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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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카히로와 미와코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각기 다른 집에 맡겨져 길러진다. 15년 동안 떨어져 지내는 동안 다카히로는 착실히 공부해서 대학교 연구원이 되었고 미와코는 보험회사에 취직해 일을 하는 한편 틈틈이 시를 쓴다.

성년이 되어 다시 만난 남매는 어릴 적 살던 집에서 15년의 공백을 벌충하기라도 하듯 서로를 아끼며 생활한다. 하지만 서로의 고독감과 상실감이 너무나 닮았다는 점을 발견한 후 서로를 이성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결국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만다.

얼마 후 미와코가 쓴 시가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다. 소설가 호다카가 그녀에게 호감을 나타내는데 그는 베스트셀러 소설가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후 드라마 각본과 영화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미와코는 다카히로와 계속 관계를 지속시켜 나가선 안된다는 생각에 호다카에게 마음을 열고, 둘은 결혼 약속을 잡는다.

 

결혼식을 앞둔 날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결혼식 준비를 의논한다. 모인 사람은 다카히로와 미와코, 호다카, 그리고 호다카 기획의 실무를 보고 있는 스루가 나오유키, 미와코를 담당하고 있는 편집 담당자 유키자사 가오리 이상 다섯 명이었다. 그들이 담소를 다누고 있을 때 창 밖에 한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나미오카 준코, 호다카에게 버림 받은 여자였다.

사실 호다카는 소설로 돈을 벌어들인 후에 이것 저것 손을 댔다가 재정이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 미와코의 시가 대 히트를 치자 그녀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호다카는 자신의 아이를 낙태하기까지 한 나미오카 준코가 거치거리자 그녀에게 별다른 설명도 없이 버렸고, 뒤늦게 호다카의 결혼 사실을 알게 된 나미오카 준코가 호다카의 집을 찾아온 것이다.

호다카는 스루가를 시켜 그녀를 따돌리지만, 결국 그날 나미오카 준코는 다시 호다카의 집을 찾아와 유서를 남긴 채 음독자살하고 만다. 호다카와 스루가는 나미오카 준코의 시체와 유서를 그녀의 맨션으로 옮긴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음 날 결혼식장으로 간다. 하지만 버진 로드를 먼저 걸어가던 호다카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후 사망하고 만다. 사인은 나미오카 준코와 마찬가지로 초산 스트리크닌 중독, 그가 상용하던 비염약이 바꿔치기 당한 것이 틀림 없었다.

 

비염약을 바꿔치기 할 수 있는 인물은 다카히로, 미와코, 스루가, 유키자사 이상 네 명이지만 미와코에게는 별다른 동기가 없으니 사실상 셋 중 한 명이 범인이다. 먼저 다카히로는 여동생을 다른 남자, 즉 호다카에게 시집 보낼 것을 괴로워한 것이 동기이다. 스루가의 경우에는 애초에 나미오카 준코와 좋아 지냈으나 그녀가 호다카를 만난 후 그를 사랑하다가 결국 비참하게 버림 받았기 때문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유키자사 가오리는 호다카의 편집 담당이었던 시절에 그와 사귀었으나 역시 버림 받은 전력이 있었다.

 

가가 교이치로는 이들 세 명의 행적을 면밀히 조사해 각각의 동기와 기회가 어떻게 범행으로 이어지려 했는지를 말한다. 나미오카 준코의 집에 시체를 옮기러 간 스루가는 그녀가 만든 초산 스트리크닌 비염약을 훔쳐 냈고, 유키자사 가오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카히로는 우연히 나미오카 준코가 약을 바꿔치기 하는 장면을 발견하고 약을 훔쳐낸다.

스루가는 다카히로가 호다카에게 증오심을 품고 있음을 알고 그를 협박해 약을 바꿔치기 하도록 강요했고, 유키자사 가오리는 스루가의 증오심을 이용해 그가 약을 바꿔칠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들이 훔쳐낸 약들은 모두 사용되지 않은 채 다시 발견되었고, 그들 모두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가가 교이치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범인을 지목한다. 호다카의 필케이스에는 지금 이곳에 없는 사람의 지문이 찍혀 있고,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 바로 당신이 범인이다.

 

내가 좋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시리즈이다. 하지만 용의자들의 1인칭 시점을 교차하며 소설이 전개되기 때문에 다른 가가 시리즈 처럼 가가 형사의 매력이 발산되는 작품은 아니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와 마찬가지로 모든 단서를 제공하고 난 후 독자에게 직접 범인을 맞추어 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고, 니시가미 신타의 <추리 안내서>를 봉인된 부록으로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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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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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은 길고 뼈가 불거진 데다 끝 부분이 튀어나와서 V자 모양을 이루고 그 위에 자리 잡은 입 또한 V자, 휘어진 두 개의 콧구멍도  작은 V를 그리고 숱 많은 눈썹과 갈색 머리카락까지 V자를 이루는 새뮤얼 스페이드는 전체적으로  유쾌한 금발의 악마 같은 인상을 한 탐정이다.

어느 날 비서 에피 페린이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가 사건을 의뢰하러 왔다고 전하자 스페이드는 반색을 하며 반긴다. 의뢰인은 그녀의 여동생이 플로이드 서스비라는 불량한 남자에게 걸려들어 집을 나갔다며 그를 미행해 여동생의 행방을 알아내 주길 원한다. 스페이드는 고액의 수수료를 받은 후 동업자 마일스 아처로 하여금 서스비를 미행하도록 한다.

하지만 그날 밤, 마일스 아처가 권총에 맞아 살해당했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서스비 역시 호텔 앞에서 총에 맞아 숨진다.

경찰은 스페이드를 살인 혐의로 몰아간다. 마일스의 경우 그의 아내 아이바가 스페이드와 불장난을 하다가 최근에는 이혼을 요구하는 등 치정이 얽혀 있었고, 서스비의 경우에는 동료를 살해한 범인을 스페이드가 직접 단죄한 것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추궁에서 어찌어찌 벗어난 스페이드는 여자가 의뢰한 사건의 이면에 뭔가 다른 것이 있음을 직감한다. 그즈음 스페이드는 자신을 미행하는 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스페이드의 사무실에 또 다른 의뢰인이 나타나는데 그는 조엘 카이로라는 자로 매 조각상을 찾아주면 5천 달러라는 거금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뢰인 거트먼이 나타난다. 거트먼은 조엘 카이로가 제시한 금액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제시하며 매 조각상이 무엇인지도 알려준다.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은 1523년 슐레이만 대제가 자신들을 로도스 섬에서 쫓아내자 크레타 섬으로 가서 1530년까지 지내다가 카를 황제를 설득하여 몰타, 고조, 트리폴리를 달라고 한다. 카를 황제는 몰타가 아직 스페인의 지배에 있다는 표시로 황제에게 매년 매 한 마리를 공물로 바치라는 조건을 내걸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기사단은 해적질과 약탈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자 온갖 보석을 박아 넣어 공물로 바칠 매를 제작한다. 하지만 매는 운송 중 해적에게 약탈 당해 스페인에 닿지 못하고, 그 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다. 그 와중에 매의 가치를 정확히 모르던 자들의 손을 거치며 검은색 도료와 에나멜이 덧칠 되었고 현재는 그저 검은색 매 조각상이 되었다.

 

거트먼은 이 매의 가치를 알게 된 후 17년간 추적해온 자였고, 브리지드 오쇼네시 역시 매와 관련된 인물이었다.

 

얼마 후 스페이드의 사무실로 거구의 사내가 방문한다. 사내는 사무실로 들어서자 마자 꾸러미를 안은 채 쓰러져 죽고 만다. 꾸러미를 풀어보니 몰타의 매가 들어있었다. 거구의 사내는 브리지드 오쇼네시가 맡긴 매를 운송해준 선장이었다. 그리고 실종된 브리지드 오쇼네시로부터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걸려온다.

브리지드 오쇼네시가 말한 장소에는 거트먼과 조엘 카이로, 그리고 스페이드를 미행하던 젊은 총잡이가 있었다. 총구에 둘러싸인 스페이드는 태연하게 거트먼과 협상을 진행시켜 나간다. 스페이드는 거트먼에게 기꺼이 몰타의 매를 돌려주고 소정의 수고비를 받을 의사가 있으나 문제는 세 건의 살인이라며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거트먼을 어른다. 경찰은 사건의 진실에 아주 근접해 있는데 희생양을 던져준다면 어떻게든 단순 살인사건으로 귀결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어물쩡 넘어가려 했다가는 몰타의 매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까지 모두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것이라 말하는 스페이드의 말에 거트먼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그들 사이에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젊은 총잡이는 자신이 희생양으로 경찰에 넘겨질 것이라는데 분개한다.

거트먼은 매가 진짜인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며 매를 칠을 벗겨보는데 매는 가짜로 드러난다. 거트먼 일당은 자신들이 운송해온 매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화를 내며 떠나고, 스페이드는 거트먼에게 경비 명목으로 천 달러를 받는다.

 

그들이 떠난 즉시 경찰에게 신고를 한 스페이드는 브리지드 오쇼네시에게 말한다. 마일스 아처는 맘에 들지 않는 자였고 동료로서도 형편 없었지만 서스비에게 당할 만큼 얼간이도 아니었다고. 브리지드 오쇼네시는 스페이드의 사랑에 희망을 걸지만 스페이드는 매몰차게 브리지드 오쇼네시를 경찰에 넘긴다. 경찰은 스페이드에게 거트먼이 젊은 총잡이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주고, 에피 페린은 아처의 아내 아이바가 사무실에 찾아왔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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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실 해밋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소설이 아니라 사회과학 책에서였다. 매카시즘의 광풍에 희생된 사람들을 거론하는 구절에 작가 대실 해밋이 있었는데 그가 어떤 책을 썼는지는 몰랐었다. 그러다가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를 알게 되면서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가 바로 대실 해밋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립 말로와 루 아처는 물론이고 가깝게는 오사와 아리마사의 사메지마 등이 모두 스페이드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인물들이다.

대실 해밋은 실제로 미국 최대 탐정 회사인 핑커턴에 근무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냉혹한 탐정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1920년대는 밀주법 시대였고 미국 독자들은 범죄의 낭만적 속성에 매료되었다.

대실 해밋이 작가 활동을 한 것은 그리 길지 않고 그의 행보도 언뜻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는 1934년 마지막 소설을 발표한 후 영화 작업에 몰두했고, 1940년대에는 정치에 몰두해 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매카시즘의 광풍 아래 옥살이를 한다. 1942년에는 사병으로 재입대해 세계대전에 참전하는가 하면, 제대 후에는 제퍼슨 사회과학 대학에서 추리소설 작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소설 속에는 액자 속 이야기가 하나 나온다. 한 사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둔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가 사라져야할 어떤 이유도 없었고, 막대한 재산도 그대로였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이 사라진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는 탐정에게 남편을 찾아달라고 의뢰했는데 사라진 남편은 성만 바꾼채 다른 곳에서 이전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사라진 이유를 묻는 탐정에게 사내는 말한다. 어느 날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공사장에서 무엇인가 떨어져 보도를 박살내는 것을 보았는데 '누군가 인생의 어두운 문을 열고 그 안을 보여 준 것 같다' 고 느꼈다고 했다. 그 길로 외부의 강요에 의해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이길 버리고 자발적으로 다른 삶을 택했다고 했다.

 

대실 해밋은 조스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고 있는데 해설자에 의하면 조스는 대실 해밋의 아내 조세핀으로 그녀와 해밋은 작품을 쓸 당시 별거중이었고 끝내 재결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작품을 헌정한 이유는 어쩌면 액자 속 이야기에서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0433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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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안다는 것 열린책들 세계문학 83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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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은 이스라엘 국가 정보 부대의 비밀 요원으로 23년간 일을 하다가 은퇴한다. 영화 속 스파이들처럼 권총을 꺼내 들거나 추격전을 벌여 왔던 것은 아니었다. 요엘은 그저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집중력을 발휘했고 적당한 값의 정보를 사고 팔았다. 아내 이브리아는 그런 요엘을 '이해한다'고 했다.

요엘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아내가 감전 사고로 사망한다. 비가 오는 날 아내는 전선을 건너려다 감전 당했고, 이를 지켜보던 이웃 이타마르 비트킨이 아내를 구하려다가 함께 죽고 만다. 그것이 아내의 사망과 관련해 요엘이 전해들은 이야기였다. 

요엘은 그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니면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아내와 이웃 비트킨이 함께 자살한 것인지, 또는 자신이 마지막 임무에서 실수한 무엇 때문에 아내가 살해당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마지막 임무에서 잃어버린 버지니아 울프의 책 <델러웨이 부인>과 호텔 벽에서 본 도형들, 그리고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도 모를 '휠체어에 탄 인물'에 대해 거듭 생각한다.

 

은퇴한 요엘은 라마트 로탄에 집을 얻고 간질병을 앓는 딸 네타, 어머니와 장모님과 함께 생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네타의 간질병 증세에 대해 아내 이브리아는 인정하지 않았고, 그 증세가 요엘로부터 기인한다고까지 생각했다. 요엘은 아내의 의견과 자신의 생각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지 못한다. 

부동산 업자 아릭은 요엘에게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였고 이웃에 사는 미국인 남매 랄프와 안 마리 역시 그러했다. 요엘은 안 마리와 관계를 갖기 시작하나 그 관계가 어떤 형태로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보 부대의 책임자 르 파트롱의 소환에 응한 요엘은 그가 제안한 복귀 요청을 거절한다. 르 파트롱은 방콕의 여자 정보제공자가 요엘을 특정했기 때문에 그가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르 파트롱은 그녀에게 요엘이 이름을 말했다는 사실에 주목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요엘을 특정했다고 생각했다. 거듭된 간청에도 불구하고 요엘은 네타에 대한 책임감과 불길한 느낌 때문에 복귀를 고사한다. 대신 임무를 맡은 요엘의 친구 오스타쉰스키가 얼마 후 시체가 되어 이스라엘로 돌아온다.

 

죄책감을 느낀 요엘은 금기를 깨고 오스타쉰스키의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이 임무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가 사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한다. 하지만 오스타쉰스키의 누가 그를 방콕으로 보냈는지 묻고, 이름을 말하는 요엘에게 '반역자', '카인' 이라며 욕설을 퍼붓는다.

 

안 마리와 랄프가 요엘에게 관계를 명확히 할 것을 요청하나 요엘은 그들에게 부정적인 답변을 한다. 요엘은 네타가 더 이상 자신의 인생을 간섭받길 원하지 않는 성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어머니의 퇴행 증상이 심해진다. 요엘은 방콕으로 돌아가 진상을 조사하고, 혹은 조사하는 꿈을 꾸고난 후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그가 자원봉사를 하면서 댄 이름은 사샤 샤인, 바로 오스타쉰스키가 자신에게 도움을 줄 때 썼던 가명이었다. 사람들은 요엘이 환자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여겼고, 요엘은 자원봉사를 통해 진실을 단번에 알게 되는 것을 단념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어느 순간 진실은 은밀하게 가물거리는 빛으로 다가올 것이고, 경계심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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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주인공 요엘을 정보 부대 요원으로 설정한 후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두 개의 죽음을 통해 개인과 국가의 조화 가능성을 묻는다. 

 

첫번째 죽음은 아내의 죽음이다. 그가 국가를 위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아내가 사망한다. 요엘은 아내의 사망을 단순한 사고사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내를 방치한 데 대한 뒤늦은 죄책감 때문에 그녀가 이웃집 남자와 연애를 하다가 자살했을지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더 나아가 자신이 임무 수행 중 실수한 어떤 문제 때문에 아내가 살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으로까지 확장된다.

 

두번째 죽음은 동료의 죽음이다. 오스타쉰스키는 요엘이 복귀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에 대신 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다. 요엘은 동료의 죽음에 대해서도 책임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정보 부대를 떠났기 때문에 동료가 죽은 원인을 밝히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속죄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의 속죄에 대해 오스타쉰스키의 아버지는 '반역자', '카인' 이라며 비난한다.

 

요엘은 두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나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가 속한 경계의 바깥에서 죽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가 국가적인 인물이었을 때는 아내가 죽었고, 그가 사인(私人)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국가적인 차원의 죽음이 일어났다. 그는 각각의 죽음이 그린 경계 바깥에 스스로 위치했기 때문에 진실에 접근할 수 없고 의심과 망상의 경계를 더듬을 뿐이다. 그러한 의심과 망상에서 도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집안 일을 찾아내지만 그의 어머니는 요엘에게 무언가 '일을 하라'고 권한다. 요엘 스스로도 그런 상태가 되면 과거 자신에게 괜찮은 일거리나 수익을 제안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개인적인 영역과 국가적인 영역을 상정하고 각각의 영역 바깥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진실'이라는 것이 과연 파악될 수 있는지에 대한 아모스 오즈의 답변은 유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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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탑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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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양친을 잃고 우에스기 백부의 손에서 자란 오토네는 먼 친척인 겐조가 백 억 엔의 유산 상속자로 자신을 지정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단 상속을 받기 위해서는 다카토 슌사쿠라는 사내와 결혼해야 하는데 그 사내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겐조는 백 세 가까운 노인으로 과거 은광 투자 때문에 다케우치 다이지라는 사내를 살해하고 미국으로 도망쳐 자수성가 한 인물이다. 그가 미국으로 도망치자 동업자인 다카토 쇼조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참수된다. 죄책감을 느낀 겐조는 일본으로 돌아와 삼수탑(三首塔)을 만들어 자신이 살해한 다케우치 다이지, 자신 대신 참수당한 다카토 쇼조,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세겨 넣은 공양탑을 만들고 막대한 부를 다케우치 다이지의 아들 다케우치 준고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막상 다케우치 준고를 만나보니 성정이 좋지 않아 겐조는 얼마간의 돈을 주어 준고를 일본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의 후손과 다카토 쇼조의 후손을 짝지워 준 후 유산을 물려주기로 결심한다.

겐조는 자신의 후손 중 오토네라는 어린 여자아이가 마음에 들어 이 여자 아이를 다카토 쇼조의 후손 다카토 슌사쿠와 결혼시키기로 결심하고 두 아이의 지문을 두루마기에 찍어 삼수탑에 보관한 후 시간이 흐르자 위와 같은 유산 상속 조건을 내건 것이다.

 

하지만 다카토 슌사쿠를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가 살해되고 상속 조건은 복잡하게 변하고 만다. 만약 오토네가 슌사쿠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유산은 겐조 노인의 혈육 모두에게 균분되는 것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유산 상속인들은 모두 여성이었는데 오토네는 그들 모두가 지극히 타락한 사람들임에 경악한다. 클럽의 무희, 아크로바트 댄서, 어린 남성을 노리개로 삼아 쾌락을 즐기는 유한 마담, 수상한 서커스단의 연기자 등 직업도 수상쩍었지만 그들 모두에게는 기둥서방이라 할 만한 인물들이 하나씩 붙어 유산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토네 역시 다카토 슌사쿠의 사촌 다카토 고로라는 인물에게 유린당한 후 같은 처지가 되고 만다. 

 

상속인 한 명이 줄어들 때마다 배분되는 몫이 커진다는 사실을 깨닫은 직후부터 상속인들이 사망하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유한 마담 시마바라 아케미가 사망하고, 밤무대 댄서인 초코와 하나코까지 차례로 살해당한다. 사람들이 살해 당하면서 오토네는 자기도 모르게 다카토 고로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오토네는 다카토 고로가 그들을 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도 그가 무척 냉철하면서도 자상하다는 점에 점차 이끌리는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살인 사건의 의심이 오토네에게 쏠리면서 오토네와 다카토 고로는 유산 배분의 단초가 된 삼수탑을 찾는다. 

 

그곳에서 다카토 고로가 들려준 충격적인 진실은 오토네를 경악시키면서도 기쁘게 만든다. 바로 지금껏 악당으로 알고 있었던 다카토 고로가 사실은 다카토 슌사쿠였고, 다카토 고로는 유산을 목적으로 숙부가 자신과 바꿔치기 한 가짜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다카토 고로는 과거 자신의 지문이 찍힌 두루마기를 찾아 존재를 증명하기 전까지는 가짜 신분으로 살아야 했던 것.

 

다작 작가로 알려진 요코미조 세이시의 <삼수탑>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 격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렇다할 수수께끼 풀이의 완성도는 보이지 않고 긴다이치 코스케는 등장은 하나 활약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작품은 전후 일본의 분위기를 적실하게 반영하고 있어 그 퇴폐적인 분위기가 농밀하게 그려진다. 여성이 정조를 잃으면 그 즉시 타락하거나 정조를 빼앗은 남성을 좇아야 한다는 관념이나 동성애를 절대악으로 보는 당시 사회 분위기 역시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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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노린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4
마츠모토 세이조 지음, 문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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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전기회사가 입체자금 조달에 압박을 받다가 어음사기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업무책임자인 회계과장이 이 사건으로 자살하고 만다. 회계과장의 신임을 받던 부하 직원 하기자키 다쓰오는 공분을 느껴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그의 친구이자 신문기자인 다무라가 이를 돕는다. 회사 고문 변호사인 세누마씨 역시 전직 형사를 고용해 어음사기꾼들을 추적한다.

사건을 파해치는 과정에서 이들은 어음사기꾼들의 배후에 후네자카 히데아키라는 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우익 조직을 이끌고 있었는데 조직 유지 자금을 위해 어음 사기를 일삼고 있었던 것이다.

어음사기꾼이 자신을 추적하던 전직 형사를 우발적으로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후네자카 일파는 변호사마저 납치하여 살해한다. 다쓰오는 사건의 주변을 서성이는 아름다운 여인 우에자키 에쓰코의 존재 때문에 다무라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지 못한 채 독자적인 조사를 이어나가는데, 어음사기꾼 겐키치가 목 메달아 자살한 시체가 발견된다. 시체의 부패 상태로 보아 그는 전직 형사를 죽인 직후인 4개월 전에 자살한 것으로 판명이 되자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추리소설은 본디 이상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말하자면 인간관계가 극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추리소설에 더욱 리얼리티가 필요한 법이다......현대처럼 인간관계가 복잡하고 서로의 조건들이 착종되거나 절단된,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이 개개로 고립된 상태에서는 추리소설의 수법이 좀더 폭넓게 활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리얼리티의 부여도 더욱 필요해진다고 생각한다.

 

세이초는 추리소설에 리얼리티가 부여되어야만 독자에게 실감을 줄 수 있고 나아가 인간성과 사회성을 함께 탐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신념으로 세이초는 범행의 트릭보다는 범행의 동기에 주목했다.

 

동기를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그대로 인간묘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범죄 동기는 극적인 상태에 놓여진 인간의 심리에서 비롯된다......나는 동기에 좀더 사회성이 부여되기를 주장하는 바이다. 그렇게 되면 추리소설도 좀더 폭넓어지면서 깊이를 더해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더러는 문제제기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일본 경찰은 살인의 경우 수사 1과가 담당하고 지능범죄의 경우는 수사 2과가 담당한다. 단순 경제사범의 범죄로 시작된 이 소설은 점차 살인으로 발전하고 전후 우익의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전쟁 전 일본 우익의 재원은 군부의 기밀비로 경제적 제약을 그다지 받지 않았다. 그러나 전후 예전 후원자를 잃어버린 일본 우익은 그 재원을 비합법적인 수단에 호소하기 시작했고 공갈, 사기, 횡령 등을 일삼기 시작한 것이다. 야쿠자와 일본 우익의 긴밀한 관계도 이러한 전후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점과 선>과 거의 같은 시기에 <주간 요미우리>에 동시 연재한 <너를 노린다>는 연재 당시 <눈의 벽>이라는 제목이었고 1958년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두 작품 모두 독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게 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98798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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