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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이야기 ㅣ 어른을 위한 동화 5
김진경 / 문학동네 / 1998년 5월
평점 :
품절
들판으로부터 산쪽으로 우묵하게 들어온 작은 골짜기 안쪽 끝에 어른 은행나무 두 그루와 아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본래 은행나무들이 서 있는 빈터에는 기와집이 한 채 있었다. 그곳에 사는 선비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다 어느 날 먼곳으로 떠났다. 칼을 찬 순사들이 그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아들은 야학을 열고 동네 젊은이들과 글을 읽었다. 아들은 초여름에 사람들과 길을 떠났는데 사람들은 아들이 산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들이 찾아와 아들과 동료들을 향해 총을 발포했다. 그 와중에 은행나무의 둥치에도 총알들이 박혔다. 집은 불타 무너져버렸다.
시간이 흘러, 엄마 아빠 은행나무는 잘려 나가고 아기은행나무는 통째로 옮겨져 가로수가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군인들이 사람을 향해 발포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 난리 통에 아기은행나무의 이야기를 알아듣던 어린 소녀도 죽어버린다. 어린은행나무와 암은행나무, 그리고 소녀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아름다운 세상 - 풀밭이 있고 다람쥐와 박새가 함께 노는 세상 - 은 처참하게 파괴되어 버렸다.
어린은행나무는 세상을 향한 창을 닫아버리고 홀로 시간을 거역하며 고집스럽게 잎을 물들이지 않고 아파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은행 나무는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소부인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다가 뒤늦게 아버지에게 사과하는 딸, 눈이 보이지 않지만 은행나무를 그리려는 누나와 그런 누나를 의지하고 따라다니는 동생.
어느 날, 어린 은행나무는 다시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연다. 그가 물들인 은행나무 잎은 어떤 은행나무의 그것보다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런 은행나무를 가만히 지켜보던 암은행나무는 그들의 자식이라 할 수 있는 은행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쓴 이유에 대해 광릉수목원에 있는 굵직한 나무의 사연을 말한다. 그 아름드리 나무들에는 총알이 박혀 있어 목재로 쓸 수 없다고 한다.
일제시대, 해방전후, 5.18. 민주화운동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견뎌온 은행나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작가는 질곡의 역사를 묵묵히 견디기 위해서는 관계의 끈을 놓지 않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아픔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IMF 직후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야 했던 어른들을 위해 조그만 위안이 되었을 법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