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어른을 위한 동화 7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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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정이라는 가난한 나무꾼이 살았다. 어렸을 때는 장터에서 제법 싸움꾼 행세를 하였으나, 형님들이 한꺼번에 돌림병으로 죽고 어머니의 말문이 닫히자 사람이 달라졌다. 과묵하게 숯을 구워 새벽이면 내다 팔고 밤이면 산 밑 움막에서 잠들었다.

여러 해가 흐른 뒤 여느 날처럼 나무를 하러 간 정이 벌거벗은 여자를 발견한다. 상처입은 채 정신을 잃은 여자를 정성껏 보살펴 살려놓은 후 정은 여자에게 청혼했다. 여자는 자신이 누군지,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 채로 그리할 수 없다며, 보름달이 뜨면 대답하겠노라 했다. 정은 어쩐지 보름달이 뜨고, 달이 여자에게 말을 걸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될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 잡혔다. 정은 여자를 방 안에 끌어넣고 문에다 못질을 한 뒤 보름달이 사라질 때 여자를 취한다.

여자는 바느질을 했다. 솜씨가 좋아 차차 소문이 퍼졌고, 일감이 늘어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아들을 낳았고, 땅을 사들였다. 먹고 살 만해지자 시어머니가 바느질만 한다며 구박했다. 여자는 익숙치 않은 부엌일을 하며 가슴에 불덩이를 키워 갔다. 얼마 후 두번째 아이가 태어났다. 여전히 정은 여자를 보름달이 뜨면 방에 가두었다.

여자가 갖바치를 찾아가 신 만드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갖바치는 여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대신 정절을 달라 했고, 여자는 이에 응했다. 사흘밤낮을 여자는 갖바치에게 신만드는 것을 배우고 몸을 내주었다. 나흘째 되는 날 정이 여자를 찾아냈다. 정은 여자를 해칠 수가 없어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도끼로 잘라냈다. 정은 질투와 상실의 고통 때문에 타죽을 것 같았지만 여자는 용서해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여자가 만든 가죽신이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보름날 밤, 정이 집을 비운 사이 여자가 달을 보게 된다. 달은 여자에게 '여인은 나를 따라 걸어라' 라고 말을 걸었다. 달이 흐르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니 폭포에 다다랐다. 달이 '아홉 번 숨을 들이마시고 그대의 노래를 부르라'고 말했다. 따라하니 늑대들이 나타났다.

늑대 무리는 여자가 자신들의 일원이라 했다. 따라 나서겠느냐고 묻는 늑대에게 여자는 정과 시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으니 말미를 달라했다.

돌아온 여자는 인간 세상에서 지은 인연에 묶여 늑대 무리에게 돌아가지 못한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여자의 야생성을 일부 가져가자 여자는 그때부터 신을 짓지 않고 살림을 시작했고 일상의 삶이 주는 행복에 젖어든다. 하지만 그런 행복이 가져온 것은 두려움이었다. 언젠가 깨어질 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된다.

정과 아들이 돼지를 접붙이기 위해 마을로 간 어느 날 화적떼가 들이닥쳐 여자의 딸을 겁탈한다. 딸은 이때 상처로 앓다가 죽고, 도망치는 화적을 쫓아간 아들도 돌아오지 않는다.

인간 세상에서의 삶이 다해가고 있음을 직감한 여자는 정에게 자신을 놓아 달라고 한다. 산에 가서 죽겠다고 했다. 정은 마지막으로 여자를 위해 산에 집을 지어 주고 갖신 만들 재료를 넣어준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나고 다시 여름이 온 어느 날, 막 만든 가죽신 한 켤레가 여자에게 말을 하였다. "나를 신으세요" 여자가 신을 신자 신이 늑대들에게 가는 길로 다시 인도했다. 늑대가죽을 뒤집어 쓰자 여자는 젊고 어여쁜 흰늑대로 변했다.

다음날 정은 산에 올랐다가 여자가 없어진 것을 알고 계곡 아래 깊고 푸른 소에 몸을 던졌다. 정이 버둥대는 동안 때 아니게 푸른 단풍나무 잎들이 수수수 떨어져 물을 덮었다. 푸른 나뭇잎과 신발이, 그리고 다시 푸른 나뭇잎이 한 잎 한 잎 계곡으로 흘러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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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야생성을 간직한 '늑대'인데, '자신이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난 연후에 결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체성과 존재의 확인이 생활에 우선하는 것이다. 여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달에게 물으려 한다. 달은 해와 달리 매일 모양을 달리한다. 변화하고 배반하는 달이 여자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반면 남자의 관심은 현세의 삶, 대낮의 생활이다. 남자는 보름달이 사라진 후 여자를 겁탈한다. 남자는 처녀성을 빼앗으면 여자를 자기 소유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남자는 여자에게 '이녁을 행복하게 해줄게' 라고 말하지,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말하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가 부여한 적도 없는 굴레를 스스로 짊어지고 사뭇 비장해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유일한 관객인 연극이다.

여자는 갖신을 배우기 위해 갖바치에게 주저없이 정절을 줘버린다. 여자에게 있어 정절이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자 혼자 정절로 상징되는 허구의 행복에 집착해서 질투하고, 상실의 고통을 곱씹는다.

여자는 한동안 삶에서 행복감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달이 차면 이지러지듯 여자가 다시 늑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딸의 죽음이다.

젊은 아들(남자)은 딸을 잃은 어머니 곁을 지키지 않고 화적떼를 뒤쫓아간다. 화적떼를 죽여 복수한다고 어머니의 상실감이 채워지는 것도 아닌데, 젊은 수컷의 사고회로는 그런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을 제거(해결)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실감이나 슬픔은 치료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언가 잘못되면 고칠 수 있다고 믿는다. 매일같이 동그란 해가 떠오르듯이.

전경린은 아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여자의 곁에 남은 것은 이제 늙고 지친 정 뿐이다. 늙은 남자, 거세된 수컷이 된 후에야 정은 삶의 비밀 한자락을 엿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여자는 남자와의 삶을 정리하고 늑대로 돌아간다. 남자와 여자는 죽음, 혹은 떠남의 순간이 되어야 서로를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정은 여자가 없어진 걸 확인한 순간 목숨을 내던진다. 정의 삶은 여자라는 변화무쌍한 존재에 기대어 항구성을 획득했다. 그러므로 변화무쌍한 여자가 사라지면, 그 대척점에 있는 정의 삶은 의미를 상실한다.

여자가 어디에서 왔는지(정체성) 알지 못할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정절(안정)을 내던지고, 언제든 삶에서 훌훌 도망칠 수 있는 옷(바느질)이나 갖신(신발)을 지어내는 일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처녀성(정절)을 빼앗거나, 아이를 셋 낳게 만들거나, 옷과 신발을 숨기는 행위의 이면에는 처녀성과 정절에 대한 그릇된 신화가 자리잡고 있다. 여자의 정절을 빼앗으면 내것이 된다는 생각, 아이를 셋 낳게 만들어 그 기간 동안 성적 경쟁자로부터 격리시키는 행위, 옷과 신발을 감춰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감금은 여성의 처녀성과 정절을 남성이 지배하고 관리하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관리를 행복의 비밀이라고 잘못 이해한 남성은 질투와 상실의 불안을 댓가로 치뤄야 한다는 점이다.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의 전경린식으로 변주인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는 여자 입장에서 읽어도 슬프고, 남자 입장에서 읽어도 애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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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 - 안개의 성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현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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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모르는 시대의,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서의 이야기

마을에 뿔이 난 아이가 태어나면 13살이 될 때까지 촌장이 기르다가 안개의 성에 제물로 바치도록 되어 있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촌장도 잘 몰랐다. 하지만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북쪽 마을을 보면 안다. 사람과 동물 모두 돌로 변한 그곳은 시간의 풍화를 견디는 중이다.

열 세살이 된 이코를 제물로 데려가기 위해 수도에서 대신관이 온다고 했다. 토토는 이코와 함께 안개의 성에 가고 싶었기에 몰래 집을 나가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길을 잘 못 든 토토는 북쪽 마을로 가게 되고, 검은 안개가 뭉쳐진 여자 얼굴과 맞닥뜨린다. 안개는 분노를 토해내며 토토가 타고 간 말을 돌로 만들어버렸다. 토토는 가까스로 빛나는 책 한권을 들고 탈출할 수 있었지만 며칠 뒤 돌로 변해버렸다.

토토가 가지고 온 빛나는 책은 '광휘의 서'가 틀림 없었다. 촌장은 책에 그려진 증표를 이코에게 입히면 안개의 성에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도에서 온 대신관을 따라 이코는 안개의 성으로 가서 석관에 제물로 바쳐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석관이 깨어지며 튕겨 나온다. 증표 때문인 것 같았다. 길을 잃고 헤메던 이코가 우연히 천장에 메달린 구조물에서 소녀를 발견한다. 연결된 줄을 풀어 소녀를 빼낸 이코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성을 탈출하려 한다. 이것이 <이코>의 시작이다.

<이코>는 Sony Computer Entertainment가 2001년에 발매한 플레이스테이션 2용 게임이다. 당시 인기가 있었던 <귀무자>가 일섬을 날리며 귀신을 짚단 베듯 쓰러뜨리고, <진 삼국무쌍>의 여포가 일기당천의 용맹을 자랑하며 방천화극을 젓가락 돌리듯 하는 게임들에 비해 <이코>는 매우 '순한 맛' 게임이었다. 머리에 뿔이 난 이코가 가진 무기라고는 막대기 하나에 불과하고, 덤벼드는 괴물도 검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함께 성을 탈출해야 하는 요르다는 잘 따라오지 않고 자꾸 길을 헤맨다. 게다가 의사소통도 안 된다. 성질 급한 플레이어들은 찍먹 수준도 안 되는 짧은 플레이 타임을 기록한 뒤 접는 수순을 거쳤고,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코>는 그 뒤로 가끔 생각이 났다. 무슨 이유로 이코는 머리에 뿔이 나 있나, 요르다는 왜 안개의 성에 갖혀 있나, 둘이 탈출에 성공한 뒤에는 어떻게 되나. 그러다 미야베 미유키가 쓴 소설 <이코, 안개의 성>이 2005년에 출간되서 구입했는데, 읽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소설 <이코, 안개의 성>은 게임 공식 설정은 아니다. 소설은 빛과 어둠의 세계의 대립 구도를 설정했는데, 안개의 성에 유폐된 여왕은 요르다의 어머니다. 여왕은 빛의 힘이 가장 약해지는 일식이 오면 다시 힘을 되찾을 것이다. 그동안 시간의 딸 요르다가 필요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여왕은 제물을 요구한 적이 없었고, 제물이 필요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제물은 빛의 세력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낸 희생양으로, 여왕에게 대항한 검사 오즈마의 자손들이었다.

<이코>는 이후 <완다와 거상>, <더 라스트 가디언> 후속작을 냈고 게이머와 평론가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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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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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트리 장식과 조명이 도쿄 거리를 수놓은 12월 24일 밤, 빈 건물 1층에 여자가 죽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된다. 현장은 도쓰카 경찰서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경찰은 사건성이 없기를 바라고 출동했지만, 도착 즉시 그 기대를 접어야 했다. 시신은 한겨울인데도 블라우스와 슬랙스만 입고 있었는데, 블라우스는 앞이 벌어져 있고 슬랙스 단추 역시 떨어져 없었다으며, 두부에 타박상이 있었다. 나이는 50세에서 60세 사이, 노숙자로 추정되는 그녀를 살해한 범인을 잡기 위해 경시청의 괴짜 형사 미쓰야 슈헤이와 관할서의 가쿠토가 한 조를 이룬다.

시신의 신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 된다. 그녀의 지문이 경찰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약 1년 전 히가시야마 요시하루라는 보건복지센터 공무원이 살해 당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의 서류 가방에서 채취된 지문이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 이름은 마쓰나미 이쿠코. 남편이 죽은 후 생계가 곤란해지자 노숙자가 된 것 같았다.

그녀가 히가시야마 요시하루를 죽인 범인이었을까? 하지만 지인을 자처한 또 다른 증인에 따르면 그녀는 누군가를 살해할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왜 살해 당했을까? 1년 전 살해당한 히가시야마 요시하루와는 무슨 관계일까? 어째서 괴짜 형사 미쓰야 슈헤이는 히가시야마 요시하루의 아내 히가시야마 리사의 행적을 쫓는 것일까? 불행이 겹치고 겹친 끝에 노숙자로 전락한 그녀가 죽기 전 바라본 것은 무엇이었나...

마사키 도시카는 1965년 도쿄 출생으로 1988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도도 시즈코의 <익어가는 여름>에 강렬한 인상을 받아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992년 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2007년 <지다 피다 돌다>로 제41회 홋카이도신문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은 작가의 히트작 <그날, 너는 무엇을 햇는가>로 시작된 미쓰야&다도코로 형사 시리즈인데, 일본인 특유의 정서가 강해 공감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특히 주변 사람의 시선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일단 사람에게 책임을 따져 묻는 정서가 그렇다.

마쓰나미 이쿠코는 남편 마쓰나미 히로시와 가난하지만 행복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지고, 사장이 남편 마쓰나미 히로시에게 연대보증을 세운 후 도산해 버리자 불행이 시작된다.

남편은 경비 일자리를 얻어 힘들게 일하다 병을 얻었고, 어느 비오는 날 지주막하출혈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 쓰러져 사망한다.

그의 사망은 두 가정에 불행을 가져왔다. 마쓰나미 이쿠코는 남편이 사망하자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에 빠졌다.

다른 피해자는 이자와 유스케라는 트럭 운전사였다. 그는 본래 광고회사에 다녔으나 회사가 어려워지자 트럭운전사가 된 후 아내와 아들에게 무시 당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쓰나미 히로시를 치게 된 것이다. 마쓰나미 히로시가 지주막하 출혈로 교통사고 전에 이미 사망한 상태라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그의 아내는 유스케를 비난한 끝에 이혼한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녀는 자신의 모든 불행을 마쓰나미 히로시의 탓으로 돌렸고, 아내인 마쓰나미 이쿠코가 자신을 찾아와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한다. 그리고 끝내 그녀를 살해하고 만다.

한편, 1년 전에 살해된 남자 히가시야마 요시하루는 보건복지센터 공무원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마쓰나미 이쿠코에게 갖은 비난을 쏟아 부은 인물이었다. 그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자 정신이 이상해진 끝에 딸에게 집착하고 해치려다 도리어 딸에게 살해 당한다. 그 딸 루미아는 가출 기간 동안 마쓰나미 이쿠코의 집에서 익명으로 생활했는데 사건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마쓰나미 이쿠코가 뒷처리를 해주는 과정에서 서류 가방에 지문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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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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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이는 어머니 곁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고향을 지켜 낸 이부동생이다. 그런데 왠일인지 주인공 '나'는 모친의 죽음에 걸맞는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내'가 드러내는 감정은 굳이 따지자면 귀찮음, 짜증, 당혹스러움에 가깝다. 아우는 그런 '나'를 달래가며 시신을 염습하고 장례를 치르고 유골을 뿌린다.

아우가 인도하는 대로 '나'는 과거로 조금씩 이끌린다. 동네에 하나 뿐이었던 중국집, 방학이면 머물던 외삼촌의 집, 어머니가 일하러 다니던 권씨 댁. 그곳들을 하나 하나 방문하는 동안 '나'는 어느덧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두 번의 결혼을 호적 변경도 없이 치르고 큰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평생 간직하고 살다 가신 어머니, 사촌누나로 알고 지냈지만 사실은 친누나였던 애숙이 누나, 어렸을 적 유일한 친구였던 정태 등을 떠올리는 동안 '나'는 '내' 안의 무언가가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머니의 뒤늦은 재가로 인해 받은 상처, 새아버지로 부터 받았던 정서적 학대, 월사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따돌리고 폭행했던 학교 선생에 대해 복수하는 길은 멀고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라 굳게 믿고 고향을 향한 문을 꼭꼭 걸어둔 채 화해의 손길을 거부하던 '나'의 마음은 어느덧 조금씩 슬픔으로 화하며 풀려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불평없이 받아들인 죽음, 그리고 귀향과 회상. '나'는 고향을 떠나 배웠다고 생각했던 눈부신 형용과 고결한 수사 들은 허세에 불과했음을, 어머니가 내게 주었던 것은 가난과 학대의 기억이 아니라 자유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소설은 새벽 세 시에 아우로 부터 전화가 걸려오면서 시작한다. 오랜 타관 생활 끝에 고향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귀향. 전형적인 귀향형 소설의 설정과 전개에도 불구하고, 거장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허투루 읽어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삶의 비밀을 들여다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말들의 울림이라고 해야할지, 극심한 고통의 시기를 견디고 초극의 경지를 맛본 이가 풍기는 고요한 분위기라고 해야할지...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70656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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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규제자 염소자리 아스트로크리미스 범죄소설 3
군터 게를라흐 외 지음, 강병창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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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아이히보른 출판사가 기획한 아스트로크리미스(Astrokrimis) 시리즈는 독일을 비롯한 세계 70여 명의 작가들이 12개 별자리에 관해 쓴 소설을 모은 범죄소설 총서이다. 각각의 별자리는 다음과 같은 별칭을 갖고 있다.

죽음의 활화산, 양자리(3.21.~4.20.)

무정한 폭군, 황소자리(4.21.~5.20.)

위험한 이중인격자, 쌍둥이자리(5.21.~6.21.)

간교한 형식주의자, 게자리(6.22.~7.22.)

잔인한 승부사, 사자자리(7.23.~8.23.)

냉혹한 현실주의자, 처녀자리(8.24.~9.23.)

야누스의 얼굴, 천칭자리(9.24.~10.23.)

비밀스러운 처세꾼, 전갈자리(10.24.~11.22.)

오만한 사냥꾼, 궁수자리(11.23.~12.21.)

냉정한 규제자, 염소자리(12.22.~1.20.)

어두운 자유주의자, 물병자리(1.21.~2.19.)

불안정한 신비주의자, 물고기자리(2.20.~3.20.)

작품집에는 총 여섯 편이 실려 있다.

<킬레> - 군터 게를라흐

잘 팔리지 않는 소설작가이자, 빈집털이범인 '나'는 연인 킬레가 점성술사이자 예언가를 자처하는 쿠르트 마이어-슈타인에게 빠져 정상적인 판단을 못하자 그의 집을 털기로 결심한다. 만약 그가 빈집털이를 당한다면 자신의 미래조차 예언 못하는 머저리라는 것이 입증될 뿐 아니라 킬레가 가져다 바친 돈도 되찾아오게 될 터였다.

하지만 빈집털이에 성공한 직후 점성술사가 누군가에게 습격 당하고, '나'는 얼떨결에 킬레와 함께 점성술사를 찾아 갔다가 점성술사와 동성애인의 화해를 주선하게 된다.

<내부감사실> - 알무트 호이너

은행 외부감사실의 그로페가 엘리베이터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시체는 단 한 차례의 가격으로 두개골의 손상을 입어 사망한 것으로 보였고, 단정한 상태로 앉혀져 있었다.

범인은 내부감사실의 이베쉬였는데 그녀는 은행 내부에 걸린 그림의 복제본을 만들어 빼돌리다가 우연히 그로페에게 발각되자 주저없이 살해한 것이다.

<우린 경찰이었어> - 로베르트 브라크

페너-와-파울이 친구 막스에게 자신이 협박 당하고 있다면서 도와달라고 한다. 막스는 기꺼이 돕겠다고 나선 뒤 협박범이 돈을 찾아가는 시점을 노려 총기로 제압하고 몽둥이 찜질까지 안겨준다. 이렇게 해서 유쾌한 몰카를 찍어보려던 방송국 사람들은 혼찌검이 나게 된다.

<정원의 염소> - 아만다 크로스(캐롤린 하일브런)

이웃의 80 넘은 파르시와 50대 후반의 '나'는 매우 절친한 사이다. 그녀의 의붓자녀가 자신을 정신병자로 몰아 재산을 빼앗으려 든다는 것을 전해들은 '나'는 '재산상의 변동을 가져오지 않는 결혼'을 친구로서 제안한다. 파르시가 이를 받아들이자 의붓자녀 중 아들과 며느리는 찾아오지 않게 되었고, 딸과 그녀의 여자친구는 예전처럼 주말마다 찾아왔다. 그의 정원에 찾아온 염소와 염소자리 별자리는 이번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다.

<카프리코르노 피자> - 에디트 크아니플

사냥꾼 제프 후머는 자신의 여자친구 로제마리 게반트탈러가 또 다른 사냥꾼 알로이스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눈치 챘으면서도 그녀가 아무일도 없었다고 강력히 주장하자 그녀와 결혼하기로 한다.

그후 제프는 알로이스를 사냥 중 사고를 가장하여 살해한다. 하지만 로지의 뱃 속 아이가 알로이스의 아이였기 때문에,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임신기간 동안 로지가 매우 뚱뚱해졌기 때문에, 제프는 또 다른 여인 구스틀과 관계하게 되고 결국 쌍둥이를 낳게 된다. 얼마 후 제프는 사고를 당해 사망하고(로지가 도와줬더라면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버림받은 로지는 자살을 기도하다 만난 또 다른 연인과 카프리코르노 피자 가게를 열어 행복하게 산다. 카프리코르노는 이탈리아어로 염소자리라는 뜻이다.

<동물의 왕국에서 벌어지는 삶과 죽음> - 프랑크 고이케

오페레타의 프리마돈다 도를레 칠러는 60이 넘은 나이임에도 실력과 정렬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불행하게도 과년한 딸이 있었고, 그녀는 생활력도 없는 주제에 아버지 없는 아이까지 임신한 뒤 그녀의 수입에 기생해 살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도를레 칠러는 각종 법의학 서적을 탐독한 뒤 완벽한 유아 살인을 계획한다. 계획은 성공하고, 딸은 정신병에 걸려 입원하게 된다. 도를레 칠러는 늦은 나이에 오페라 <투란도트>의 연출과 프리마돈나 역을 거머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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