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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빛
전수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중학생 창호가 어두운 밤중에 산에 올랐다가 실족하여 사망한다. 창호는 같은 반 기환이라는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했었고, 그날 밤 산에 올라간 것도 기환이 불러내서였다고 했다. 창호의 아버지 조두용이 기환의 집을 찾아갔다가 기환의 아버지와 험악한 언사를 주고 받은 끝에 몸싸움이 일어나고 경찰이 출동한다. 기환의 아내는 상실감을 견뎌내지 못해 집을 나가기도 하고 아이를 갖자고 떼를 쓰기도 한다. 결국 늦둥이를 보기는 하지만 가족의 삶은 기우뚱 거리며 나아간다.
한편 기환의 가족 역시 창호가 죽은 날로부터 결락 속에서 살아간다. 기환은 창호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호감을 갖고 다가가려 했었다. 하지만 창호는 기환을 '돼지'라 부르며 놀렸고 호감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불쾌감은 곧 괴롭힘으로 변질되고 만다. 이유없이 폭력을 행사했고 무서워 할 것 같아 필요하지도 않은 돈을 뺏는다. 기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창호의 죽음에 기환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기환의 아버지는 기환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아들의 나약한 삶의 방식에 못마땅해하는 감정을 표출했고, 어머니는 체념의 태도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다. 기환의 아버지는 이사를 가는 것으로 사건을 과거에 남겨둘 수 있다고 믿는다.
어느 날 조두용이 기환의 아버지를 길에서 만난 날, 그는 그를 쫓아가 복수할 마음을 먹는다. 가족들을 설득해 기환네 집 인근에 집을 얻은 후 흥신소를 통해 기환의 아버지가 공무원과 뒷거래를 했다는 증거를 잡는다. 그는 일주일 후 그 증거를 폭로해 기환의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창호의 형 창수는 동생의 죽음 이후 겉으로는 큰 동요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이사간 마을에서 정비소 직원인 진태와 친구가 된다. 진태는 윗마을에 사는 개차반 대학생에 대해 투덜거리는데 툭하면 음주운전을 해서 사고를 내고 차를 수리하러 온다 했고, 동네 청년들이 벼르고 있노라고 말했다. 대학생이 또다시 과속으로 사고를 낸 후 문제를 일으키자 동네 청년들이 대학생을 산으로 끌고 가 린치를 가한다. 창호는 린치 현장에 입회했다가 그 대학생이 기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환이 린치를 당한 후에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린치를 주도한 청년들이 기환을 찾으러 산으로 가지만 기환은 청년들을 따돌린다. 숨어 있떤 기환이 도로에서 청년들의 차를 기다렸다가 야구방망이로 가격해 차가 전복되고 그 현장을 바라보던 조두용은 증거가 담긴 CD를 부러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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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일주일>을 2년 전 이맘 때 읽었었다. 재작년엔 올해보다 날이 한결 따뜻했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주차장에 대어 놓은 차 유리창엔 벚꽃잎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는데 그림자의 색깔이 벚꽃 색깔로 보일 지경이었다. 차 안에서 <어느덧 일주일>을 읽으면서 너무나 평온한 한 때를 보냈고, 작가의 다음 작품이 무척 궁금했었다. <오래된 빛>은 불가해한 삶에 대한 불가지론적 태도를 견지하는 작품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후기에서 우리 삶의 궁극적인 속성이 비극임을 감출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우리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하지만 작품이 항변하는 바는 삶의 불가해성일 뿐이다.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의지를 가지고 삶을 주도하는 인물은 린치를 주도한 상근이라는 인물 뿐이다. 그가 자신의 의지를 행동으로 관철 시킬 수 있는 이유는 그의 가학적인 성격 때문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상황의 노예이다. 기환은 자신의 감정과 다른 행동으로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기환의 아버지 역시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지만 아들에게 폭행을 행사할 뿐이다. 진태는 상근에게 휘둘려 린치에 가담했다가 곧 처벌이 두려워 머리를 조아린다. 창수의 아버지는 자신의 복수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고 불행과 행복의 경계선에서 혼란에 빠지고 만다.
여러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일주일>이 작가의 향후 행보를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면, <오래된 빛>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어느덧 일주일>은 작가가 쓰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분명히 느껴졌었지만, <오래된 빛>에서는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 자신의 독특한 색깔이 희미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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