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기담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 사건과 스캔들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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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스캔들 중 신문과 잡지에 10차례 이상 보도 되었지만,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못한 사건들을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전봉관이 '기담' 형태로 엮은 책이다.

읽다 보면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사법 시스템이 생각보다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뜻밖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치안을 안정 시키고 민심을 동요치 않도록 유지 관리하는 것이 장기적인 착취구조 존속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결과이리라.

1부 근대 조선을 뒤흔든 미스터리 살인 사건에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유아의 뇌를 먹는 엽기적인 사건을 다룬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 고문과 자백으로 다섯 명의 순진한 조선인을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안동 가와카미 순사 살해 사건>, 조선인 가정부를 무참히 살해하고도 고위 관료의 아내라는 이유로 처벌 받지 않는 <부산 마리아 참살 사건>, 교도 중 피살된 사람이 사백여 명으로 추정되고 확인된 시체만도 158명에 달하는, 세계 범죄 사상 전무후무한 범죄인 <살인마교 백백교 사건>이 실려 있다.

2부 근대 조선을 뒤흔든 스캔들에는 YMC 간사이자 민족대표 33인 자격으로 3.1 운동에 참여한 박희도의 파렴치한 일탈을 다룬 <중앙보육학교 박희도 교장의 '여 제자 정조 유린' 사건>, 순종의 장인 윤택영의 뻔뻔한 부채 행적을 다룬 <채무왕 윤택영 후작의 부채 수난기>, 친일을 통해 부를 거머쥔 이인용 집안의 자산을 둘러싼 이전투구를 그린 <이인용 남작 집안 부부 싸움>, 뛰어난 성악가로서 전도유망했던 안기영이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뒤 비난을 한 몸에 받는 <이화여전 안기영 교수의 '애정 도피 행각'>, 마지막으로 뛰어난 자질과 능력으로 사회가 짊어지게 만든 굴레를 탈출하기 위해 노력한 두 명의 여인 <조선의 '노라' 박인덕 이혼 사건><조선 최초의 스웨덴 경제학사 최영숙 애사>가 수록되어 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687134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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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창비교양문고 48
제인 오스틴 지음, 조애리 옮김 / 창비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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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남작 월터 엘리어트 경은 써머셋주 켈린치 홀의 영지에서 잘생긴 외모와 작위가 주는 안온감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는 아내가 1800년에 사망한 뒤 10년 정도 혼자 지냈으며, 슬하에 딸 엘리자베스, 앤, 메어리를 두었다. 아들도 하나 있지만 사생아인 까닭으로 작위와 영지는 월터 2세의 종손이자 조카뻘인 윌리엄 월터 엘리어트에게 추정상속될 터였다.

첫째 엘리자베스는 외모가 아름다웠지만 아버지처럼 체면에 연연했다. 한때 월터 엘리어트경은 자신의 추정상속인 윌리엄 월터 엘리어트와 첫째 딸을 결혼시켜 체면과 재산 모두를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윌리엄 월터 엘리어트가 신분은 낮지만 돈이 많은 여자와 결혼해버리는 바람에 월터 엘리어트 경과 엘리자베스는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그 뒤 엘리자베스는 노처녀로 늙어가는 처지다.

둘째 앤은 열아홉 되던 해 프레드릭 웬트워스라는 해군 청년과 좋아 지내다 약혼한 적이 있다. 하지만 체면을 중시하는 월터 엘리어트 경과 엘리자베스가 소극적이면서도 무언의 반대를 계속하고, 어머니의 절친이었던 러쎌 부인마저 웬트워스의 다혈질과 대담함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반대했기 때문에 결국 파혼하고 만다. 하지만 앤은 그 뒤로도 웬트워스를 잊지 못해 다른 남자들에게 마음을 줄 수 없었다.

막내 메어리는 신경질적이고 샘이 많은 성격으로 작위가 있고 돈도 그럭저럭 많은 머스그로우브 집안의 찰즈에게 시집을 갔다. 본래 찰즈는 앤에게 청혼했지만, 앤이 웬트워스와 헤어진 아픔 때문에 다른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아 메어리까지 차례가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월터 엘리어트 경의 집안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저런 자구책을 강력히 실행한다면 극복하지 못할 바도 아니었으나, 월터 엘리어트 경과 엘리자베스는 체면을 중시했기 때문에 지출을 줄일 수 없었다.

결국 변호사 셰퍼드가 켈린치 홀을 세 주고 베스라는 곳으로 집을 줄여가는 방안을 제시한다. 마침 크로프트 해군 소장 부부가 켈린치 홀을 임대하하기로 함으로서 거래가 성사된다. 문제는 크로프트 부인의 남동생이 바로 앤과 헤어진 웬트워스 라는 것이었다.

돌아온 웬트워스는 계급이 대령까지 진급한데다 해외에서 상당한 포상금을 획득해 재산도 남부럽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외모도 출중해 뭇 여성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당장 메어리의 시댁인 머스그로우브 집안의 두 딸 헨리에타와 루이저가 웬트워스에게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호사가들이 이를 말로 옮기면서 사람들은 웬트워스가 둘 중 누구를 택하느냐만 남은 문제라고 생각했다.

앤은 다시 나타난 웬트워스에게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갔지만 가족과 러쎌 부인에게 설득당해 파혼한 전력이 있어 냉가슴만 알았다.

어느 날, 웬트워스, 헨레이타, 루이저, 찰즈와 메어리 부부, 앤 등 젊은 축이 산책을 갔는데, 그날따라 루이저가 들까불다가 머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허둥댈 때 앤은 침착하고 냉정하게 대처했다. 웬트워스는 루이저의 부상에 책임을 느꼈으므로 앤의 훌륭한 대처가 고마왔다.

이제 사람들은 이 사건으로 웬트워스가 루이저를 선택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트워스는 루이저가 회복될 즈음 자신의 형 집으로 가 버리고, 루이저는 엉뚱하게도 요양 중 한 집에서 지내던 벤윅 대령과 맺어진다. 사람들은 벤윅이 사색과 독서를 좋아하기 때문에 앤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다소 의외의 결합이었다.

헨리에타 역시 한때 좋아 지내던 찰즈 헤이터라는 부목사와 과거의 연정을 되살려 결혼하기로 한다.

한편 앤에게도 구혼자가 나타났는데 그는 다름 아닌 윌리엄 월터 엘리어트였다. 부인이 사망해 홀아비가 된 그는 앤에게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며 노골적으로 구애했다. 하지만 앤은 그의 열정없는 태도에서 부도덕의 징후를 발견했다. 그녀의 이런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그녀의 친구 스미스 부인이 앤에게 윌리엄 월터 엘리어트의 과거 행적을 낱낱이 까발린 것이다. 그는 돈이 필요해서 죽은 부인과 결혼했고, 이제는 작위와 명예가 필요해 앤에게 접근한 것이다.

다시금 자유로운 몸이 된 웬트워스와 앤은 하빌 대령을 사이에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사실 웬트워스는 헨리에타나 루이저에게 마음이 없었다. 그는 시종일관 앤에게 다시 구혼하고 싶었으나 그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설득당해 파혼 결정을 내린 전력이 있어 주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와 헤어진 뒤로 다른 남자들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루이저 사고 당시 훌륭하게 대처했으며, 하빌 대령과의 대화에서 심지가 굳은 여성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기 때문에 오해가 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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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엘리어트 경은 과거 계급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농촌의 봉건적 관계와 틀 안에서 사고하는 사람이며, 사려깊고 다정한 러쎌 부인 역시 이러한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800년대 초반은 영국이 각지로 함대를 보내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이룩하는 시기로, 이러한 봉건적 관계는 점차 붕괴하는 중이다.

하지만 몰락하는 계급은 시대인식에 둔감하기 마련인지 월터 엘리어트 경은 영지를 넘기고 베스로 이사간 후에도 경제적 재기를 노리는 대신 외모와 족보에 집착하며, 자신보다 높은 작위의 친척과 교제하는 데 열을 올릴 뿐이다.

한편, 제인 오스틴은 이러한 붕괴를 대신할 새로운 관계의 전형으로 해군을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작품에서 비중은 높지 않지만 크로프트 소장 부인의 모습이 상당히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녀는 남편 대신 마차를 모는가 하면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문제는 해군이 부를 축적하는 방식이 타국 선박을 나포해 처분한 돈을 불하받는 등 제국주의적 폭력에 기반한다는 사실인데, 이 점에 대해 제인 오스틴은 애매하게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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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이야기 어른을 위한 동화 5
김진경 / 문학동네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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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으로부터 산쪽으로 우묵하게 들어온 작은 골짜기 안쪽 끝에 어른 은행나무 두 그루와 아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본래 은행나무들이 서 있는 빈터에는 기와집이 한 채 있었다. 그곳에 사는 선비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다 어느 날 먼곳으로 떠났다. 칼을 찬 순사들이 그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아들은 야학을 열고 동네 젊은이들과 글을 읽었다. 아들은 초여름에 사람들과 길을 떠났는데 사람들은 아들이 산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들이 찾아와 아들과 동료들을 향해 총을 발포했다. 그 와중에 은행나무의 둥치에도 총알들이 박혔다. 집은 불타 무너져버렸다.

시간이 흘러, 엄마 아빠 은행나무는 잘려 나가고 아기은행나무는 통째로 옮겨져 가로수가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군인들이 사람을 향해 발포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 난리 통에 아기은행나무의 이야기를 알아듣던 어린 소녀도 죽어버린다. 어린은행나무와 암은행나무, 그리고 소녀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아름다운 세상 - 풀밭이 있고 다람쥐와 박새가 함께 노는 세상 - 은 처참하게 파괴되어 버렸다.

어린은행나무는 세상을 향한 창을 닫아버리고 홀로 시간을 거역하며 고집스럽게 잎을 물들이지 않고 아파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은행 나무는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소부인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다가 뒤늦게 아버지에게 사과하는 딸, 눈이 보이지 않지만 은행나무를 그리려는 누나와 그런 누나를 의지하고 따라다니는 동생.

어느 날, 어린 은행나무는 다시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연다. 그가 물들인 은행나무 잎은 어떤 은행나무의 그것보다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런 은행나무를 가만히 지켜보던 암은행나무는 그들의 자식이라 할 수 있는 은행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쓴 이유에 대해 광릉수목원에 있는 굵직한 나무의 사연을 말한다. 그 아름드리 나무들에는 총알이 박혀 있어 목재로 쓸 수 없다고 한다.

일제시대, 해방전후, 5.18. 민주화운동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견뎌온 은행나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작가는 질곡의 역사를 묵묵히 견디기 위해서는 관계의 끈을 놓지 않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아픔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IMF 직후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야 했던 어른들을 위해 조그만 위안이 되었을 법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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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러셀 위픽
문지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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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는 중학교 2학년 때 난소암으로 죽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나'를 혼자 키웠다.

군대 제대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아버지가 재혼 의사를 타진한다. '나'는 다소간 심난한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는 결혼식을 마친 뒤 '나'에게 갖고싶은 게 없냐고 묻는다. '나'는 고모가 사는 미국에 여행가고 싶다고 말한다.

당초 '나'의 계획은 고모가 사는 뉴저지를 베이스로 뉴욕 등지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고모, 고모부, 그리고 열두 살 난 조카 에밀리와 함께 스무시간을 달려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디즈니랜드에 가기 전 고모 친구네 집에서 하루 묵었는데, 거기서 '나'는 돌아가신 엄마의 대학원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고모 친구는 엄마와 함께 디즈니랜드에 간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곳에서 본 불꽃놀이가 매우 인상 깊었는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함께 와서 보겠다고 말했다 한다. '나'는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디즈니랜드는 매우 붐볐다. '나'는 에밀리와 짝을 지어 이동했는데 중간에 에밀리의 제의로 각자 돌아다니기로 한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부터 에밀리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뒤늦게 고모와 고모부가 나타나 에밀리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매우 허둥대기 시작한다.

에밀리는 입양된 아이었는데 그 아이가 다섯살 때 유기된 곳이 바로 디즈니랜드였다. 그들 부모는 가족 동반자살을, 실상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들도 자살하려는 계획이었는데 에밀리만 살아남은 것이었다.

납치나 실종을 의심하며 애타는 시간을 견딘 뒤, '나'는 에밀리를 '프린스 차밍 리걸 캐러셀(메리-고-라운드)'에서 발견한다. 에밀리는 다섯 살 때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에밀리는 그날 '가짜 엄마'가 자신을 버린 게 아니라 동반 자살로 부터 살려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지금의 엄마를 '진짜 엄마'로 생각하고 있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심상하게 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와 결혼한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불러보는 건 어떨까 상상한다.

책 내용과 별도로, 도대체 이 장정과 편집, 가격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단편소설 치고도 짧은 편인 이 소설을 한 줄에 다섯 단어가 겨우 들어가게 편집해 61페이지로 만든 뒤 '사회적 필요 노동량'을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보이는 1만 3천원의 정가를 붙였다는 것은 이 책이 판매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발간된 것 같다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676010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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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건너기 소설의 첫 만남 30
천선란 지음, 리툰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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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비행하기 전 나노봇이 든 캡슐 알약을 먹고 자아 안정 훈련에 들어간 공효가 만나야 할 사람은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다.

공효의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교회가 제공하는 불완전한 위안에 의존해 겨우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갔다.

공효는 어찌보면 까탈스러운 아이였다.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기 보다 상대방이 알아줄 때까지 행동을 멈추고 눈치를 주는, 어딘가 음침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표현이 서툴다 보니 오해도 샀다. 무엇이든 세게 쥐는 버릇 때문에 친구의 오해를 사서 절교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 공효를 어른이 된 공효가 지금 만나고 있다. 무한히 열려있기 때문에 어디로도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닫혔다고 볼 수도 있는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서. 닫힌 공간에서의 공포와 혼란에 자아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타란툴라 거미를 함께 해치우면서, 어른이 된 공효는 어린 공효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해준다. 그리고 자신이 어린 공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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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었음을 깨닫는 것은 결혼이나 자녀의 출산 같은 이벤트가 일어나는 순간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내가 안쓰럽게 여겨지는 때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눈물짓던 아홉 살의 나를 떠올리거나, 겁에 질려 발버둥치는 걸 들킬까봐 치기를 드러내던 십대 후반의 나를 회상하면서, 안쓰러움과 슬픔을 느낄 때 말이다.

"누구나 각자 품고 있는 그 노을을, 무사히 건너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라는 작가의 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특히 '무사히 건너' 라는 대목에 대해.

어린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위로하며,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나 사건이 있었다면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무사히 건너'가 의미하는 것은 이런 정도의 방식일까?

하지만 살다보면 무사히 건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살면서 생기는 문제들은 대부분 막연하고 아련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위해를 가했던 사람, 상처를 주었던 관계,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 그것들은 부조리하다. 부조리한 것은 병리적인 상태를 유발한다.

어린 시절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이제와서 새삼 해결될 수는 없다. 어른이 된 뒤에 떠올려 볼 수 있을 뿐이다. 불완전한 해결, 어정쩡한 타협, 망각으로 대신된 치유. 그것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잘 쓰여진 청춘을 견디는 소설은 쓸쓸한 색채를 띨 수밖에 없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673226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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