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마뱀 빌이 앨리스에게 뜬금 없이 암호를 정하자고 제안한다. 암호를 왜 정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빌은 당연하다는 듯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나는 이미 적이 아니'라는 앨리스의 항변에도, 도마뱀 빌이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을 계속하자 앨리스는 포기하고 암호를 정해자고 한다. 도마뱀 빌이 "스나크는" 이라고 말하자 앨리스는 저도 모르게 "부점이었다"고 말한다. (루이스 캐럴의 시 스나크 사냥의 맨 마지막 행인 For the Snark was a Boojum, you see)

도마뱀 빌은 깜짝 놀란다. 어떻게 알았냐는 것이다. 앨리스의 주머니 속에서 잠을 자던 겨울잠쥐를 잠깐 의심해 봤지만 역시 둘은 이 암호에 대해 오늘 처음 말하는 것이었다.

혼란에 빠진 둘에게 왕과 시종, 말들이 허둥대며 지나갔다. 험프티 덤프티가 담에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미치광이 모자장수와 3월 토끼가 험프티 덤프티는 살해 당했고, 이것은 살인사건이라고 엄숙하게 선언한다.

잠에서 깨어난 구리스가와 아리는 자신이 최근들어 똑같은 세계에 관한 꿈을 반복해서 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꿈에 관한 상념에 빠져 있던 아리는 문득 학교에 늦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햄스터에게 먹이를 준 뒤 대학 연구실로 향한다.

연구실은 묘하게 어수선했다. 누군가 나카노시마 연구실의 오지 씨가 옥상 가장자리에 앉아서 다리를 흔들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는 동글동글한 체형 때문에 달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사람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리는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실험실 사용 때문에 이모리와 얘기하다 이모리가 "스나크는" 이라고 말하고, 아리가 "부점이었다" 라고 말하면서 세계가 확 바뀌었다.

------

고바야시 야스미는 1962년 교토 출생으로 오사카대학 공학부를 졸업했다. 1995년 <완구수리자>로 제 2회 호러소설대상 단편상을 수상하며 데뷔했으며, 2012년 <천국과 지옥>으로 세이운상(星雲賞)을 수상했고, 2013년 메르헨 죽이기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본작 <앨리스 죽이기>를 발표했다. 시리즈는 클라라, 도로시, 팅커벨로 이어지는데 안타깝게도 작가가 2020년 11월 23일 암으로 사망하여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앨리스 죽이기>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그리고 <스나크 사냥>을 기본 텍스트로 비틀기, 간섭하기, 교차편집하기 등을 통해 호러 미스터리물로 다시 태어난 작품이다. 루이스 캐럴 텍스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다면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을 중심으로 훨씬 흥미로운 독서가 될 수 있다.

소설에서 앨리스는 험프티 덤프티 살해범으로 몰린다. 이유는 흰토끼가 정원에서 앨리스를 봤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상한 나라'와 '지구'가 꿈으로 연결되어 있어 꿈에서 죽으면 지구에서도 죽는다는 점이다. 꿈 속에서 누명을 벗지 못하면, 여왕의 '목을 쳐라' 명령에 희생될 것이 분명하다. 앨리스에게 주어진 시간은 7일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사건은 계속된다.

이상한 나라에서는 그리핀이 굴을 먹다 목이 막혀 죽고, 지구에서는 시노자키 교수가 상한 굴을 먹고 식중독으로 죽는다. 다음으로 흰토끼가 부점에 의해(스나크의 일종으로 부점을 보면 사라진다) 사라지고, 지구에서는 아리의 1년 선배 다나카 리오가 괴한의 칼에 찔려 사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상한 나라에서 빌이 밴더스내치(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괴물)에게 하반신이 뜯어먹혀 사망하고, 지구에서는 이모리가 만취한 상태에서 들개에게 안면을 뜯어먹혀 사망한다.

아리는 빌이 사망 직전 남긴 다잉 메시지 "공작 부인이 범인일 리가 없다"에서 추론하여 히로야마 부교수가 사실은 공작부인이 아니라 메리 앤이라는 것을 밝혀 낸다. 흰토끼가 앨리스를 범인으로 착각한 것은 시력이 좋지 않아 메리 앤과 앨리스를 착각한 것.

앨리스는 메리 앤에 의해 꿈 속에서 살해 당하지만 사실 앨리스 역시 지구의 아리가 아니었다. 꿈속의 앨리스와 대응되는 것은 지구의 햄스터였고, 꿈속의 겨울잠쥐가 사실은 지구의 아리였던 것.

소소한 반전에 이어 더 큰 반전이 이어지는데, 이상한 나라의 주민들이 본체이고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죄다 붉은왕이 꾸는 꿈 속의 일이라는 것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6271220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을 주다
와타야 리사 지음, 양윤옥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유우의 아버지 토마와 어머니 미키코는 프랑스 유학 중 만나 사랑에 빠졌다. 어린 나이의 사랑이 그렇 듯, 얼마 지나지 않아 한쪽의 사랑이 식었다. 토마는 이별을 통보했지만, 미키코가 메달렸다. 얼마 후 미키코가 유우를 임신하게 되자 토마는 어쩔 수 없이 미키코와 결혼한다.

유우는 프랑스 혼혈인 아버지 피를 물려 받아 귀엽고 깜찍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의류 통신판매 카탈로그 모델을 하게 된 유우는 어린 나이에 '스타치즈'의 평생 모델로 발탁 되며 연애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녀의 성장에 맞추어 스타치즈 CM을 매해 두 편 찍는다는 기획은 잔잔한 성공을 거두었고, 점차 성장하는 유우의 평범하면서도 반짝거리는 삶이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한다. 유우의 성장하는 건강한 모습이 국민 여동생으로서의 이미지에 들어 맞았던 것이다.

대규모 소속사가 유우를 픽업하고 유우는 한층 빛나는 길을 걷게 된다. 배우와 가수, 와이드쇼의 게스트를 넘나 들며 착실히 인기를 쌓아가는 유우의 앞날은 평탄해 보였다.

고3이 되자 기획사는 유우가 보통 학생들처럼 입시에 도전해 대학에 합격한다는 스토리 속의 주인공으로 만들려 한다. 하지만 뒤늦게 공부를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른 사람에게 꿈을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어깨가 뻣뻣해지던 어느 날, 유우는 우연히 TV에서 본 마사아키라는 스무살 짜리 댄서에게 반하게 된다. 그에게 빠져들어 사귀게 되고, 호텔을 드나들게 된다. 그리고 분위기에 휩쓸려 성행위를 동영상으로 남기게 되고, 결국 영상이 유출되어 유우는 연예계에서 퇴출되고 만다.

------

유우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어쩌면 와타야 리사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와타야 리사는 17세 되던 해 <인스톨>로 제38회 문예상을 최연소 수상했고, 이후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으로 권위의 아쿠타가와상 최연소 수상자가 된다.

유우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며 이름없이 잊혀질 것을 두려워한 것처럼, 작가 역시 문학이라는 세계에서 너무 화려하게 데뷔했기에 자신의 미래에 불안감을 느꼈을 법 하다.

'꿈을 준다'는 것의 꿈은 언제까지고 '타인의 꿈' 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꿈을 주는 쪽에서는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379p)

유우가 연예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내뱉은 말이지만, 최연소 문학상 수상자 타이틀에 짓눌린 와타야 리사 자신의 한탄으로도 읽힌다.

내면에 차고 넘치는 것들을 써내며 해방감을 맛 보고, 그 괄과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는 오직 기쁨만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본말이 전도 되어 두 번의 최연소 수상 타이틀이 어깨를 짓누르고, 다음에 써낼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독자, 출판사, 평단의 관심이 집중되자 이전처럼 자유분방한 이야기를 써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이후 3년 만에 내 놓은 <꿈을 주다>는 그래서, 와타야 리사 스타일의 재기발랄함과 깜찍함이 덜 한 작품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6226966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귀도 살인사건
전건우 지음 / 북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귀도는 조선시대 귀양지로 이렇다 할 물산이 나지 않는 척박한 섬이었다. 이 섬에 선비 하나가 역모죄로 귀양을 왔다. 선비는 뜻밖에도 섬에 애정을 갖고 생활했다. 그는 섬의 부를 늘리고 백성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산에서 물길을 끌어오는 한편, 염전을 일구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선비에게 감읍하며 고마와했다. 하지만 얼마 후 의금부 도사가 들이닥쳤다. 도사는 선비가 또 다시 역모를 꾸몄다고 했다. 도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직접 선비를 처형하여 역모와 관계 없음을 증명하라 했다. 마을 사람들은 주저했지만 박가라는 자가 나섰다. 선비는 박가의 도끼질로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그리고 "불귀도에 발을 들여놓은 자 피를 토하고 죽으리라!"는 저주를 남긴다.

그 불귀도에 태풍이 몰아치기 직전, 외지인들이 방문한다. 동생 유현이 섬노예로 끌려갔을 거라 짐작하여 찾으러 나선 유선, 섬 생활을 취재한다고 했지만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어 보이는 PD 정우와 리포터 현정, 낚시꾼이라고 자처하는 사내 셋, 그리고 열혈순경 동주와 세상에 닳고 닳은 그의 상관 만철.

태풍이 거세져 섬이 외부로부터 고립된 직후부터 시체가 발견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처음에 발견된 여성의 시체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어쩐지 쉬쉬하는 태도를 보인다. 순경인 동주는 사건을 정식으로 처리하려 하지만 이장을 위시한 마을 사람들과 상급자 만철은 사건을 덮으려 한다.

하지만 이후 마을 원로 두만의 석연치 않은 자살, 제초제 메소밀에 의한 대량 살해 시도와 일부 주민의 사망, 동네 건달 강두의 죽음 등 사건이 잇따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 옛날 불귀도에서 한을 품고 죽어간 선비가 산발귀가 되어 모든 마을 주민을 몰살하려는 것이라며 패닉에 빠진다.

고립된 섬에서 여전히 계급사회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섬 사람들의 비밀은 무엇일까? 사람이 죽어갈 때마다 옛날 그 양반의 죽음과 산발귀를 들먹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25년 전 마을사람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된 권가 가족의 이야기가 수면에 떠오르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

작가 전건우는 2008년 <선잠>으로 데뷔한 후 공포, 미스터리 장르 소설을 쉴 새 없이 생산하고 있다. 작가 스스로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익숙하지만 너무 재미있어 끝까지 읽게 되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집중" 하고 있다고 밝히는데, 장르 소설가로서 자림매김이 확고하다.

<불귀도 살인사건> 역시 요코미조 세이시의 아류작이라 해도 할 말 없을 정도의 익숙한 컨셉과 전개를 보여준다.

범인은 25년 전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던 전가의 아들로 현재는 PD가 된 정우이다. 마을 사람들이 대마초를 재배하는 것에 반대하다 부모가 비참하게 살해당한 데 대한 복수극인데, 소소한 반전이라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유선의 동생을 사주하여 물에 메소밀을 타게 했다는 점 정도다.

오디오북으로 장거리 운전할 때 시간 떼우기에 괜찮을 법한 작품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6212647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픔의 비의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김순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와카마쓰 에이스케는 문학평론가로 1969년생이다. 게이오대학 불문학과를 졸했고, <오키 야스오와 그 시대, 구도의 문학>으로 제14회 미타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는 2015년 1월 8일부터 6월 25일까지 매주 목요일 니혼게이자신문 석간에 25회에 걸쳐 게재된 글들이다. 아내를 잃은 깊은 슬픔과 소회, 시와 소설로 부터 건져낸 슬픔에 관한 상념 등을 따뜻한 필치로 써내려간 이 에세이는 <무소유>, 이승우의 <생의 이면> 등을 일본에 소개한 김순희가 번역했다.

우리가 말을 하려는 것은 전하고 싶은 뭔가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 가슴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온몸에 충만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말에 가장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9p)

인생에는 슬픔을 겪어야만 열리는 문이 있다. 그러므로 슬퍼하는 사람은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자들일지도 모른다.(12p)

인생의 기로라고 부를 만한 사건은 그것이 자신에게 아무리 강렬했다 하더라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 모든 것이 우리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난 나만의 '사건'이기 때문이다.(19p)

무언가에 대해 진심으로 알고 싶다면 마음속에 무지의 방을 만들어야 한다. '알았다'고 생각한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탐구를 계속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29p)

진정으로 타인과 공감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혼자라고 느꼈을 때 비로소 타인이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38p)

생각하는 것은 안이한 답변에 안주하지 않고 흔들리는 마음으로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진정한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47p)

태연한 듯 보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헤아릴 수 없는 비통함이 숨겨져 있다..슬픔에 빠진 사람들은 오히려 눈물을 흘리면서 울지 않을지도 모른다...슬픔을 겪어야만 보이는 것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58p)

인생의 의미는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소박한 말이지만 우리는 매번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머리로만 생각하기에 절망에 빠지는 것이다.(65p)

읽는다는 것은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글로된 말은 언제나 읽는 행위를 통해서만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생명을 부여받기 때문이다...읽는다는 것은 말을 탄생시키는 일이다.(94p)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헤어지는 내 영혼보다

나 없이 침상에서 잠들어야 할 그대가 더 슬프다(106p, 고금와카집 中)

* 병이 든 아내가 남편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죽는 자신보다, 남겨질 남편의 슬픔을 걱정한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게 아니다. 반대로 글을 쓰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발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쓴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글자로 옮기는 행위라기보다 쓰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인생의 참뜻'을 인식하게 되는 경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165p)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6200958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간지점의 집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5
엘러리 퀸 지음, 현재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뉴욕과 필라델피아 중간지점에 있는 트렌턴의 허름한 오두막에서 한 사나이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의 이름은 조셉 윌슨, 직업은 외판원이었다. 남자의 아내는 루시 윌슨이었고, 그녀의 오빠 윌리엄 에인절은 변호사이자 엘러리 퀸의 친구였다.

그런데 실의에 빠진 이들 앞에 뉴욕에서 날아온 일단의 무리들이 뜻밖의 주장을 펼친다. 살해된 남자의 이름은 조셉 켄트 김볼이고, 제시카 보든 김볼의 남편이라는 것이다. 보든 가문은 대단히 부유한 집안이었고, 상원의원 등 유력한 사람들과 친밀했다.

결혼증명서를 따져보니 남자는 루시 윌슨과 먼저 결혼했고, 나중에야 제시카 보든과 결혼한 것으로 밝혀졌다. 첫 번째 결혼은 사랑에 의해서, 두 번째 결혼은 야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결국 살해된 사나이는 필라델피아에서는 조셉 윌슨이라는 이름으로 허름한 외판원의 삶을 살고, 뉴욕에서는 조셉 켄트 김볼이라는 이름으로 부유한 상류층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필라델피아와 뉴욕의 중간지점인 트렌턴의 집은 각각의 삶으로 변신하기 위한 일종의 아지트였던 셈.

현장 검증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밝혀진다.

  1. 조셉 윌슨(=조셉 켄트 김볼)은 최근 100만 달러의 생명보험 수익자를 뉴욕의 아내 제시카 보든에서 필라델피아의 아내 루시 윌슨으로 변경했다.

  2. 보험수익자를 변경한 사실은 내셔널생명보험회사의 중역이자 제시카 보든을 짝사랑하는 그로브너 핀치라는 사람만 알고 있다.(그로브너 핀치의 주장)

  3. 보험 수익자 변경 후 조셉 윌슨(=조셉 켄트 김볼)은 자신의 중혼 사실을 필라델피아쪽 처남인 윌리엄 에인절과 뉴욕쪽 의붓딸인 앤드레 김볼에게 고백하려고 마음 먹었다. 이에 전보를 보내 트렌턴의 오두막으로 21시에 와달라고 요청한다.

  4. 먼저 도착한 것은 앤드레 김볼이었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서 드라이브를 갔다가 다시 오두막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때 쓰러져 있는 조셉 윌슨(=조셉 켄트 김볼)을 발견하고 사망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뒤통수를 후려쳐 기절했다가 깨어난 뒤 부랴부랴 차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간다.

  5. 앤드레 김볼이 차를 타고 빠져나가는 순간 윌리엄 에인절이 오두막에 도착한다. 그 역시 쓰러져 있는 조셉 윌슨(=조셉 켄트 김볼)을 발견하는데 그는 거의 숨이 끊어지려는 상태였다. 그는 범인이 베일을 쓴 여자라고 말한다.

  6. 범행에 사용한 흉기는 페이퍼나이프였는데, 이 페이퍼 나이프 끝에는 불에 탄 코르크 조각이 끼워져 있었다. (펜이 없어 글씨를 쓰기 위함으로 추정. 나중에 앤드레를 협박한 쪽지에 글씨를 썼던 것으로 밝혀짐) 아울러, 페이퍼 나이프에서는 뉴욕의 아내 루시 윌슨의 지문이 묻어 있었다. 루시 윌슨은 그 페이퍼 나이프는 남편과 자신이 함께 고른 선물로 오빠 윌리엄의 생일 날 주기로 했다고 주장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음.

  7. 재떨이에는 성냥 스무개가 남아있었는데, 담배꽁초나 담배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중에 앤드레가 밝힌 바에 따르면 처음에는 6개, 두번째는 20개였다고 함.

  8. 이런저런 목격자 진술과 조사 끝에 범인이 탔던 것으로 여겨지는 자동차는 루시 윌슨의 것이었고, 그녀는 알리바이를 댈 수가 없었다. 루시는 자동차가 도난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이것 역시 받아들여 지지 않음.

이상의 사실을 바탕으로 재판이 이뤄지는데 윌리엄 에인절이 혼신의 힘을 다해 변호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루시 윌슨으로 확정되고 만다. 윌리엄 에인절은 앤드레 김볼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그녀가 무언가 숨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그녀 역시 범인일 수 있다는 뉘앙스까지 담아 증인 신문을 진행한다. 하지만 배심원 중 두어 명이 뉴욕쪽에 매수된 것인지 그들의 강력한 주장과 설득으로 판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과연 엘러리 퀸은 루시 윌슨을 가리키고 있는 이 모든 증거들을 뒤집고 진범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다음은 엘러리 퀸은 이 사건에서 누가 살해되었는가? 다시 말해 범인은 뉴욕의 조셉 켄트 김볼을 살해한 것인가, 아니면 필라델피아의 조셉 윌슨을 살해한 것인가가 사건해결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성냥개비가 6개였다가 20개가 된 사실 등 핵심 단서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새로운 추리를 내놓는다.

  1. 범인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이다. (루즈를 펜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음에도 거기에 생각이 미치지 못함)

  2. 범인은 파이프 담배를 피운다.(성냥을 6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꽁초가 없음)

  3. 범인은 성냥갑을 챙긴 것으로 보아 거기에 범인을 특정하는 사항이 담겨 있었을 것.(20개를 사용했으므로 성냥갑은 비어있어서 챙길 필요가 없음)

  4. 범인은 김볼과 윌슨 부인 두 사람 모두에게 범죄 동기를 가지고 있는 자(중간지점에서 살해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5. 범인은 필기구가 없었거나, 필기구가 자신과 연관될 특징이 있었을 것(굳이 힘들여 코르크를 때워 글씨를 썼음)

  6. 범인은 뉴욕쪽에 속할 것(루시를 모함했으므로)

  7. 범인은 앤드레에게 호의를 갖고 있음(그녀를 위협하기만 함)

8. 범인은 오른손잡이

9. 범인은 김볼이 보험금 수익자를 바꾼 사실을 알고 있음(범인의 중혼 사실을 눈치챘다는 사실도 중요)

이상의 논리적 귀결로 진범은 그로브너 핀치였음.

엘러리 퀸은 이웃사촌 이었던 프레드릭 대니와 맨프레드 리의 공동 필명이고, 소설 속 탐정의 이름이기도 하다. 독자에의 도전(막간의 도전)을 자주 활용하는 등 공정한 게임을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도전'이 삽인된 마지막 작품이다.

본작의 원제는 Halfway House(1936)이며, 중간의 집(시그마 북스), 도중의 집(자유추리문고)으로도 번역되었다. 동서문화사판은 1977년 초판 발행되었는데 이 판본에는 J.J.맥의 서문이 첨부되어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원제가 '스웨덴 성냥의 비밀'과 같은 국명 시리즈가 될 수도 있었다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6198435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