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우 J 미스터리 클럽 3
미치오 슈스케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가모 요이치로의 아내 사키에가 암이 재발되어 사망한다. 조문을 온 미즈시로와 그의 아내 메구미는  요이치로, 사키에 부부와 의과대학 시절부터 알던 사이로 자녀인 오스케와 아키 역시 같은 학교에 다니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사키에가 사망한 이후, 오스케는 아키의 엄마 메구미를 만나는데 그 순간 기묘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성인 남녀가 알몸으로 엉켜있고 그 남녀를 사내아이가 지켜보고 있는 꿈이다. 그후 메구미가 미즈시로가 일하는 의대 건물 옥상에서 투신 자살한다. 경찰은 커터칼과 혈흔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메구미가 손목을 그어 자살하려다 실패하자 투신자살한 것으로 보고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키가 석연치 않은 교통사고를 당한다. 운전자는 여자아이가 스스로 차를 향해 뛰어들었다는 진술을 한다.

요이치로는 미즈시로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2년 전 어떤 사건으로 인해 미즈시로가 메구미를 의심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즈시로의 이야기에 따르면 2년 전 쓰레기통에서 메구미의 불륜을 증거하는 물건을 발견한 이후 메구미를 믿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키 역시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망상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미즈시로의 증세가 나빠지고 아키가 가출하여 오스케의 집으로 왔을 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키가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때에 어떤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인데 오스케는 그 범인이 아키의 아버지 미즈시로라고 짐작한다. 한편 의학서적과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끄적여 놓은 요이치로의 메모를 보고 오스케는 다지 박사를 찾아가 요이치로의 증세가 재발했다고 하는데...

 

과연 자신을 투영시킨 섀도우를 지닌 인물은 누구인가?

이 책에서 사건성을 갖고 있는 인물은 누구인가? 이상한 환상에 시달리는 오스케인가, 요이치로의 불길한 짐작처럼 딸에 대한 성적 망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미즈시로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16년 전의 어떤 사건으로 병이 발생했다는 요이치로인가.

아키를 성폭행한 범인은 아버지인 미즈시로인가, 아니면 신체 접촉하려 할 때마다 아키가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요이치로인가.

 

2007년 제7회 본격미스터리대상 수상작으로 작가의 네번째 장편소설이다. 서술트릭과 눈가림이 도처에 진을 치고 있어 독자는 사건성을 파악하는데 골몰하게 되지만 그에 대한 답은 의외의 곳에 숨어 있다. 복잡한 트릭을 도처에 숨기고 있지만 작품 자체는 좀 단선적인 느낌인데 인물의 성격과 개성, 주변 묘사 등에 그 이유가 있는 듯 하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00534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북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부>

정신병원에 수용된 화자 '나'(오스카르)는 간호사에게 부탁해 종이를 구한 후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그의 조부는 요셉 콜야이체크로 폴란드에 충성을 맹세하고 제재소를 불태운다. 이 일로 콜야이체크는 경찰에 쫓기다가 우연히 감자밭에서 안나 브론스키라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의 치마 밑에 숨은 덕에 목숨을 구하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한 후 콜야이체크는 브랑카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세탁하여 살아간다. 하지만 평온한 삶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는 러시아로 일을 갔다 오는 길에 우연히 신분이 들통나 도망치던 중 강에 빠져 익사한다. 

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아그네스로 오스카르의 어머니이다. 아그네스는 자신의 사촌 얀 브론스키와 야릇한 관계에 있었지만 결혼은 독일 제국인인 알프레트 마쩨라트와 한다. 얀 브론스키는 반발하듯 폴란드 국적을 선택하고 폴란드 우체국으로 전근을 간다.

오스카르는 어머니 배 속에 있었을 때 마쩨라트가 '오스카르가 크게 되면 식료품점 일체를 물려 줄 것' 과, '세 살이 되면 양철북을 사줄 것' 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1924년 자유시 단찌히에서 오스카르는 출생한다. 세 살이 되던 해 생일 날, 우연히도 폴란드 국기를 상징하는 빨간색과 흰색이 칠해진 양철북을 선물 받은 오스카르는 '정치가나 식료품상이 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성장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어른들에게 성장을 멈춘 그럴 듯한 이유를 마련해 주기 위해 지하실로 가는 계단에서 스스로 떨어진 오스카르는 성장을 멈추고 영원한 세 살 짜리 어린아이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성공하지만, 지하실 계단 문을 열어 놓은 마쩨라트를 아그네스가 죄인 취급하는 의도치 않은 결과도 만들어 낸다.

북에 유난한 집착을 보이는 오스카르는 자신의 북을 빼앗으려하면 목소리를 높여 유리를 파괴시키는 능력을 보임으로서 북과 함께 생활해 간다.

페스탈로찌 학교에 입학 한 첫 날, 선생이 북을 빼앗으려 하자 안경과 유리창을 깨뜨려 학교에서 쫓겨나고, 그 후로 글을 배우기 위해 빵집을 하는 셰플러가의 그레트헨 부인 집에 드나든다. 오스카르는 괴테의 <친화력>, 그리고 <라스푸틴과 여자들>이라는 책을 통해 읽기를 배운다. 집에서도 책을 읽고 싶었지만 정신이 성장하는 것을 숨겨야 했기 때문에 오스카르는 책을 찢어내 몰래 집으로 가져간 후 두 권의 책을 합하여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낸다.

한편, 어머니 아그네스는 매주 목요일 유대인 마르쿠스의 가게에 오스카르를 맡긴 후 사촌인 얀 브론스키와 불륜 관계를 지속한다. 오스카르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얀 브론스키일 것이라고 짐작 한다.

어느날, 공연장에서 오스카르는 난장이 베브라를 만나게 되는데 그에게는 자신이 말을 할 수 있고 사고 능력도 있음을 속이지 않는다. 베브라는 '우리들 같은 사람은 결코 관객이 될 수 없다'며 오스카르에게 함께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그는 주문을 걸 듯 오스카르에게 키스하고 떠나간다.

이 즈음 마쩨라트는 당 활동을 시작하고 얀은 아그네스는 여전히 불륜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오스카르는 대중 집회의 연단 밑에 숨어서 북을 연주하여 집회를 엉망으로 만드는 행동을 하고 있었는데, 오스카르의 북소리 때문에 연설자는 말을 더듬고 행진곡이나 찬가가 왈츠나 폭스 트롯으로 변형되버렸기 때문이다. 1936년에서 1937년 사이 오스카르는 자신의 소리로 많은 시민들을 유혹하였는데 쇼윈도의 유리를 소리로 잘라 그 안의 물건들을 훔치도록 부추기곤 한 것이다. 심지어 얀 마저 목걸이를 훔쳐 아그네스에게 선물한다. 

얀과의 불륜을 위해 목요일마다 시내로 오스카르를 데리고 가는 아그네스는 토요일에는 성심교회에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오스카르는 교회의 창이 모조리 유리인 것을 속삭이는 악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예수와 마리아, 요셉의 석고상을 본 오스카르는 예수가 북을 치는 기적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예수의 목에 북을 걸어주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화가 난 오스카르는 자신이 시범을 보이기 위해 북을 쳐댔고 얀과의 불륜관계를 고해하려던 아그네스의 결심은 소동으로 흐지부지 되고 만다.

얼마 후 마쩨라트, 아그네스, 얀은 여행을 가고 그곳에서 우연히 한 사내가 말 대가리를 이용하여 장어를 잡는 광경을 보게 된다. 아그네스는 그 역겨운 모습에 구역질을 하고 마쩨라트는 사내에게 싼 값으로 장어를 산다. 절대로 장어를 먹지 않겠다는 아그네스에게 마쩨라트는 장어 요리를 내놓아 큰 소동이 벌어진다. 이주 후 절대로 생선을 먹지 않을 것 처럼 보이던 아그네스가 미친 사람처럼 생선과 생선기름만을 먹기 시작하더니 얼마 후 사망한다.

어머니를 잃은 오스카르는 거구의 사내 헤르베르트와 놀기 시작하는데 그의 등은 스웨덴과 노르웨이 선원들이 입힌 상처로 온통 흉터 투성이었다. 1938년, 세금이 인상되고 폴란드와 자유시 사이의 경계가 폐쇄된 시기에 헤르베르트는 새로운 직장을 얻는다. '목각의 니오베' 저주 때문에 아무도 박물관 수위직을 맡지 않으려 하여 헤르베르트는 쉽사리 직장을 구하지만 얼마 후 헤르베르트는 목각의 니오베에 메달려 교미를 하려고 시도하며 도끼질을 하다가 목숨을 잃고 만다. 음악가인 마인은 기마대의 트럼펫 주자로 변하여 전처럼 멋진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다가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들을 죽이는가 하면, 폴란드인을 멸시하던 장난감 가게의 주인 마르쿠스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돌격대에 의해 습격당한다.

 

<2부>

1938년 11월 5일 마르쿠스의 장난감가게가 문을 닫는 상징적인 사건과 더불어 많은 것이 변화한다. 39년 9월 1일 오스카르는 전차를 타고 얀을 찾아간다. 얀은 폴란드 우체국을 사수하는 임무를 저버리고 집으로 도망쳤다가 오스카르가 북을 고쳐달라고 하자 마음을 바꿔먹고 우체국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도망치려 했다는 것을 알고 냉담하게 대한다. 방어가 실패하고 마침내 우체국이 점령당하자 오스카르는 진입해온 방위대원에게 아버지 얀을 가르키며 그가 순진한 자신을 폴란드 우체국에 끌어들여 비인도적 방법으로 방탄에 이용했다고 말하며 유다와 같은 연기를 한다. 얀은 군사재판에 회부당하여 사형당하고 쟈스페 묘지에 묻힌다.

마쩨라트는 헤르베르트의 동생 마리아를 고용하여 집과 가게를 돌보도록 하는데 마리아는 오스카르를 잘 돌봐 주었고 장사에도 수완을 보인다. 40년 여름이 지나고 선갈퀴 비등산을 매개로한 관능적인 장난이 마리아와 오스카르 사이에 있다가 마침내 성관계까지 갖게 된다. 둘 사이의 관계가 있은 지 열흘 후 오스카르는 거실에서 마쩨라트와 관계 중인 마리아를 발견한다. 얼마 후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마쩨라트와 마리아는 결혼한다. 마리아를 되찾고 아이를 낙태시키려는 헛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오스카르는 채소상 그레프의 아내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그레프는 동성애자이고 보이스카웃 대원이었으나 보이스카웃이 해체되고 전쟁이 자신의 젊은 남자 애인들의 생명을 빼앗아가자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었다. 42년 9월 제6군(軍)이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했다는 뉴스가 나올 무렵, 그레프가 자살한다.

그리고 오스카르는 베브라와 재회한다. 그는 자신의 탁월한 식견과 달리 나치의 선전부대에 배속된 대위가 되어 있었다. 함께 있는 난장이 여자 로스비타와 파리에 유혹 당한 오스카르는 나치의 선전부대와 함께 공연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베브라의 연인인 로스비타와 육체 관계를 맺고 베브라에게 들키기도 하지만 어쩐 일인지 베브라는 별 감정이 없이 그들을 대한다. 44년 6월 콘크리트 견학을 간 오스카르는 그곳에서 수녀들을 학살하는 나치 부대를 목격한다. 전쟁이 나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급기야 로스비타가 공습에서 사망하자 오스카르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웃들의 사망소식이 여기저기서 전해질 무렵 오스카르는 성심교회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후계자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고 유리를 깨뜨리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서 '먼지떨이들'이라 불리는 느슨한 반정부 세력의 지도자가 된다. 44년 여름부터 정부 건물들을 습격하여 물품들을 철취하고, 급기야 성심교회를 습격하여 예수의 상을 절단하다가 체포된다. 하지만 세 살 모습의 오스카르는 이번에도 체포를 면하고 오히려 유괴당한 어린아이 역할을 기꺼이 떠맡는다.

전쟁의 막바지에 러시아군이 진주하여 가게를 점령하자 마쩨라트는 자신의 당원 배지를 숨기려고 한다. 하지만 오스카르가 당원 배지를 러시아군이 보는 앞에서 마쩨라트에게 돌려줌으로서 마쩨라트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마쩨라트를 매장하는 날 오스카르는 성장하기로 결심한다. 

 

<3부>

단찌히를 뒤로 하고 마리아의 언니 구스테 쾨스터가 살고 있는 라인란트까지 열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오스카르는 몹시 앓았으며 그 사이 10센티미터 가량이 자라난다. 구스테의 집에서 마리아는 인조 벌꿀을 팔고 쿠르트는 부싯돌을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간다. 오스카르는 묘석을 다듬고 글자를 세기는 일에 매력을 느껴 코르네프의 밑에서 일을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돈벌이가 호전되고 맞춤 옷까지 얻어입게 되자 오스카르는 곱추임에도 불구하고 그럴싸한 모습이 된다. 47년과 48년 겨울 몇명의 아가씨와 관계를 맺으면서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오스카르는 마리아에게 구혼하지만 거절당한다.

통화 개혁이 시행된 후 오스카르는 모델 일을 얻게 된다. 곱추인 오스카르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은 인기가 있었고 돈벌이로도 손색이 없었다. 얼마 후 콘크리트 참호에서 수녀들을 학살하던 랑케스 상병이 화가가 되어 오스카르와 재회하고 180센티미터에 가까운 여자 모델 울라를 알게 된다. 곱추인 오스카르와 키가 큰 울라는 짝을 지어 모델일을 하게 되는데 화가들로부터 인기를 끌게 된다. 오스카르는 마리아로부터 독립하여 방을 얻는다.

오스카르는 허름한 방 한 칸을 세내어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도로테아와 뚱뚱하고 게으른 뮌쩌(클레프)를 알게 된다. 도로테아에게 연정을 품은 오스카르는 그녀에게 패티쉬즘적인 집착을  하게 되고 어느 날 밤에는 그녀를 덮치기까지 하지만 오스카르의 실제 모습을 본 도로테아가 관계 맺기를 거부하고 다음 날로 짐을 싸서 나가버린다. 오스카르는 클레프, 숄레 등과 재즈 밴드를 결성하여 '양파 켈러'라는 곳에서 음악을 연주한다. '양파 켈러'는 단지 양파를 썰면서 눈물이 나오면 속엣 얘기를 하며 마음껏 눈물을 쏟아낸다는 별 것도 아닌 카페였지만 인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카페 주인 시무가 열두 마리의 참새만 잡는다는 원칙을 깨고 열세 마리째 참새를 잡은 날 사망하고, 되시 박사라 자칭하는 신사가 오스카르에게 단독 계약을 제안하자 '양파 켈러'를 떠난다. 그리고 다시 베브라를 만나는데 그는 음반기획사의 사장이 되어 있었다.

오스카르의 음악은 큰 반향을 일으켜 음반이 날개 돋힌 듯이 팔렸지만 클레프 마저 오스카르가 배신했다며 냉담하게 대하다가 집을 나가버리고, 오스카르는 간호사와 클레프의 방까지 빌려 쓸쓸히 살아간다. 어느 날 개를 임대해 산책을 나간 오스카르는 개가 물어온 여자 시체에서 떨어져 나온 무명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틀을 뜨는가 하면 그 앞에서 기도까지 한다. 고트프리트는 신문에 이름이 실리기 위해 오스카르를 고발한다. 무명지의 임자는 도로테아 간호사인 것으로 밝혀지고, 오스카르는 고트프리트의 고발 가치를 높여주고자 파리로 도주하고 그곳에서 검거된다. 하지만 법원은 오스카르의 정신이 이상하다는 판정을 내려 정신병원에 감금시키고 2년이 흐른 지금, 오스카르는 30회째의 생일을 맞는다.

새로운 단서가 잡혀 재판이 재개되어 진범이 밝혀질 것이고 오스카르는 자신의 30회 생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삶에 두려움을 심어주며 함께 했던 검은 마녀가 이제는 정면으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소설 속 오스카르가 성장하길 멈춘 1927년에 태어난 귄터 그라스는 14세 때에는 히틀러 소년단에 편입되었고, 17세 때에는 전차병으로 참전한다. 1946년 전후에는 판화와 회화, 금속 조각술을 공부하며 재즈 그룹 맴버로 활동했으며, 1959년 <양철북>을 발표한다.

 

소설은 귄터 그라스의 자전적 경험이자 당시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독일의 이야기이다. 오스카르가 경험하는 갖가지 국면은 상징과 비유로 읽힌다.

 

오스카르는 세 살이 되면서 스스로 성장하길 멈추는데 그 이유가 '정치가가 되거나 식료품업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며, 자신의 작은 양철북 치는 것에 골몰한다. 정신은 계속 성장하지만 육체는 세 살에 머물렀기 때문에 오스카르는 나치즘의 광기가 독일 전역을 휩쓸 때에 물리적인 합류가 불가능 하였고, 국외자적인 지위를 획득하여 타인의 삶을 관조하듯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주어를 '나'로 쓰지 않고 '오스카르'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인 듯 하다. 

여기서 문제시 되는 것이 얀과 아그네스의 불륜이다. 얀은 자신이 선택한 조국 폴란드가 그렇듯 허약하고 나약한 인물인데 아그네스와 매주 목요일 방을 빌어 불륜을 저지른다. 오스카르는 그들이 어떤 짓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은 불륜인가? 얀이 자신의 진짜 아버지일 경우 그들의 행위는 불륜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합법적인 행위로 볼 수도 없다. 법적인 아버지와 생물학적인 아버지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육체의 성장을 멈춰버린 유아적인 오스카르의 모습은 나치즘의 모습으로 읽힌다.

 

또 한가지 아이러니 한 점은 오스카르가 두 아버지와 아그네스 모두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그네스는 자신의 불륜을 성당에서 고해하고 그 관계를 끊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오스카르가 북을 치고 소동을 피워 고해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고, 여행에서 뱀장어를 보고 심한 구역질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뱀장어가 소설 속에서 어떤 여인이 자위 도구로 사용되었던 이야기를 함으로서 아그네스의 욕망을 상징 한다. 아그네스는 자신의 욕망에서 구역질을 느낀 것이다. 그녀는 이주일 후 뜻밖에도 생선과 생선기름에 탐닉하다 죽고 만다. 고해의 시도가 좌절되고 욕망이 승리하여 육체마저 잠식당하는 것이다. 이는 독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독일이 나치즘으로 가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 한때 카우츠키라는 사회주의계 대부가 있던 시절 독일은 유럽 어느 국가보다도 진보적인 국가였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 마저 세계 대전에서 자국의 전쟁 공채 발행을 지지하고 제국주의로 돌아서고, 결국 나치즘이라는 광적인 국가민족주의에 까지 이르게 된다.

얀은 공포심에 우체국 방어를 포기하고 도망쳤다가 오스카르 때문에 우체국으로 되돌아갔고 이것이 직접적인 사형의 이유가 된다. 뿐만 아니라 방위군이 몰아닥치자 오스카르는 거짓 밀고마저 자행한다. 

마쩨라트는 러시아군 앞에서 오스카르가 당원 배지를 건네주자 그것을 삼켜서라도 없애려고 하고 러시아 군에게 수상하게 여겨진 결과 사살 당한다. 

 

오스카르를  사람들은 세 살의 어린이 모습이기 때문에 모든 사건으로부터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건에서 오스카르는 결백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베브라의 존재가 오스카르의 '죄 있음'을 더욱 부각시킨다. 베브라는 오스카르의 정신적인 스승이었고 날카로운 사회인식을 하는 예술가로 그려지지만 그는 결국 나치의 선전부대 장교로 복무하고 오스카르를 부추기며 오스카르 역시 그를 따라 나선다. 수녀를 학살하는 나치 군인을 등장시키고, 그들에게 전쟁에 이기라고 고무했던 것이 바로 베브라와 오스카르 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마쩨라트가 죽은 뒤 오스카르는 성인이 된다. 마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극복하고 어른이 되는 것처럼 마쩨라트의 사살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오스카르는 성장을 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동안의 오스카르 행동에 대한 당연한 결과 기형적 곱추가 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그의 아들일지도 모르는 쿠르트에게 아버지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돌팔매질을 당한다. 양파를 자르면서 울음을 흘리는 사람들을 통해 독일인들이 억눌려 있는 죄의식들을 분출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그 가게의 사장은 불길한 열 세번째 참새를 쏘아 죽임으로서 사망하고 만다. 욕망의 과잉이 불행을 초래했다는 것을 또다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도로테아의 사체에서 나온 손가락을 오스카르는 보존하고 숭배한다. 보존한다는 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청산한다는 것, 극복한다는 것은 잊지 않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로부터 오스카르는 재판을 받고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이것은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지금까지 오스카르는 단 한번도 자신의 행동으로 벌을 받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로 벌을 받는다. 즉 죄를 짓는 것과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 역사 속 개인에게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독일의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결백할 수가 없으며 무죄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귄터 그라스는 독일의 비극적 역사를 <양철북>의 오스카르라는 개인을 통해 비유와 상징으로 이야기한 것에 그치지 않고 1961년부터 10년간 정치에 참여했으며, '작가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선언이나 저항을 표시해서는 안 되고,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의 정신적 우월감을 버리고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2010년 10월에 독일 뮌헨과 프랑크푸르트, 로텐부르크를 구경한 일이 있다. 독일 여행을 할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시가지의 건물들이 낮고 어두컴컴하며 오래된 건물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가이드가 독일은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많이 맞아 새로 지은 건물이 많은데, 교회 이상 높이로 건물을 짓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건물들이 낮다고 설명해 주었다.

마지막 날 500년 역사를 가졌다는 호프집에 들를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 모인 거구의(정말 독일인은 야만적인 인상이 들 정도로 모두들 거대했다) 사내들과 건강한 얼굴 빛깔을 한 마찬가지로 거구의 여인들이 순진하게 노래를 합창해 가며 술을 마시고, 사진을 찍는 우리들을 향해 미소를 보낼 때 과연 저들의 어떤 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독가스를 살포하게 했을까 하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개인 의지의 합산이 곧 집단 의지는 아니지만, 집단 의지가 역사 속에서 행동으로 표출된 이후의 개인 의지란 무력할 개연성이 다분하다는 것을 <양철북>을 읽으면서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00072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 대 남자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쉰 여섯살의 전직 보험업자 폴 아셀방크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병에 자신도 걸려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알게 된다. 엄습하는 고통과 불면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음식물만 섭취하고, 영화를 보거나 여자를 사서 공허를 달래던 아셀방크는 어느날 문득 자신을 떠난 아내 안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는 캐나다의 노스베이 소인이 찍혀있었다.

아셀방크는 공항에서 지프를 빌리려 하지만 남아있는 차가 한 대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뷰익을 빌려 <코스텔로 웨이>라는 이름의 모텔에 투숙한다. 모텔 주인 빅터 샨드라이는 인도 출신으로 장사가 잘 됐던 과거에 집착하며 손님들에 대해 히스테릭한 반응을 나타내는 사내였다.

경찰서에서 안나를 수소문한 아셀방크는 그녀가 한 때 사이슨이라는 자연학자의 집에 머물렀음을 알게 된다. 사이슨은 아셀방크에게 안나가 자신과 함께 살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육체적 관계는 없었다는 것과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녀가 떠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최종 격투기라는 야만적인 격투기를 함께 본다면 안나의 행방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아셀방크는 자신이 알고 있던 안나가 그런 격투기 관람 취향이 있었다는 사실에 의아해 한다.

안나가 사이슨을 떠나 만난 사내는 패터슨이라는 남자였다. 패터슨은 건장한 체격의 사냥꾼으로 한 때 바이러스로 인해 심장병을 않았지만 현재는 이식 수술로 건강한 몸을 되찾았다. 서로 얽매이지 않는 조건으로 여자친구 수전과 이따금 만나 관계를 갖고 있지만 그녀가 '특별한 성적 유희'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꺼낸 뒤로 왠지 성적 주도권을 잃고 주눅든 느낌에 빠진다. 그리고 부정한 어머니와의 불편한 관계, 심장을 이식해준 남자가 강간살인범이었다는 기억 등도 패터슨을 이따금씩 괴롭히는 요인이었다.

망원경을 사서 패터슨을 관찰하던 아셀방크는 마침내 그의 집으로 찾아가 대면한다. 둘은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며 눈길을 산책 나가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폭풍설을 만나 집 안에 고립되고 만다. 불과 오십보 밖에 차가 있고 그 안에 필요한 약이 있지만 가져올 수 없을 정도로 눈보라가 몰아치고 아셀방크는 그날 밤부터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패터슨은 아셀방크를 간호하고 며칠이 지난 후 열이 내린 밤, 아셀방크는 패터슨이 보고 있는 비디오를 우연히 보게 된다. 그리고 패터슨이 얼마 전 사고로 얼음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었다던 말이 바로 자신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셀방크가 떠나고 패터슨은 수전으로부터 걱정 했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패터슨은 그 전화로 '특별한 성적 유희' 운운으로 주눅들었던 마음이 조금 풀리며 어쩌면 그녀와 결혼할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눈덮인 벌판으로 사냥에 나선 패터슨은 사슴을 발견하고 석궁을 겨냥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려던 순간, 자신의 배에 석궁이 꽂힌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눈을 들어 아셀방크를 발견하고 도망친다. 아셀방크는 패터슨을 쫓아가 칼로 숨통을 끊는다.

 

소설은 나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와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를 인용한다.

<하나비>에서 니시는 병에 걸린 아내와 살해당한 동료의 미망인을 위해 조폭들에게 돈을 빌리지만 갚지 못해 추격당하고 아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다. 장 폴 뒤부아는 아셀방크의 입을 빌려 <하나비>의 결말은 우리네 인생이 끝나는 모습을 눈에 확 띄게, 그리고 좀 더 앞당겨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귀레, 신의 분노>는 1560년, 황금도시 엘도라도를 찾아 나선 에스파냐 군대의 이야기이다. 선발대장인 우르수아는 아마존 강의 거센 물살로 배를 더 전진시키지 못하자 퇴각을 명령하지만, 부대장인 아귀레는 황금과 권력에 눈이 멀어 반란을 일으키고 부대를 정글 깊숙이 이동시킨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굶주림과 질병, 그리고 창과 화살 세례에 죽어나가고 무자비한 살육 장면에서 주인공인 아귀레는 '나는 늘 생각해왔다. 다른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고, 만사가 그런 식으로, 즉 사방이 피로 물든 가운데 끝나야 한다고. 우리 몸을 채우고 있는 피, 만물의 심장에 들어 있는 피. 우리는 늘 이 피에 굶주려 있으므로' 라고 말한다.

패터슨의 숨통을 끊은 아셀방크는 아귀레의 대사를 다시 떠올리고 읊조린다. 대사에 이어지는 말은 '우리는 뗏목을 탄 채 밤을 예고하는 어둠 속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다.

 

소설 속에서 아셀방크와 패터슨은 안나라는 여자를 끈으로 이어져 있지만, 정작 안나는 등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죽었을 것이라는 암시가 있다. 아셀방크, 사이슨, 패터슨 모두는 그녀를 그리워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모습이나 떠나간 이유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녀는 그들에게 따뜻하고 아련한 무엇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누구도 그녀를 '소유'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모두 문제를 안고 있다. 당장 아셀방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치병에 걸려 있고 나약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고, 사이슨은 '변태같은 자'라 평을 듣는 성불구자이며 야만적인 격투기에 열광하는 광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패터슨은 사이슨이 '완전한 남자'라 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강인한 이미지와 달리 심장을 이식받은 자이며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고 수전에게 주눅이 들어 있다.

<남자 대 남자>는 행복이 가까이 있다는 <파랑새>를 비아냥거린 무자비한 현실 버전 같다. 행복은 옆에 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고, 찾으러 나서면 죽어버릴 뿐만 아니라 찾는 자들끼리 살육을 벌이는 것이 인생의 참모습이라는 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이었을까. 폭풍설이 지나가면 숨겨둔 내면의 악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에스키모인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오래 들여다 보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고 말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493944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은 마을 킹스 에보트에는 두 개의 저택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킹스 패독으로 페라즈 부인이 살고 있고, 다른 하나는 펀리 파크로 로저 애크로이드가 살고 있다. 어느 날 페라즈 부인이 사망하자 소설의 화자이자 마을 의사인 셰퍼드가 검시를 하는데, 사인은 수면제 과용으로 인한 사고사로 밝혀진다.

로저 애크로이드는 한 때 결혼했었지만 부인이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였고, 페라즈 부인 역시 남편이 알코올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다가 사망하였다. 동병상련의 처지였던 두 남녀가 결혼할 것을 마을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사건 직후 로저 애크로이드가 셰퍼드를 불러 페라즈 부인이 사실은 자살한 것으로 보이며, 자신에게 남편을 독살했던 비밀을 털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눈치챈 누군가가 페라즈 부인을 협박하여 돈을 갈취해왔다는 이야기였는데, 고백 이후 부인이 죄책감에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인이 남긴 편지가 로저 애크로이드에게 배달된다.

편지에는 협박범의 정체가 담겨 있었는데 애크로이드는 혼자서 읽길 원하였고 그를 남겨둔 채 셰퍼드는 집으로 돌아간다. 잠시 후 펀리 파크의 집사인 파커가 전화를 걸어와 로저 애크로이드가 살해당했음을 알려온다.

용의자는 먼저 양아들인 랄프 페이튼 대위로 그는 애크로이드의 사망으로 가장 많은 이득을 본다. 또한 마을에 은밀히 들어와 집이 아닌 여관에 머물고 있으며 숲 속에서 양아버지가 사망하면 곧 자기에게 돈이 들어온다는 수상쩍은 말을 하기도 했으며, 애크로이드가 사망한 직후부터 종적이 묘연하다.

다음으로 애크로이드의 여자 형제인 애크로이드 부인이 있다. 로저 애크로이드가 하녀인 미스 러셀과 미묘한 관계가 되자 적극적으로 둘 사이를 훼방한 전력이 있고, 최근 페라즈 부인과 결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 유산이 줄어들 위기에 있다.

집사인 파커는 사건 당일 방해하지 말아달라는 애크로이드의 말을 무시하고 대화 내용을 엿들으려한 혐의가 있어 페라즈 부인을 협박한 범인이 아닐까 의심 가는 행동을 한다.

또한 사건 당일 펀리 파크에 방문한 낯선 남자와 정자에 남겨진 거위 깃털, R로 부터라는 글씨가 세겨진 결혼 반지, 마약과 흔적이 남지 않는 독약에 대해 질문을 한 미스 러셀 등 사건은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 된다.

포와로는 모든 용의자들의 혐의를 합리적인 소거법을 통해 제거해 나간다. 먼저 사라진 40파운드의 범인이 랄프 페이튼의 사촌인 플로라의 소행인 점을 밝혀내고, 그녀가 도둑질을 은폐하기 위해 한 거짓말로 인해 에크로이드의 사망 시각에 혼동이 생겼음을 지적한다. 다음으로 미스 러셀이 마약에 관한 질문을 한 이유는 사건 당일 펀리 파크를 방문한 낯선 사내 때문이며, 그가 그녀의 숨겨진 아들이자 마약중독자이기 때문이었음을 알아 낸다. 결혼 반지는 랄프 페이튼이 하녀 어슐러 본에게 준 것이며 비밀 결혼 이후 나약한 성격 때문에 진실을 밝히지 못하다가 양아버지가 플로라와 약혼하라고 하자 이에 응낙했다가 어슐러와 다투는 과정에서 아버지 사망 운운의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애크로이드가 누군가와 나눈 대화가 사실을 딕타폰이라는 기계(녹음기와 비슷한 기계인 듯함)에서 흘러 나온 소리이며, 그 소리가 나올 때 이미 애크로이드는 사망한 상태였다는 것, 그리고 그 기계를 나중에 회수하기 위해 범인이 의자를 탁자가 가려지는 위치로 이동시켰다는 것을 추리한다.

이러한 소거법으로 범행이 가능했던 유일한 인물이 드러나는데, 그는 다름 아닌 소설의 화자 셰퍼드였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6번째 장편 소설로 작가의 작품 중 가장 평가가 엇갈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술했던 화자가 사실은 범인이라는 발상은 당대의 추리소설가 사이에서도 찬반격론을 일으켰는데, 반 다인은 떳떳하지 못한 방법이라고 비난한 반면 도로시 세이어스는 트릭이 훌륭하다고 격찬하였다.

 

번역본으로 읽은 독자가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무척 어렵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든다. 딕타폰에 대고 말한 애크로이드의 어투가 사건 해결의 단초가 되는데 <The Murder Of Roger Ackroyd> 페이퍼백을 찾아 보니 '...the calls on my purse have been so frequent of late that I fear it is impossible for me to accede to your request' 이며, 우리말로 옮겨 보자면 '최근에는 지출이 너무 많아서 나로선 당신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겠습니다'이다. 포와로는 이 말이 평상시 말투로는 너무 이상하였기 때문에 상대편이 있는 대화로 볼 수 없었다고 지적하는데, 사실 우리말로 옮겨 놓고 읽어 보면 그 차이를 알 수가 없다. 또한, 마지막 <Apologia> 장에서 셰퍼드가 말하는 몇 가지 변명들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 생생한 인물과 심리 묘사는 돋보인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이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중 일급 추리소설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읽는 이유는 해문출판사에서 발간한 빨간색 책 값이 싸서(그래서 번역도 싼 값을 한다) 다른 책을 사는 김에 한 두권 사다 보니 모으는 재미가 생겨서였다. 이번에 읽은 것은 고려원미디어 발간분인데 HAPER사에서 발간된 페이퍼북에 도전하다가 도저히 번역이 잘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중고서점에서 들고 왔다.

 

올해도 이제 거의 끝나 간다. 읽었던 독후감들의 제목을 보니 올 한 해 독서가 너무 충동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그때 그때의 기분에 따라 아침에 들고 나간 책을 읽었을 뿐인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읽은 책을 꼭 기록으로 남기자는 나 자신과의 약속은 지켜서 뿌듯한 맘도 있다. 힘들었던 시기를 독서를 하면서 견뎌냈고, 이제 좋은 일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더 충실한 독서의 기록들이 쌓이고 쌓여 나 자신도 계속 변화하기를, 그리고 언제 만나도 이야기꺼리가 있는 재미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해본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492736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어머니로부터 유산 처리를 부탁받고 여행을 떠나온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가련한 레오노레'의 일은 안되었다고 말하며 그녀가 자신에게 사랑을 느낀 것에 자신의 책임은 전혀 없었는지, 애정을 부추긴 것은 아니었는지 돌이켜 생각해본다.

베르테르는 빌헬름에게 자신이 사랑에 빠졌을 때 '그 영혼과 접촉하면, 나는 스스로 가능한 모든 것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실제의 나 자신보다도 더 위대한 것처럼 느꼈다'고 편지를 보내고, 얼마 후 법무관의 딸 로테를 알게 된다.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로테와 춤을 추면서 들뜬 감정에 사로잡히고, 정신적인 공감을 느꼈으며 그 결과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녀는 이미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는 상태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베르테르는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고 '...자기가 보잘것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내심의 불쾌감, 자기 불만이라고 할 수 있고, 어리석은 허영심의 사주를 받은 질투심이 항상 결부되어 있는' 상태에 빠져 든다. 

약혼자 알베르트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슬픔 속에서 베르테르는 다른 곳으로 떠나 그곳에서 행정관리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는 출세를 위해 쓸데 없는 일에 정력을 소모하는 자들만이 있었을 뿐이다. 베르테르는 '지위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며... 남들보다 뛰어나게 통찰을 하고 남들을 손아귀에 장악하여 스스로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힘과 정열을 집중시킬 수 있을 만한 수완과 지략을 갖춘 사람'이 실제적인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행동 한다. 하지만 백작이 주최하는 파티에서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쫓겨나다시피 하고, 자신의 신념들이 좌절되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후 사직을 하고 다시 로테가 있는 마을로 돌아간다. 과거의 열정이 다시금 되살아나 로테에게 열열히 구애를 하면서도, 이미 결혼한 로테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에 괴로워한 베르테르는 그녀의 진심을 알고 싶어 한다. 어느날 밤 로테 역시 내면의 열정에 굴복하여 베르테르에게 마음 한자락을 보여주지만 곧이어 베르테르와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말한다.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여행을 가기 위해 권총을 빌려달라는 쪽지를 보내고 권총은 로테의 손을 거쳐 베르테르에게 건내진다. 그는 로테에게 편지로 영원한 안녕을 고한 후 자살한다.

 

소위 독일문학의 질풍 노도의 시기(Strum und Drang)에 쓰여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가 25세 되던 해에 경함한 두 가지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괴테는 당시 샤로테 부프라는 여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으나 그녀는 이미 외교관 케스트너의 약혼자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좌절한 괴테는 둘에게 편지를 남기고 도망치듯 귀향한다. 얼마 후 그가 알고 지냈던 예루살렘이라는 서기관이 친구 부인에게 연정을 품고 자살하였는데, 자살한 권총이 케스트너가 예루살렘에게 빌려준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의 체험과 예루살렘의 비극적인 사건을 연결하여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소설은 베르테르가 레오노레라는 아가씨의 일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그녀는 베르테르에게 사랑을 느꼈으나 정작 베르테르는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상심했던 듯 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녀의 비극에 어떤 빌미를 제공하지는 않았나 가볍게 떠올려 본다. 마찬가지 사건이 베르테르와 로테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어쩌면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은 상대편의 적극적 의사와 상관 없는지도 모른다. 존재 자체가 빌미일 수도 있다. 욕망의 발현은 그 자체로 비극이며, 그 주체가 격정적일수록 비극의 정도는 심각하다.

베르테르의 욕망은 로테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나아가 로테와 현실에서 맺어지는 것이다. 첫번째 욕망은 충족되었거나, 충족되었다고 착각된다. 로테가 진정 베르테르를 사랑한 것인지, 아니면 순간의 정념에 굴복했을 뿐 진심이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베르테르의 수용 태도이지, 로테의 진심이 아니다.

두번째 욕망은 충족되지 못한다. 그래서 첫번째 욕망의 실현 여부도 사실은 미심쩍다. 어쨌든 두번째 욕망의 좌절로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자신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암시하고, 심지어 편지로 죽은 후 시신의 처리 문제에 관해서도 이야기 한다. 한편, 로테는 베르테르의 자살에 쓰일 것이 분명한 권총을 자신의 손으로 하인에게 전달한다.

<돈키호테>에 나오는 이야기로 생각되는데, 너무 오래 전이어서 내 기억 속에서 윤색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둘씨네아라는 처녀 이야기이다. 그녀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마을 총각들은 그녀를 본 순간 반해버렸고, 구애가 실패한 어떤 총각은 자살까지 하였다. 하지만 둘씨네아는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고 누군가가 그녀를 비난한다. 그러자 둘씨네아는 그 사람이 자기를 사랑했다고 해서 반드시 자기도 사랑할 이유는 없으며, 그 욕망이 좌절된 결과로 자살한 것까지 어떻게 책임지느냐 뭐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레오노레는 베르테르를 향해, 베르테르는 로테를 향해 각기 욕망을 품지만 충족되지 못한다. 충족되지 못한 욕망이 타인의 마음을 얻는 것과 관련될 때, 비극은 발생하지만 비극을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부조리하기에 사건의 양상이 종종 광기의 형태를 띤다. 광기의 형태가 아니고서는 그 엄청난 부조리를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488273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