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사회와 그 적들 김소진 문학전집 2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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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자는 무척 싫어하는데(순전히 편견이다), 기자 출신 작가들을 좋아한다. 김훈의 예리하면서도 단호한 글을 좋아하고, 안정효의 종군기자가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듯한 드라마틱한 글도 좋아하며, 시를 제대로 이해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깜냥임에도 기형도의 시집은 한 권 가지고 있다.

그런데 유독 김소진의 글은 모두 그의 사후에 읽었다. 그것도 최근 출간된 순서부터 거꾸로 읽어 나갔다.

철학 이야기 주머니에서 였던가,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의 비판 글을 읽고 너무 명쾌한 그 비판에 공감한 터에 김소진의 동명 소설이 막연한 반감을 일으켰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김소진이 발표한 소설들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과 조우한다.

김소진 소설을 처음 접할 때 느꼈던 어색함은 여전했다. 그것은 사어에 가깝게 된, 분명 사전에서 찾아냈음에 분명한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어색함이다. 질그릇처럼 투박한 이문구의 걸쭉한 만연체에서 나왔다면 자연스러웠을 그 단어들이 김소진의 소설에서는 긴장감으로 다가온다. 그 긴장감이 어떻게 변하였을지 이제는 지켜볼 수 없다. 그는 이미 죽어버렸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기형도의 시 '잎 속의 검은 잎' 에서 열사의 추모행열을 바라보며 까맣게 타들어간, 말하지 못하는 혀로 괴로와 하고 부끄러워하는 상황과 대조된다. 김소진은 작가이기 이전에 기자였으므로, 시위대와 소위 '밥풀떼기' 들을 바라보고, 조사한다. 실제로도 그는 몇날 며칠을 백병원에 머무르며 프락치로 오인까지 받아가며 조사를 하였다 한다. 그 결과물로서 그는 시위대가 중심이 아닌 '밥풀떼기'가 중심이 되는 글을 써냈다. 그리고 2008년의 나는 90년대에 이 글을 읽었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나타냈을까를 며칠을 두고 고민해 본다.

 

아직은 '고민' 해 본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으므로, 좀 더 시간을 두고 고민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작가의 죽음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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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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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였을 것이다. '새의 선물'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동아리방에 돌아다니던 책이었나... 하여튼 주인이 없었고, 내가 집어 들었으며, 그날 밤 꼬박 새워서 읽고 내 책꽂이에 모셔두었다. 하지만 역시 내 것이 아니었던 그 책을 누군가가 또 빌려갔고(어쩌면 내가 재밌다면서 빌려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98년에 읽은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서점에 가서 '정식'으로 사서 읽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하고, 실망스런 기분으로 읽었다. '새의 선물' 에서의 유쾌함은 간 데 없고 성에 대한 왜곡된 자의식만을 느꼈었다.

그 뒤로 친구방 화장실에 놓여있던 '상속' 이 꽤 오랫동안 뒹굴고 있었지만 나는 펴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지지난주 일요일, 동인천의 중고서점인 아벨서점에서 A+의 상태로 꽂혀있는 마이너리그를 발견했다. 아벨서점에서 상태가 양호한 책은 정가의 반값을 연필로 써놓는게 일반적인데 이상하게 2,000원으로 적혀있기에 덥썩 집어들어 사고 말았다. 순전히 싼맛에(!) 사고 만 책은 그 값밖에 못하고 말았다.

 

고등학교 때 한반에 한둘은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아는 녀석이 있다. 보통 사람이면 겪기 어려운 이런 저런 모험담을 레파토리로 가지고 있으며, 흥이 솟구치면 남의 이야기도 자기 이야기처럼 과장하고 각색해서 들려주게 마련이다. 한참 신나게 듣다가 어느 순간 '에이 그건 뻥이지?' 하며 한 바탕 웃을 수 있는 그런 얘기들. 어리기 때문에 17대 1로 싸우는 얘기도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가리려 하기 보단 그래서? 그래서? 해가면서 들을 수 있는...

은희경의 마이너리그에선 이런 얘기들을 가벼운 문체로 술술 풀어나간다. 딱 고등학교 때 이야기 재미있게 하는 녀석들 스타일이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라는 거다. 그냥 들으면 재밌을 뿐인 그런 얘기. 물론 결론으로 갈 수록 뭔가 그 재밌는 얘기들에 의미 부여를 하려고 시도하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여기저기서 차용해온 에피소드들(분명 01410으로 접속하던 그 옛날 통신 유머란에서 본 이야기도 있다), 작가 자신의 재기발랄한 '썰 풀기' 능력, 술술 읽히도록 배치한 말장난, 작가로서의 뛰어난 자질은 있지만 치열함은 느껴지지 않는... 아쉽다.

 

책을 덮으며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을 생각한다. 

두 권을 사서 두 권 다 이상한 경로로 잊어버렸지만 또 '정식'으로 구입해 읽기 주저하지 않을.

하지만 마이너리그는 그냥 빌려 읽으면 될 정도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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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늘 나남창작선 114
안정효 지음 / 열음사 / 199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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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 소설은 재미있다. '하얀전쟁' 과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 '은마는 오지 않는다' 등 그의 대표작들이 모두 영화화 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안정효 소설의 공통점이라면, 주인공들이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며 그 혼란의 원인이 대게 외부로부터 오며, 부조리하다는 것이다.

남의 나라 전쟁에 끌려간 제3세계 시민의 혼란,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 허구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주인공 등 그들이 겪는 삶의 질곡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노력을 통해서는 해소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미늘의 주인공인 서구찬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렸을 적 양자가 되며, 성악가가 되겠다는 막연한 꿈은 있었지만 배다른 형제들끼리의 유산싸움 와중에 백화점 하나를 양도 받아 경영자가 된다. 헐리우드키드의 생애의 주인공처럼,막연한 배우자의 '이상향'에 집착한 나머지 현재의 부인에게 알 수 없는 불만만을 갖고 현실에서 도피를 반복하던 그에게 수미라는 여자가 먼저 접근해오고 어정쩡한 불륜관계를 지속하나 결국 스스로 그 끈을 끊어내지는 못한다. 

미국인아버지의 주인공 역시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처가집에 휘둘려 미국이민을 가게 되나, 부인은 바람을 피우고 딸은 쾌락을 자유와 혼동하며 아버지, 혹은 한국과는 전혀 무관한 국적불명의 'Amerisian' 이 된다는 내용이다.

황야에서는 진보적 성향의 희극을 썼다는 이유로 타국으로 쫓기듯 도망가 결국 가족마저 해체되는 신산한 풍경을, 마지막으로 혼선은 어느날부터 전화기가 혼선되어 우연히 타인의 삶을 엿보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결국 안정효 소설의 주인공들은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외부로부터의 변화와 영향-특히나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의-으로 인해서 그들 정체성이 규정되고, 어느 순간 그 정체성에 의문을 품고 해결해 보려 노력하지만 그 결말은 자살이나 폭력, 좌절로 마무리된다.

결국 흉내낸 삶, 규정된 삶의 부조리의 파국은 쓸쓸하기만 하다.

 

잭 런던의 '마틴 에덴'에서 마틴 에덴이 자신을 온전히 개조하여 전혀 새로운 이상과 목표를 가지고 매진하나, 결국은 바다로 뛰어드는, 허구의 인생 이야기가 안정효 소설에서도 그대로 적용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소설은 소위 '건강한' 소설은 아니다. 해결책도 없고 절망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카프카의 '성' 처럼 알 수 없는 답답함에 결말까지 보고난 이후에도 찝찝한 뒷맛을 남기지는 않는다. 아마도 코리아헤럴드 기자 시절을 거쳐 백마부대에 소속되어 베트남전에 참전한 그의 전력이 소설이 형이상학으로 치닫는 것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의 소설은 일단 재미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47328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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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카라 - 바깥의 소설 26
레오나르도 파두라 지음, 고혜선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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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하는 쿠바 문학. '마스카라'는 '가면'이라는 뜻.

책 표지에는 '쿠바 혁명정부의 가면을 벗긴 미학적 추리소설' 이라는 수식이 붙어있다.

남미문학,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게다가 쿠바! 의 문학을 출간하자니 최소한의 판매량을 위한 수식이 필요했을 것이고, 고육지책으로 쿠바정부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는 '쿠바혁명 정부의 가면을 벗기다'로, 작가의 지적 탐구에 대해서는 '미학적'이란 말을, 살인사건의 해결을 통해 줄거리가 전개되므로 '추리소설'이란 단어를 조합해 이 책을 간략하게나마 치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1959년 카스트로와 혁명군은 바티스타의 긴 독재에 종지부를 찍고 혁명을 성공시킨다. 그러나 1970년 이후의 쿠바는 혁명을 지속시킬 원동력의 고갈, 특히나 경제적 차원에서의 세계적 고립은 혁명의 지속을 불안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민중의 동요를 상부구조 차원, 특히나 문화의 억압을 통하여 유지하고자 한다.

 

레오나르도 파두라는 이러한 쿠바혁명정부의 지식인, 작가로서 의문을 던진다.

이 책에는 살인사건이 등장한다. 포스트모던적인 비틀기와 교차가 수시로 등장하며 남장여자,게이(1997년 번역임을 감안하자)에 대한 서술을 통한 정체성에 대한 의문도 등장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주의를 기울인 부분은 주인공 콘데가 알베르토 마르케스에게 본인이 쓴 소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버스운전수가 어느 순간 자신이 20년 이상을 운전하던 버스 노선 대신 전혀 다른 버스 노선을 선택하여 운전하게 된다. 한편 우연히 만난 여자승객을 죽여야 하리라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는 이 여자승객과 관계를 맺은 후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아무 이유도 없이.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살해를 하는 내용과 전혀 다를바 없는 실존주의적 단편을 작가가 새삼스레 이 소설에 배치한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쿠바정부의 문화적 획일성의 강요, 특히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이외의 성향에 대해서는 단호히 소비에트 수정주의자, 부르주아적 찬미자로 낙인찍어버리는 70년대 이후 쿠바의 상황에 대한  작가의 항변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냐하면 버스운전사의 행위에 대해 작가는 어떠한 사회적 설명도, 심리적 인과관계도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은 소설이기에. 쿠바혁명정부의 문화혁명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들어있지 않다.

소설 속에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으므로. 예전의 나였다면 이 소설에 신랄한 비평을 퍼부었을 것이다. 소설이 소설로 끝나지 않는 것을 모르는가! 왜 작가는 쿠바의 완벽한 고립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지금의 나는 '뇌봉'류의 글들을 오히려 경계한다.

추리소설이란 표지의 말에 혹해 책을 집어든다면, 만류하고 싶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47328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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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밤은 깊어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36
노엘 칼레프 지음, 김두남 옮김 / 해문출판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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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간될 당시인 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어땠을지 모르겠다.

이제 왠만한 자극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세대에 살고 있기에 이 책이 마련해 놓은 긴장은 다음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게 다야?

 

http://blog.naver.com/rainsky94/80047328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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