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자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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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출국 - 공자와 안자

소설은 기원전 571년 소공(昭公) 25년,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자신이 태어난 노(魯)나라를 빠져나와 제(齊)나라로 향하는 첫 번째 출국(出國)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때 공자 나이가 35세. 공자는 훗날 <논어>에서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해 "나는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志學), 30세에는 자립하였으며(而立), 40세에는 미혹하지 않게 되었고(不惑), 50세에는 천명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知天命), 60세에는 귀로 듣는 대로 모든 것을 순조로이 이해하게 되었으며(而順), 70세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었다(慫心)" 라고 이야기 한다.

당시 노나라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 라는 일성이 터져나올 만큼 난세였다. 임금은 소공이었으나 정치권력은 삼환(三桓)씨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어 임금은 허수아비에 불과했으며, 군대는 세 집안의 사병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노나라 소공은 제나라로 망명해 명목 뿐인 주군이었다.

이때 제나라 군주는 경공이었는데 그의 곁에는 명재상 안영이 있었다. 공자는 안영을 '남과 잘 사귀었고 오랫동안 남을 잘 공경하였다'고 평가했고, '불법(不法)의 예'란 최상의 찬사로 극찬해 마지 않은 인물이었다. 안영은 형식적인 예절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를 행할 줄 아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영이 영공(靈公)과 장공(壯公), 그리고 경공의 3대를 섬기며 뛰어난 통치술을 펼치고 있는 제나라도 사실은 퇴폐와 사치에 물들어 병든 환부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공자가 그처럼 존경하던 안영은 사실 경공과 공자의 만남을 교묘하게 방해했다. 안영은 공자를 뛰어난 사상가로서는 인정하고 있지만 정치가로는 별로 신뢰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유자(儒子)란 말만 그럴싸하게 하지 바른 규범을 지키지 못하여 알맹이가 없는 법입니다." 이것이 공자에 대한 안영의 평가였다.

반년이 지난 후 경공을 만난 공자는 '정치는 재물을 절약하는 데 있다'고 답함으로서 제나라의 근심이 사치에 있음을 밝히고, 음악을 통해 백성을 교화해야 한다는 진언을 들려준다. 하지만 안영의 지속적인 반대로 경공은 공자를 등용하지 않는다.

제나라로 망명 온 지 거의 일 년 만에 경공을 두 번째로 알현하게 된 공자에게 경공은 '정치하는 방법'에 대해서 묻는다. <논어>의 안연(顔淵)편에 그 대화 내용이 실려 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이는 공자의 정명주의(正名主義)에서 비롯된 말로, 정명이란 '명분을 올바르게 한다' 또는 '명칭(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명칭이나 명분과 꼭 맞는 올바른 상태에 있는 것이 질서의 극치'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다시 공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공을 안영은 재차 막아선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권력이 대부들에게 있지 아니하고, 천하에 도가 있으면 백성들이 혼란되지 않는다(天下有道 則庶人不義).

공자는 천자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제'야 말로 '하늘 아래의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안영은 공자의 그러한 정치철학은 현실을 무시한 보수적인 낡은 정치관이라고 생각했다. 안영은 이미 제후중심의 '지방분권제'가 도래하였음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정치를 펴고 있었던 것이다.

두번째 출국 - 노자와 공자

공자의 출생에 대해 사마천은 <사기>에서 '숙량흘은 안씨(顔氏)의 딸과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 라고 간단히 기록하고 있다. 공자는 사생아로 기원전 551년(양공 22년) 음력 8월 27일 노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郰邑), 지금의 산동성 곡부 남쪽 22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추현(鄒縣)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였는데, 키가 9척 6촌으로 매우 컸고 머리가 움푹 들어갔기 때문에 구(丘)라 하였다고 묘사된다. 사회에서 벼슬할 수 있는 계급 중 가장 낮은 신분인 사(士) 계급의 공자는 가난하고 천했으나(孔子貧具賤) 어렸을 때부터 예기(禮器)를 진열하고 놀 정도로 예에 대한 태도가 선천적이었다고 한다.

기원전 506년, 공자는 남궁경숙(南宮敬叔)과 주(周)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첫 번째 출국 이후 다시 9년 만의 출국이다. 이때 공자의 나이 46세였다.

노나라 주군 소공은 7년 동안 망명생활을 했으나 끝내 객사했고, 그 뒤를 이어 정공(定公)이 왕위에 올랐지만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이 무렵 노나라 정치는 계손씨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는데, 이 계손씨는 또한 신세력으로 대두된 양호(陽虎)에 의해 견제되고 있었다. 계환자와 양호 모두 공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므로 공자는 피곤한 처지였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공자가 존경하였던 인물로 주의 노자, 위의 거백옥, 제의 안평중, 초의 노래자가 있는데 공자는 지금 그 중 한 명인 노자(老子)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다.

어렵사리 노자를 만난 공자는 예에 대해 가르침을 달라고 청한다.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를테면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감추고 있어 얼핏 보면 점포가 빈 것처럼 보이듯 군자란 많은 덕을 지니고 있으나 외모는 마치 바보처럼 보이는 것일세. 그러니 그대도 제발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도 잘난 체하는 말과 헛된 집념을 버리라는 말일세."

공자는 노자와 만난 후 '제자들에게 '노자는 마치 용과 같은 분이셨다', '내가 알기로는 노자는 모름지기 무위의 도를 닦는 분인 것 같다' 라고 말했다 한다. 노자가 쓴 유일한 경서 <도덕경>의 첫 구절이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로 시작하고 있다. 예에 대한 질문에 노자는 무위의 도를 이야기한 것이고, 공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를 잡고 물고기를 낚는 인간사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고 항변한 것이다.

공자에게 있어 도란 사람이면 반드시 통과하여야 할 문(門)이라면, 노자에게 있어서 도는 통과해야 할 문조차 없는 무문(無門)이라고 보았다. 불교에서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내는 대도무문(大道無門)과 어찌보면 일맥상통한다.

황금시대

기원전 501년, 노나라 정공 9년 공자는 마침내 중도재(中都宰)란 벼슬로 오랫동안 꿈꿔왔던 정치에 뛰어들게 된다. 이때 공자의 나이 51세였다.

공자는 상대적으로 강대국인 제나라의 위협과 견제에 맞서 여러가지 활약을 펼쳤고 이 덕분에 육경 중 하나로 국토를 다스리는 사공(司空), 이후 형옥을 관장하는 사구(司寇)의 벼슬까지 오른다.

공자는 '위정자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제대로 되고 위정자 자신이 올바르지 못하면 명령을 내려도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라며 백성들의 다툼은 너그럽게 처리하고 권신의 위법은 추상과 같이 엄격히 처분했다.

일 년 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재상인 대사구(大司寇)에 올랐다. 정치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펼친 공자는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삼환씨의 세력을 제거하고 노나라의 임금인 정공을 중심으로 한 정권의 회복과 군사력의 통일을 꾀하고자 했다.

그러나 51세에 중도재가 된 이래 55세에 대사구로서 재상의 일을 겸직하는 5년의 황금기는 전혀 뜻밖의 일로 끝나게 된다.

당시 제나라는 명재상 안영이 죽고 여서가 경공을 보필했다. 공자의 활약으로 노나라가 차츰 부강해지자 경공은 노나라에 땅을 떼어주고 화친하려 했다. 하지만 여서의 생각은 달랐다. 여서는 자신이 직접 아름다운 여인 80명을 골라 뽑고 좋은 말 120필을 골라 노나라 정공에게 선물로 보냈다.

<논어> 미자편에 이렇게 적혀 있다. '제나라 사람들이 여악을 보내왔다. 노나라의 계환자가 이를 받아들여 즐기느라 사흘 동안이나 조회(朝會)를 하지 않았다. 공자께서는 이에 노나라를 떠났다'

대사구 재상직을 55세에 버리고 자기 이상을 정치적으로 실현할 나라와 임금을 찾아 국외로 여행길에 오른 것이 56세. 그 뒤 다시 노나라로 돌아온 것이 기원전 484년, 노나라 애공 11년, 공자 나이 68세 였으니 13년 동안 열국을 주유하며 '상갓집의 개(喪家之狗)'의 처지가 될 고달픈 시절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세번째 출국 - 상가지구(喪家之狗)

기원전 496년 노나라 정공 14년, 56세의 나이에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 위(衛)나라를 찾아간다. 위나라 영공은 무도했지만 그 밑에는 현명한 신하가 많았다. 공자는 위나라 대부 사어(史魚)는 정직한 사람이고 거백옥(籧伯玉)은 참군자라고 말했다. 공자는 영공의 인재 발탁 능력을 믿고 기대를 걸었다.

위나라에 가니 군사에 뛰어난 무장 왕손가가 공자를 찾아왔다. 그는 "옛말에 이르기를 아랫목에 아첨하느니보다는 차라리 부뚜막에 아첨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라며 공자를 떠본다. 실권을 가진 자신에게 잘 보이는 것이 어떠한가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게 된다"고 답한다.

얼마 후 위나라 영공이 만나기를 청했다. 영공은 공자에게 6만 두의 봉록을 주기로 하나 공자에 대해 참언하는 신하들에 휘둘려 공자를 위리안치(圍籬安置)해 둘 뿐 등용하지 않았다. 이에 10개월 만에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 조나라, 송나라, 정나라 등을 떠돈다. 이 과정에서 감금과 굶주림을 겪으며 상갓집의 개와 같은 처지가 된다.

이듬해인 495년 57세의 공자는 정나라를 떠나 진나라에 도착한다. 그러나 3년을 머무는 동안 진나라 임금 민공(湣公)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며, 정치적 활동도 벌이지 못했다. 공자는 웅대한 뜻을 품고 주유천하의 행각에 나섰으나 5년 동안이나 허송세월하게 되자 탄식했다.

59세에 공자는 다시 위나라로 향한다. 세번재 위나라 입국이었다. 영공은 노쇠했고, 공자를 무용지물로 생각했다. 이때 공자가 한 말이 <논어>의 자로편에 기록되어 있다.

'진실로 나를 써주는 사람이 있다면 일 년이면 그 나라를 바로 잡을 수가 있고, 3년이면 완전한 정치의 성과를 올릴 수가 있으련만(苟有用我者 基月而已可也 三年有成)'

또 다시 위나라를 떠난 공자의 신세는 '썩어서 먹을 수 없는 박, 쓸모없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박'과 같은 처지였다. 공자는 급박한 처지에 절망해 진의 대부 조간자가 자신들의 정적들을 모두 제거하고 실권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몸을 의탁할 결심을 한다. 하지만 황하를 건너기 직전 조간자가 두명독과 순화라는 두 사람의 어진 현인을 죽였다는 소문을 듣고 강을 건너지 않고 한탄한다.

이때 거백옥이 공자를 초청하여 그는 다시 위나라에 간다. 하지만 전보다 더 초라한 식객 신세였다. 영공은 공자를 무시했다.

기원전 492년, 60세의 공자는 진나라로 향한다. 진나라에서 공자는 2년 이상 머물렀지만 그는 등용되지 못했다.

그해 가을 노나라 계환자가 병으로 죽으면서 후계자인 계강자에게 공자를 초빙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하지만 주변 신하들의 만류하자 공자의 제자 염구(冉求, 염유)를 등용한다. 염구는 계강자의 가재(家宰)가 되어 공을 세운다. 염구가 등용되기 전 또 다른 공자의 제자 자공은 "자네가 노나라에서 드용되어 큰 공을 세우면 선생님을 잊지 말고 반드시 불러 모시도록 하게나"라고 당부했다.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간다.

네 번째 출국 - 양금택목(良禽擇木)

기원전 490년 노나라 애공 5년. 공자 나이 62세에 섭나라를 찾아간다. 묵묵히 스승을 따라 수행하던 제자들도 서서히 권위와 가르침에 반기를 들거나 벼슬을 찾아 떠나갔다. 섭공은 공자 일행이 자신의 영토에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공자의 제자 자로에게 묻는다. "그대의 스승 공자는 어떤 사람인가?" 이에 '자로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사기>는 기록한다.

공자는 자로를 불러 "너는 왜 섭공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스승의 사람된은 도를 배우기에 게으르지 않고, 사람 가르치기를 싫어하지 않고, 도를 즐기기를 밥 먹는 것을 잊을 정도이며, 또한 가난을 근심하지 않아 어느새 늙어 노년에 이른 것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공자는 이후 섭공을 두 번 면담하지만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채나라로 간다. 그리고 3년쯤 되던 해 초나라 소왕이 공자를 초빙한다. 채나 섭과 달리 초나라는 대국이었고 소왕 역시 공자가 어진 임금이라고 칭찬한 적이 있을 만큼 인격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나라와 채나라 대부들은 아연 긴장한다.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에 오래 머물러 제후들의 약점과 대부들의 비행을 낱낱이 알고 있었으므로 초나라 소공에게 등용된다면 자신들이 위태로운 처지에 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들은 군사를 풀어 공자 일행을 들판에서 포위한다.

이때의 곤경을 <논어>는 기록하고 있다. 자로가 성이 나 공자를 뵙고 말하였다. "군자도 곤경에 빠질 때가 있습니까?" 이에 공자는 대답한다. "군자도 곤경에 빠지기 마련이다. 다만 소인이 곤경에 빠지면 함부로 굴게 되는 것과 다를 뿐이다."

사면초가에 빠진 공자는 위기 극복을 위해 외교술에 능한 자공을 소왕에게 보내 실정을 알리고, 소왕은 곧 군사를 보내 공자 일행을 구해준다. 이때 소왕은 공자에게 서사(書社)의 땅 7백 리를 봉토로 떼어주는 조건으로 공자를 초빙하려 했다. 하지만 재상 자서(子西)가 반대한다. 2만여 호의 영지를 공자에게 주었다가 외교술에 뛰어난 자공, 용감한 장수 자로, 탁월한 행정가 재여,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을 지휘할 수 있는 안회의 보좌를 받아 초나라를 능가할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간언한 것이다. 소왕은 망설임 끝에 초빙계획을 취소하고 그해(기원전 489년) 가을 군막 안에서 갑자기 숨을 거두고 만다. 이로써 공자의 마지막 희망도 물거품이 되버린다.

소왕이 죽은 뒤에도 공자는 선뜻 초나라를 떠나지 못한다. 자공이 말하였다. "여기 아름다운 옥이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이것을 궤 속에 넣어 감추시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상인을 찾아 파시겠습니까" 이에 공자는 대답하였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상인을 기다리는 사람이다(我待賈者也)"

공자가 또다시 위나라를 찾아갔을 때에는 노나라의 애공 6년(기원전 489년) 공자 나이 63세 때였다. 위나라 영공은 이미 죽고 그의 손자인 출공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출공의 아버지 괴외는 자신의 아버지 영공의 음탕한 부인 남자(南子)를 죽이려다 실패해 외국으로 도망쳤는데 귀국을 가로막고 자신이 왕이 된 불효한 자였다.

위나라로 돌아가는 스승에 대해 제자들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다. 출공은 공자의 보좌를 받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자는 출공이 관직을 주면 받을것이냐는 제자의 물음에 반드시 명분 먼저 바로잡겠다고 답한다. 이에 성질 급한 자로가 도대체 이름 같은 것을 바로잡아서 어찌하시겠다는 거냐고 따져 묻는다. 이에 공자가 답한다.

"군자는 바르지 않으면 언어의 도리가 맞지 않는 법이다. 언어가 도리에 맞지 않으면 하는 바의 일을 성취하기 어렵다. 하는 일을 성취하지 못하면 예와 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와 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을 죄과에 알맞게 줄 수가 없게 된다. 형벌이 죄과에 맞지 않으면 백성들은 손발을 안심하고 놓을 곳이 없게 된다. 그래서 군자란 행위가 있으면 반드시 이름이 있어야 하고 말을 하였으면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래서 군자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명분이다. 명분이 바로 이름인 것이다."

이로써 제자들은 각자 뿔뿔이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자공은 노나라 초빙으로 사신으로 등용되며, 자로는 위나라 작은 마을의 읍재(邑宰)가 된다. 자공은 노나라에 외교관으로 등용된다. 하나 둘 제자들이 떠나가던 시절, 고향으로 부터 아내 올관(兀官)이 죽었다는 부고가 날아든다.

설상가상으로 몸을 뒤탁하고 있던 공문자(孔文子)가 사사로운 원한을 풀기 위해 공자엑 전쟁하는 법에 대해 물었다가 실수를 깨닫고 변명하자 공자는 "새가 나무를 선택해야지 어찌 나무가 새를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良禽擇木 木豈能擇鳥)"라 한탄하며 말한 뒤 천하를 주유하였던 열정과 13년의 모든 지난 세월과 단절을 선언한다. 이로써 공자의 주유열국은 종말을 맞게 된다.

공자천주(孔子穿珠)

노나라 애공 11년, 기원전 484년 공자는 마침내 노나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공자 나이 68세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공자가 73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6년간 공자는 노나라 정치에 뛰어들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 정진한다.

자신을 '상인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옥(美玉)'으로 비유했던 공자는 자신을 팔아주는 상인을 만나지 못했다. 또한 자신을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진 진귀한 구슬'로 생각하고 있던 공자는 실을 꿰어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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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녀의 거짓말 - 구드 학교 살인 사건
J.T. 엘리슨 지음, 민지현 옮김 / 위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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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이상 사립 명문 여학교의 명성을 유지해 온 구드학교. 오늘 그 학교 정문에 시신이 한 구 매달려 있다. 무참히 꺽인 목에 빨간 실크 스카프가 감겨 있고, 졸업 가운과 색색의 숄을 두른 시신은 거리를 등지고 있었는데 얼굴이 훼손되어 누군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얼마 후 웨스트헤이븐 학장이 타나났다. 신원을 아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학장은 모른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소녀들이 이름 하나를 중얼거렸다. 애쉬.

애쉬 칼라일의 본명은 애슐린 카이고, 아버지 데미언 카 경은 영국 상류층의 자산관리를 해주며 명성을 쌓은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출세 외엔 관심이 없었고, 독재적인 성향 때문에 반항심 넘치는 애쉬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둘의 관계가 날로 악화되자 데미언은 딸을 미국에 있는 구드학교 기숙사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바로 그 즈음 데미언이 추문에 휩싸인다. 이 때문에 차관 자리를 놓친 데미언은 불같이 화를 내며 애쉬에게 손찌검을 한다. 딸 애쉬가 범인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애쉬가 집을 뛰쳐 나가버리고, 얼마 뒤 데미언 카 경이 자살한다. 애쉬의 어머니 역시 권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다.

애쉬는 구드 학교 입학을 허락받았지만 영국의 복잡한 상속 제도 때문에 사실상 무일푼이었다. 데미언 카 경은 애쉬 칼라일이 대학 학위를 취득한 뒤 25세가 되면 유산을 물려주도록 유언장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사정을 딱하게 생각한 웨스트헤이븐 학장은 애쉬에게 구드 학교 장학금을 주기로 결정하고 졸업 때까지 대리인 자격으로 돌봐주기로 한다.

구드학교에 입학한 애쉬는 큰 키와 예쁘장한 외모, 영국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주위의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애쉬는 비사교적인 태도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 했고, 이런 태도가 또 다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겨 베카의 주목을 끈다.

비밀클럽의 수장이자 명예규율을 관리하는 학생회장 베카의 눈에 드는 것은 모든 하급생이 바라는 바였음에도, 애쉬는 베카의 비위를 맞추기는 커녕 베카에게 저항한다. 베카의 처절한 응징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베카로 부터 비밀클럽 초대를 받게 되는 애쉬. 그리고 그런 애쉬를 질투해서 애쉬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룸메이트 카밀과 친구들...

애쉬가 학교에 입학한 직후 애쉬의 피아노를 전담하게 될 뮤리얼 그래슬리 교수가 알레르기로 사망하고, 얼마 후 애쉬의 룸메이트 카밀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자살한 뒤 부검 과정에서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10년 전 구드학교에서 있었던 살인사건과 그 범인의 아들 루미. 그리고 자신보다 한참 어린 루미와 불륜관계를 이어가는 웨스트헤이븐 학장. 애쉬가 받아갈 재산의 반을 즉시 수령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배다른 언니의 등장. 소설은 점점 복잡하게 전개되면서 거짓이 하나하나 드러나는데, 과연 애쉬는 왜 학교 교문에 시신이 되어 매달리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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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T.엘리슨은 정치학과 영문창작을 전공했는데 커리어의 초반에는 정치 분야에 뛰어들어 대통령 임명직으로 백악관 상무부에 근무했다. 이후 방위 및 항공우주 업체 재무분석가로 근무하다 2012년 캐서린 쿨터(Catherine Coulter)와 공동 작업을 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후 다수의 베스트셀러 작품을 출간했으며, Joss Walker 라는 필명으로 판타지 소설도 집필하고 있다.

<착한 소녀의 거짓말>은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를 모티프로 하여 진행된다.

뮤리얼 그래슬리 교수는 애쉬가 실수로 준 캐러멜 때문에 사망한 것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사망 덕에 애쉬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이 늦춰진다.

애슐린은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으나 자신도 동생,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죽인 사이코패스이다. 아버지에게 얻어 맞거나 우울할 때 자신의 곁을 지켜준 알렉산드리아와 신분을 바꾸기로 한 건 미국에 있는 구드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되었을 때다. 알레산드리아는 교육 받을 처지가 못 됐고, 애슐린은 공부하기 싫었으므로 이 거래는 별 문제없이 성사된다. 그들이 알지 못했던 것은 둘이 배다른 자매라는 사실이었다. 아버지가 배다른 언니에게는 즉시 유산을 지급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애슐린이 눈이 돌아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교문에 매달린 소녀는 베카였다. 애쉬라는 이름을 소녀들이 중얼거리는 장면을 삽입해 독자를 착각하도록 만든 것은 반칙성 트릭이지만, 비밀클럽에 공을 들여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장면이나 카밀이라는 또 다른 사망자를 슬쩍 끼워 넣어 사건을 복잡하게 직조하는 수법은 훌륭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724369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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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어른을 위한 동화 7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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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정이라는 가난한 나무꾼이 살았다. 어렸을 때는 장터에서 제법 싸움꾼 행세를 하였으나, 형님들이 한꺼번에 돌림병으로 죽고 어머니의 말문이 닫히자 사람이 달라졌다. 과묵하게 숯을 구워 새벽이면 내다 팔고 밤이면 산 밑 움막에서 잠들었다.

여러 해가 흐른 뒤 여느 날처럼 나무를 하러 간 정이 벌거벗은 여자를 발견한다. 상처입은 채 정신을 잃은 여자를 정성껏 보살펴 살려놓은 후 정은 여자에게 청혼했다. 여자는 자신이 누군지,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 채로 그리할 수 없다며, 보름달이 뜨면 대답하겠노라 했다. 정은 어쩐지 보름달이 뜨고, 달이 여자에게 말을 걸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될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 잡혔다. 정은 여자를 방 안에 끌어넣고 문에다 못질을 한 뒤 보름달이 사라질 때 여자를 취한다.

여자는 바느질을 했다. 솜씨가 좋아 차차 소문이 퍼졌고, 일감이 늘어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아들을 낳았고, 땅을 사들였다. 먹고 살 만해지자 시어머니가 바느질만 한다며 구박했다. 여자는 익숙치 않은 부엌일을 하며 가슴에 불덩이를 키워 갔다. 얼마 후 두번째 아이가 태어났다. 여전히 정은 여자를 보름달이 뜨면 방에 가두었다.

여자가 갖바치를 찾아가 신 만드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갖바치는 여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대신 정절을 달라 했고, 여자는 이에 응했다. 사흘밤낮을 여자는 갖바치에게 신만드는 것을 배우고 몸을 내주었다. 나흘째 되는 날 정이 여자를 찾아냈다. 정은 여자를 해칠 수가 없어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도끼로 잘라냈다. 정은 질투와 상실의 고통 때문에 타죽을 것 같았지만 여자는 용서해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여자가 만든 가죽신이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보름날 밤, 정이 집을 비운 사이 여자가 달을 보게 된다. 달은 여자에게 '여인은 나를 따라 걸어라' 라고 말을 걸었다. 달이 흐르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니 폭포에 다다랐다. 달이 '아홉 번 숨을 들이마시고 그대의 노래를 부르라'고 말했다. 따라하니 늑대들이 나타났다.

늑대 무리는 여자가 자신들의 일원이라 했다. 따라 나서겠느냐고 묻는 늑대에게 여자는 정과 시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으니 말미를 달라했다.

돌아온 여자는 인간 세상에서 지은 인연에 묶여 늑대 무리에게 돌아가지 못한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여자의 야생성을 일부 가져가자 여자는 그때부터 신을 짓지 않고 살림을 시작했고 일상의 삶이 주는 행복에 젖어든다. 하지만 그런 행복이 가져온 것은 두려움이었다. 언젠가 깨어질 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된다.

정과 아들이 돼지를 접붙이기 위해 마을로 간 어느 날 화적떼가 들이닥쳐 여자의 딸을 겁탈한다. 딸은 이때 상처로 앓다가 죽고, 도망치는 화적을 쫓아간 아들도 돌아오지 않는다.

인간 세상에서의 삶이 다해가고 있음을 직감한 여자는 정에게 자신을 놓아 달라고 한다. 산에 가서 죽겠다고 했다. 정은 마지막으로 여자를 위해 산에 집을 지어 주고 갖신 만들 재료를 넣어준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나고 다시 여름이 온 어느 날, 막 만든 가죽신 한 켤레가 여자에게 말을 하였다. "나를 신으세요" 여자가 신을 신자 신이 늑대들에게 가는 길로 다시 인도했다. 늑대가죽을 뒤집어 쓰자 여자는 젊고 어여쁜 흰늑대로 변했다.

다음날 정은 산에 올랐다가 여자가 없어진 것을 알고 계곡 아래 깊고 푸른 소에 몸을 던졌다. 정이 버둥대는 동안 때 아니게 푸른 단풍나무 잎들이 수수수 떨어져 물을 덮었다. 푸른 나뭇잎과 신발이, 그리고 다시 푸른 나뭇잎이 한 잎 한 잎 계곡으로 흘러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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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야생성을 간직한 '늑대'인데, '자신이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난 연후에 결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체성과 존재의 확인이 생활에 우선하는 것이다. 여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달에게 물으려 한다. 달은 해와 달리 매일 모양을 달리한다. 변화하고 배반하는 달이 여자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반면 남자의 관심은 현세의 삶, 대낮의 생활이다. 남자는 보름달이 사라진 후 여자를 겁탈한다. 남자는 처녀성을 빼앗으면 여자를 자기 소유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남자는 여자에게 '이녁을 행복하게 해줄게' 라고 말하지,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말하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가 부여한 적도 없는 굴레를 스스로 짊어지고 사뭇 비장해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유일한 관객인 연극이다.

여자는 갖신을 배우기 위해 갖바치에게 주저없이 정절을 줘버린다. 여자에게 있어 정절이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자 혼자 정절로 상징되는 허구의 행복에 집착해서 질투하고, 상실의 고통을 곱씹는다.

여자는 한동안 삶에서 행복감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달이 차면 이지러지듯 여자가 다시 늑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딸의 죽음이다.

젊은 아들(남자)은 딸을 잃은 어머니 곁을 지키지 않고 화적떼를 뒤쫓아간다. 화적떼를 죽여 복수한다고 어머니의 상실감이 채워지는 것도 아닌데, 젊은 수컷의 사고회로는 그런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을 제거(해결)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실감이나 슬픔은 치료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언가 잘못되면 고칠 수 있다고 믿는다. 매일같이 동그란 해가 떠오르듯이.

전경린은 아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여자의 곁에 남은 것은 이제 늙고 지친 정 뿐이다. 늙은 남자, 거세된 수컷이 된 후에야 정은 삶의 비밀 한자락을 엿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여자는 남자와의 삶을 정리하고 늑대로 돌아간다. 남자와 여자는 죽음, 혹은 떠남의 순간이 되어야 서로를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정은 여자가 없어진 걸 확인한 순간 목숨을 내던진다. 정의 삶은 여자라는 변화무쌍한 존재에 기대어 항구성을 획득했다. 그러므로 변화무쌍한 여자가 사라지면, 그 대척점에 있는 정의 삶은 의미를 상실한다.

여자가 어디에서 왔는지(정체성) 알지 못할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정절(안정)을 내던지고, 언제든 삶에서 훌훌 도망칠 수 있는 옷(바느질)이나 갖신(신발)을 지어내는 일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처녀성(정절)을 빼앗거나, 아이를 셋 낳게 만들거나, 옷과 신발을 숨기는 행위의 이면에는 처녀성과 정절에 대한 그릇된 신화가 자리잡고 있다. 여자의 정절을 빼앗으면 내것이 된다는 생각, 아이를 셋 낳게 만들어 그 기간 동안 성적 경쟁자로부터 격리시키는 행위, 옷과 신발을 감춰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감금은 여성의 처녀성과 정절을 남성이 지배하고 관리하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관리를 행복의 비밀이라고 잘못 이해한 남성은 질투와 상실의 불안을 댓가로 치뤄야 한다는 점이다.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의 전경린식으로 변주인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는 여자 입장에서 읽어도 슬프고, 남자 입장에서 읽어도 애닯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718636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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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 - 안개의 성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현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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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모르는 시대의,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서의 이야기

마을에 뿔이 난 아이가 태어나면 13살이 될 때까지 촌장이 기르다가 안개의 성에 제물로 바치도록 되어 있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촌장도 잘 몰랐다. 하지만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북쪽 마을을 보면 안다. 사람과 동물 모두 돌로 변한 그곳은 시간의 풍화를 견디는 중이다.

열 세살이 된 이코를 제물로 데려가기 위해 수도에서 대신관이 온다고 했다. 토토는 이코와 함께 안개의 성에 가고 싶었기에 몰래 집을 나가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길을 잘 못 든 토토는 북쪽 마을로 가게 되고, 검은 안개가 뭉쳐진 여자 얼굴과 맞닥뜨린다. 안개는 분노를 토해내며 토토가 타고 간 말을 돌로 만들어버렸다. 토토는 가까스로 빛나는 책 한권을 들고 탈출할 수 있었지만 며칠 뒤 돌로 변해버렸다.

토토가 가지고 온 빛나는 책은 '광휘의 서'가 틀림 없었다. 촌장은 책에 그려진 증표를 이코에게 입히면 안개의 성에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도에서 온 대신관을 따라 이코는 안개의 성으로 가서 석관에 제물로 바쳐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석관이 깨어지며 튕겨 나온다. 증표 때문인 것 같았다. 길을 잃고 헤메던 이코가 우연히 천장에 메달린 구조물에서 소녀를 발견한다. 연결된 줄을 풀어 소녀를 빼낸 이코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성을 탈출하려 한다. 이것이 <이코>의 시작이다.

<이코>는 Sony Computer Entertainment가 2001년에 발매한 플레이스테이션 2용 게임이다. 당시 인기가 있었던 <귀무자>가 일섬을 날리며 귀신을 짚단 베듯 쓰러뜨리고, <진 삼국무쌍>의 여포가 일기당천의 용맹을 자랑하며 방천화극을 젓가락 돌리듯 하는 게임들에 비해 <이코>는 매우 '순한 맛' 게임이었다. 머리에 뿔이 난 이코가 가진 무기라고는 막대기 하나에 불과하고, 덤벼드는 괴물도 검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함께 성을 탈출해야 하는 요르다는 잘 따라오지 않고 자꾸 길을 헤맨다. 게다가 의사소통도 안 된다. 성질 급한 플레이어들은 찍먹 수준도 안 되는 짧은 플레이 타임을 기록한 뒤 접는 수순을 거쳤고,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코>는 그 뒤로 가끔 생각이 났다. 무슨 이유로 이코는 머리에 뿔이 나 있나, 요르다는 왜 안개의 성에 갖혀 있나, 둘이 탈출에 성공한 뒤에는 어떻게 되나. 그러다 미야베 미유키가 쓴 소설 <이코, 안개의 성>이 2005년에 출간되서 구입했는데, 읽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소설 <이코, 안개의 성>은 게임 공식 설정은 아니다. 소설은 빛과 어둠의 세계의 대립 구도를 설정했는데, 안개의 성에 유폐된 여왕은 요르다의 어머니다. 여왕은 빛의 힘이 가장 약해지는 일식이 오면 다시 힘을 되찾을 것이다. 그동안 시간의 딸 요르다가 필요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여왕은 제물을 요구한 적이 없었고, 제물이 필요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제물은 빛의 세력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낸 희생양으로, 여왕에게 대항한 검사 오즈마의 자손들이었다.

<이코>는 이후 <완다와 거상>, <더 라스트 가디언> 후속작을 냈고 게이머와 평론가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717048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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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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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트리 장식과 조명이 도쿄 거리를 수놓은 12월 24일 밤, 빈 건물 1층에 여자가 죽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된다. 현장은 도쓰카 경찰서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경찰은 사건성이 없기를 바라고 출동했지만, 도착 즉시 그 기대를 접어야 했다. 시신은 한겨울인데도 블라우스와 슬랙스만 입고 있었는데, 블라우스는 앞이 벌어져 있고 슬랙스 단추 역시 떨어져 없었다으며, 두부에 타박상이 있었다. 나이는 50세에서 60세 사이, 노숙자로 추정되는 그녀를 살해한 범인을 잡기 위해 경시청의 괴짜 형사 미쓰야 슈헤이와 관할서의 가쿠토가 한 조를 이룬다.

시신의 신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 된다. 그녀의 지문이 경찰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약 1년 전 히가시야마 요시하루라는 보건복지센터 공무원이 살해 당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의 서류 가방에서 채취된 지문이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 이름은 마쓰나미 이쿠코. 남편이 죽은 후 생계가 곤란해지자 노숙자가 된 것 같았다.

그녀가 히가시야마 요시하루를 죽인 범인이었을까? 하지만 지인을 자처한 또 다른 증인에 따르면 그녀는 누군가를 살해할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왜 살해 당했을까? 1년 전 살해당한 히가시야마 요시하루와는 무슨 관계일까? 어째서 괴짜 형사 미쓰야 슈헤이는 히가시야마 요시하루의 아내 히가시야마 리사의 행적을 쫓는 것일까? 불행이 겹치고 겹친 끝에 노숙자로 전락한 그녀가 죽기 전 바라본 것은 무엇이었나...

마사키 도시카는 1965년 도쿄 출생으로 1988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도도 시즈코의 <익어가는 여름>에 강렬한 인상을 받아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992년 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2007년 <지다 피다 돌다>로 제41회 홋카이도신문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은 작가의 히트작 <그날, 너는 무엇을 햇는가>로 시작된 미쓰야&다도코로 형사 시리즈인데, 일본인 특유의 정서가 강해 공감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특히 주변 사람의 시선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일단 사람에게 책임을 따져 묻는 정서가 그렇다.

마쓰나미 이쿠코는 남편 마쓰나미 히로시와 가난하지만 행복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지고, 사장이 남편 마쓰나미 히로시에게 연대보증을 세운 후 도산해 버리자 불행이 시작된다.

남편은 경비 일자리를 얻어 힘들게 일하다 병을 얻었고, 어느 비오는 날 지주막하출혈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 쓰러져 사망한다.

그의 사망은 두 가정에 불행을 가져왔다. 마쓰나미 이쿠코는 남편이 사망하자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에 빠졌다.

다른 피해자는 이자와 유스케라는 트럭 운전사였다. 그는 본래 광고회사에 다녔으나 회사가 어려워지자 트럭운전사가 된 후 아내와 아들에게 무시 당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쓰나미 히로시를 치게 된 것이다. 마쓰나미 히로시가 지주막하 출혈로 교통사고 전에 이미 사망한 상태라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그의 아내는 유스케를 비난한 끝에 이혼한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녀는 자신의 모든 불행을 마쓰나미 히로시의 탓으로 돌렸고, 아내인 마쓰나미 이쿠코가 자신을 찾아와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한다. 그리고 끝내 그녀를 살해하고 만다.

한편, 1년 전에 살해된 남자 히가시야마 요시하루는 보건복지센터 공무원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마쓰나미 이쿠코에게 갖은 비난을 쏟아 부은 인물이었다. 그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자 정신이 이상해진 끝에 딸에게 집착하고 해치려다 도리어 딸에게 살해 당한다. 그 딸 루미아는 가출 기간 동안 마쓰나미 이쿠코의 집에서 익명으로 생활했는데 사건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마쓰나미 이쿠코가 뒷처리를 해주는 과정에서 서류 가방에 지문을 남긴 것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71268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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