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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차가운 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평점 :
김애란의 소설을 산다는 것이 착각으로 한강의 소설을 샀다. <성탄특선>의 유쾌함을 기대하고 책을 넘겨 작가의 사진을 본 순간 뭔가 잘못 됐다는 느낌이 들어 살펴보니 작가를 착각한 것이다. 나는 작가의 얼굴을 보고 작품의 내용을 넘겨 짚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얼굴을 보고 유쾌한 소설이길 포기 하고 읽었으며, 읽고 난 이후의 느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는 물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그것은 바로 '왜 나는 여성작가를 싫어하는가?' 이다. 남성, 여성의 구분 자체가 이미 비난의 집중포화를 감수한 구분인데다가, 여성작가라니! 그야말로 구시대적 발상이며 가부장적 이분법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시원스럽게 내놓지 못하는가.
편견에 대해서 다시금 고민해본다. 편견이란 확률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내 성씨인 최씨와 관련된 속담을 들어보자. <산 김가 셋이 죽은 최가 하나를 못 당한다> 라던가 <최씨 앉은 자리엔 풀도 안 난다> 라는 속담이 있다. 분명 최씨 성을 가진 인물들 중 깐깐하고 고집 센 사람들을 경험한 누군가가 그 강렬한 인상을 주변사람들과 공유했을 것이며, 그런 공유가 공감으로 이어져 속담의 지위까지 획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편견이다. 나로 말하자면 최씨이지만 고집이 옹고집도 아니요 깐깐한 편이기 보단 우유부단한 경우가 꽤 있다.
미쉘 푸코는 광인에 대해 너그러운 견해를 내놓지만 나로 말하자면 광인, 속칭 미친사람에 대해 극도로 긴장한다. 대학 시절 옆집에 미친사람이 살았었는데 온 동네를 병을 깨고 돌아다니고, 자기 아들을 수시로 폭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강렬한 경험은 나에게 광인에 대해 너그러운 인정은 커녕 극도의 긴장감만을 유발할 뿐이다. 이런 것이 내가 생각하는 편견이다. 따라서 편견은 경험과 확률이다. 무시하고 넘어갈 <개념상의 문제>는 분명 아니다.
다시 여성작가라는 모호한 편견으로 돌아와보면, 내 편견은 이렇다. 여성작가들의 작품 속 주인공의 직업은 대부분 전문직, 프리랜서들이다. 그들은 생계에 큰 곤란을 겪지 않으며, 그런 이유 때문인지(!) 광기에 쉽사리 휩싸인다. 그들의 연애는 폭력적이다. 트라우마를 가진 그들은 서로 일치점을 찾지 못해 결국은 파국을 맞는다.
한강의 <그대의 차가운 손>을 읽으면서 나는 괴로웠다. 작중 인물들은 작가, 조각가, 실내인테리어디자이너 등 범상치 않은(!) 직업을 갖고 있으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돌출 행동들이 잇따른다. 각자의 트라우마로 첫번째 여주인공은 어머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력을 당했으며, 두번째 여주인공은 어릴적 육손으로 놀림을 받다가 수술을 받은 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의 과거를 묻고 살아간다. 남자 주인공 역시 겉다르고 속다른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감정의 기형적 성장을 경험하였다.
'왜'라는 질문에 척척 답이 나온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닌 논리겠지만, 비상식적 행동에 대한 적절한 공감을 독자로부터 끌어내지 못하고,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로 연원을 돌려버리는 것 또한 미숙함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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