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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카라 - 바깥의 소설 26
레오나르도 파두라 지음, 고혜선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처음 접하는 쿠바 문학. '마스카라'는 '가면'이라는 뜻.
책 표지에는 '쿠바 혁명정부의 가면을 벗긴 미학적 추리소설' 이라는 수식이 붙어있다.
남미문학,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게다가 쿠바! 의 문학을 출간하자니 최소한의 판매량을 위한 수식이 필요했을 것이고, 고육지책으로 쿠바정부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는 '쿠바혁명 정부의 가면을 벗기다'로, 작가의 지적 탐구에 대해서는 '미학적'이란 말을, 살인사건의 해결을 통해 줄거리가 전개되므로 '추리소설'이란 단어를 조합해 이 책을 간략하게나마 치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1959년 카스트로와 혁명군은 바티스타의 긴 독재에 종지부를 찍고 혁명을 성공시킨다. 그러나 1970년 이후의 쿠바는 혁명을 지속시킬 원동력의 고갈, 특히나 경제적 차원에서의 세계적 고립은 혁명의 지속을 불안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민중의 동요를 상부구조 차원, 특히나 문화의 억압을 통하여 유지하고자 한다.
레오나르도 파두라는 이러한 쿠바혁명정부의 지식인, 작가로서 의문을 던진다.
이 책에는 살인사건이 등장한다. 포스트모던적인 비틀기와 교차가 수시로 등장하며 남장여자,게이(1997년 번역임을 감안하자)에 대한 서술을 통한 정체성에 대한 의문도 등장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주의를 기울인 부분은 주인공 콘데가 알베르토 마르케스에게 본인이 쓴 소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버스운전수가 어느 순간 자신이 20년 이상을 운전하던 버스 노선 대신 전혀 다른 버스 노선을 선택하여 운전하게 된다. 한편 우연히 만난 여자승객을 죽여야 하리라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는 이 여자승객과 관계를 맺은 후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아무 이유도 없이.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살해를 하는 내용과 전혀 다를바 없는 실존주의적 단편을 작가가 새삼스레 이 소설에 배치한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쿠바정부의 문화적 획일성의 강요, 특히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이외의 성향에 대해서는 단호히 소비에트 수정주의자, 부르주아적 찬미자로 낙인찍어버리는 70년대 이후 쿠바의 상황에 대한 작가의 항변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냐하면 버스운전사의 행위에 대해 작가는 어떠한 사회적 설명도, 심리적 인과관계도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은 소설이기에. 쿠바혁명정부의 문화혁명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들어있지 않다.
소설 속에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으므로. 예전의 나였다면 이 소설에 신랄한 비평을 퍼부었을 것이다. 소설이 소설로 끝나지 않는 것을 모르는가! 왜 작가는 쿠바의 완벽한 고립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지금의 나는 '뇌봉'류의 글들을 오히려 경계한다.
추리소설이란 표지의 말에 혹해 책을 집어든다면, 만류하고 싶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47328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