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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ㅣ 창비교양문고 48
제인 오스틴 지음, 조애리 옮김 / 창비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준남작 월터 엘리어트 경은 써머셋주 켈린치 홀의 영지에서 잘생긴 외모와 작위가 주는 안온감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는 아내가 1800년에 사망한 뒤 10년 정도 혼자 지냈으며, 슬하에 딸 엘리자베스, 앤, 메어리를 두었다. 아들도 하나 있지만 사생아인 까닭으로 작위와 영지는 월터 2세의 종손이자 조카뻘인 윌리엄 월터 엘리어트에게 추정상속될 터였다.
첫째 엘리자베스는 외모가 아름다웠지만 아버지처럼 체면에 연연했다. 한때 월터 엘리어트경은 자신의 추정상속인 윌리엄 월터 엘리어트와 첫째 딸을 결혼시켜 체면과 재산 모두를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윌리엄 월터 엘리어트가 신분은 낮지만 돈이 많은 여자와 결혼해버리는 바람에 월터 엘리어트 경과 엘리자베스는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그 뒤 엘리자베스는 노처녀로 늙어가는 처지다.
둘째 앤은 열아홉 되던 해 프레드릭 웬트워스라는 해군 청년과 좋아 지내다 약혼한 적이 있다. 하지만 체면을 중시하는 월터 엘리어트 경과 엘리자베스가 소극적이면서도 무언의 반대를 계속하고, 어머니의 절친이었던 러쎌 부인마저 웬트워스의 다혈질과 대담함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반대했기 때문에 결국 파혼하고 만다. 하지만 앤은 그 뒤로도 웬트워스를 잊지 못해 다른 남자들에게 마음을 줄 수 없었다.
막내 메어리는 신경질적이고 샘이 많은 성격으로 작위가 있고 돈도 그럭저럭 많은 머스그로우브 집안의 찰즈에게 시집을 갔다. 본래 찰즈는 앤에게 청혼했지만, 앤이 웬트워스와 헤어진 아픔 때문에 다른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아 메어리까지 차례가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월터 엘리어트 경의 집안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저런 자구책을 강력히 실행한다면 극복하지 못할 바도 아니었으나, 월터 엘리어트 경과 엘리자베스는 체면을 중시했기 때문에 지출을 줄일 수 없었다.
결국 변호사 셰퍼드가 켈린치 홀을 세 주고 베스라는 곳으로 집을 줄여가는 방안을 제시한다. 마침 크로프트 해군 소장 부부가 켈린치 홀을 임대하하기로 함으로서 거래가 성사된다. 문제는 크로프트 부인의 남동생이 바로 앤과 헤어진 웬트워스 라는 것이었다.
돌아온 웬트워스는 계급이 대령까지 진급한데다 해외에서 상당한 포상금을 획득해 재산도 남부럽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외모도 출중해 뭇 여성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당장 메어리의 시댁인 머스그로우브 집안의 두 딸 헨리에타와 루이저가 웬트워스에게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호사가들이 이를 말로 옮기면서 사람들은 웬트워스가 둘 중 누구를 택하느냐만 남은 문제라고 생각했다.
앤은 다시 나타난 웬트워스에게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갔지만 가족과 러쎌 부인에게 설득당해 파혼한 전력이 있어 냉가슴만 알았다.
어느 날, 웬트워스, 헨레이타, 루이저, 찰즈와 메어리 부부, 앤 등 젊은 축이 산책을 갔는데, 그날따라 루이저가 들까불다가 머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허둥댈 때 앤은 침착하고 냉정하게 대처했다. 웬트워스는 루이저의 부상에 책임을 느꼈으므로 앤의 훌륭한 대처가 고마왔다.
이제 사람들은 이 사건으로 웬트워스가 루이저를 선택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트워스는 루이저가 회복될 즈음 자신의 형 집으로 가 버리고, 루이저는 엉뚱하게도 요양 중 한 집에서 지내던 벤윅 대령과 맺어진다. 사람들은 벤윅이 사색과 독서를 좋아하기 때문에 앤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다소 의외의 결합이었다.
헨리에타 역시 한때 좋아 지내던 찰즈 헤이터라는 부목사와 과거의 연정을 되살려 결혼하기로 한다.
한편 앤에게도 구혼자가 나타났는데 그는 다름 아닌 윌리엄 월터 엘리어트였다. 부인이 사망해 홀아비가 된 그는 앤에게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며 노골적으로 구애했다. 하지만 앤은 그의 열정없는 태도에서 부도덕의 징후를 발견했다. 그녀의 이런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그녀의 친구 스미스 부인이 앤에게 윌리엄 월터 엘리어트의 과거 행적을 낱낱이 까발린 것이다. 그는 돈이 필요해서 죽은 부인과 결혼했고, 이제는 작위와 명예가 필요해 앤에게 접근한 것이다.
다시금 자유로운 몸이 된 웬트워스와 앤은 하빌 대령을 사이에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사실 웬트워스는 헨리에타나 루이저에게 마음이 없었다. 그는 시종일관 앤에게 다시 구혼하고 싶었으나 그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설득당해 파혼 결정을 내린 전력이 있어 주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와 헤어진 뒤로 다른 남자들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루이저 사고 당시 훌륭하게 대처했으며, 하빌 대령과의 대화에서 심지가 굳은 여성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기 때문에 오해가 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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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엘리어트 경은 과거 계급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농촌의 봉건적 관계와 틀 안에서 사고하는 사람이며, 사려깊고 다정한 러쎌 부인 역시 이러한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800년대 초반은 영국이 각지로 함대를 보내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이룩하는 시기로, 이러한 봉건적 관계는 점차 붕괴하는 중이다.
하지만 몰락하는 계급은 시대인식에 둔감하기 마련인지 월터 엘리어트 경은 영지를 넘기고 베스로 이사간 후에도 경제적 재기를 노리는 대신 외모와 족보에 집착하며, 자신보다 높은 작위의 친척과 교제하는 데 열을 올릴 뿐이다.
한편, 제인 오스틴은 이러한 붕괴를 대신할 새로운 관계의 전형으로 해군을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작품에서 비중은 높지 않지만 크로프트 소장 부인의 모습이 상당히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녀는 남편 대신 마차를 모는가 하면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문제는 해군이 부를 축적하는 방식이 타국 선박을 나포해 처분한 돈을 불하받는 등 제국주의적 폭력에 기반한다는 사실인데, 이 점에 대해 제인 오스틴은 애매하게 처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