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저리 스티븐 킹 걸작선 1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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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셀던은 성적 모험과 환상을 적절히 섞은 '미저리' 시리즈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말콤 로리의 <화산 아래서>나 토머스 하디의 <테스>,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같은 걸작' 을 자신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미저리' 시리즈를 폭력적으로 결말 짓고 <과속 차량> 이라는 순수문학 작품에 매진해 마침내 완성한다. 

폴은 샴페인에 취해 차를 몰고 자축 여행을 떠나는데, 한적한 시골 도로에서 눈보라를 만나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한다. 심한 부상으로 의식불명이 된 폴을 구한 이는 애니 윌킨스라는 거구의 여성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폴의 '넘버 원' 구독자였다.

그런데 한 때 간호사였던 것 같은 애니는 폴에게 이런저런 응급치료를 해주고 약도 주었지만 정작 병원에는 데려가지 않는데... 폴은 차츰 그녀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 나아가 대량 살인에 연루된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공포에 사로 잡힌다. 다리가 완전히 부숴져 휠체어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폴은 애니를 위해 죽어버린 미저리를 되살려 내고 새로운 미저리 시리즈를 집필해야만 한다. 


폴은 자신이 애니의 감정 상태와 감정 주기에 좀더 능숙하게 맞춰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애니가 고장 난 시계라도 되는 듯 폴은 애니의 째깍 소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폴은 살기 위해 애니의 비위를 맞춰가며 소설을 써나간다. 문제는 단순히 비위만 맞추면 되는게 아니고, 그녀의 '코드에 맞게'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미저리를 뚝딱 살려내어 됐지? 라고 물었다간 당장에 도끼가 날아올 판이다.  


충성스러운 독자는 방금 무자비한 편집자로 돌변했다. 

애니가 편집자 행세를 하며, 어쩌면 공동 저자 행세까지 하려고 하며 소설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한바탕 설교를 해 댈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애니는 폴을 자기 맘대로 통제할 수 있는 우월적 위치에 서 있었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창의적인 과정은 자기의 통제권 밖에 있는 사항이라고 보았다.

애니는 진정 충성스러운 독자였지만, 충성스러운 독자가 곧 충성스러운 얼간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편집자이자 독자인 애니. 그녀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헤라자데가 되어야 한다.


'네가 계속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하는 분명한 사실이 있어. 네가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너 자신에게까지 세헤라자데 행세를 한다는 사실 말이야'

자신이 음란한 여인이 되어 열정적인 섹스의 환상을 연출하면서 성기를 문지르며 자위를 하듯, 폴은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헤라자데가 되었다... 성기 대신 타자기를 잡는다는 점은다르지만, 두 행위 모두 민첩한 상상력, 재빠른 손놀림, 억눌렸던 욕망을 무리하게 분출하고픈 진심 어린 열정에 의존한다.

 

하지만 폴은 세헤라자데 자신도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의 욕망을 만족시켰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가와 독자에 관한 흥미진진한 스티븐 킹의 고찰은 '토대와 상부구조'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스티븐 킹이 간과하는 점이 있다. 독자에게는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는 것이다. 작가는 폴 셀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폴이 미저리 시리즈를 끝내고 다른 영역으로 자신의 문학적 지평을 넓혀간다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폴에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대중작가를 찾을 뿐이다.


Metallica가 The Black Album으로도 불리는 <Metallica> 음반을 발매했을 때 팬들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견고하고도 날카로운 디스토션 리프들을 차분히 쌓아올려 감정을 응축시키고 마침내 엄청난 힘으로 폭발시켜 카타르시스에 이르게하는 느낌의 Thrash Metal을 기대했던 독자의 귀에 들려온 것은 어딘지 모르게 낭창한 멜로디였던 것이다. 그러다 <Load>와 <Reload>가 발표됐을 때 메탈리카 팬들은 혼란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했다. 가래끼가 걷혀버린 보컬음, 멜로딕한 리프들... 그렇다. 팬들은 메탈리카의 Thrash Metal을 좋아했던 것이지 메탈리카의 음악 지평이 어디까지 넓어지는지 관심있게 바라보는 후원자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Pearl Jam 과 Radiohead 역시 그렇게 팬들로 부터 멀어졌다. 그들은 자신의 음악적 지평을 넓히는 실험여행을 떠났고, 평론가로부터 Progressive하다는 수식과 찬사를 받았지만 팬들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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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에의 제물 동서 미스터리 북스 160
나카이 히데오 지음, 허문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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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54년 9월 26일, 4,337톤의 도야마루호가 태풍에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1,155명이 희생되었다. 작가는 전쟁과 원폭으로 대량 살상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나카이 히데오는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허무에의 제물>을 구상·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완성된 것은 이로부터 10년이나 지난 1964년이니, 실로 엄청난 정력이 쏟아 부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후세 사람들은 이때부터 유메노 큐사쿠의 <도구라 마구라>, 오구리 무시타로의 <흑사관 살인사건>과 함께 <허무에의 제물>을 일본 미스터리계의 3대 기서로 꼽기 시작한다. 또한, 전후 3대 미스터리 걸작으로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 다카기 아키미쓰의 <문신 살인사건>, 그리고 <허무에의 제물>이 자리하게 된다. 


이 작품은 '안티미스터리' 라는 타이틀로 선전되곤 하는데, '안티미스터리'는 일본 미스터리계의 기린아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과 작가 자신의 성향이 융합되어 나타난 결과라 볼 수 있다. 

나카이 히데오는 본격 추리물의 거장 에도가와 란포가 생존해 버티고 있는 바에야, 더 이상의 본격추리물을 미스터리계에 추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파적인 성향으로 나아가자니 작가의 뛰어난 지적 능력과 호기심이 방해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미스터리적인 분석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면서도 결국은 어느 것도 진실에 이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즉 '안티미스터리' 작품 쪽으로 작가가 경도된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그리고는 마치 헤겔이 '절대정신으로 나아간 것' 처럼 1994년 사망할 때까지 미스터리 작품은 더 이상 발표하지 않는다.


작품은 1954년 12월 10일, 시모타니 류센지 부근의 게이 바 '아라비크'에서 시작된다. 재즈가수이자 자칭 여탐정인 히사오와 그의 친구 아리오는 히누마 집안의 불길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히누마 집안은 최근 도야마루호 사건으로 네 사람이 사망하는데, 문제는 이 집안에 아주 먼 옛날부터 재앙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누와 뱀신의 저주라는 말도 있지만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다. 


이러한 사정이 히사오의 흥미를 끄는데, 얼마 뒤 이 집안의 또 다른 남자, 고지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는 욕실에서 알몸으로 심장발작을 일으켜 사망했는데 등에는 붉은 십자가 모양의 흉터가 있었다. 그 흉터는 매저키스트적인 성향 때문이라고 짐작되었으며, 여기서 고노스 겐지라는 불량배가 고지의 애인이자 용의자가 아닌가 하는 가설이 나온다. 하지만 욕실이 밀실이었고, 심장마비로 죽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고지는 자연사로 처리되어 매장된다. 뒤늦게 히사오는 이 사건이 밀실살인 사건이며 트릭을 밝혀낼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자신의 추리를 펼친다. 그래서 지목된 용의자가 바로 고지의 작은 아버지 도지로이다.


그러나 도지로 역시 가스 스토브를 끄지 않고 잔 사고로 밀실 안에서 사체로 발견되고, 누가 봐도 과실에 의한 사고였기에 유야무야 사건은 덮이고 만다. 그와 함께 도지로 범인설도 슬그머니 수그러든다.


그 사이 벌어진 사건이 100여명의 노인이 불에 타 죽는 <성모동산> 사건. 이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은 바로 히누마 집안의 할머니뻘인 아야조.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 사건으로 죽은 사람 시체를 세어보면 한 명이 많다는 것. 누군가가 한 명의 시체를 숨기기 위해 100여명의 살인을 저질렀을 수도 있는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다음으로 떠오른 인물이 고지의 애인이자 불한당으로 여겨졌던 고노스 겐지. 하지만 그는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설이 점차 힘을 얻어가는데, 뜻밖에도 고노스 겐지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는 히누마 집안과 가까운 고기치의 처남으로 실존 인물이었다. 그의 자살은 부모 살해의 누명 때문이었다.  


사망자는 점점 늘어나고, 프랑스에서 히사오의 애인 무레타가 돌아와 추리게임에 참여하면서 사건은 이제 더욱 복잡해 진다.


무레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살인을 미리 예측하여 소설화 한 뒤 범인을 잡겠다는 기이한 발상을 제시하는데, 이 과정에서 추리에 참가한 히사오, 아리오 등은 '장미의 색깔이나 보석, 또는 방의 색깔이 살인에 영향을 미쳤다', '샹송의 노래 가사가 살인을 예고했다', '부동명왕의 위치나 경전에 나온 문장이 살인사건의 열쇠 역할을 할 것이다', '수학공식에 따라 살인이 계획되었다', '사촌 오지가 사실은 원폭에서 살아남아 배후에서 살인을 교사했다' 등등 얼핏 들으면 그럴싸하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먼 온갖 추리를 마구잡이로 제시한다.

그 모든 추리가 그럴싸하게 여겨졌던 것은 바로 사건이 일어난 연후에 추리를 꿰어 맞추는, 소위 '뱀 지나간 자리를 설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지가 옆집에 전화를 빌려놓고 트릭을 써서 작은아버지 도지로를 죽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나머지 사건은 모두 자연사였거나 규명할 수 없는 사건으로 무화(無化)되고 만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10만 분의 1의 우연>에 시운마루 호 사건이 나온다. 시운마루호가 좌초되어 가라앉고 있을 때, 두 사람이 침몰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신문에 기고를 하는데 이것이 격렬한 논쟁을 불러온 것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시점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지는 못할 망정 특종감으로 여겨 사진을 찍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하는 문제였다.


나카이 히데오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관음의 형태로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당신들은 우리가 도야마루의 유족이라고 해도, 고작 가엾다고 여기는 정도밖에 더 생각하지 않았겠지.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어쩌고 하면서, 히누마 집안의 사건을 기다리면서 가슴 설레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뻔한 거지. 당신들뿐만이 아니야, 육친을 잃은 사람 말고 누가 도야마루의 조난을 자기의 아픔으로 받아들였겠는가... 전부라고는 하지 않지만, 이 1955년,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겠지, 무책임한 호기심이 새로 만들어낼 즐거움만은 당신을 몫이 아니겠어.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그럴싸하게 잔학한 사건이 얼마든지 현실로 툭 튀어나오는 것이 지금의 시대이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자기만은 안전지대에 있으면서, 구경하는 쪽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처참한 광경이라도 좋아서 바라보는 것이 괴물의 정체라고. 나에게는 무서운 허무로밖에 생각되지 않아... 내가 한 짓도 다른 의미로 '허무에의 제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 

 

구경하는 사람을 나카이 히데오는 괴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세월호에 희생된 아이들 부모에게 '시체팔이' 운운한 그들은 무어라고 불러야 할까. 

악마는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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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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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코가 수학여행에 간 사이, 가나코의 가족이 무참히 살해된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두 동생은 범인 쓰즈키 노리오가 휘두른 쇠매에 맞아 절명했다. 그는 살인 후 시신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짓이겨 놓은 뒤 피가 흥건히 고인 거실 한가운데 망연히 앉아 있다가 이웃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순순히 체포된다.


8년의 시간이 흘러 가나코는 대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건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름대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상담 치료도 받았고, 남자친구도 사귀었다. 하지만 때때로 덮쳐오는 '4시간'은 가나코가 가족의 죽음을 전해듣고 병원에 찾아가기 까지의 악몽같은 4시간을 그대로 재현했다. 


어느 날, 가나코에게 쓰즈키 노리오의 사형 판결 확정 소식이 들려온다. 가나코는 쓰즈키 노리오가 쓴 상신서를 구해 읽는다. 

상신서에 따르면 쓰즈키 노리오가 범행을 결심한 이유는 가나코의 아버지 아키바에게 속아 연대보증을 서고, 그 결과 5천만엔이라는 큰 돈을 날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 돈은 아내 치요코의 사망보험금이었다. 쓰즈키 노리오는 아키바에게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소와 기만 뿐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연대보증을 섰던 사람은 아키바의 장인이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아키바는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리숙한 쓰즈키 노리오를 이용했던 것이다.

쓰즈키 노리오는 상신서를 통해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대부분 인정했다. 그러나 가나코의 어린 두 동생을 죽인 대목에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렸다. 


상신서를 구해 읽으면서 해묵은 상처를 들여다 보던 가나코가 쓰즈키 노리오에게 자신 또래의 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가나코는 무언가에 홀리듯 미호라는 이름의 동갑내기에게 접근한다. 

처음에는 미호가 자신보다 더한 상처투성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미호를 알면 알수록, 가나코는 그녀가 자신과 너무도 닮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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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죽어가는 순간을 상상하는 자신. 나만 행복해선 안 된다. 네 사람과 똑같이 망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자신은, 그저 생물학적으로만 살아 있을 뿐 죽은 자가 아닌가 싶어 섬뜩하기 짝이 없다.

 

'왜 나만 살아남은 거야. 나도 그때 죽어야 했어'

가나코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물음을 지난 8년 간 반복해왔다. 자신은 살아 있던 게 아니라, 억지로 살려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통 받아가며 살려져 있다'. 쓰즈키의 딸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아버지가 사형으로 죗값을 치르면 자신도 드디어 해방되어 다음 인생에 발을 내딛을 수 있다. 그렇게 결론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쓰즈키의 딸은 괴로워하고 있다.

차라리 교수대에 오르는 아버지를 뒤따라 죽고 싶다. 아버지가 처형된다 해도 계속될 이 고통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 이것이 그녀의 본심은 아닐까.

나와 닮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남편 손을 빌려 자신의 육체를 손상시킴으로써 옥중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아버지에게 다가가'려 하는 미호와, 그런 미호를 바라보며 자신과 같은 상처를 지닌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가나코. '길이와 각도만 다를 뿐, 상처의 깊이는 똑같은' 미호에게 안쓰러움을 느끼는 가나코는 어느 순간, 그녀의 상처와 자신의 상처를 함께 치료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2001년 발표되었고, 제22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수상한다. 노자와 히사시는 이로부터 3년 뒤 자살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750375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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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 연주자
야마노구치 요 지음, 김난주 옮김 / 고도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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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가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매우 특출난 오르가니스트가 등장한다. 한스 라이니히 라는 이름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그를 음악잡지 <메리스마>의 촉탁 기자 메르클린이 눈여겨 본다. 메르클린은 몇 차례에 걸쳐 라이니히의 연주를 녹음하고, 이 음원은 독일의 테오도르에게 전해진다.

테오도르는 라이니히의 연주를 들으며 과거 절친하게 지냈던 요셉 에른스트를 떠올린다. 오직 오르간을 연주하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았던 요셉은 거장 로베르트 라인베르거에게 사사받으며 촉망받는 연주자로 성장했다. 하지만 테오도르가 운전하던 차가 전복되어 함께 타고 있던 요셉이 반신불수가 되고, 한쪽 손을 쓰지 못하게 된 요셉은 오르간을 연주하지 못한다는 절망에 괴로워하다 병원에서 홀연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 사건으로 사랑하는 제자를 잃게 된 로베르트 라인베르거는 테오도르를 심하게 원망했고,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테오도르는 한스 라이니히의 연주를 로베르트 라인베르거 교수에게 가져가 들려줘도 좋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고민 끝에 테오도르는 로베르트 라인베르거를 찾아가는데, 교수는 뜻밖에도 테오도르의 방문을 고마워했다. 그리고 연주도 성심껏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유보'. 좋다, 싫다 말이 없이 '유보'의 태도를 취한 것이다. 


신경을 재생시키는 장비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다시 오르간을 연주할 수 있게 된 요셉이 한스 라이니히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숨기고 연주여행을 다니며 증명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로베르트 라인베르거 교수는 라이니히가 요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왜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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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할 때부터 악기를 건물의 일부에 포함시켜 설계하고, 패달을 비롯한 여러 장치를 이용하여 미묘한 음색의 변화를 주는 매우 복잡한 악기인 오르간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닌 까닭에 오르가니스트의 삶 역시 다른 악기의 연주자와는 다른 듯 하다.


하지만 오르가니스트란 원래 이런거야.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오르간이란 악기 그 자체고, 오르가니스트는 오르간이란 제단에 무릎꿇고 신을 찬양하는 사제에 지나지 않아. 레코딩이나 연주회 같은 대외적인 활동도 하지만, 보통 때는 한 교회에 봉사하면서 일상적인 성무 일과를 다하는 것이 오르가니스트의 생활이지. 

 

연주를 위해 '만도라고라' 와 같은 장치를 척추에 부착하고 반신을 운용하다, 미묘한 좌우 차이가 발생하자 기꺼이 척추의 기능 전체를 포기하고 기계에 신체 기능 전부를 내맡긴 요한. 그의 연주를 과연 '거짓'이라고만 비난할 수 있을까. 

 

"악마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나?" "신을 닮은 사람을 찾아야지. 완벽에 가깝게 신을 닮은, 그러면서도 신이 아닌 자, 그런 자가 악마야."

 

로베르트 교수는 요한을 악마에게 영혼을 판 연주자로 폄하했지만,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밖에 없는 요한이야 말로 신의 돌봄을 받아야 할 가장 불쌍한 어린양이 아니었을까.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749222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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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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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캥 부인은 베르농의 오래된 잡화상이었다. 그에게는 카미유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몹시도 병약했다. 병마는 카미유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고, 라캥 부인은 온갖 약을 아들에게 먹이며 십오년간 사투를 벌였다. 그 결과 카미유는 살아났다.

라캥 부인의 집에는 테레즈라는 이름의 계집아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테레즈는 라캥 부인의 오빠 드강 대위가 맡기고 간 아이였다. 그는 알제리 여자에게서 얻은 테레즈를 동생에게 맡기고 떠난 뒤 몇 년 지나지 않아 아프리카에서 사망한다.


카미유와 테레즈가 성인이 되자 라캥 부인은 둘을 결혼시킨다. 결혼 직후, 카미유는 베르농으로 가서 살겠다고 어머니에게 선언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라캥 부인이 새로 얻은 상점은 음습했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한 돈벌이는 되었다. 카미유 역시 펜대 굴리는 직업을 얻어 나름대로 만족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오직 테레즈만이 생활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 채 습기와 함께 집안에서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미유의 친구 로랑이 라캥 부인의 가게에 들른다. 테레즈가 로랑을 처음 본 순간, 그녀의 욕망에 불이 지펴진다. 로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서로의 욕망을 감지한 뒤 미묘한 몸짓과 속삭이는 대화를 이어가다 마침내 로랑의 다락방에서 관계를 갖는다. 

그 뒤로 둘은 정염의 노예가 되어 불륜을 이어간다. 불륜이 거듭될 수록 테레즈는 카미유를 못견뎌 했다. 병약한 그에게서 나는 체취와 나약한 분위기들이 로랑의 그것과 대비되어 역겨움을 불러 일으켰다.


악마적인 생각이 로랑과 테레즈의 머리 속에서 피어난다. 강가에 놀러간 어느 날, 배를 빌린 로랑이 테레즈에게 카미유를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고 속삭인다. 테레즈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지만 무엇엔가 홀린 듯 그들과 함께 배에 오른다.

강심에서 로랑이 카미유를 물에 빠뜨린 뒤 배를 전복시켜 테레즈만 구한다. 주변에 있던 뱃사람들이 구조하러 왔지만 카미유는 이미 흔적이 없었다. 그들은 배가 뒤집혀 카미유가 빠졌고 겨우 테레즈만 구할 수 있었다는 로랑의 말을 믿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가 본 것처럼 증언까지 해준다. 카미유는 사고사로 처리된다.


로랑이 2주일간 시체공시소를 드나든 끝에 마침내 물에 퉁퉁 불은 카미유의 시신을 발견한다. 퉁퉁 불어 회색으로 썩어가는 그 시체의 모습이 로랑의 뇌리에 강렬한 화인을 찍는다.


라캥 부인의 말할 수 없는 슬픔은 카미유와 로랑을 결혼시켜 자신의 곁에 두고 노년에 보살핌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다소간 치유된다. 그러나 테레즈와 로랑은 어찌된 일인지 과거처럼 붙어먹지 못했다. 카미유가 물어뜯어 생긴 목덜미의 상처에 피가 돌아 붉어지면 로랑은 끔찍한 고통에 휩싸였다. 둘 사이에 카미유의 썩어버린 몸뚱이가 누워있는 것 같았다.


카미유의 존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욕을 돋구어보려는 시도가 모두 무화된 뒤 싸움이 시작되었다. 낮동안은 그래도 어느 정도 평안을 얻을 수 있었지만 밤이 되어 둘만 남으면 그들은 서로를 비난했다. 둘만 남게 되면 어김없이 카미유가 찾아왔다. 

그래서, 테레즈와 로랑은 라캥 부인을 잘 대해 주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그나마 카미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캥 부인이 중풍에 걸리자 둘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녀가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음습한 상점에 로랑과 테레즈만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라캥부인이 몸을 움직이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게 된다. 테레즈와 로랑의 싸움도 점점 심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둘의 조심성이 바닥에 떨어진 어느 날, 라캥부인은 테레즈와 로랑의 언쟁을 통해 둘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카미유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라캥부인은 둘의 범죄를 고발하기 위해 목요일 모임을 기다린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잘 움직여지지 않는 손가락을 들어 철자를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문장은 완성되지 못한다. 그 손가락 움직임을 마지막으로 라캥부인은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에 어떠한 움직임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지옥같은 싸움이 반복되고 카미유에 대한 공포가 고조되자 이제 테레즈와 로랑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경찰에 밀고하러 가지나 않을까, 검사에게 모든 것을 실토하지나 않을까. 그러다 거의 동시에 둘의 머리 속에 상대편을 죽여야 이 지옥이 끝나리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테레즈가 준비한 부엌칼을 로랑이 보게된다. 그리고 로랑이 준비한 청산가리가 담긴 질그릇 병을 테레즈가 보게된다.


둘은 서로의 당황한 얼굴에서 은밀한 계획을 읽으면서 서로 가엾게 여기고 서로 무서워했다. 별안간 테레즈와 로랑이 울음을 터트렸다. 감사의 시선을 교환한 뒤, 테레즈와 로랑은 질그릇에 담긴 청산가리를 나눠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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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라캥>에서, 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기를 원했다. 이 책 전체는 바로 그것을 담고 있다. 나는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육체의 필연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들의 동물성 속에서 열정의 어렴풋한 작용을, 본능의 충동을, 신경질적인 위기에 뒤따르는 돌발적인 두뇌의 혼란을 조금씩 쫓아가려고 노력했다. 나의 두 주인공들에게 있어 사랑은 필요의 만족이다. 살인은 그들이 저지른 간통의 결과이며, 그들은 마치 늑대가 양을 학살하듯 살인을 한다. 내가 그들의 회한을 촉구해야 했던 부분은, 단순한 생체조직 내의 무질서, 파괴를 지향하는 신경체계의 반란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영혼은 완벽하게 부재한다. 나는 그것을 시인한다. 

 

에밀 졸라는 1868년 제2판에 이와 같은 서문을 달아 독자와 평론가에게 자연주의 소설의 기초에 대해 辯 하고 있다. 


전통적 문학은 인식으로서의 문학의 기능을 잘 수행하지 못했다. 플로베르와 졸라가 각각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라는 이름으로 의도했고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은 이와 같은 기존의 문학의 결함을 수정하여 문학의 본래적 기능인 인간과 그 삶에 관한 진리를 밝혀내는 문학을 하자는 데 있었다.  

에밀 졸라는 플로베르의 사실주의 문학이론을 발전시켜 자연주의 문학일이론을 발명함과 동시에 그 구체적 예로서 장편소설 <테레즈 라캥>을 창작함으로써 당대는 물론 그후에도 세계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친다.(박이문)

 

욕망과 정념에 두 남녀를 몰아넣어 극단까지 밀어붙인 뒤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고, 불멸의 밤을 선사하여 파멸의 과정에 이르도록 설계한 작가 에밀 졸라. 이 두 남녀를 지켜보는 에밀 졸라는 어찌보면 마조키스트적인 조물주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기계적 유물론을 연상시키는 작가의 자연주의의 소설 이론에도 불구하고 에밀 졸라의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과학'과 '객관' 이라는 이름 뒤에서 읽히는 인간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71831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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