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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o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주인공 고즈에는 전문학교를 나와 조그만 회사에 근무하며, 언젠가는 결혼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 미도리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고즈에는 미도리의 남자친구가 자기의 남자라면 어떨까 하는 공상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꿈속에서만 살다가 평생 남자를 못 만나고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숙명을 옛날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o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스물 다섯살의 조제는 어릴적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후 할머니와 살아가고 있다. 조제의 본명은 구미코이다. 하지만 프랑스와즈 사강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 마음에 들어 조제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츠네오는 같은 동네에 사는 대학생으로 조제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주었다. 때때로 조제의 집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고장난 집을 고쳐주기도 한다.
츠네오가 졸업과 취직 때문에 오랜만에 조제를 찾았을 때, 조제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보잘 것 없는 집을 얻어 가구 대신에 종이상자를 놓아 살아가고 있었다. 츠네오에게 조제는 악을 쓰며 가버리라고 말하다가 막상 가려는 츠네오에게 가지 말라고 또 떼를 쓴다. 츠네오는 '텔레비전도 팔아버렸고, 라디오도 망가졌고, 나 너무 외로워...' 라고 말하는 조제가 가엽다가도, '어, 그럼 내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대신이란 말이야?'라고 묻자, '그래. 이 라디오는 대답을 해줘서 좋아'라고 말하는 조제가 귀엽다.
조제는 동물원에 가고 싶어하고 그곳에서 호랑이를 본다. 호랑이를 본 조제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라고 말한다. 둘은 수족관에도 간다. 그리고 조제는 자기가 느끼는 지금의 행복한 상태가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그후로도 조제와 츠네오는 같이 살아간다. 결혼도, 호적신고도, 하지 않았지만.
o 사랑의 관
남편으로부터 이중인격이라는 말을 듣고, 결국 이혼하게 된 우네는 자신이 그 말로 인해 상처받았음을 느낀다. 이복 언니인 큰언니 소개로 만난 남편이었기 때문에 다른 형제들과도 소원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큰언니의 아들인 열아홉의 유지에게 우네는 에로틱한 감정을 느낀다. 우네는 자신에게 성적 호기심과 열망을 느끼는 유지에게 한껏 공상에 빠지도록 할 수도 있고,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어쩌면 자신이 진짜 이중인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매년 9월에 떠나는 호화로운 여름휴가에 유지를 오도록 한다. 우네는 두번 다시 유지와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기에, 유지와 맺게 될 관계가 극한의 열락으로 가리라 느낀다.
o 그 정도 일이야
가오리는 여섯 살 어린 호리 씨가 좋아지고 만다. 남편은 일과 친구에 빠져서 충족한 삶을 누리고 있고, 가오리는 자기대로 약간은 체념한 상태이다. 호리 씨와 놀러 간 축제에서 손가락 돼지 인형인 치키를 산다. 둘은 치키가 말하는 것처럼 흉내내며 자신들의 내밀한 대화를 한다. 둘은 돼지 인형을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드러내며 아슬아슬한 경계를 걷는다.
o 눈이 내릴 때까지
마흔이 넘은 오바는 가정이 있는 이와코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포목점에서 조용히 일하는 오바는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돈을 착실히 불려왔고 조용히 자기를 가꿀 줄도 안다. 이와코는 한번도 결혼하지 않았지만, 결혼에 대한 꿈을 갖지 않는다. 결혼에 대한 꿈을 품지 않게 되자, 자유로운 기분이 들고 즐거움을 느낀다.
가정이 있는 오바와 만나면서 이와코는 '언제 헤어져도 좋아'라는 생각을 하며 철저히 즐겼기 때문에, 만나는 그 순간에도 그가 먼 과거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생기도 없는 미래까지 같이 가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그런 오바를 만나는 이와코는 언제나 처음 만나는 여자와 같다는 생각을 하고, 오바는 언제나 부끄러움을 느낀다.
o 차가 너무 뜨거워
이제는 유명 드라마 작가가 된 아구리에게 칠년 전에 자기를 떠난 요시오카가 연락을 해온다. 만나자는 요시오카의 말에 아구리는 저도 모르게 들뜨고 만다. 하지만 막상 만난 요시오카는 어딘지 모르게 갑자기 늙어버린 느낌이다. 요시오카는 아버지가 물려준 중소기업을 기획 사기를 당해 모두 날려버리고 아내에게 이혼당한 상태이다. 그는 아구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사달라며 애원하고, 아구리는 요시오카가 차라리 다시 성공하여 그 무신경과 어린애 기질로 자신을 상처 입히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o 짐은 벌써 다 쌌어
아내가 집을 나가고 자녀가 있는 히데오에게 시집 간 에리코는 아이들을 떠맡을 용기까지는 나지 않아 따로 살림을 차려 둘이서 살아간다. 어릴 적 아이들이 간혹 놀러오기도 했지만 히데오는 옛날 가정과 현재의 가정을 엄격히 분리했기 때문에 에리코는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집을 나갔던 아내가 갈 곳이 없어지자 다시 아이들 집으로 들어오고, 둘째 아들이 말썽을 피우는 등 가정이기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생기자 히데오가 짊어진 고통도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o 사로잡혀서
미노루의 우유부단한 성격에 자기 본위의 어린애 같은 면을 한 때 리에는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노루가 거래처 여자애와 바람을 피우고 임신까지 시킨 후 자기가 어떻게 하면 좋냐며 리에에게 고백하자, 그것은 비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뭐든 금방 털어놓고 마는 경박한 성격 때문이라 느낀다. 이혼을 하고 떠나는 날 마저 도시락을 싸달라는 둥, 다시 놀러오고 싶다는 둥 자신의 감정만을 소중히 여기는 미노루와 비슷한 수준의 여자애를 생각하자 문득 리에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o 남자들은 머핀을 싫어해
손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일에 빠져있는 마흔두 살의 렌은 미미라는 여자친구와 별장으로 휴가를 떠나기로 했으면서도 일에 빠져 별장으로 올 수가 없다. 미미는 렌이 별장에 자신의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을 느낄 뿐 실제 별장으로 오지는 않고 일만 할 뿐이다. 급기야 자신의 조카 시몬을 보낸다. 미미는 시몬을 위해 머핀을 만들지만, 시몬이 머핀을 싫다고 하자 사실 자신도 머핀을 보기에 그럴 듯 해서 만들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미는 시몬과 함께 별장을 떠난다.
소설의 주된 밑그림은 결핍과 비정상, 이루어질 수 없음 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소설 속 주인공들은 그런 굴절된 상태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작가는 몇 가지 패턴을 통해 이를 그려내고 있는데 먼저 근친상간과 관련된 욕망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의 고즈에는 동생의 남자친구를 열망하고, <사랑의 관>의 우네는 조카와 관계를 맺는다. 고즈에가 동생의 남자친구와 육체관계를 맺는 것 까지 상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까지 나아가기 전(방어기재의 작용?) 결국 혼자 살게 될 것을 어렴풋이 안다고 느낀다. 우네는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조카를 유혹한다.
다음으로 불륜관계인데 <그 정도 일이야>와 <눈이 내릴 때 까지>에서 관능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 정도 일이야>에서 가오리와 호리씨는 치키라는 새끼 돼지 인형을 매개로 불륜을 욕망하는 둘 사이의 대화를 도덕의 경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관능적으로 처리하고, <눈이 내릴 때 까지>에서는 불륜관계를 통해 적극적인 행복을 맛보고 있는 사람을 여자인 이와코로 내세우고 있다. 피동적으로 그려지며 가정 있는 남자의 처분만을 바라는 여성이 아니라 불륜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순간을 탐닉하는 여성을 그려내고 있다.
한편 <차가 너무 뜨거워>와 <사로잡혀서>에서는 자기밖에 모르는 어린애 같은 남성을 등장시키고, 한때 그런 남성의 에고에 귀엽다는 느낌을 받았던 여성이 결국은 쓰디쓴 댓가를 치른 후 자아들 찾고 과거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표제작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서 조제는 그래서 자기가 느끼는 행복이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끝나는 '죽음의 세계' 이후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기에, 자기와 츠네오의 관계를 어떤 틀에 가두어(결혼, 호적신고 등) 깨어질 수도 있는 무엇인가로 만들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과연 옛날 이야기처럼 '그후로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일까?
그후로 어쨌다는 이야기가 다나베 세이코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후로 행복하게 살았던, 죽도록 불행했던 그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순간이고, 이 순간이 불안하면 불안할 수록, 비정상적이면 비정상적일수록 에로틱하고, 관능적이고, 충만한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슬펐다. 소설 자체가 슬펐고, 이 소설을 슬픈 이야기로 읽을 수 밖에 없는 나의 조로(早老)함이 슬펐으며,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과 소설 속 주인공을 꼭 닮은 사람이 떠올라 슬펐다.
10년쯤 전에 E.L.보이니치의 <등에>를 읽으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깊은 슬픔을 느낀 것이 참 오랜만인 것 같다. 거기 나오는 노래가 생각 난다.
난 행복한
등에 한 마리
내가 살든,
내가 죽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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