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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나의 병사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27
하비에르 세르카스 지음, 김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평점 :
<숲 속의 친구들 >
10여년 전 쓴 두 권의 소설 이후 이렇다 할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아내마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상태의 주인공 하비에르는 어쩔 수 없이 신문사로 복직을 한다. 그리고 그 즈음 라파엘 산체스 마사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스페인 팔랑헤 초기 맴버이자 시인, 소설가였던 산체스 마사스는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쿨옐 지방에서 집단 총살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50명을 총살시키는 혼란의 와중을 틈 타 근처의 숲으로 도망친 산체스 마사스는 도랑에 숨어 진흙을 온통 뒤집어 쓰고 숨는다. 도망자를 수색하던 공화군 병사가 산체스 마사스를 발견하고 둘은 눈빛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병사는 누군가 있느냐는 동료의 질문에 아무도 없다는 대답을 하고 돌아선다.
사건에 흥미를 느낀 하비에르는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조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도망친 산체스 마사스를 숨겨준 공화국 탈주병들, 숲 속의 친구들에 대해 듣게 된다. 하비에르는 우여곡절 끝에 당시 숲 속의 친구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게 되고, 그들로부터 산체스 마사스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준다는 약속을 지켰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산체스 마사스가 쓰기로 했던 소설의 이름은 <살라미나의 병사들>이었다.
<살라미나의 병사들>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 집권을 목도한 산체스 마사스는 이를 롤모델로 스페인에서 파시스트 정당 팔랑헤를 결성한다. 내전이 발생한 후 공화군에게 포로로 붙잡힌 산체스 마사스는 집단 총살에서 간신히 탈출하여 숲 속으로 도망친다. 도망자를 찾던 공화군 병사는 산체스 마사스를 발견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소리치며 뒤돌아서 가버린다. 산체스 마사스는 농가로 도망치고 그곳에서 마리아 퍼레라는 처녀를 만난다. 그리고 그 지방에서 공화군으로 참전했다가 탈영병이 된 세 명의 청년, 피게라스 형제와 안젤라츠를 만난다. 매복 생활을 하면서 페레 피게라스와 대화를 나누던 산체스 마사스는 한 병사에 대해 이야기해준다.그는 포로들을 감시하던 병사였는데 어느 날 <스페인을 향한 탄식>이라는 파소 도블레 곡에 맞추어 소총이 마치 여자인 듯 껴안고 춤을 춘다. 그런 그를 보고 포로와 감시병들 모두가 폭소를 떠뜨린다. 산체스 마사스는 그가 자신을 놓아 준 병사임에 틀림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국민파가 도착하고, 산체스 마사스만이 차편을 구해 떠나게 된다.
산체스 마사스는 프랑코 정권에서 장관 직을 받게 되고 권력의 핵심이 되지만, 정작 자신이 그렸던 파시즘과 프랑코 정권이 실제로 만든 파시즘 사이에는 많은 간극이 있음을 알게 된다. 팔랑헤 맴버들 역시 이런 간극을 느꼈고 일부는 프랑코에 반대하고, 일부는 권력의 떡고물을 얻으려 한다. 확실치 않은 이유로 장관직을 물러난 산체스 마사스는 많은 유산을 물려 받은 후, 필명에 연연하지 않으며 문학 작품을 쓰는 등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그를 일커어 '산체스 마사스는 전쟁에서 이기고 문학사에서 패배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빌바오에는 그의 이름을 붙인 골목이 하나 있다.
<스톡턴에서의 만남>
<살라미나의 병사들>을 완성했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던 하비에르는 작품을 포기하고 신문사로 복직한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인터뷰를 하던 중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를 만난다. 볼라뇨는 뜻밖에도 하비에르의 전작 두편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그에게 안토니오 미라예스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안토니오 미라예스는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 대전을 두루 치른 인물로 한때는 프랑스 용병으로 북아프리카에서도 복무하였고, 프랑스가 독일에 이미 패배한 줄도 모르고 프랑스 국기를 들고 이탈리아와 독일 점령지를 공격하기도 한 인물이다. 노르망디 상률 작전에 참여하기도 한 그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 남아 파리로 입성하고, 현재는 프랑스 정부의 연금을 받으며 디종의 노인 복지 시설에서 쓸쓸히 살아가고 있다.
하비에르는 미라예스의 이야기를 듣던 중 그가 어느 여름 밤, 캠핑지에서 창녀와 <스페인을 향한 탄식>에 맞추어 파소 도블레를 추었다는 사실과, 쿨옐 지방에서 복무했었다는 사실을 듣고 산체스 마사스를 살려준 병사가 미라예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렵게 미라예스를 만난 하비에르는 전쟁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내전에서 무명용사들에게 진 빚의 무게를 실감한다. 그리고 그런 무명용사들에 관해 자신이 이야기를 전한다면, 거리 이름 따위가 붙지 않을지라도 계속 살아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문명을 구할 소수의 병사가 있다면 그것은 산체스 마사스가 아니라 미라예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1939년 4월 1일, 프랑코가 공화군의 무조건적인 항복 하에 종전을 선언한 이후 1975년 사망할 때 까지 스페인은 1인 독제 체제가 유지된다. 그리고 1982년 사회당 정권이 들어설 때 까지의 기간을 <이행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좌파와 우파 지도자들은 내전 기간과 독재 기간 중에 자행된 모든 일들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이른바 <망각 협정>에 합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망각 협정>이 사회적 동요를 최소화 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역사를 바로 세워 온당한 평가를 내리는 데는 실패했다.
작가 하비에르는 이런 사실을 작품 전체를 관통하여 주장하고 있다. 산체스 마사스와 같은 팔랑헤 작가들은 복권되어 작품과 삶이 재조명되고, 거리에 그들의 이름이 붙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역할은 산체스 마사스를 도와준 숲 속 친구들의 삶, 미라예스와 같은 무명 용사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작가는 볼라뇨와의 대화에서 진정한 영웅은 <사람을 죽이는 자가 아니라 죽이지 않는 자, 죽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자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는 언급을 한다. 역사에서 영웅은 미라예스와 같이 역사의 아이러니에 의해 어느 편에 서게 되었을지라도, 그 어느 편을 넘어서서 끝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고 순수하게 파소 도블레를 추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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