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간 연주자
야마노구치 요 지음, 김난주 옮김 / 고도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세기가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매우 특출난 오르가니스트가 등장한다. 한스 라이니히 라는 이름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그를 음악잡지 <메리스마>의 촉탁 기자 메르클린이 눈여겨 본다. 메르클린은 몇 차례에 걸쳐 라이니히의 연주를 녹음하고, 이 음원은 독일의 테오도르에게 전해진다.

테오도르는 라이니히의 연주를 들으며 과거 절친하게 지냈던 요셉 에른스트를 떠올린다. 오직 오르간을 연주하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았던 요셉은 거장 로베르트 라인베르거에게 사사받으며 촉망받는 연주자로 성장했다. 하지만 테오도르가 운전하던 차가 전복되어 함께 타고 있던 요셉이 반신불수가 되고, 한쪽 손을 쓰지 못하게 된 요셉은 오르간을 연주하지 못한다는 절망에 괴로워하다 병원에서 홀연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 사건으로 사랑하는 제자를 잃게 된 로베르트 라인베르거는 테오도르를 심하게 원망했고,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테오도르는 한스 라이니히의 연주를 로베르트 라인베르거 교수에게 가져가 들려줘도 좋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고민 끝에 테오도르는 로베르트 라인베르거를 찾아가는데, 교수는 뜻밖에도 테오도르의 방문을 고마워했다. 그리고 연주도 성심껏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유보'. 좋다, 싫다 말이 없이 '유보'의 태도를 취한 것이다. 


신경을 재생시키는 장비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다시 오르간을 연주할 수 있게 된 요셉이 한스 라이니히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숨기고 연주여행을 다니며 증명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로베르트 라인베르거 교수는 라이니히가 요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왜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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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할 때부터 악기를 건물의 일부에 포함시켜 설계하고, 패달을 비롯한 여러 장치를 이용하여 미묘한 음색의 변화를 주는 매우 복잡한 악기인 오르간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닌 까닭에 오르가니스트의 삶 역시 다른 악기의 연주자와는 다른 듯 하다.


하지만 오르가니스트란 원래 이런거야.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오르간이란 악기 그 자체고, 오르가니스트는 오르간이란 제단에 무릎꿇고 신을 찬양하는 사제에 지나지 않아. 레코딩이나 연주회 같은 대외적인 활동도 하지만, 보통 때는 한 교회에 봉사하면서 일상적인 성무 일과를 다하는 것이 오르가니스트의 생활이지. 

 

연주를 위해 '만도라고라' 와 같은 장치를 척추에 부착하고 반신을 운용하다, 미묘한 좌우 차이가 발생하자 기꺼이 척추의 기능 전체를 포기하고 기계에 신체 기능 전부를 내맡긴 요한. 그의 연주를 과연 '거짓'이라고만 비난할 수 있을까. 

 

"악마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나?" "신을 닮은 사람을 찾아야지. 완벽에 가깝게 신을 닮은, 그러면서도 신이 아닌 자, 그런 자가 악마야."

 

로베르트 교수는 요한을 악마에게 영혼을 판 연주자로 폄하했지만,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밖에 없는 요한이야 말로 신의 돌봄을 받아야 할 가장 불쌍한 어린양이 아니었을까.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749222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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