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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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법철학>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고 했다. 15년 남짓이 흐른 뒤 <닥치고 정치>를 읽고 있으니, 충분히 황혼이라 할 만하다.

김어준 자신은 '무학(無學)', '절독(絶讀)'이라 하지만, 사실 그의 의견은 수준 높은 공부에 기반하고 있다. 그의 거침없는 발언들은 전혀 근본 없는 이야기가 아닐 뿐더러, 매우 예리하고 날카롭기 까지 하다.

읽으면서 몇 가지 인상 깊었던 구절들.

공포에 대처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이 바로 좌, 우다. 우는 기본적으로 세계를 약육강식의 전쟁터로 이해한다.(36p) 그래서 우의 엔진은 공포(38p) 우는 지가 다 먹고 남은 것들, 그 찌꺼기, 자투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를 놓고, 거기서부터 경제라고 얘기(41p) 그런 우를 유일하게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가 바로 자존심... 우파가 자존심이 없으면... 겁먹은 동물.(42p) 친일도, 친미도, 결국 자존심 없는 우가, 동물 주제에, 인간 우파인 척하는 거(43p)

좌는 그 공포를 잘게 나눠 각자가 담당해야 하는 공포의 몫을 줄여서 해결하려 하는 거라고. 문제는 밀림 그 자체에 있는 거니까. 우가 본능적 반응이라면, 좌는 노리적 대처야... 이 대목에서 평등이 아주 중요한 가치로 등장... 평등이 깨지면 기본적인 결속 자체가 안 되는 거니까. 우가 쎈 놈은 더 가져가도 된다는, 질서와 위계를 당연시하는 수직적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좌는 누구나 같은 조건에선 같은 정도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수평적 관계를 지향(44p)

사실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전제는 인간의 태도과 가치관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인데, 김어준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우생론'으로 읽힐 위험마저 있는 위와 같은 주장을 한다. 직관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다.

또 하나의 작전이 바로 여론조사 선전전이지. 실제 투표 결과와 여론조사 결과의 격차가 어마어마했잖아... 보수의 작전이야 큰 격차를 기정사실로 확대재생산해 진보적 유권자들이 아예 투표장에 나오지도 않게 만들려고 한 거지만, 그 수작에 여론조사 기관들이 최소한 수동적 공범이 되었다.(175p)

'황혼녘'에 읽는 이 문구는 얼마나 통찰력 있는 분석인가.

진보 정당의 방식은... 처음 만난 상대 앞에 재무 계획서와 신혼방 설계도를 딱 꺼내놔...그런 다음 건조한 표정으로 바로 결혼하재. 만약 나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속물이라 더 큰 집과 더 큰 자동차에 넘어간 방증...그걸 당한 상대는, 떠나버려. 남겨진 진보 군은 자기 프로포즈가 실패한 요인을... 입지 조건과 대출 조건의 우수성을 다른 경쟁자들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

더 슬픈건, 보수군이...진보 군 계획서와 설계도를 집어 와서 표지만 엄청 화려하게 바꿔 국민 양을 찾아가 계획서를 다시 내놓는다는 거지. 그 내용은 읽어주지도 않아. 장미 한 송이 안겨주고 스테이크를 시키지. 그렇게 연애 시작.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에야 국민 양은 알게 되지. 그 장미는 플라스틱이고 그 밥값은 자기가 내는 거였다는 걸.(222-223p)

진보정당의 선명성 경쟁에 관한 콩트가 촌철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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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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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전날 헤르만 괴링의 손톱과 발톱을 비추며 시작된다. 그의 손발톱은 진통제 디히드로코데인 중독 때문에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작가는 이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하는 식으로 하인리히 뵐의 페르비틴(메스암페타민) 중독을 걸터듬더니, 히틀러가 애견 블론디에게 시안화칼륨 약효를 시험한 뒤 자신도 한입에 털어넣고 자살한 사건을 들먹인다.

그렇다면 나치가 강제 수용소에서 사용한, 독가스의 전신인 치클론A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가스들이 아우슈비츠의 벽돌을 파란색으로 물들인 이유도 따져봐야한다. 시안화물은 1782년에 최초의 현대적 합성 안료 프러시안블루에서 분리된 부산물이라서 그렇다.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이 천사의 로브와 성모 마리아의 장옷을 묘사할 때 쓴 파란색 안료는 울트라마린이었는데, 이는 아프가니스탄 코츠카강 계곡의 동굴에서 캐낸 청금석을 갈아 만들었기에 무척이나 비쌌다. 그러다 18세기에 스위스 안료·염료 제조업자 요한 야코프 디스바흐가 코치닐깍지벌레 암컷 수백만 마리를 빻아 만들던 루비레드를 재현하려는 과정에서 우연히 코발트블루가 발견되어 이를 대체했다. 그의 조수인 젊은 연금술사 요한 콘라드 디펠이 이에 관여했다.

디펠은 생명의 영약을 제조하려 했으나 그 약의 효과는 살충제로 유효했을 뿐이고, 독일군이 패튼 부대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우물에 들이부어 그 쓰임새가 적확히 증명되었다. 디펠의 영약에 들어있던 성분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파도 아래> 뿐만 아니라 프로이센군의 제복에서도 빛나게 된 것이다.

마침내 1782년 칼 빌헬름 셸리는 프러시안블루를 휘저어 현대의 가장 강력한 독약을 만들어 냈고, 이 새로운 화합물을 '프러시안산'으로 명명한다. 비소와 달리 시안화물은 효과가 썩 좋았고, 수많은 암살자에게 그 속효성이 사랑 받았다.

앨런 튜링 역시 시안화물을 애호했는데, 동성애 죄목으로 영국 정부에 의해 강제로 화학적 거세를 당해 가슴이 커지는 부작용을 겪은 뒤 시안화물을 주입한 사과를 깨물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튜링은 생전에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종종 가스 마스크를 썼다. 그런데 이 가스 마스크는 독일군이 영국에 독가스탄을 떨어드릴 것을 우려해 제작된 것이었다. 각국의 사린 가스, 겨자 가스, 염소 가스에 대한 공포는 2차세계대전 때 가스 공격 금지 조치를 모두가 받아들인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역사상 최초의 가스 공격은 벨기에 소도시 이프르 근처에서 벌어졌다. 1915년 4월 22일 거대한 초록빛 구름이 쓸고 지나가자 5,000명이 몰살 당했다. 이 공격을 감독한 인물이 유대인 화학자 프리츠 하버였다. 이 공격 직후 그의 아내는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아 자살한다. 그리고 1918년 휴전 이후 연합군은 프리츠 하버를 전쟁 범죄자로 규정했다. 그는 전쟁 전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질소를 사상 최초로 공기 중에서 직접 채취함으로서 세계 대기근을 간접적으로 막은 공로가 있었다. 당시 언론 표현을 빌리자면 "공기에서 빵을 끄집어낸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버는 후에 치클론의 발견에도 관여했는데 자신의 활약으로 탄생한 살충제를 가지고서 나치가 몇 년 뒤 자신의 이복 여동생, 매부, 조카들을 비롯한 수많은 유대인을 살해할 것임은 알지 못했다.

후에 그가 죽은 뒤 발견된 소지품에는 아내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편지에서 그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했는데,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에 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질소를 뽑아내는 자신의 방법이 지구의 자연적 평형을 교란하는 바람에 식물이 세계를 차지할까봐 두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작가는 <프러시안 블루>에 이어 예의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를 계속한다. 카를 슈바르츠실트, 모치즈키 신이치, 그로텐디크, 에르빈 슈뢰딩거,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 아인슈타인 등 현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의 중요 발견과 그 발견들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따위를 검증된 역사와 그럴법한 추측을 섞어가며 떠들어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얘기들이 꽤나 기이하면서도 중독적이라 처음엔 '에이 정말일까?' 하면서 머뭇머뭇 하다 어느 순간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하는 식으로 빨려들게 된다.

이 작품은 1980년 네델란드 출신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의 세 번째 작품으로, 발표된 이듬해인 2021년 부커상 최종심에 올랐다.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의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 천재 이야기>와 다니엘 켈만의 <세계를 재다>에 이어 과학에 관한 소설 추천 리스트에 올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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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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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7월 7일 오후 7시, 사카이 마사오라는 남자가 자기 집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부검의는 시신을 면밀히 살펴본 끝에 담당 조사관에게 청산가리 중독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결론을 전했다. 집 문은 안쪽으로부터 잠겨 있었고 여벌의 열쇠도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사카이 마사오는 신인 추리소설가로 첫 작품 수상 후 이렇다 할 후속작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경찰은 사카이 마사오가 글이 써지지 않아 괴로워한 나머지 자살한 것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진술을 들어보면 그는 최근에 그럴싸한 신작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였다. 전적으로 자살이라고 몰고 가기엔 그 부분이 의심스러웠다.

소설은 사카이 마사오의 애인이자 의학 전문 출판사 직원인 나카다 아키코, 그리고 추리소설가로 잡지사에 글을 기고하는 쓰쿠미 신스케가 사카이 마사오의 죽음을 추적하는 형태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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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트릭은 그야말로 후안무치한데, 동명의 사카이 마사오가 두 명이다. 그리고 공교롭게 두 사람 모두 추리소설을 썼다. 또, 둘 다 7월 7일 7시에 죽었는데, 한 명은 작년에 다른 한 명은 올해 죽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작년에 죽은 사카이 마사오는 작품 발표를 하지 못한 무명이고, 올 해 죽은 사카이 마사오는 신인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점 정도.

나카다 아키코의 아버지는 이름 난 소설가 세가와 고타로이다. 작년에 죽은 사카이 마사오는 세가와 고타로를 존경해 때때로 원고의 평가를 부탁했다. 나카다 아키코는 집에 종종 오는 사카이 마사오를 좋아하게 되었고, 둘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발전한다.

하지만 어느 날 그가 자살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나카다 아키코는 그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이것 저것 조사를 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를 알게 된다.

그는 과거에 정을 통한 부자집 여자가 있었다. 한 번 뿐인 일탈이었지만 여자는 임신을 하게 된다. 여자는 남편의 아이라고 속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에게 심각한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자는 아이가 납치 당한 것처럼 꾸민 뒤 사카이 마사오에게 돈을 주고 아이를 특수 병원에서 돌봐주도록 부탁한다. 하지만 아이가 수술 후 힘겹게 숨 쉬는 것을 본 사카이 마사오는 아이가 회복되더라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할거라 생각하여 아이를 질식사 시킨다. 그리고 본인도 죄책감에 자살한 다.

문제는 그가 남긴 원고였다. 나카다 아키코의 아버지 세가와 고타로가 사카이 마사오의 원고를 표절하여 잡지에 발표한 것이다. 이 사건은 조용히 묻힐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사카이 마사오가 여관에 실수로 두고 간 원고를 여관 종업원이 착각해서 또 다른 사카이 마사오(추리소설가로 데뷔한)에게 우편으로 송부해 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추리소설가 사카이 마사오는 글이 써지지 않던 차에 뜬금없이 얻게 된 원고를 표절하여 잡지사에 발표하려 한다. 이미 나카다 아키코의 아버지 세가와 코타로가 표절한 상황에서 또다른 사카이 마사오가 또 표절을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질 예정인 것.

물론 처음에는 대가인 세가와 고타로를 신인 추리소설가 사카이 마사오가 표절했다고 알려지겠지만 시일이 흘러 궁지에 몰린 사카이 마사오가 자신도 원고를 얻게 되었다는 것, 원고의 원래 주인은 또 다른 사카이 마사오라는 것 등을 밝히면 세가와 고타로 역시 말년에 표절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판이었다.

아버지의 표절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한 나카다 아키코는(왠일인지 또 다른 사카이 마사오도 그녀의 애인) 그런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으므로 사카이 마사오의 집으로 가 청산가리를 탄 사이다를 마시라고 권한 뒤 반찬거리를 사오겠다며 집을 나선다.

트릭이 밝혀지기 전까지의 평가는 작가 나카마치 신이 작품 속에 나오는 소설을 평가한 말을 옮겨 적으면 적당할 것 같다. "잠이 올 정도로 재미없는 건 아니었지만, 적극적으로 읽을 정도로 매력적인 글도 아니었다."

물론 이 평가는 딱 트릭이 밝혀지기 전까지 해당하는 것이고, 트릭이 밝혀지면 일종의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끓어오름을 느낄 수 있다. 작가도 그런 독자의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스스로 이 작품에 대해 "얼토당토않은 트릭과 이해하기 어려운 플롯의 작품"이라고 진술한다.

아비코 다케마루가 '서술트릭 시론'에서 소설에서 작가와 독자 사이에 성립한 '암묵의 이해' 중 하나, 또는 여럿을 깸으로서 독자를 속이는 트릭이라고 표현하는데 나카마치 신은 독자를 대놓고 바보 취급한다.

이 소설이 처음 발표된 해는 1971년이고 당시 제목은 <그리고 죽음이 찾아온다> 였다. 이후 부분적인 개작을 거쳐 <신인상 살인사건>, <모방살의> 등의 제목으로 변경된다.

사서 읽는 것은 물론이고 빌려 읽는 것도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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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트] 금강불괴 (총4권/완결)
좌백 / 새파란상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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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성 불산에 있는 진가장은 강남 팔대세가에 속한다. 100세가 넘은 진자룡은 무림 십대 고수의 하나였으며, 그의 아들이자 현 장주인 광마(狂馬) 진삼산 역시 아버지에 미치지는 못해도 고수 반열에 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 진가장에 하나의 근심이 있었으니, 바로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것이다. 진삼산은 오십줄에 접어든 아내 뱃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 아니라면 더 이상의 출산을 불가할 것이니 대가 끊기리라 생각하고 씁쓸해 했다.

어느 날, 성질이 불같은 아내가 등가산 아래서만 파는 음식을 먹고 싶다하여 부른 배를 하고 가마를 몰아가는데, 하필이면 산 중턱에서 통증이 시작되었다. 진삼산이 도와줄 사람을 찾으러 자리를 비운 사이 고대랑은 아이를 출산한다. 아이가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 확인하기 직전, 가마 밖에서 아들이냐고 묻는 집사의 말에 고대랑은 도박판에서 원하는 패가 나오길 기원하듯 '아들이다!' 라고 외친다. 물론 확인은 못한 채였다. 고대랑이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보니 아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바로 그 시점, 소삼중이라는 사내가 부근에서 사람을 찾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소삼중이 찾는 사람은 그와 정을 통한 비구니였다. 사실 비구니는 불계를 깨뜨린 것에 괴로워하다 소삼중이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하고 마는데, 자살 직전 출산을 한 터였다. 그녀는 출산한 아이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어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소나무에 아이 하나가 메달려 있었다. 그녀는 그 아이 옆에 자신이 낳은 아이도 메달아 놓은 뒤 자살하고 만다.

그렇다면 다른 아이는 누가 메달아 놓은 것인가? 그는 바로 궁서생 증자릉이라는 사람으로 진자룡의 절친이었다. 박학다식하고 경공에 능한 그가 보물을 찾으러 등가산에 왔다가 고대랑이 출산과 함께 의식을 잃은 것을 발견, 아이를 구하기 위해 데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그때 붉은 비늘에 검은 뿔이 있는 거대한 구렁이(독각화린망)를 발견하고 아이를 잠시 나무에 걸어놓은 것인데 그 사이 비구니가 또 한 명의 아이를 걸어놓은 것이다. 증자릉은 아이들 모두 어미로 부터 떨어져 기력이 없어 보였으므로 사내아이에게는 독각화린망을, 여자아이에게는 독각화린망이 먹으려다 증자릉에게 잡혀 뜻을 이루지 못한 푸른 과일 세 개를 먹인다.

사내아이는 고대랑이 '아들이다!'라고 외친것을 얼핏 들었으니 진삼산과 고대랑의 아이인 것이 분명했으나, 여자아이는 누가 낳은 아이인지 알 수 없었던 증자릉은 마침 지나가던 비구니에게 여자아이를 떠맡긴 후 사내아이는 진가장에 데리고 간다.

아이를 찾은 진삼산의 기쁨은 누구 못지 않게 컸다. 대를 이을 아들이 무사히 나타난 것이 꿈만 같았다. 하지만 고대랑은 그렇지 못했다. 사실 고대랑은 아이의 성별을 정확히 확인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내아이가 자신의 아이일 확률은 50%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진자앙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진자앙은 자라면서 진삼산과 고대랑 누구도 닮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다. 굼뜨고 느렸을 뿐 아니라 무공에 전혀 소질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증자릉이 먹인 독각화린망 때문인지 가전의 내공심법을 운용하려고만 하면 주화입마에 빠졌으므로 내공도 수련할 수 없었다.

결국 진가장은 후계자를 외부에서 데려오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진자앙은 시골장터에 돌아다니는 약장수 소삼중의 무술을 배우기로 한다. 바로 외공만 무지막지하게 단련하여 매를 맞아도 아프지 않다는 그 무술을. 문제는 소삼중의 무술은 금강불괴라는 지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무술이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무술비급은 1/3만 있는 불완전한 것이었다는 데 있다.

대본소용으로 마구 양산되던 구무협에서 탈피하여 책꽂이에 꽂아둘 가치가 있는 무협소설을 쓰겠다는 운동이 90년대에 일었다. 이 시기 작품들을 크게 신무협이라 통칭하는데, 주요 작가로 서효원, 야설록, 용대운, 좌백, 풍종호, 진산 등이 있다. 좌백은 진산과 부부 사이다.

구무협이 양산형으로 마구 찍어낸다는 단점은 있지만, 얼음에 박밀듯 술술 읽어 한 질을 몇 시간 내에 끝내는 맛이 나름 장점이다.

반면 신무협은 나름 탄탄한 구성과 전개, 우연과 기연을 최소화 한 점, 역사적 고증에 대한 할애 등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작품이 완결 되기까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은 약점으로 작용했다.

결국 구무협과 판협지의 가교 역할을 하며 나름의 역할을 수행한 신무협 소설은 90년대 향수를 원하는 나같은 독자들에 의해 향유되며 미약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작품은 진자앙이 금강불괴의 경지에 오르는 지난한 과정과, 바뀐 아이 중 하나인 염정과의 러브라인을 축으로 전개된다.

진가장은 자신의 친아버지 소삼중에게 외공을 배우고, 염정은 가짜 비구니에게 딸려 갔다가 천하제일 고수의 양녀가 된다.

성인이 된 후 그들은 다시 재회하는데 과거 염정이 비구니들로부터 탈출할 때 진자앙이 도와준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다.

9대 문파, 8대 세가 해가며 큰 그림을 그리던 초반부의 각종 떡밥들의 회수가 원활하지 못하고, 드래곤볼의 천하제일무도회를 연상케 하는 비무대회가 다소 조잡하게 그려지고 있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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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 - 개정판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7
로알드 달 지음, 퀜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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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찰리는 대도시 변두리에 있는 허름한 판잣집에서 부모님, 조부모님, 외조부모님과 함께 산다. 식구 중 돈벌이를 하는 사람은 아버지 버켓씨 뿐이었기 때문에 찰리네는 아주 가난했다.

찰리네 마을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초콜릿 공장이 있었는데, 그 유명한 '웡카의 공장' 이었다. 그런데 이 공장은 베일에 쌓여 있었다. 일단 웡카씨 자신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일하는 사람이 드나드는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전세계에 초콜릿과 각종 과자를 공급했다. 사람들은 못내 궁금증을 참지 못해 공장을 기웃대기도 했지만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윌리 웡카가 광고를 낸다. 행운의 다섯 어린이를 뽑아서 공장을 견학 시켜주고, 모든 제조비법과 신기한 기술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견학이 끝나면 평생 먹을 초콜릿과 사탕을 기념품으로 준다고 했다. 웡카의 초콜릿 안에 들어있는 황금빛 초대장을 뽑을 행운의 주인공이 누구일지 전세계적인 이목이 쏠렸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뚱뚱한 아우구스투스 굴룹,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버루카 솔트, 하루종일 껌만 씹는 바이올렛 뷰리가드, 티비를 끼고 사는 폭력적 성향의 마이크 티비, 그리고 우리의 찰리가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마침내 대망의 견학 날이 되자 괴팍한 웡카씨가 직접 공장 정문에 나와 이들을 환영했다. 다소 정신없는 웡카씨의 인도에 따라 다섯 명의 어린이와 보호자는 견학을 시작한다.

공장 지하의 광대한 공간에 놀란 이들은 초콜릿이 흐르는 강물과 폭포를 구경한 다음 움파룸파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움파룸파 사람들은 무릎 높이까지 밖에 안되는 작은 사람들이었는데,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를 무척 좋아하는 종족이었다. 그들은 공장에서 생활하며 마음껏 카카오를 즐겼고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과자 제조 비밀이 유출될 것을 두려워한 웡카씨의 이해와 딱 맞아 떨어졌다.

견학은 계속되는데 아이들은 웡카씨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지 말라는 곳에 가거나 하지 말라는 짓을 하는 등 정신없이 굴다가 차례로 봉변을 당한다. 아우구스투스는 초콜릿을 맛보다가 투명 파이프에 빨려 들어가버렸다.

웡카씨는 나중에 만날 것이라는 식으로 일행을 설득하더니 곧이어 온갖 크림과 열매, 다양한 생나무 가지를 구경시켜주었다. 또 아무리 빨아도 작아지지 않는 사탕,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해어 태피, 3가지 정식을 맛볼 수 있는 껌 등을 소개했다.

껌 얘기에 흥분한 바이올렛 뷰리가드가 웡카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껌을 입 속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바이올렛은 몸이 부풀어 오르고 보라색으로 변해버렸다.

바이올렛은 주스 짜내는 기계에 돌리면 된다는 웡카씨의 설명에 이어 다시 견학이 시작되었다. 먹을 수 있는 마시멜로 베개, 핥아먹는 유아용 벽지, 추운 날씨용 따끈한 아이스크림, 초코 우유를 짜는 젖소, 마시면 몸이 뜨는 붕붕 주스, 빙그르르 돌아가는 네모 사탕.

그러다 호두까기 방에서 버루카가 호두를 까는 다람쥐를 갖고 싶다고 난리를 피우다 쓰레기 배출구에 빨려 들어가버린다. 웡카씨는 쓰레기 배출구가 이틀에 한번만 불을 피우니 별 탈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 뒤 일행을 몰아 텔레비전 초콜릿 방으로 간다.

텔레비전에서 영상을 전송하듯 초콜릿도 전송할 수 있다는 말에 마이크 티비는 만류할 새도 없이 카메라로 뛰어들고 결국 티비로 전송되는 과정에서 크기가 줄어 2.5cm가 되고 만다. 이번에도 웡카씨는 껌 신축성을 검사하는 특수기계로 늘리면 된다고 말한다.

견학이 모두 끝나자 웡카씨는 행사 내내 얌전하게 말을 잘 들은 찰리를 승자라고 선언한다. 웡카씨가 황금 초대장 행사를 개최한 진짜 목적은 자신의 후계자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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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영국에서 태어난 로알드 달은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투기 파일럿으로 참전했다. 생떽쥐페리도 그렇고 로맹 가리도 그렇고, 전투기를 조정하는 것과 글쓰는 것의 상관관계가 사뭇 궁금해진다.

그는 전투 중 이집트에서 격추 당하는 추락 사고를 당하는데 당시 입은 상처가 자신의 천재적 창조성의 원천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달의 동화는 아름답고 행복한 분위기라기 보다 기괴하고 어두운 편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도 말을 안 듣거나 안 좋은 습관을 가진 아이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사고를 당한다. 게다가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움파룸파 사람들이 매우 기뻐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사뭇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나중에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아이들은 공포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달은 <마틸다>,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멍청씨 부부 이야기>, <아북거, 아북거> 같은 동화 작가로 널리 알려졌으나 사실 성인용 미스터리 소설로 에드거 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작가이기도 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598138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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