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거지 펭귄클래식 55
마크 트웨인 지음, 남문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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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반 어느 가을날의 런던, 오팔 코트라는 빈민가에서 톰 켄티라는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집에서는 아무도 원치 않는 아이였다. 같은 날 잉글랜드에서 또 한 명의 사내아이가 부유한 튜더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이는 집안 전체가 원하는 아이였다.

톰 켄티는 하루 종일 구걸을 했는데 집으로 가져간 돈이 적으면 아버니와 할머니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켄티의 어머니와 쌍둥이 누나 역시 핍박을 당하며 겨우 생계를 연명하고 있었다. 톰은 앤드루 신부에게 약간의 글쓰기와 읽는 법을 배운 뒤 책을 빌어다 읽으며 자신이 왕이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톰은 우연히 궁궐에 들어가게 되고 에드워드 왕자를 만나게 된다. 톰이 살아온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왕자는 장난 삼아 톰과 옷을 바꿔 입는데 거울에 비친 둘의 모습은 쌍둥이처럼 똑같아 보였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톰의 팔에 멍이 든 걸 본 왕자는 경비병의 심한 처사를 혼내주기 위해 성문으로 간다. 그런데 에드워드 왕자를 아까의 거지 소년으로 착각한 경비병이 왕자를 성문 밖으로 쫓아내버리고 이로써 둘의 운명이 바뀌고 만다.

톰은 자신이 거지소년이라는 것을 밝히고 오팔 코트로 되돌아가려 했지만 주변의 신하들은 톰이 잠시 미친 것이라 생각하여 근심걱정만 할 뿐 톰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왕인 헨리 8세마저 톰을 에드워드로 착각하고 푹 쉬라고 권할 뿐이었다. 톰은 이렇게 된 마당에 잠시 왕자 노릇을 하기로 하고 회초리 시동의 도움을 받아 서서히 왕가의 생활에 적응해 간다.

한편 쫓겨난 에드워드 왕은 톰 켄티의 폭군 아버지에게 잡혀 고초를 겪다가 마일스 헨든이라는 젊은 청년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마일스 헨든은 못된 동생 휴의 간계로 고향을 떠나 전쟁터를 전전하다가 겨우 영국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그는 에드워드가 정신이 어떻게 된 모양이 생각하여 불쌍히 여겼고 왕자의 비위를 맞춰 주며 돌보아준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몫의 유산을 나눠받으면 에드워드와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가보니 아버지와 형은 이미 사망했고 헨든의 약혼녀는 그가 죽었다는 거짓 편지를 받은 후 휴와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게다가 휴는 마일스 헨든이 죽은 형을 사칭하는 사기꾼이라 몰아 붙여 경찰에 고발하기까지 한다. 모욕적인 형벌을 받은 마일스 헨든과 에드워드는 다시 런던으로 향한다.

런던은 헨리 8세 사망 후 대관식을 앞두고 새로운 왕에 대한 기대로 활기에 차 있었다. 대관식장에서 톰이 왕관을 머리에 얹기 직전, 에드워드가 뛰어든다. 톰은 이제야 말로 진짜 왕이 나타났다며 반가와했고, 에드워드 역시 자신이 진짜 왕임을 당당히 주장했다. 옥쇄가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 진짜 왕임을 입증한 에드워드는 톰에게 그리스도 자애원 원장 자리를, 마일스 헨든에게는 백작 칭호를 하사한다. 그리고 여행 중 만났던 억울한 죄수들을 풀어주고 엄격한 형벌을 없애는 등 자애로운 통치로 이름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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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로 1835년 11월 30일 미국 미주리 주의 플로리다에서 태어났다. 수습공으로 인쇄 일을 배우다 형이 운영하는 신문사에서 식자공이자 기고가로 일하던 그는 1853년 집을 떠나 도시를 전전했고 4년 뒤 미주리로 돌아와 증기선 항해사로 일하게 된다. 그 후 네바다 광산 투자에 실패한 후 복격적으로 신문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한다.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은 '깊이가 얕아 가까스로 항해할 수 있는 강'을 뜻하는 뱃사람들의 용어라고 한다.

1882년에 발표된 <왕자와 거지>는 그의 대표작 <톰 소여의 모험(1876)>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1885)>과 달리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쓴 이 소설은 당시 미국인들에게 '인기 유머 작가가 <전쟁과 평화>를 출간한 것이나 마찬가지'의 사건으로 비춰졌고, 국수주의적인 비평가들은 '미국의 작품이 아니라고 비판' 했다고 한다.

또한 <왕자와 거지>에는 마크 트웨인의 자전적인 면모가 많이 드러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천재성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심리와 이중적인 면모가 소설에 투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년에 옥스퍼드 명예 학위를 받으며 매우 기뻐했던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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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 개정판 문지 푸른 문학
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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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인 주인공 선재는 부모님을 일찍 여위고 누나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선재의 누나는 일찍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므로 '자기 앞가림'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선재는 현실적인 삶의 문제 보다는 '구름 그림자' 따위의 일에 마음이 더 쓰이는 감수성 예민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선재는 일기를 쓰며 자신의 마음 자리를 들여다보고 입시에 실패한 순석에게 편지를 보내 위로의 말을 건내는 등, 경쟁만 강요하는 학교생활을 견디기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른들에게 번번히 오해를 산다. 장래에 도움 되지 않는 짓에 정신이 팔려 학생의 본분에서 벗어났다고들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어를 가르치는 '왜냐선생' 사건은 선재를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왜냐선생'은 허생전을 토론식으로 수업하였는데 학생들은 허생이 했던 행동과 사회에 미친 영향, 그의 한계 등에 대해 자기 의견을 말하게 된다. 하지만 '왜냐선생'이 전교조에 가입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왜냐선생'을 옹호하는 쪽과 선입견을 갖고 비꼬아 생각하는 쪽으로 갈리게 된다. 결국 선생이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고 이에 대한 의사표시를 하려던 말더듬이 윤수는 데모 주동자로 몰려 경찰의 조사까지 받게 된다. 


선재는 더욱 학교 생활에 회의를 품게 되어 탈출구만을 생각하다가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놀이판'을 기획하게 된다. 그러나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고, 글을 읽는 축제의 한마당을 벌이려던 계획이 학교 당국과 경찰의 눈에 전교조 해직 교사 사건에 따른 불온한 집회쯤으로 간주되어 선재와 친구들은 가차없이 무기정학 처분을 당한다.


고3이 되어 경쟁의 막바지에 안간힘을 쏟을 여름방학, 선재는 외딴 섬으로 피해 들어가 고통의 시기를 견디고 윤수는 자기가 원하던 일을 하기 위해 입시학원을 탈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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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편지로 구성된 다섯 편의 연작 소설을 묶은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은 억압적인 정치 권력이 강요하는 가혹한 입시 제도 하에서 여린 감수성의 청소년들이 상처받고 스러져가는 상황을 포착한 작품이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에서 이러한 문제 의식은 극명히 드러난다. 학생들이 자신의 머리와 생각으로 소설 작품을 현실에 적용시키도록 하려는 '왜냐선생'의 교육법은 그 자체로는 전혀 잘못 된 것이 없지만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사회의 안정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해직의 이유가 된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러한 논리를 내면화하여 '왜냐선생'이 불온한 이유로 작품을 왜곡하고 있다고 항변하는 동철과 같은 학생도 있다는 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곧 자기 앞가림을 한다는데 있다'는 선재 누나의 현실적 논리를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여 살아가는 요즘, '산다는 것이 곧 순응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텐데 그렇게 되고 마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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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선인장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사사키 아츠코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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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가의 동쪽 변두리 오래된 아파트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낡고 허름한 회색 건물의 이름은 '호텔 선인장'. 읽는 것은 질색이고 몸을 단련하는데 관심이 많으며 가족과 친구를 배려하는 '오이', 관청에 근무하며 딱부러지게 맞아 떨어지는 것을 추구하는 소심한 숫자 '2', 거북이와 함께 살며 하드보일드한 삶을 동경하는 '모자'. 이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처음엔 어색하게 쭈뼛거렸지만 곧 친해진 이들은 위스키와 맥주, 그리고 자몽주스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가 하면, 경마장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았던 즐거운 시기는 '호텔 선인장'이 헐리기로 결정됨에 따라 잠시 중단된다.


오이와 모자, 숫자 2라는 다소 엉뚱한 등장 인물들은 서로에게 열광하거나 다른이의 삶을 변화시키려 하지는 않는다. 마치 오이는 원래 오이니까, 모자는 원래 모자니까 하는 식으로 서로를 인정하는 속에 관계를 발전시킨다. 담백한 태도 속에 서로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관계라고 하면 될까?

 

** 아름다운 무늬가 들어간 철제 난간과 계단, 벽 등을 소재로 그려진 사사키 아츠코의 삽화가 삽입되어 있는데 이야기들과 잘 어우러지지 못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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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32
루이스 마르틴 산토스 지음, 박채연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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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페드로는 암의 원인이 유전적 요인 때문인지, 아니면 환경적 요인 때문인지를 밝히기 위해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쥐를 수입해다가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왠일인지 쥐들이 연구실에서는 번식을 잘 하지 못해 매번 죽어나갔으므로 골머리를 썩였다.

조수 아마도르가 페드로에게 무에카스라는 사람이 연구실의 쥐를 훔쳐다가 번식시켰다는 말을 전하자 페드로는 곧 무에카스의 집을 방문해 쥐를 얻고자 한다.

무에카스의 집은 빈민굴에 있었는데 두 딸과 아내, 그리고 갖가지 동물들이 쓰레기장을 방불케하는 방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무에카스는 쥐들을 번식시키기 위해서는 열을 가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쥐들을 딸들의 목에 메달아 발정기를 유도한다고 했다. 두 딸은 매우 예뻤는데 큰 딸은 쥐에게 가슴 윗부분을 물리기까지 했건만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페드로에게 무에카스가 찾아와 자신의 딸이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리고 있으니 구해달라고 말한다. 페드로가 무에카스의 집을 가보니 큰 딸이 임신한 상태에서 무언가 잘 못 되었는지 피를 쏟으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주술사의 수상쩍은 처방으로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상태였다. 페드로는 자신이 의사가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소파 수술을 시도한다. 하지만 큰 딸은 페드로가 손을 쓰기 시작한 그 순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페드로는 자신이 큰 딸을 죽인건지도 모른다는 혼란에 빠져 친구 마티아스와 함께 창녀굴에 몸을 의탁했다가 경찰에 잡혀간다.

페드로가 경찰에 잡혀가자 마티아스는 집안 연줄을 이용해 페드로를 도우려 하고 페드로가 하숙집 모녀의 간계로 손을 댄 도리타는 매일같이 페드로를 면회하러 간다. 하지만 경찰은 교묘한 유도심문을 통해 페드로를 범인으로 확정지으려 한다.

이 때 무에카스의 아내 리카르다가 딸이 페드로가 도착했을 땐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는 진술을 하고 덕분에 페드로는 무사히 풀려난다. 하지만 페드로가 사랑하게 된 하숙집 딸 도리타가 질투심에 눈이 먼 사내에 의해 살해당하고 - 그는 페드로가 무에카스의 딸을 죽였다고 오인한다 - 페드로는 연구실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해고되고 시골 의사가 되기 위해 떠난다.


1924년에 스페인의 보호령 모로코에서 태어난 루이스 마르틴 산토스는 1946년에 살라망카 의대를 최우등으로 졸업, 박사 과정 수료 후에는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다가 1951년 산세바스티안 정신병원의 원장을 지낸다. 남부러울 것이 없는 경력을 쌓은 그였지만 스페인 독재 체제에 저항하는 사회노동당 활동을 한 이유로 세 차례 투옥된다.


<침묵의 시간>은 1986년에 비센떼 아란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국내에서는 개봉도 되지 않았고 찾아 보기도 힘들다. 종종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에 견주어 평가 받기도 하는 이 소설은 줄거리의 흐름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난해한 편이다. 의식의 흐름에 맞추어 줄거리가 무시되기도 하고 대화가 엇나가는 느낌이 들어 다시 읽어보면 상대편의 대화는 생략되고 한 사람의 대화만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여러사람의 의식이 순서대로 적혀 있어 끝까지 읽고 나서 누구의 생각인지 간추려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난해함 때문에 매일 밤 조금씩 읽다가 눈을 감고 내용을 곱씹어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드는 경우가 많았다.

루이스 마르틴 산토스는 1964년 1월 24일 젊은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가 남긴 작품이 많지 않다. <침묵의 시간>, 속편 격인 미완의 유작 <파괴의 시간>, 단편 모음과 정신분석 이론서, 처녀시 모음집 각 한 권씩이 전부이다.

소설 속에서 '사회를 분석하기만 할 뿐 변혁하는데는 무능력한' 철학자로 등장하는, 루이스 마르틴 산토스의 스승이며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독자들의 실제 삶이 소설보다 더 놀랍고 충격적이며 더 빠르게 변하고 있어 언어를 매개로 현실을 재현하고 상상하는 작가의 위상이 흔들리게 되었고 이것이 곧 소설의 죽음 이라는 위기 의식을 가져왔다'고 말하는데, 루이스 마르틴 산토스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술(description)'이 '줄거리'를 극복하는 새로운 소설 형식의 실험에 있어 대단히 큰 업적을 남긴 작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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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
시마다 소지 지음, 이윤 옮김 / 호미하우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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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한 밤, 담배가게 할머니가 살해된다. 그날 밤 순찰을 돌던 순경과 작사가 지츠소우지가 고글 쓴 남자를 목격했는데 고글 안쪽이 새빨갛게 보였다. 눈이 짓무른 것인지, 아니면 렌즈가 빨간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가 유력한 용의자였다. 경찰이 담배가게를 조사하는 사이에도 고글 쓴 남자는 현장 주변에서 목격 되었다. 담배가게 할머니는 대리석 재질의 탁상 시계로 두부를 가격당했고 이 충격으로 심장마비가 와서 사망한 것으로 보였다. 특이한 것은 담배 50개가 바닥에 흩어져 있고 포장용기인 깡통은 사라졌다는 점과 금고 속의 5천엔 짜리에 형광펜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경찰은 담배가게 할머니가 평소 은행을 믿지 못해 장롱에 현찰을 보관하고 있었다는 소문을 들은 누군가가 돈을 노리고 결행한 범행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한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다른 담배가게 두 군데에서 표시된 5천엔짜리가 발견된다. 경찰은 표시된 5천엔짜리와 범행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파악하려 했지만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한편 용의자가 고글을 쓴 이유가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라는 경찰의 가설은 틀린 것으로 판명되는데 고글 쓴 남자가 보란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는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고글 쓴 남자가 또다른 범행을 저지른다. 에노키 미츠코라는 여자를 야쿠자풍의 남자가 팔을 잡고 어디론가 데려가려는데 갑자기 고글 쓴 남자가 나타나 야쿠자풍의 사내를 차도쪽으로 밀친 후 칼을 꺼내들고 행인을 위협한 것이다. 사내는 마침 달려오던 차에 받혀 크게 다치고 고글 쓴 남자는 유유히 사라진다. 경찰은 병원에 입원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생김새와는 달리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경영자였다. 에노키 미츠코가 자기에게 사기를 치려 했기 때문에 경찰서로 데려가려던 것이었다는 말만 간신히 내뱉은 남자는 고통에 겨워 말을 이어가지 못한다.

에노키 미츠코를 조사한 경찰은 그녀가 작사가 지츠소우지에게 노래를 배워 가수로 데뷔할 꿈을 갖고 있고, 윗집에 사는 대학생과 연인 관계인 동시에, 슈퍼마켓 경영자의 정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최근 그녀 주변에 스토커가 맴돌고 있었다는 사실도 파악한다.

그즈음 경찰의 용의선상에 또다른 남성이 등장한다. 에노키 미츠코의 대학생 애인에게는 룸메이트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에노키 미츠코의 스토커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담배가게 할머니 살해에 쓰인 대리석 시계의 지문과 스토커의 지문이 일치한 것이었다. 게다가 스포츠백에서 고글까지 나왔으니 그가 범인이 틀림없어 보였다. 하지만 스토커가 경찰에 구금되어 있는 상태에서 고글 쓴 남자에 의한 또다른 살인이 일어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만다. 두번째 살인 피해자는 슈퍼마켓 경영자였다. 그는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에게 수십차례 칼에 찔려 사망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잠실실내경기장에서 이승환 콘서트가 열리는 날 제1 수영장 휴게실 앞에 차를 대놓고 읽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책을 읽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사건의 범인은 에노키 미츠코이다. 에노키 미츠코는 슈퍼마켓 사장에게 돈을 받고 정부 역할을 하다가 작사가 지츠소우지와의 관계가 들통나 지원이 끊기자 사기를 치기로 결심한다. 사기 방법은 간단하다. 계산중에 주인을 헤깔리게 만드는 수법인데 다음과 같다. 먼저 물건 값을 5천엔짜리로 지불하고 거스름 돈을 받는다. 거스름 돈 4천엔이 건내지는 순간 미안하다면서 천엔을 더 줄테니 5천엔을 달라고 한다. 주인은 오천엔을 상대편에게 건내주고 방금 받은 천엔을 더해 천엔짜리 다섯장은 아직 손에 쥐고 있다. 이 상태에서 잽싸게 다시 말을 바꿔 차라리 오천엔짜리 한장을 더 줄 테니 만엔짜리를 달라고 하며 오천엔을 건낸다. 주인이 다른 손님과의 계산 등으로 정신이 없는 상태라면 자신의 손에 5천엔과 천엔짜리 다섯장이 있으므로 만엔이 맞다고 착각하고 만엔을 건내주게 된다.

에노키 미츠코는 담배가게 할머니들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성공했는데 마지막 담배가게에서 할머니가 수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겁에 질려 탁상시계로 머리를 내리쳐 살해하고 만다. 장롱의 돈을 가져가려다 보니 넣을 곳이 없어서 담배 깡통에 돈을 담고 담배는 바닥에 버린 것이다.

한편 평소 에노키 미츠코를 스토킹하던 남자는 신문투함구를 통해 몰래 훔쳐 보다가 마침 문에 빨간색 스프레이가 칠해지던 참이라 눈주위에 빨간 라카칠이 되고 만다. 이를 가리기 위해 고글을 쓴채 돌아다녔는데 그녀가 노파를 살해하던 장면을 목격한다. 방으로 뛰어들어 노파가 진짜 죽었는지 살피다가 대리석 시계를 만지는 바람에 지문이 남게된 것이다. 스토커는 자신이 범행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에 에노키 미츠코를 협박해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에노키 미츠코는 도리어 이를 이용한다. 고글쓴 남자가 범인이라고 경찰에 알려졌으므로 자신이 고글을 쓰고 슈퍼마켓 사장을 찔러죽인 것이다.


소설은 한 소년이 남자에게 성폭행당한 후 원전 임계사고를 경험하는 내용을 삽입해 범인을 다른이로 추측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원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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