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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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이는 어머니 곁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고향을 지켜 낸 이부동생이다. 그런데 왠일인지 주인공 '나'는 모친의 죽음에 걸맞는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내'가 드러내는 감정은 굳이 따지자면 귀찮음, 짜증, 당혹스러움에 가깝다. 아우는 그런 '나'를 달래가며 시신을 염습하고 장례를 치르고 유골을 뿌린다.

아우가 인도하는 대로 '나'는 과거로 조금씩 이끌린다. 동네에 하나 뿐이었던 중국집, 방학이면 머물던 외삼촌의 집, 어머니가 일하러 다니던 권씨 댁. 그곳들을 하나 하나 방문하는 동안 '나'는 어느덧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두 번의 결혼을 호적 변경도 없이 치르고 큰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평생 간직하고 살다 가신 어머니, 사촌누나로 알고 지냈지만 사실은 친누나였던 애숙이 누나, 어렸을 적 유일한 친구였던 정태 등을 떠올리는 동안 '나'는 '내' 안의 무언가가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머니의 뒤늦은 재가로 인해 받은 상처, 새아버지로 부터 받았던 정서적 학대, 월사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따돌리고 폭행했던 학교 선생에 대해 복수하는 길은 멀고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라 굳게 믿고 고향을 향한 문을 꼭꼭 걸어둔 채 화해의 손길을 거부하던 '나'의 마음은 어느덧 조금씩 슬픔으로 화하며 풀려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불평없이 받아들인 죽음, 그리고 귀향과 회상. '나'는 고향을 떠나 배웠다고 생각했던 눈부신 형용과 고결한 수사 들은 허세에 불과했음을, 어머니가 내게 주었던 것은 가난과 학대의 기억이 아니라 자유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소설은 새벽 세 시에 아우로 부터 전화가 걸려오면서 시작한다. 오랜 타관 생활 끝에 고향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귀향. 전형적인 귀향형 소설의 설정과 전개에도 불구하고, 거장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허투루 읽어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삶의 비밀을 들여다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말들의 울림이라고 해야할지, 극심한 고통의 시기를 견디고 초극의 경지를 맛본 이가 풍기는 고요한 분위기라고 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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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규제자 염소자리 아스트로크리미스 범죄소설 3
군터 게를라흐 외 지음, 강병창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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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일 아이히보른 출판사가 기획한 아스트로크리미스(Astrokrimis) 시리즈는 독일을 비롯한 세계 70여 명의 작가들이 12개 별자리에 관해 쓴 소설을 모은 범죄소설 총서이다. 각각의 별자리는 다음과 같은 별칭을 갖고 있다.

죽음의 활화산, 양자리(3.21.~4.20.)

무정한 폭군, 황소자리(4.21.~5.20.)

위험한 이중인격자, 쌍둥이자리(5.21.~6.21.)

간교한 형식주의자, 게자리(6.22.~7.22.)

잔인한 승부사, 사자자리(7.23.~8.23.)

냉혹한 현실주의자, 처녀자리(8.24.~9.23.)

야누스의 얼굴, 천칭자리(9.24.~10.23.)

비밀스러운 처세꾼, 전갈자리(10.24.~11.22.)

오만한 사냥꾼, 궁수자리(11.23.~12.21.)

냉정한 규제자, 염소자리(12.22.~1.20.)

어두운 자유주의자, 물병자리(1.21.~2.19.)

불안정한 신비주의자, 물고기자리(2.20.~3.20.)

작품집에는 총 여섯 편이 실려 있다.

<킬레> - 군터 게를라흐

잘 팔리지 않는 소설작가이자, 빈집털이범인 '나'는 연인 킬레가 점성술사이자 예언가를 자처하는 쿠르트 마이어-슈타인에게 빠져 정상적인 판단을 못하자 그의 집을 털기로 결심한다. 만약 그가 빈집털이를 당한다면 자신의 미래조차 예언 못하는 머저리라는 것이 입증될 뿐 아니라 킬레가 가져다 바친 돈도 되찾아오게 될 터였다.

하지만 빈집털이에 성공한 직후 점성술사가 누군가에게 습격 당하고, '나'는 얼떨결에 킬레와 함께 점성술사를 찾아 갔다가 점성술사와 동성애인의 화해를 주선하게 된다.

<내부감사실> - 알무트 호이너

은행 외부감사실의 그로페가 엘리베이터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시체는 단 한 차례의 가격으로 두개골의 손상을 입어 사망한 것으로 보였고, 단정한 상태로 앉혀져 있었다.

범인은 내부감사실의 이베쉬였는데 그녀는 은행 내부에 걸린 그림의 복제본을 만들어 빼돌리다가 우연히 그로페에게 발각되자 주저없이 살해한 것이다.

<우린 경찰이었어> - 로베르트 브라크

페너-와-파울이 친구 막스에게 자신이 협박 당하고 있다면서 도와달라고 한다. 막스는 기꺼이 돕겠다고 나선 뒤 협박범이 돈을 찾아가는 시점을 노려 총기로 제압하고 몽둥이 찜질까지 안겨준다. 이렇게 해서 유쾌한 몰카를 찍어보려던 방송국 사람들은 혼찌검이 나게 된다.

<정원의 염소> - 아만다 크로스(캐롤린 하일브런)

이웃의 80 넘은 파르시와 50대 후반의 '나'는 매우 절친한 사이다. 그녀의 의붓자녀가 자신을 정신병자로 몰아 재산을 빼앗으려 든다는 것을 전해들은 '나'는 '재산상의 변동을 가져오지 않는 결혼'을 친구로서 제안한다. 파르시가 이를 받아들이자 의붓자녀 중 아들과 며느리는 찾아오지 않게 되었고, 딸과 그녀의 여자친구는 예전처럼 주말마다 찾아왔다. 그의 정원에 찾아온 염소와 염소자리 별자리는 이번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다.

<카프리코르노 피자> - 에디트 크아니플

사냥꾼 제프 후머는 자신의 여자친구 로제마리 게반트탈러가 또 다른 사냥꾼 알로이스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눈치 챘으면서도 그녀가 아무일도 없었다고 강력히 주장하자 그녀와 결혼하기로 한다.

그후 제프는 알로이스를 사냥 중 사고를 가장하여 살해한다. 하지만 로지의 뱃 속 아이가 알로이스의 아이였기 때문에,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임신기간 동안 로지가 매우 뚱뚱해졌기 때문에, 제프는 또 다른 여인 구스틀과 관계하게 되고 결국 쌍둥이를 낳게 된다. 얼마 후 제프는 사고를 당해 사망하고(로지가 도와줬더라면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버림받은 로지는 자살을 기도하다 만난 또 다른 연인과 카프리코르노 피자 가게를 열어 행복하게 산다. 카프리코르노는 이탈리아어로 염소자리라는 뜻이다.

<동물의 왕국에서 벌어지는 삶과 죽음> - 프랑크 고이케

오페레타의 프리마돈다 도를레 칠러는 60이 넘은 나이임에도 실력과 정렬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불행하게도 과년한 딸이 있었고, 그녀는 생활력도 없는 주제에 아버지 없는 아이까지 임신한 뒤 그녀의 수입에 기생해 살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도를레 칠러는 각종 법의학 서적을 탐독한 뒤 완벽한 유아 살인을 계획한다. 계획은 성공하고, 딸은 정신병에 걸려 입원하게 된다. 도를레 칠러는 늦은 나이에 오페라 <투란도트>의 연출과 프리마돈나 역을 거머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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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 개정2판
장 지오노 지음, 최수연 그림, 김경온 옮김 / 두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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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은 장 지오노가 1910년대에 오트 프로방스 고산지대를 여행하다 우연히 만난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이 떨어져 곤란을 겪는 장 지오노에게 그는 자신의 오두막으로 데려가 물과 음식, 그리고 휴식할 공간을 제공했다.

사내의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였고, 나이는 쉰 다섯이었다. 양을 치면서 개와 함께 단순한 삶을 사는 그는 황무지에 나무를 심었다. 그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그곳의 땅이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달리 해야 할 중요한 일도 없었으므로 그런 상태를 바꾸어 보기 위해 그는 나무를 심었다.

얼마 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장 지오노는 5년 동안 보병으로 복무한 뒤 다시 황무지로 갔다. 그곳은 아무런 기술적인 장비도 갖추지 못한 오직 한 사람의 영혼과 손에 의해 숲이 되어 있었다. 장 지오노는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느님처럼 유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20년 이래 장 지오노는 1년에 한 번씩 엘제아르 부피에를 찾아갔다. 그는 실의에 빠지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의심을 품지 않고 나무를 심어 나갔다.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 시기 잠깐 위기를 겪은 외에는 계속 숲이 확장되었고, 수자원이 복원되어 생태계가 활성화되었으며, 사람들이 마을을 이뤄 살게 되었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1947년 바농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삼체> 1권에서 황무지에 나무를 심는 에반스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 인물에 영감을 준 것이 <나무를 심은 사람>의 엘제아르 부피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확고한 신념으로 일을 추진해 가는 에반스와 달리 엘제아르 부피에는 매우 단순하고 소박한 믿음으로 나무를 심는다. 1953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발표되고 1954년 책으로 출판된 이후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문학작품으로서, 환경·생태 교육 자료로서 읽히는 이유가 어쩌면 그 '소박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의 의도가 소박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상상을 더해볼 여지가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작품의 판화는 마이클 매커디의 작품인데 어딘지 모르게 그로테스크해서 글의 분위기와 성기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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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레스 공항을 떠나며 - 한말숙 소설선집
한말숙 지음 / 창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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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덜레스 공항을 떠나며>는 2002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911 테러 직후 미국에 사는 딸의 집에 방문하는 노년 여성의 이야기다. 교수인 남편이 미국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초청되어 주최측으로부터 비즈니스석 티켓을 제공받는다. 화자 본인도 잘 사는 사위가 티켓을 끊어주어 미국 나들이를 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911 테러 직후라 시국이 어수선해 화자는 갈까 말까 망설인다. 고심 끝에 가는 것으로 결정한 뒤 미국 가서 잘 먹고 쉬고 나니 문득 미국 오는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이 텅텅 비었던 것이 떠올랐다. 비즈니스석 티켓을 싼 이코노미석으로 바꾸고 빈좌석까지 넓게 이용할 생각에 뿌듯해하는데 막상 덜레스 공항에 가보니 이코노미석 줄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를 탄 뒤 홀로 똑똑한 체를 하다가 고생하게 된 점, 과거 해외 여행을 하려면 겪어야 했던 불편들, 남편과 둘이 유학하던 당시의 에피소드, 한국의 위상이 한층 올라온 것에 대한 소회 따위를 떠올리다 보니 인천에 무사히 도착했고, 갔다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데뷔작 <신화의 단애>는 1957년 작품이다. 미술대학생 진영은 며칠 전 방세를 밀려 화구 일체를 빼앗기고 집도 없이 떠돌고 있다. 며칠 몸을 팔아 생활비를 벌 생각을 하기도 하고, 같은 과 남학생의 집에 신세를 지기도 한다. 우연히 얻어걸린 놈팡이에게서 큰 돈을 받게 된 진영은 남자가 빌린 호텔에서 고흐의 소묘집을 보고, 위스키를 마시며 실존을 재확인한다. 마음이 있는 경일에게 사랑한다고 써보내려다 그저 보고싶으니 어서오라고 편지를 끝냊은 진영은 베드에서 일어나 창가에 스케치북을 들고 앉는다. 창밖은 밤이었고 무수한 불빛이 어둠 속에서 별빛처럼 명멸하고 있었다.

이밖에 미국에 여행갔다가 현지 교인들과 함께 병문안을 가서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 <이준씨의 경우>, 전쟁통에 헤어진 쁘띠부르주아 서울대 출신 청춘남녀의 재회를 그린 <초콜릿 친구>, 외국인과 결혼하려는 자녀 문제를 소재로 쓴 <사랑에 지친 때>, 중년 여성화가의 정념과 욕망의 변화를 관찰한 <여수>, 어린딸이 사경을 헤매자 신에게 기대었다가 딸이 회복되자 신과 적당히 타협하는 <신과의 약속>, 호상을 치룬 집안의 소소한 풍경을 다룬 <행복>, 거문고만 탈줄 알지 여성과의 관계나 돈에는 숙맥인 가인을 다룬 <광대 김선생>, 갓 결혼한 젊은 사내가 홍수통에 살림에 도움이 될 것을 건져내려다 죽다 살아난 뒤 새색시 품으로 돌아오는 <장마>, 노파와 고양이를 내세워 스냅샷을 보여주는 <노파와 고양이>가 실려 있다.

딱히 와 닿는 작품이 없다. 초기 작품은 실존주의의 겉껍질을 다소간 건드리며 삶의 비의를 해석해보려는 시도라도 보이지만, 중기 이후의 작품은 그저 가벼운 터치로 중산층의 삶의 편린을 드러낸 뒤 적당한 감상을 곁들이는 식이다. 라디오 사연으로 소개될 법한.

한말숙은 1931년생으로 출생지는 경남 사천으로 알려져 있다. 책 날개에는 서울로 표기되어 있으나, 아버지 한석명이 일제시대 경찰 간부를 지내다 사천군수를 지낸 이력이 있으니 아마 사천이 맞을 것이다. 오빠 한복 역시 일제시대에 판사를 지낸 인물인데 부자가 나란히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언니는 소설가 한무숙이고, 남편은 국악인 황병기다.

아버지와 오빠의 화려한 친일 이력 덕택에 대단히 윤택한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며, 전쟁통에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했다가 1955년에 졸업을 했다. 소설가 박완서와 대학 동기로 친한게 지냈다 한다.

1957년 단편 <신화의 단애>로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김동리와 이어령이 작품의 실존주의 여부를 두고 신문지상에서 일주일간 논쟁했다 한다.

50년 이상을 소설을 썼으며 1993년 <아름다운 영가>로 노벨문학상 추천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이러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평단의 평가는 인색한 편이다.

<덜레스 공항을 떠나며>에는 1957년부터 2005년 사이 발표된 소설 중 작가가 선별한 작품을 모아놓은 선집으로, <여수>를 제외하고 모두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영문단편선으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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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 - 여자들에 대한 글쓰기
캐롤린 하일브런 지음, 김희정 옮김 / 여성신문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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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린 G.하일브런은 미국 컬럼비아대 영문학과 교수로, 문학평론가이자 미스터리 소설 작가이다. 미스터리 소설은 아만다 크로스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는데, 주인공 케이트 펜슬러의 직업 역시 영문학 교수다.

1988년에 발표된 본 작품의 원제는 여자들에 대한 글쓰기(Writing a Woman's Life)인데 2002년 국내에 번역·소개되면서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이라는 가정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 나온다. 만약 셰익스피어에게 재능 있는 누이가 있다면, 그녀 역시 셰익스피어만큼 문학에서 성취를 이뤄낼 수 있었을까? 그녀는 교육받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원치 않는 남자에게 시집가도록 강요받지 않았을까? 그녀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다 매를 맞고 런던으로 도망친 후 연극을 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남성들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조롱 받다가, 누군가에게 겁탈 당한 끝에 임신한 채 자살하고 만다. 이것이 당시 유럽에서 천재적인 여성이 걷게 될 인생 행로였을 것이다.

작가는 책은 서문에서 낸시 밀러의 말을 인용한다.

비관습적인 삶을 글로써 정당화하는 일은 다시 한 번 원죄를 저지르고, 다시 한 번 남성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된다.

성서에서 하와가 아담을 꼬드겨 선악과를 먹게 하고 이로써 인류가 원죄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여성에게 근원적 죄의식을 심어준다. 이러한 신화는 반복적으로 남성들에 의해 공고화되고,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

여성은 '셰익스피어의 누이' 처럼 사는 것이 관습적이고 도덕률에 합치되는 삶이라는 신화에 '비자발적 동의'를 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굴레어서 벗어나기 위한 생각과 글쓰기는 또 다른 '원죄를 저지르는' 행동으로 취급된다.

이런 이유로 너무나 오랫동안 '익명성'은 여성을 표현하는 데 걸맞는 단어였다. 욕망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 자기 삶을 자율적으로 통제하려는 욕구의 표현이 여성에게 금지되었으며, 그 결과 여성들은 분노를 감추기 위해 '어린시절에 대한 노스텔지어'라는 가면 뒤로 숨거나, 우울증에 빠지거나, 미쳐버림으로써 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여성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발명되든가, 발견되든가, 아니면 다시 쓰여야 하는 것이다.

1장

여성들은 침묵 속에서 절망할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그들 자신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 한. - 샌드라 킬버트

이 장에서는 조르주 상드와 버지니아 울프, 조지 엘리엇, 샬럿 브론테의 삶과 작품에 대해 다룬다. 그녀들은 스스로를 일상의 삶에서 '여성' 이라는 그릇에 담겨져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가길 거부하고, 여성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들에 대해 비판했다.

그 결과 동시대 작가 플로베르는 조르주 상드에게 '아, 당신의 제3의 성이지요' 라는 말로 상드를 불렀고,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셰익스피어의 가상의 누이'가 누렸을 법한 삶을 이야기했으며, 조지 엘리엇은 내러티브가 없는 여성의 비참함을 이야기했다. 또, 샬롯 브론테 역시 출판업자에게 "저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며 다만 작가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여성은 언어가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고 남성의 언어를 베끼는 일을 멈출 필요가 있다. 권력에 대한 여성적 충동이라고 이름 붙인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텍스트를 발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은 여성이 자신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집단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2장

삶은 도로시 세이어스에게서 만족스러운 감정 교류와 성적 관계, 그리고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가져다주는 평범한 인간적 경험을 거의 다 빼앗아갔다. 그녀가 지성의 세계에 의지할 수밖에 없없던 것도 당연하다. - 제임스 브라바존

도로시 세이어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여 1등으로 학위를 받은 중세 문학자인 동시에, 피터 윔지 경에 이어 해리엇 베인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탐정소설을 써서 대단한 인기를 얻은 작가다. 그녀의 삶은 여성에게 결혼을 요구하고 결혼생활과 그 결과물인 아이들을 여성 삶의 절대 중심 세계임을 강조하는 결혼이라는 플롯을 벗어나 직업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조건에 무의식적으로 '빠져드는' 여성의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하지만 그녀의 글쓰기도 물론 한계가 있다. 구약의 하느님처럼, 세이어스는 피터 윔지를 먼저 창조한 뒤 여성 인물 해리엇 베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해리엇 베인을 유지해 나가는 데 실패한다.(해리엇 베인은 결혼하면서 경력이 단절됨)

한 사회의 문제를 변명하는 사람이 되긴 쉬워도, 그 사회를 미묘하게 전복시키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3장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오십 세가 다 되었을 것이다. - 맥신 쿠민

이 장에서는 1923년에서 1932년 사이에 태어난 여성 시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면서 여성이 최초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순간을 연구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여성에게 영감을 준 사람은 가부장제의 대표인 아버지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어머니는 여성의 변화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어머니들은 딸을 깨닫지 못한 상태 속에 남겨둔다. 이는 자신의 롤 모델을 어머니로부터 찾기 어려운 시기의 페미니스트가 아버지와의 관계 정립에서 고통 받는 상황인데,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라는 말과 '중요한 것은 권력의 문제'라는 말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균형적인 세계관이 전제되지 않을 때 모든 것을 극한의 남녀대립으로 이해하고 조악한 투쟁에 매몰되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아가리로 빨려들어갈 위험이 있다고 생각된다.

4장

여성은 절대 돈 키호테가 될 수 없다고들 말한다. 주변에서 우리가 매일 듣는 이야기는 환상에 빠지는 이야기들뿐이다. - 레이첼 브라운스타인

이 장에서 캐롤린 하일브런은 결혼생활에 대해 분석한다. 대개의 경우 결혼은 남성에게 편한 것이다. 여성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독립을 성취하고 모성 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될 경우에나 결혼 패턴이 변화를 보일 가능성이 생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부성적 역할과 모성적 역할로 구분해 나누는 한 결혼은 절대 새로운 것으로 거듭날 수 없다.

여성이 제정신을 가지고 낭만을 끝까지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낭만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연인과의 결혼은 치명적이다. 연인은 남편감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남편은 연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연인과 남편을 한 사람 속에서 찾으려는 강박증은 어떤 환상보다도 여성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

연인을 남편으로 삼을 수 있다는 환상은 가부장제에 의해 조심스럽게 확대되어 왔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에게 결혼관계 밖에서 연인과 함께 하는 삶을 감히 꿈꾸었다는 이유로 소외 당하는 벌을 내린 것도 그런 맥락에서 설명된다.

캘롤린 하일브런은 여기서 더 나아가 결혼이라는 미궁 속으로 가는 길의 열쇠가 성적 매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열쇠인 경우는 거의 없으며, 스탠리 캐블의 말을 인용하며 훌륭한 결혼은(균형잡힌) '다시 결혼하기' 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스탠리 캐블은 "이미 결혼한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결혼할 수 있다" 라고 주장한 바 있다.

5장

애정이란......영향을 끼치고 내 뜻을 따르게 하고 마음을 움직여 감동시키는 것이며, 또 어떤 여자에게서 영향받고 그 뜻을 따르고 마음이 움직여 감동받는 것을 의미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것을 "내 상상력에 불을 지르는 것은 여자들뿐이다"라고 표현했다. 울프는 이렇게 덧붙였을지 모른다. "여자들만이 나를 행동하게 하고 힘을 갖게 만든다"고. - 재니스 G.레이먼드

이 장에서는 이디스 워튼에 대해 언급하며 우정을 테마로 전개된다. 남성의 우정이 권력의 영역에서 공명하는 반면, 여성의 우정은 대게 언급조차 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조롱당하고 하찮게 여겨지고 잘못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대게의 경우 남성들은 친밀감을 모른다. 특히 공적인 영역에 불행한 영향을 크게 끼친 남성들은 분명히 알지 못한다. 이는 유태-기독교 전통의 한 이상으로 간주되는 남성다움이란 전사가 되는 것이고, 양육이나 따스한 애정 같은 '좀 더 부드러운' 미덕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남성에게는 전통적으로 문화가 지정해준 양육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 역할을 본인이 수행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도 있다.

두 사람이 공적 영역 안에서 일에 대한 놀라운 에너지를 공유하는 여성의 우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6장

마릴린 먼로는 여성의 화신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성의 화신이 되도록 훈련받는다. - 글로리아 스타이넘

여성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분신을 창조하고, 이를 통해 여성의 운명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든다. 한편, 필명이나 익명성에서 자신의 글에 대한 진가를 정당하게 평가받고 샢어 한다.

여성작가는 '자기만의 방'과 심리적 공간을 찾고자 하며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자아를 창조하려 한다.

낸시 밀러는 <여주인공의 텍스트 The Heroine's Text> 에서 소설 속의 여성들에게 가능한 두 가지 종착역은 죽음과 결혼뿐이며, 그것이 대게 같은 장소라고 주장한다.

7장

진보적인 젊은 여성들이 세파에 길들여질 수는 있을지 모르나, 나이 든 진보적 여성들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이 지구상에 없다. - 도로시 세이어스

사회가 여성을 배제시켜 왔다는 생각을 표현하기로 결심하면서 버지니아 울프는 두 가지 중요한 장애물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첫째는 여성에게 강요된 운명에 분노를 표시하는 사람들에게 가부장적 사회가 퍼붓는 조롱과 비참함, 불안감이었다. 두 번째 장애물은 그녀 자신 속에 있었는데 문학에서 예술과 선전을 구분하는 문제였다.

최근의 소설들은 여성이 노년에 느끼는 일종의 자유로움을 과감히 다루기 시작했는데, 변화된 여성의 삶에서 웃음이 나타날 때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여성들이 함께 모여 웃는 것이야말로 통찰과 사랑과 자유를 드러내는 표시이며, 또 그것에 대한 자발적인 깨달음이다.

여성이 함께 웃을 수 있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하며, 독립과 여성의 결속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 웃음이 있을 때 환상과 백일몽이 끝난다.

'~가 된다면', '~한다면' 하는 식으로 어떤 일이 정착되고 완전히 정리되면 만족을 얻을 것 같은 생각은 수동적 삶이 지닌 미혹이다. 완결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환상을 그칠 때, 여성을 위한 모험이 시작된다. 우리는 안정과 노년을 활용하여 위험을 감수하고, 소음을 만들고, 용기를 내어 인기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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