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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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o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주인공 고즈에는 전문학교를 나와 조그만 회사에 근무하며, 언젠가는 결혼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 미도리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고즈에는 미도리의 남자친구가 자기의 남자라면 어떨까 하는 공상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꿈속에서만 살다가 평생 남자를 못 만나고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숙명을 옛날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o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스물 다섯살의 조제는 어릴적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후 할머니와 살아가고 있다. 조제의 본명은 구미코이다. 하지만 프랑스와즈 사강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 마음에 들어 조제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츠네오는 같은 동네에 사는 대학생으로 조제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주었다. 때때로 조제의 집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고장난 집을 고쳐주기도 한다.

츠네오가 졸업과 취직 때문에 오랜만에 조제를 찾았을 때, 조제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보잘 것 없는 집을 얻어 가구 대신에 종이상자를 놓아 살아가고 있었다. 츠네오에게 조제는 악을 쓰며 가버리라고 말하다가 막상 가려는 츠네오에게 가지 말라고 또 떼를 쓴다. 츠네오는 '텔레비전도 팔아버렸고, 라디오도 망가졌고, 나 너무 외로워...' 라고 말하는 조제가 가엽다가도, '어, 그럼 내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대신이란 말이야?'라고 묻자, '그래. 이 라디오는 대답을 해줘서 좋아'라고 말하는 조제가 귀엽다.

조제는 동물원에 가고 싶어하고 그곳에서 호랑이를 본다. 호랑이를 본 조제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라고 말한다. 둘은 수족관에도 간다. 그리고 조제는 자기가 느끼는 지금의 행복한 상태가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그후로도 조제와 츠네오는 같이 살아간다. 결혼도, 호적신고도, 하지 않았지만.

 

o 사랑의 관

남편으로부터 이중인격이라는 말을 듣고, 결국 이혼하게 된 우네는 자신이 그 말로 인해 상처받았음을 느낀다. 이복 언니인 큰언니 소개로 만난 남편이었기 때문에 다른 형제들과도 소원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큰언니의 아들인 열아홉의 유지에게 우네는 에로틱한 감정을 느낀다. 우네는 자신에게 성적 호기심과 열망을 느끼는 유지에게 한껏 공상에 빠지도록 할 수도 있고,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어쩌면 자신이 진짜 이중인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매년 9월에 떠나는 호화로운 여름휴가에 유지를 오도록 한다. 우네는 두번 다시 유지와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기에, 유지와 맺게 될 관계가 극한의 열락으로 가리라 느낀다.

 

o 그 정도 일이야

가오리는 여섯 살 어린 호리 씨가 좋아지고 만다. 남편은 일과 친구에 빠져서 충족한 삶을 누리고 있고, 가오리는 자기대로 약간은 체념한 상태이다. 호리 씨와 놀러 간 축제에서 손가락 돼지 인형인 치키를 산다. 둘은 치키가 말하는 것처럼 흉내내며 자신들의 내밀한 대화를 한다. 둘은 돼지 인형을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드러내며 아슬아슬한 경계를 걷는다.

 

o 눈이 내릴 때까지

마흔이 넘은 오바는 가정이 있는 이와코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포목점에서 조용히 일하는 오바는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돈을 착실히 불려왔고 조용히 자기를 가꿀 줄도 안다. 이와코는 한번도 결혼하지 않았지만, 결혼에 대한 꿈을 갖지 않는다. 결혼에 대한 꿈을 품지 않게 되자, 자유로운 기분이 들고 즐거움을 느낀다.

가정이 있는 오바와 만나면서 이와코는 '언제 헤어져도 좋아'라는 생각을 하며 철저히 즐겼기 때문에, 만나는 그 순간에도 그가 먼 과거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생기도 없는 미래까지 같이 가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그런 오바를 만나는 이와코는 언제나 처음 만나는 여자와 같다는 생각을 하고, 오바는 언제나 부끄러움을 느낀다.

 

o 차가 너무 뜨거워

이제는 유명 드라마 작가가 된 아구리에게 칠년 전에 자기를 떠난 요시오카가 연락을 해온다. 만나자는 요시오카의 말에 아구리는 저도 모르게 들뜨고 만다. 하지만 막상 만난 요시오카는 어딘지 모르게 갑자기 늙어버린 느낌이다. 요시오카는 아버지가 물려준 중소기업을 기획 사기를 당해 모두 날려버리고 아내에게 이혼당한 상태이다. 그는 아구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사달라며 애원하고, 아구리는 요시오카가 차라리 다시 성공하여 그 무신경과 어린애 기질로 자신을 상처 입히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o 짐은 벌써 다 쌌어

아내가 집을 나가고 자녀가 있는 히데오에게 시집 간 에리코는 아이들을 떠맡을 용기까지는 나지 않아 따로 살림을 차려 둘이서 살아간다. 어릴 적 아이들이 간혹 놀러오기도 했지만 히데오는 옛날 가정과 현재의 가정을 엄격히 분리했기 때문에 에리코는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집을 나갔던 아내가 갈 곳이 없어지자 다시 아이들 집으로 들어오고, 둘째 아들이 말썽을 피우는 등 가정이기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생기자 히데오가 짊어진 고통도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o 사로잡혀서

미노루의 우유부단한 성격에 자기 본위의 어린애 같은 면을 한 때 리에는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노루가 거래처 여자애와 바람을 피우고 임신까지 시킨 후 자기가 어떻게 하면 좋냐며 리에에게 고백하자, 그것은 비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뭐든 금방 털어놓고 마는 경박한 성격 때문이라 느낀다. 이혼을 하고 떠나는 날 마저 도시락을 싸달라는 둥, 다시 놀러오고 싶다는 둥 자신의 감정만을 소중히 여기는 미노루와 비슷한 수준의 여자애를 생각하자 문득 리에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o 남자들은 머핀을 싫어해

손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일에 빠져있는 마흔두 살의 렌은 미미라는 여자친구와 별장으로 휴가를 떠나기로 했으면서도 일에 빠져 별장으로 올 수가 없다. 미미는 렌이 별장에 자신의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을 느낄 뿐 실제 별장으로 오지는 않고 일만 할 뿐이다. 급기야 자신의 조카 시몬을 보낸다. 미미는 시몬을 위해 머핀을 만들지만, 시몬이 머핀을 싫다고 하자 사실 자신도 머핀을 보기에 그럴 듯 해서 만들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미는 시몬과 함께 별장을 떠난다.

 

소설의 주된 밑그림은 결핍과 비정상, 이루어질 수 없음 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소설 속 주인공들은 그런 굴절된 상태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작가는 몇 가지 패턴을 통해 이를 그려내고 있는데 먼저 근친상간과 관련된 욕망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의 고즈에는 동생의 남자친구를 열망하고, <사랑의 관>의 우네는 조카와 관계를 맺는다. 고즈에가 동생의 남자친구와 육체관계를 맺는 것 까지 상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까지 나아가기 전(방어기재의 작용?) 결국 혼자 살게 될 것을 어렴풋이 안다고 느낀다. 우네는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조카를 유혹한다.

 

다음으로 불륜관계인데 <그 정도 일이야>와 <눈이 내릴 때 까지>에서 관능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 정도 일이야>에서 가오리와 호리씨는 치키라는 새끼 돼지 인형을 매개로 불륜을 욕망하는 둘 사이의 대화를 도덕의 경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관능적으로 처리하고, <눈이 내릴 때 까지>에서는 불륜관계를 통해 적극적인 행복을 맛보고 있는 사람을 여자인 이와코로 내세우고 있다. 피동적으로 그려지며 가정 있는 남자의 처분만을 바라는 여성이 아니라 불륜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순간을 탐닉하는 여성을 그려내고 있다.

 

한편 <차가 너무 뜨거워>와 <사로잡혀서>에서는 자기밖에 모르는 어린애 같은 남성을 등장시키고, 한때 그런 남성의 에고에 귀엽다는 느낌을 받았던 여성이 결국은 쓰디쓴 댓가를 치른 후 자아들 찾고 과거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표제작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서 조제는 그래서 자기가 느끼는 행복이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끝나는 '죽음의 세계' 이후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기에, 자기와 츠네오의 관계를 어떤 틀에 가두어(결혼, 호적신고 등) 깨어질 수도 있는 무엇인가로 만들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과연 옛날 이야기처럼 '그후로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일까? 

그후로 어쨌다는 이야기가 다나베 세이코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후로 행복하게 살았던, 죽도록 불행했던 그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순간이고, 이 순간이 불안하면 불안할 수록, 비정상적이면 비정상적일수록 에로틱하고, 관능적이고, 충만한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슬펐다. 소설 자체가 슬펐고, 이 소설을 슬픈 이야기로 읽을 수 밖에 없는 나의 조로(早老)함이 슬펐으며,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과 소설 속 주인공을 꼭 닮은 사람이 떠올라 슬펐다.

 

10년쯤 전에 E.L.보이니치의 <등에>를 읽으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깊은 슬픔을 느낀 것이 참 오랜만인 것 같다. 거기 나오는 노래가 생각 난다.

 

난 행복한

등에 한 마리

내가 살든,

내가 죽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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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살인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6
크리스토퍼 부시 지음, 남정현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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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독자에게 대담한 도전을 한다. 

먼저 <프롤로그를 대신하여>라는 권두의 글을 통해 이곳에 모든 해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언급을 한다. 그리고 정부의 특수 임무를 맡은 듯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이 시작되면 작가의 도발이 다시 한번 이어진다. 완전살인을 하겠다는 범인의 편지가 대담하게 신문사로 배달된 것이다. 그리고 그 예고대로 토머스 리치레이라는 사람이 살해당한다.

토머스 리치레이는 부유한 자산가로 그에게는 처자식이 없고, 유산을 물려받을 친족으로 네 명의 조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조카들과의 사이가 무척 좋지 않았고, 최근에 그 집의 가정부와 결혼을 하려는 시점이었기에 유력한 용의자는 네 명의 조카로 좁혀진다. 하지만 네 명의 조카 모두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

알리바이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작품을 주로 써온 크리스토퍼 부시는 1934년 <백 퍼센트의 알리바이(The case of the 100% Alibis)>와 같은 작품에서도 완벽한 알리바이로 수사가 벽에 부딪히고, 주인공이 트릭을 붕괴시켜 나가는 내용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국내에 번역된 책은 <완전살인> 한 권 뿐이다.

완전살인에서도 완벽한 알리바이가 해체되면서 권두에 나오는 특수 임무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밝혀진다. 사전 자체에 박진감이 없고, 알리바이를 해결하기 전까지 지나치게 이야기를 끄는 점 등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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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나의 병사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27
하비에르 세르카스 지음, 김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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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친구들 >

10여년 전 쓴 두 권의 소설 이후 이렇다 할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아내마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상태의 주인공 하비에르는 어쩔 수 없이 신문사로 복직을 한다. 그리고 그 즈음 라파엘 산체스 마사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스페인 팔랑헤 초기 맴버이자 시인, 소설가였던 산체스 마사스는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쿨옐 지방에서 집단 총살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50명을 총살시키는 혼란의 와중을 틈 타 근처의 숲으로 도망친 산체스 마사스는 도랑에 숨어 진흙을 온통 뒤집어 쓰고 숨는다. 도망자를 수색하던 공화군 병사가 산체스 마사스를 발견하고 둘은 눈빛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병사는 누군가 있느냐는 동료의 질문에 아무도 없다는 대답을 하고 돌아선다.

사건에 흥미를 느낀 하비에르는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조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도망친 산체스 마사스를 숨겨준 공화국 탈주병들, 숲 속의 친구들에 대해 듣게 된다. 하비에르는 우여곡절 끝에 당시 숲 속의 친구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게 되고, 그들로부터 산체스 마사스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준다는 약속을 지켰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산체스 마사스가 쓰기로 했던 소설의 이름은 <살라미나의 병사들>이었다.

 

<살라미나의 병사들>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 집권을 목도한 산체스 마사스는 이를 롤모델로 스페인에서 파시스트 정당 팔랑헤를 결성한다. 내전이 발생한 후 공화군에게 포로로 붙잡힌 산체스 마사스는 집단 총살에서 간신히 탈출하여 숲 속으로 도망친다. 도망자를 찾던 공화군 병사는 산체스 마사스를 발견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소리치며 뒤돌아서 가버린다. 산체스 마사스는 농가로 도망치고 그곳에서 마리아 퍼레라는 처녀를 만난다. 그리고 그 지방에서 공화군으로 참전했다가 탈영병이 된 세 명의 청년, 피게라스 형제와 안젤라츠를 만난다. 매복 생활을 하면서 페레 피게라스와 대화를 나누던 산체스 마사스는 한 병사에 대해 이야기해준다.그는 포로들을 감시하던 병사였는데 어느 날 <스페인을 향한 탄식>이라는 파소 도블레 곡에 맞추어 소총이 마치 여자인 듯 껴안고 춤을 춘다. 그런 그를 보고 포로와 감시병들 모두가 폭소를 떠뜨린다. 산체스 마사스는 그가 자신을 놓아 준 병사임에 틀림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국민파가 도착하고, 산체스 마사스만이 차편을 구해 떠나게 된다.

산체스 마사스는 프랑코 정권에서 장관 직을 받게 되고 권력의 핵심이 되지만, 정작 자신이 그렸던 파시즘과 프랑코 정권이 실제로 만든 파시즘 사이에는 많은 간극이 있음을 알게 된다. 팔랑헤 맴버들 역시 이런 간극을 느꼈고 일부는 프랑코에 반대하고, 일부는 권력의 떡고물을 얻으려 한다. 확실치 않은 이유로 장관직을 물러난 산체스 마사스는 많은 유산을 물려 받은 후, 필명에 연연하지 않으며 문학 작품을 쓰는 등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그를 일커어 '산체스 마사스는 전쟁에서 이기고 문학사에서 패배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빌바오에는 그의 이름을 붙인 골목이 하나 있다.

 

<스톡턴에서의 만남>

<살라미나의 병사들>을 완성했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던 하비에르는 작품을 포기하고 신문사로 복직한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인터뷰를 하던 중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를 만난다. 볼라뇨는 뜻밖에도 하비에르의 전작 두편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그에게 안토니오 미라예스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안토니오 미라예스는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 대전을 두루 치른 인물로 한때는 프랑스 용병으로 북아프리카에서도 복무하였고, 프랑스가 독일에 이미 패배한 줄도 모르고 프랑스 국기를 들고 이탈리아와 독일 점령지를 공격하기도 한 인물이다. 노르망디 상률 작전에 참여하기도 한 그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 남아 파리로 입성하고, 현재는 프랑스 정부의 연금을 받으며 디종의 노인 복지 시설에서 쓸쓸히 살아가고 있다.

하비에르는 미라예스의 이야기를 듣던 중 그가 어느 여름 밤, 캠핑지에서 창녀와 <스페인을 향한 탄식>에 맞추어 파소 도블레를 추었다는 사실과, 쿨옐 지방에서 복무했었다는 사실을 듣고 산체스 마사스를 살려준 병사가 미라예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렵게 미라예스를 만난 하비에르는 전쟁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내전에서 무명용사들에게 진 빚의 무게를 실감한다. 그리고 그런 무명용사들에 관해 자신이 이야기를 전한다면, 거리 이름 따위가 붙지 않을지라도 계속 살아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문명을 구할 소수의 병사가 있다면 그것은 산체스 마사스가 아니라 미라예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1939년 4월 1일, 프랑코가 공화군의 무조건적인 항복 하에 종전을 선언한 이후 1975년 사망할 때 까지 스페인은 1인 독제 체제가 유지된다. 그리고 1982년 사회당 정권이 들어설 때 까지의 기간을 <이행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좌파와 우파 지도자들은 내전 기간과 독재 기간 중에 자행된 모든 일들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이른바 <망각 협정>에 합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망각 협정>이 사회적 동요를 최소화 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역사를 바로 세워 온당한 평가를 내리는 데는 실패했다.

작가 하비에르는 이런 사실을 작품 전체를 관통하여 주장하고 있다. 산체스 마사스와 같은 팔랑헤 작가들은 복권되어 작품과 삶이 재조명되고, 거리에 그들의 이름이 붙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역할은 산체스 마사스를 도와준 숲 속 친구들의 삶, 미라예스와 같은 무명 용사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작가는 볼라뇨와의 대화에서 진정한 영웅은 <사람을 죽이는 자가 아니라 죽이지 않는 자, 죽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자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는 언급을 한다. 역사에서 영웅은 미라예스와 같이 역사의 아이러니에 의해 어느 편에 서게 되었을지라도, 그 어느 편을 넘어서서 끝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고 순수하게 파소 도블레를 추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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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뱀파이어 연대기 1
앤 라이스 지음, 김혜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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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루이스가 하룻 밤 동안 인터뷰를 하며 지나온 생애를 들려준다.

 

루이스는 루이지애나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그의 동생이 비전을 보았다며 가산을 모두 처분하여 선교 활동에 써야 한다고 조르지만 루이스는 응낙하지 않는다. 동생은 사망하고, 원인이 자살인지 사고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루이스는 이 사건이 무척 자기중심적인 데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성자가 자신과 가까운 곳에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뱀파이어 레스타에 의해 뱀파이어가 된 루이스는 레스타와 기묘한 생활을 시작한다. 레스타는 루이스의 농장 쁘앙뜨 둘락으로부터 안정적인 수입을 취할 수 있고,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모시기에도 적당하다고 생각하였다. 레스타는 루이스 역시 뱀파이어의 성정으로 자신과 함께 살인의 쾌락을 즐길 것을 기대하였지만 루이스는 인간적인 본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람의 피를 거부한 채 동물의 피로 연명한다.

 

사색적이고 인간적인 루이스는 선과 악에 대한 인간적 기준과 뱀파이어로서의 본능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이 때문에 레스타와 사사건건 마찰한다. 루이스의 인간적인 면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루이스가 떠날 것을 두려워한 레스타는 고아 소녀 끌로디아를 뱀파이어로 만든다. 루이스의 사색적인 면과 레스타의 야수적 본성을 모두 가진 끌로디아는 뱀파이어의 영생과 사멸, 동족의 존재 등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 한다. 그리고 레스타가 사실은 뱀파이어의 비밀에 대해 아무 것도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점과 자신을 어린 아이 상태에서 뱀파이어로 만든 것에 대한 증오가 겹쳐 창조자 레스타를 살해한다. 끌로디아를 지키기 위해 살해에 가담한 루이스는 끌로디아와 함께 뱀파이어의 발생지로 종종 지목되는 동유럽으로 건너가지만, 그곳에는 살인 욕구만 남은 분별 없는 하급 뱀파이어들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프랑스로 건너간 그들은 뱀파이어 아르망을 만나게 된다. 아르망은 극장 떼아뜨르 드 빵삐레를 거처로 삼고 여러명의 뱀파이어를 거느린 인물로 확신에 찬 그의 언행에 루이스는 매혹 된다. 아르망 역시 인간적인 고뇌를 하며 답을 구하는 루이스에게 끌리게 되고, 끌로디아는 루이스를 독차지하려는 욕심에 아르망이 자신을 제거할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떠나게 될 것을 예감한 루이스는 끌로디아의 청에 따라 마들린느를 뱀파이어로 만들어 끌로디아와 함께 있도록 한다. 레스타가 부활하여 극장으로 찾아와 그들이 자신에게 한 짓을 알리자 뱀파이어들이 마들린느와 끌로디아를 살해하고, 그제서야 루이스는 자신이 끌로디아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해뜨기 직전에 극장을 불살라 뱀파이어들을 살해하여 복수한다.

 

뉴 올리언즈로 아르망과 돌아간 루이스는 그곳에서 레스타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레스타는 영생의 몸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죽어가는 인간처럼 모든 정렬을 소진한 존재가 되어버렸고,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아르망에게 실망한 루이스는 상실감만을 안게 된다. 

 

인터뷰를 마친 루이스에게 지금껏 듣고 있던 젊은이는 뱀파이어의 영생체에 매혹 당해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들어줄 것을 간청하지만 루이스는 그의 피를 마실 뿐이다. 가까스로 살아난 젊은이는 뱀파이어가 되기 위해 레스타의 소재지를 루이스의 인터뷰로 부터 알아 내고, 그곳을 찾아 떠난다.

 

1994년 닐 조단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기도 한 작품으로 <뱀파이어 연대기 The Vampire Chronicles> 첫째 권이다. 프랑스 인들이 정착한 미국의 뉴 올리언즈를 떠나 유럽으로 가지만 그곳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공간적인 이동을 한 축으로, 자신의 창조자(레스타)를 부정하여 죽이고 다른 창조자(아르망)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 모두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이야기를 다른 한 축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루이스는 아르망에게 한때 매혹되어 그를 따라나서지만 이는 자신의 인간적 고뇌, 악을 행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인간의 피를 마시고 뱀파이어면서도 인간적 고뇌에 괴로워하는가 하면

신을 찾아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신부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때 나타난 아르망은 루이스에게 강력하고 아름다우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아르망 역시 루이스를 독차지 하기 위해 끌로디아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었음을 알게 된 후 그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식어버린다.

자신을 창조하고 사랑했던 레스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끌로디아를 죽게 만든 루이스의 인간적 고뇌와, 초인간적 영생이 대비되어 루이스의 슬픔은 더욱 부각된다.

 

인간들과 더불어 사는 시간과 자신을 드러내는 삶을 포기하는 대신 영생과 권능을 얻는다는 뱀파이어 모티프는 무척 매력적인 계약이다. 하지만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저주와 아픔으로  부각되는 것은 '뱀파이어가 된 후에도 인간적 고뇌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라는 가정 때문이다. 영생을 살기에 찰나의 관계 맺기가 두렵고, 영원을 전제로 맺은 관계는 깨어질 때 견뎌내기 더욱 힘들다. 고통은 죽음이라는 망각과 함께 사라지지 못한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중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라는 시구가 떠오르며, 새삼 한용운님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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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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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렉싱턴의 유령

작가인 '나'에게 케이시라는 이름의 건축가가 개인적인 만남을 제안하는 편지를 보내온다. 충실한 재즈 컬렉션이라는 말에 흥미가 생긴 '나'는 렉싱턴에 사는 그와 교유를 시작한다. 케이시는 어렸을 적 어머니를 여의였고 15년 전에는 아버지 역시 췌장암으로 사망한다. 어느날 케이시가 여행을 떠나면서 일주일간 집을 봐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 집에 머문 첫날 밤, 유령들이 나타나 파티를 벌이는 것을 목격한다.

되돌아온 케이시로부터 어머니가 사망한 후 아버지가 3주일 동안 잠만 주무셨다는 이야기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 자신도 2주일쯤 잠만 잤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당시 잠의 세계가 진짜 세계고 현실 세계는 잠시 지나가는 세계에 지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나'는 때때로 당시를 떠올리곤 하는데, 기묘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연의 아득함 탓에 조금도 기묘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o 녹색의 짐승

어느날 녹색의 짐승이 나타난다. 짐승의 눈만은 인간의 눈처럼 생겼으며 감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서려 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어쩐 일인지 알아차리는 듯 하다. 나는 나에게 프러포즈 하고 싶어하는 녹색의 짐승에게 꼴사나운 짐승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점점 짐승의 겉모습이 변하고 눈에서는 눈물 같은 것이 흐른다. 나는 더욱 짐승을 괴롭힐 만한 생각을 거듭거듭 반복하고 결국 짐승은 점점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사라져버리고 만다.

 

o 침묵

권투를 하는 오자와씨에게 '나'는 누군가를 때린 적이 있는지 질문한다. 이에 오자와씨는 한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권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오자와씨는 영어 시험에서 1등을 한다. 같은 반에서 공부도 잘하고 요령도 있던 아오키는 나와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었는데 오자와씨가 1등한 사실을 참지 못하고 그가 컨닝을 했음에 틀림 없다는 헛소문을 퍼뜨린다. 참지 못한 나는 아오키를 때리게 되고 그 후 둘 사이는 서먹한 관계가 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같은 반 급우가 자살을 하자 오랫동안 복수를 생각하고 있던 아오키는 담임선생에게 자살한 급우가 오자와씨에게 폭행당해왔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끔 이야기 한다. 이로서 이지매를 당한 오자와씨는 어느날 전철에서 아오키와 마주치고 둘은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아오키의 눈이 흔들린 순간 오자와씨는 문제는 깊음이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며 아오키에게는 그런 것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오자와씨가 끝내 공포를 느꼈던 것은 아오키 같은 인간이 아니라 다른 이의 말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은 후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무리들이었다.

 

o 얼음사나이

얼음사나이와 결혼한 주인공은 어느날 일상의 따분함을 참지 못하고 남극으로 여행할 것을 제안한다. 주저하는 얼음 사나이와 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남극에서 홀로 남아 유폐된 느낌을 갖는다. 그리고 임신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이 얼음사나이와 똑같은 아이를 낳을 것임을 알게 된다. 얼음사나이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지만 나는 얼음의 눈물을 계속 흘릴 뿐이다.

 

o 토니 다키타니

태평양 전쟁 직후 태어난 토니 다키타니의 아버지는 다키타니 세이사부로라고 하는 사람으로 재즈 트롬본 연주자였다. 좋아하는 트롬본을 불면서 그다지 큰 어려움도 없이 인생을 즐기던 그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아내가 곧 죽어버렸고 친하게 지내던 미군이 아이 이름을 토니로 지어준다.

토니 다키타니는 정밀한 그림 그리는 일에 흥미를 느꼈고 전공투 바람이 불던 시기에도 이와 무관하게 묵묵히 자기 일만 하였다. 그 결과 그 분야에서 명성을 얻고 돈도 많이 벌게 된다. 어느날 거래처의 여직원에게 반하여 결혼하였는데 그녀는 옷을 맵시있게 입는 여성이었다. 결혼한 후 옷을 사들이는 일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던 아내가 어느날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토니 다키타니는 그 옷을 입어줄 여성을 고용한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끝나버린 일들이 되돌려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옷을 처분한다. 또, 아버지가 남긴 많은 재즈 음반도 처분한다. 그리고 그는 진짜 외톨이가 되었다.

 

o 일곱 번째 남자

태풍이 몰아닥치던 날 이웃에 사는 K와 해변에 놀러갔다가 밀려오는 해일 앞에서 공포에 사로잡혀 혼자 도망친 주인공은 파도의 꼭대기에서 K가 웃음을 던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생각한다. 그 후로 주인공의 인생은 바다에 대한 공포와 K에 대한 죄책감으로 점철된다. 어느날 되돌아간 고향에서 K의 수채화들을 다시 본 주인공은 K가 자신을 보고 미소를 보낸 것이 어쩌면 영원한 작별 인사는 아니었는지, 그리고 K의 표정에서 느꼈던 강한 증오의 표정이 사실은 그 순간 자신을 사로잡았던 공포의 투영은 아닌지 생각한다. 공포를 극복한 나는 인생에서 정말 무서운 건 공포 그 자체라기 보다는 공포를 향해서 등을 돌리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o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도쿄에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진 주인공 '나'는 잠시 고향에 돌아온다. 그곳에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촌동생을 병원에 데려다 주면서 8년전의 일을 떠올린다.

'나'는 당시 친구와 함께 친구의 여자친구 문병을 간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한 시를 들려준다. 장님 버드나무의 꽃가루를 묻힌 파리가 여자의 몸 속에서 살을 먹어들어가는 이야기이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사촌동생은 존 포드 감독의 <아파치 요새>에 나오는 이야기를 한다. 그곳에서 존 웨인은 인디언을 보았다는 장군에게 '걱정 마십시오. 장군께서 인디언을 보았다는 건, 바꿔 말하면 인디언은 거기 없다는 뜻입이다'라는 대사를 이야기하며, '누구의 눈에나 다 보이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말을 한다.

그리고 '나'는 그날 문병을 갔다가 농담만 주고 받다 헤어진 일을 생각한다. 괜찮냐는 사촌동생의 물음에 나는 '걱정할 것 없어'라고 말해준다.

 

발리 여행 여섯째날 부터 마지막 날까지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다른 나라에 간다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왠지 읽어보고 싶었져서 가지고 갔다. 특이하게도 작가 자신의 설명이 권말에 수록되어 있다. 

작품집 중 <토니 다키타니>는 어디선가 한번 읽은 기억은 나는데 어떤 책이었는지 가물가물했었다. 권말의 해설을 읽어보니 각각의 작품들이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른 책에도 수록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가장 하루키 다운 작품은 아무래도 <침묵>과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가 아닐까 한다.

집단 행동에 대해 의문을 품고 동참할 수 없는 작가의 성향을 잘 드러내는 <침묵>, 그리고 <노르웨이의 숲>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하는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가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게 했다. 확실히 어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인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나보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문체를 베끼고 피츠제럴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국적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느꼈던 시기가 꽤 오랫동안 있었는데, 최근 나의 삶이 '절도' 라는 것에서 많이 벗어난 이유인지 무라카미 하루키에 조금은 공감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4226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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