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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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였을 것이다. '새의 선물'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동아리방에 돌아다니던 책이었나... 하여튼 주인이 없었고, 내가 집어 들었으며, 그날 밤 꼬박 새워서 읽고 내 책꽂이에 모셔두었다. 하지만 역시 내 것이 아니었던 그 책을 누군가가 또 빌려갔고(어쩌면 내가 재밌다면서 빌려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98년에 읽은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서점에 가서 '정식'으로 사서 읽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하고, 실망스런 기분으로 읽었다. '새의 선물' 에서의 유쾌함은 간 데 없고 성에 대한 왜곡된 자의식만을 느꼈었다.

그 뒤로 친구방 화장실에 놓여있던 '상속' 이 꽤 오랫동안 뒹굴고 있었지만 나는 펴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지지난주 일요일, 동인천의 중고서점인 아벨서점에서 A+의 상태로 꽂혀있는 마이너리그를 발견했다. 아벨서점에서 상태가 양호한 책은 정가의 반값을 연필로 써놓는게 일반적인데 이상하게 2,000원으로 적혀있기에 덥썩 집어들어 사고 말았다. 순전히 싼맛에(!) 사고 만 책은 그 값밖에 못하고 말았다.

 

고등학교 때 한반에 한둘은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아는 녀석이 있다. 보통 사람이면 겪기 어려운 이런 저런 모험담을 레파토리로 가지고 있으며, 흥이 솟구치면 남의 이야기도 자기 이야기처럼 과장하고 각색해서 들려주게 마련이다. 한참 신나게 듣다가 어느 순간 '에이 그건 뻥이지?' 하며 한 바탕 웃을 수 있는 그런 얘기들. 어리기 때문에 17대 1로 싸우는 얘기도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가리려 하기 보단 그래서? 그래서? 해가면서 들을 수 있는...

은희경의 마이너리그에선 이런 얘기들을 가벼운 문체로 술술 풀어나간다. 딱 고등학교 때 이야기 재미있게 하는 녀석들 스타일이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라는 거다. 그냥 들으면 재밌을 뿐인 그런 얘기. 물론 결론으로 갈 수록 뭔가 그 재밌는 얘기들에 의미 부여를 하려고 시도하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여기저기서 차용해온 에피소드들(분명 01410으로 접속하던 그 옛날 통신 유머란에서 본 이야기도 있다), 작가 자신의 재기발랄한 '썰 풀기' 능력, 술술 읽히도록 배치한 말장난, 작가로서의 뛰어난 자질은 있지만 치열함은 느껴지지 않는... 아쉽다.

 

책을 덮으며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을 생각한다. 

두 권을 사서 두 권 다 이상한 경로로 잊어버렸지만 또 '정식'으로 구입해 읽기 주저하지 않을.

하지만 마이너리그는 그냥 빌려 읽으면 될 정도의 책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47328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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