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이는 어머니 곁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고향을 지켜 낸 이부동생이다. 그런데 왠일인지 주인공 '나'는 모친의 죽음에 걸맞는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내'가 드러내는 감정은 굳이 따지자면 귀찮음, 짜증, 당혹스러움에 가깝다. 아우는 그런 '나'를 달래가며 시신을 염습하고 장례를 치르고 유골을 뿌린다.

아우가 인도하는 대로 '나'는 과거로 조금씩 이끌린다. 동네에 하나 뿐이었던 중국집, 방학이면 머물던 외삼촌의 집, 어머니가 일하러 다니던 권씨 댁. 그곳들을 하나 하나 방문하는 동안 '나'는 어느덧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두 번의 결혼을 호적 변경도 없이 치르고 큰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평생 간직하고 살다 가신 어머니, 사촌누나로 알고 지냈지만 사실은 친누나였던 애숙이 누나, 어렸을 적 유일한 친구였던 정태 등을 떠올리는 동안 '나'는 '내' 안의 무언가가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머니의 뒤늦은 재가로 인해 받은 상처, 새아버지로 부터 받았던 정서적 학대, 월사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따돌리고 폭행했던 학교 선생에 대해 복수하는 길은 멀고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라 굳게 믿고 고향을 향한 문을 꼭꼭 걸어둔 채 화해의 손길을 거부하던 '나'의 마음은 어느덧 조금씩 슬픔으로 화하며 풀려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불평없이 받아들인 죽음, 그리고 귀향과 회상. '나'는 고향을 떠나 배웠다고 생각했던 눈부신 형용과 고결한 수사 들은 허세에 불과했음을, 어머니가 내게 주었던 것은 가난과 학대의 기억이 아니라 자유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소설은 새벽 세 시에 아우로 부터 전화가 걸려오면서 시작한다. 오랜 타관 생활 끝에 고향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귀향. 전형적인 귀향형 소설의 설정과 전개에도 불구하고, 거장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허투루 읽어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삶의 비밀을 들여다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말들의 울림이라고 해야할지, 극심한 고통의 시기를 견디고 초극의 경지를 맛본 이가 풍기는 고요한 분위기라고 해야할지...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7065613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