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건너기 소설의 첫 만남 30
천선란 지음, 리툰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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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비행하기 전 나노봇이 든 캡슐 알약을 먹고 자아 안정 훈련에 들어간 공효가 만나야 할 사람은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다.

공효의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교회가 제공하는 불완전한 위안에 의존해 겨우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갔다.

공효는 어찌보면 까탈스러운 아이였다.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기 보다 상대방이 알아줄 때까지 행동을 멈추고 눈치를 주는, 어딘가 음침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표현이 서툴다 보니 오해도 샀다. 무엇이든 세게 쥐는 버릇 때문에 친구의 오해를 사서 절교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 공효를 어른이 된 공효가 지금 만나고 있다. 무한히 열려있기 때문에 어디로도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닫혔다고 볼 수도 있는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서. 닫힌 공간에서의 공포와 혼란에 자아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타란툴라 거미를 함께 해치우면서, 어른이 된 공효는 어린 공효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해준다. 그리고 자신이 어린 공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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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었음을 깨닫는 것은 결혼이나 자녀의 출산 같은 이벤트가 일어나는 순간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내가 안쓰럽게 여겨지는 때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눈물짓던 아홉 살의 나를 떠올리거나, 겁에 질려 발버둥치는 걸 들킬까봐 치기를 드러내던 십대 후반의 나를 회상하면서, 안쓰러움과 슬픔을 느낄 때 말이다.

"누구나 각자 품고 있는 그 노을을, 무사히 건너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라는 작가의 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특히 '무사히 건너' 라는 대목에 대해.

어린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위로하며,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나 사건이 있었다면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무사히 건너'가 의미하는 것은 이런 정도의 방식일까?

하지만 살다보면 무사히 건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살면서 생기는 문제들은 대부분 막연하고 아련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위해를 가했던 사람, 상처를 주었던 관계,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 그것들은 부조리하다. 부조리한 것은 병리적인 상태를 유발한다.

어린 시절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이제와서 새삼 해결될 수는 없다. 어른이 된 뒤에 떠올려 볼 수 있을 뿐이다. 불완전한 해결, 어정쩡한 타협, 망각으로 대신된 치유. 그것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잘 쓰여진 청춘을 견디는 소설은 쓸쓸한 색채를 띨 수밖에 없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673226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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