다락에서 부인이 찾아내는 이야기이다.

<세상의 끝>은 자신이 원하던 경비행기를 우여곡절 끝에 다시 장만하지만 바로 그날 비행기 사고로 죽고 마는 알라딘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박차>는 퍼시픽 윙즈에서 합금 기술자로 일하다 해고된 해롤드가 만든 박차의 주인들과 그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밖에 충동적으로 성관계를 맺고 술에 취하고, 약에 절어 사는 등장 인물들이 별 것 아닌 추월 때문에 시비가 붙어 결국 총질 끝에 사망하고 마는 <외딴 해안>, 소를 키우는 목장이 환경을 해친다며 울타리를 훼손하고 소들에게 일회용 기저귀를 먹여 사망케하다가 결국 총에 맞아 죽고 마는 <와이오밍의 주지사들> 등 각각의 단편 모두가 하나의 조화를 이루며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 <브로크백 마운틴>은 이안 감독에 의해 2005년 영화화 된다. 개리슨 케일러가 뽑은 '1998년 최고의 미국 단편 소설'과 존 업다이크가 뽑은 '금세기 최고의 단편'으로 선정된 <벌거숭이 소>와 표제작 브로크백 마운틴> 줄거리를 요약해 둔다.

 

o 벌거숭이 소

 

메로는 1936년 아버지와 동생 롤로를 남겨두고 목장을 떠난 후 그곳에 대한 생각을 끊고 살았다. 어느 날 동생의 아들며느리가 메로에게 전화를 걸어와 롤로가 죽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메로는 차를 몰아 자신이 떠나온 그곳으로 장례를 치르기 위해 떠난다.

메로의 아버지는 어느 날 목장일에서 도망치듯이 편지 배달일을 얻었는데 그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그 여자는 틴 헤드라는 남자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를 해준다. 틴 헤드는 머리를 다쳐 금속으로 된 판을 넣었는데 그 금속판이 아연 도금 물질로 만들어져 뇌에서 부식되고 있었다고 한다. 틴 헤드는 매년 수송아지 중 하나를 잡은 뒤 그걸 겨울 내내 먹었다. 어느 해 겨울 소를 잡은 후 혀를 날로 먹고 가죽을 반쯤 벗기다가 한 숨 자고 일어나니 소가 사라지고 없었다. 소는 산비탈쪽으로 비틀거리며 가죽이 반쯤 벗겨진 채 걸어가고 있었다.

메로의 차는 과거의 그곳으로 닿는 길을 자꾸만 벗어나고 목장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 눈보라가 몰아치는 구렁에 빠져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메로는 목장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눈보라 속을 걷는다. 그때 울타리 안의 소가 메로와 보조를 맞춰 걷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메로는 가죽이 반만 벗겨진 소의 붉은 눈이 항상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o 브로크백 마운틴

 

에니스 델 마와 잭 트위스트는 한 목양 회사의 양치기로 고용되어 브로크백 산에서 지내게 된다. 둘은 산림청이 정한 구역에 텐트를 쳐 베이스로 삼고, 양들 가까이에 불법적으로 조그만 텐트를 쳐 양을 관리해야만 했다. 추운 어느 날 한 침낭에서 잠을 자게 된 둘은 서로에게 성적으로 이끌리게 되어 관계를 맺는다. 동성애는 둘 다 처음이었다. 평범한 인사말을 주고 받은 후 헤어진 에니스는 길거리에 차를 세우고 토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에니스는 그것이 잭과 헤어지고, 그를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서 오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깨닫지 못한다.

여자를 만나 아이를 갖고 평범한 삶을 살던 에니스는 잭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잭을 다시 만나기 시작하면서 에니스의 일상은 깨어진다. 눈치를 챈 아내가 떠나고, 양육비 때문에 일을 쉴 수가 없다. 잭은 에니스에게 어디로든 멀리 가서 살자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도 아내가 있는 몸이다.

근근히 만남을 이어가던 어느 날, 에니스가 잭에게 보낸 편지가 수취인 사망으로 반송된다. 잭은 타이어를 교체하다가 사망했다고 했다. 에니스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타이어 레버에 맞아 죽은 청년을 떠올린다.

잭의 집을 찾아간 에니스는 잭이 브로크백 산에서 각자가 입었던 낡은 셔츠를 포개어 옷걸이에 걸어둔 것을 발견한다. 그 후로 잭이 때때로 꿈에 나타났고, 에니스는 눈물을 흘리거나 사정(射精)을 하며 깨어나곤 한다다. 에니스는 자신이 아는 것과 믿으려 했던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며, 고칠 수 없으면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893464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0
리브카 갈첸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쉰한살의 정신과 의사 레오 리벤슈타인은 12월 어느 날 자기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다. 그 여자는 아내 레마와 겉모습은 똑같았지만 미묘하게 달랐고, 개를 데리고 들어오기까지 했다. 레마를 사칭한 여자 때문에 당황스럽던 차에 병원에서 호출이 온다. 병원으로 달려간 레오는 남자 간호사와 대화를 나눈 후 레마가 그 간호사와 불륜 관계는 아니었는지 의심이 든다. 그리고 자신이 돌보던 환자 하비의 실종과 레마의 부재에 어떤 인과관계는 없는지 생각한다.

하비는 분열형 성경장애 환자로 자신이 기상 현상을 통제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여겼다. 그는 왕립 기상확회에서 <뉴욕 포스트>지 6면 기사를 통해 비밀 지령을 내리면 전국 각지로 달려가 임무를 수행한다고 말했다. 레마가 하비의 치료에 관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내는데, 레오 역시 왕립 기상학회의 비밀요원이며 고위급 요원인 기상학자 츠비 갈첸의 지령을 하비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지령의 내용은 하비가 뉴욕 내에서만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 연극은 꽤나 효과를 거두는 듯 했었다. 하지만 하비는 얼마 후 또다시 실종된다.

레오는 사라진 레마를 찾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가서 레마의 어머니 마그다를 만나고 그곳에서 잠시 머문다. 레오는 자신이 레마의 과거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리고 어쩌면 레마에게 전남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레오는 츠비 갈첸이라는 인물이 레마의 실종에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그의 논문들을 읽어나간다. 그리고 논문 중간 중간 플라톤이나 가우스 등이 인용된 부분이 어떤 단서가 아닌지 의심한다.

사라진 하비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는 츠비 갈첸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레오 역시 츠비 갈첸에게 이메일을 보내자 답장이 온다. 하지만 레마의 실종과 관련해서는 냉담한 반응이었다.

왕립 기상학회에서 함께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오고, 이에 응낙한 레오는 파타고니아로 떠난다. 레마를 사칭한 여자 역시 레오를 찾아 파타고니아로 온다. 그녀는 자신이 레마가 맞다는 무수한 증거를 들이밀고 츠비 갈첸이 이미 사망한 사람이라는 점을 이야기하지만 레오는 요령부득일 뿐이었다. 레마는 결국 자신이 진짜 레마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레오는 레마는 사라졌지만 레마를 사칭한 여자와 함께 생활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가짜 레마와의 삶이 진짜인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라고 예감한다.

 

작품의 원제는 이다. 작품 속 츠비 갈첸은 리브가 갈첸의 아버지로 실제 기상학자였으며 작품 속에 인용된 논문들도 실제로 발표된 논문들이다.

리브가 갈첸은 다니엘 파울 슈레버 판사의 회고록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에서 작품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슈레버 판사는 카그라스 증후군, 즉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나 동물, 물건이 똑같이 생긴 다른 것으로 감쪽같이 바뀌었다는 망상에 빠지는 병에 걸려 자신만이 유일한 인간 생존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유령과 망령들이라 믿었다고 한다.

작품은 또한 루이지 피란델로의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에서 다분히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작품을 관통하는 작가의 의문은 츠비 갈첸의 논문에 인용된 플라톤과 관련된 문구에서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감지하고 있는 것은 진짜 세계의 이미지일 뿐임을 최초로 천명한 사람은 분명히 플라톤이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인지하고 감응하는 이 세계가 진짜 세계가 아니라 단지 이미지, 혹은 투사일 뿐이라면 진짜 이미지, 곧 이데아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당도할 수 있는가.

레오는 아내 레마가 어느 날부터 진짜가 아니라고 느끼는데 그 순간부터 레마에 대한 미화가 시작된다. 실제 레마의 행동거지 하나 하나를 트집 잡으며 진짜 레마라면 저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행동의 이면에는 레마가 젊고 아름다운데 반해 자신은 쉰살이 넘었다는 인식도 한몫 한다. 그는 어쩌면 레마가 자신을 떠날 것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고 그런 두려움에 대한 방어기재로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레마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현실의 레마를 트집 잡고, 이데아 속의 레마를 찾아 나선다. 그가 레마를 찾는 여행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 가짜 레마가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며 레오는 가짜 레마와의 삶이 나쁠 것만도 아니라고 타협하는 것이다.

 

강아지가 자기 꼬리를 물어보겠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악몽이 시작되듯이 이데아와 현실을 혼동할 때 비극은 시작된다. 현실을 이데아와 동일시하는 순간 극단의 선택이 시작된다. 타인에 대한 억압의 시작이 바로 그러한 이데아에 대한 인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데아가 곧 절대진리, 절대선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타인의 감정과 행동은 존중해줄 바가 못되는 것이다. 레마의 이데아를 떠올린 레오는 절대로 그녀를 되찾을 수 없을 것이며 현실 세계는 그가 죽는 순간까지 기껏해야 '견뎌낼만 한' 곳일 수밖에 없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889540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래된 빛
전수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학생 창호가 어두운 밤중에 산에 올랐다가 실족하여 사망한다. 창호는 같은 반 기환이라는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했었고, 그날 밤 산에 올라간 것도 기환이 불러내서였다고 했다. 창호의 아버지 조두용이 기환의 집을 찾아갔다가 기환의 아버지와 험악한 언사를 주고 받은 끝에 몸싸움이 일어나고 경찰이 출동한다. 기환의 아내는 상실감을 견뎌내지 못해 집을 나가기도 하고 아이를 갖자고 떼를 쓰기도 한다. 결국 늦둥이를 보기는 하지만 가족의 삶은 기우뚱 거리며 나아간다.

한편 기환의 가족 역시 창호가 죽은 날로부터 결락 속에서 살아간다. 기환은 창호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호감을 갖고 다가가려 했었다. 하지만 창호는 기환을 '돼지'라 부르며 놀렸고 호감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불쾌감은 곧 괴롭힘으로 변질되고 만다. 이유없이 폭력을 행사했고 무서워 할 것 같아 필요하지도 않은 돈을 뺏는다. 기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창호의 죽음에 기환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기환의 아버지는 기환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아들의 나약한 삶의 방식에 못마땅해하는 감정을 표출했고, 어머니는 체념의 태도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다. 기환의 아버지는 이사를 가는 것으로 사건을 과거에 남겨둘 수 있다고 믿는다.

 

어느 날 조두용이 기환의 아버지를 길에서 만난 날, 그는 그를 쫓아가 복수할 마음을 먹는다. 가족들을 설득해 기환네 집 인근에 집을 얻은 후 흥신소를 통해 기환의 아버지가 공무원과 뒷거래를 했다는 증거를 잡는다. 그는 일주일 후 그 증거를 폭로해 기환의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창호의 형 창수는 동생의 죽음 이후 겉으로는 큰 동요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이사간 마을에서 정비소 직원인 진태와 친구가 된다. 진태는 윗마을에 사는 개차반 대학생에 대해 투덜거리는데 툭하면 음주운전을 해서 사고를 내고 차를 수리하러 온다 했고, 동네 청년들이 벼르고 있노라고 말했다. 대학생이 또다시 과속으로 사고를 낸 후 문제를 일으키자 동네 청년들이 대학생을 산으로 끌고 가 린치를 가한다. 창호는 린치 현장에 입회했다가 그 대학생이 기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환이 린치를 당한 후에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린치를 주도한 청년들이 기환을 찾으러 산으로 가지만 기환은 청년들을 따돌린다. 숨어 있떤 기환이 도로에서 청년들의 차를 기다렸다가 야구방망이로 가격해 차가 전복되고 그 현장을 바라보던 조두용은 증거가 담긴 CD를 부러뜨린다.

 

------

 

<어느덧 일주일>을 2년 전 이맘 때 읽었었다. 재작년엔 올해보다 날이 한결 따뜻했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주차장에 대어 놓은 차 유리창엔 벚꽃잎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는데 그림자의 색깔이 벚꽃 색깔로 보일 지경이었다. 차 안에서 <어느덧 일주일>을 읽으면서 너무나 평온한 한 때를 보냈고, 작가의 다음 작품이 무척 궁금했었다. <오래된 빛>은 불가해한 삶에 대한 불가지론적 태도를 견지하는 작품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후기에서 우리 삶의 궁극적인 속성이 비극임을 감출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우리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하지만 작품이 항변하는 바는 삶의 불가해성일 뿐이다.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의지를 가지고 삶을 주도하는 인물은 린치를 주도한 상근이라는 인물 뿐이다. 그가 자신의 의지를 행동으로 관철 시킬 수 있는 이유는 그의 가학적인 성격 때문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상황의 노예이다. 기환은 자신의 감정과 다른 행동으로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기환의 아버지 역시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지만 아들에게 폭행을 행사할 뿐이다. 진태는 상근에게 휘둘려 린치에 가담했다가 곧 처벌이 두려워 머리를 조아린다. 창수의 아버지는 자신의 복수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고 불행과 행복의 경계선에서 혼란에 빠지고 만다.

여러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일주일>이 작가의 향후 행보를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면, <오래된 빛>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어느덧 일주일>은 작가가 쓰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분명히 느껴졌었지만, <오래된 빛>에서는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 자신의 독특한 색깔이 희미해져 버렸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885441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적멸
박일문 지음 / 민음사 / 1998년 5월
평점 :
품절


운수(雲水)는 종교시간에 법사님으로부터 <시인 이탁오의 생애>라는 책과 출가하게 된 경위를 듣는다. 법사님은 어느 날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이 강렬한 햇살을 받아 점점 작아지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허정과 적멸의 세계를 보았고, 그 길로 출가했다고 들려준다. 부모님을 잃은 후 의지하던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운수는 영주 부석사를 찾아가 출가의 뜻을 밝힌다. 

학능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운수는 과격하고 파격적인 무애스님과 더불어 행동하다가 삼천배를 올리는 벌을 자주 받게 된다. 운수는 삼천배를 하면서 몸이 힘든 순간이 지난 후에는 어느 순간 힘듬을 잊게 되고,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여 궁구하고,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경험 한다.

우란분절 법회에서 조실스님이 '<선(禪)의 자유>가 대채 무엇인가' 라는 화두들 던진다. 스님은 베트남의 광둑스님 이야기를 하며 삶과 죽음을 하나로 쓰는 용무생사(用無生死)야 말로 진정한 자유, 진정한 선의 자유, 진정한 인간의 자기해탈이며 유정 무정 인간해방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다.

얼마 후 적묵스님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소신공양을 한다. 적묵스님의 곁에는 선묘여인이 머물고 있었는데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했다. 선묘여인은 세속적인 사랑을 바랐지만 적묵스님은 자신이 움켜진 화두와 선에 몰두하여 묵언, 면벽, 단식을 반복하고 있었다. 

한편 무애스님은 스승인 조실스님을 찾아가 스승이 보시바라밀을 한 적이 있었는가 묻는다. 조실스님은 말이 없었고 무애스님은 스승의 귀를 취모검으로 베어낸다. 운수는 얼마 후 계를 받는다. 법명은 이름인 운수(雲水) 그대로를 쓴다.

운수는 승적을 유지한 채 대학생이 되고, 70년대 말과 80년의 혼란스런 시대 상황을 살게 된다. 운수는 불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공부한다.

조실스님이 무애스님을 찾는다. 무애스님은 조실스님에게 왜 자신의 칼을 피하지 않았는지 묻는다. 조실스님은 그 칼을 피했더라면 무애스님이 설익은 지식을 갖고 세상으로 뛰쳐나가 식광(識狂)이 되었을 것이며, 그 칼을 받음으로 인해 당신 스스로도 반성을 했으니 둘 모두를 살린 것이라 담담히 말한다.

무애스님은 자신이 깨달은 바를 피력하는 바, 그것은 세상으로 나가 대승적인 불교를 실천하겠다는 것이었다. 조실스님이 자신의 의발을 무애스님에게 물려주고자 하나 무애스님은 그것마저 거절한다.

선묘여인이 끝내 자살하고, 사구재를 지내기 직전 운수와 무애가 함께 길을 걷는다. 무애는 운수에게 출가 전의 일을 묻는다.

적묵스님의 출가 전 속명이 운수라는 것, 선묘여인이 무애의 동생이라는 것, 운수와 그들의 고향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은 연기(緣起)의 법칙 속에 있는 것이다.

 

<적멸>은 구도소설이자 불교계의 자기모순을 고발한 소설이며, 작가 자신의 세계관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는 소설이다. 초반부의 불교적 구도(求道) 부분과 중반 이후의 대승적 불교에 대한 의견이 성긴 느낌이나, 이만한 수준의 불교적 구도(求道)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는 고은 정도가 아닐까 한다. 박일문은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 십오년에 걸쳐 출세간과 출출세간을 거듭한 전력이 있는 작가로 불교와 그 세속적 실천에 대해 고민했던 작가이다.

<달은 도둑놈이다>에서 읽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도서관에 틀어 박혀 고시공부하듯 글을 썼던' 그는 표절 시비작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후 몇몇 스타일리쉬한 작품을 남긴다. 하지만 지금은 문단에서 사라졌다.

장정일과의 표절 논쟁이 고발 운운으로 지저분하게 끝난 후, 역시 자신이 남긴 글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로 법정 구속되어 이름을 더럽힌 끝에 이제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적멸>에서 하이데거의 나치 옹호 행위와 관련해 '결국에는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을 가지고 판단할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삶의 내용으로 판단해야 한다'라는 말빚을 남겼으니, 문단에 돌아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884570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