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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평점 :
<1부>
정신병원에 수용된 화자 '나'(오스카르)는 간호사에게 부탁해 종이를 구한 후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그의 조부는 요셉 콜야이체크로 폴란드에 충성을 맹세하고 제재소를 불태운다. 이 일로 콜야이체크는 경찰에 쫓기다가 우연히 감자밭에서 안나 브론스키라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의 치마 밑에 숨은 덕에 목숨을 구하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한 후 콜야이체크는 브랑카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세탁하여 살아간다. 하지만 평온한 삶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는 러시아로 일을 갔다 오는 길에 우연히 신분이 들통나 도망치던 중 강에 빠져 익사한다.
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아그네스로 오스카르의 어머니이다. 아그네스는 자신의 사촌 얀 브론스키와 야릇한 관계에 있었지만 결혼은 독일 제국인인 알프레트 마쩨라트와 한다. 얀 브론스키는 반발하듯 폴란드 국적을 선택하고 폴란드 우체국으로 전근을 간다.
오스카르는 어머니 배 속에 있었을 때 마쩨라트가 '오스카르가 크게 되면 식료품점 일체를 물려 줄 것' 과, '세 살이 되면 양철북을 사줄 것' 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1924년 자유시 단찌히에서 오스카르는 출생한다. 세 살이 되던 해 생일 날, 우연히도 폴란드 국기를 상징하는 빨간색과 흰색이 칠해진 양철북을 선물 받은 오스카르는 '정치가나 식료품상이 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성장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어른들에게 성장을 멈춘 그럴 듯한 이유를 마련해 주기 위해 지하실로 가는 계단에서 스스로 떨어진 오스카르는 성장을 멈추고 영원한 세 살 짜리 어린아이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성공하지만, 지하실 계단 문을 열어 놓은 마쩨라트를 아그네스가 죄인 취급하는 의도치 않은 결과도 만들어 낸다.
북에 유난한 집착을 보이는 오스카르는 자신의 북을 빼앗으려하면 목소리를 높여 유리를 파괴시키는 능력을 보임으로서 북과 함께 생활해 간다.
페스탈로찌 학교에 입학 한 첫 날, 선생이 북을 빼앗으려 하자 안경과 유리창을 깨뜨려 학교에서 쫓겨나고, 그 후로 글을 배우기 위해 빵집을 하는 셰플러가의 그레트헨 부인 집에 드나든다. 오스카르는 괴테의 <친화력>, 그리고 <라스푸틴과 여자들>이라는 책을 통해 읽기를 배운다. 집에서도 책을 읽고 싶었지만 정신이 성장하는 것을 숨겨야 했기 때문에 오스카르는 책을 찢어내 몰래 집으로 가져간 후 두 권의 책을 합하여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낸다.
한편, 어머니 아그네스는 매주 목요일 유대인 마르쿠스의 가게에 오스카르를 맡긴 후 사촌인 얀 브론스키와 불륜 관계를 지속한다. 오스카르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얀 브론스키일 것이라고 짐작 한다.
어느날, 공연장에서 오스카르는 난장이 베브라를 만나게 되는데 그에게는 자신이 말을 할 수 있고 사고 능력도 있음을 속이지 않는다. 베브라는 '우리들 같은 사람은 결코 관객이 될 수 없다'며 오스카르에게 함께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그는 주문을 걸 듯 오스카르에게 키스하고 떠나간다.
이 즈음 마쩨라트는 당 활동을 시작하고 얀은 아그네스는 여전히 불륜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오스카르는 대중 집회의 연단 밑에 숨어서 북을 연주하여 집회를 엉망으로 만드는 행동을 하고 있었는데, 오스카르의 북소리 때문에 연설자는 말을 더듬고 행진곡이나 찬가가 왈츠나 폭스 트롯으로 변형되버렸기 때문이다. 1936년에서 1937년 사이 오스카르는 자신의 소리로 많은 시민들을 유혹하였는데 쇼윈도의 유리를 소리로 잘라 그 안의 물건들을 훔치도록 부추기곤 한 것이다. 심지어 얀 마저 목걸이를 훔쳐 아그네스에게 선물한다.
얀과의 불륜을 위해 목요일마다 시내로 오스카르를 데리고 가는 아그네스는 토요일에는 성심교회에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오스카르는 교회의 창이 모조리 유리인 것을 속삭이는 악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예수와 마리아, 요셉의 석고상을 본 오스카르는 예수가 북을 치는 기적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예수의 목에 북을 걸어주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화가 난 오스카르는 자신이 시범을 보이기 위해 북을 쳐댔고 얀과의 불륜관계를 고해하려던 아그네스의 결심은 소동으로 흐지부지 되고 만다.
얼마 후 마쩨라트, 아그네스, 얀은 여행을 가고 그곳에서 우연히 한 사내가 말 대가리를 이용하여 장어를 잡는 광경을 보게 된다. 아그네스는 그 역겨운 모습에 구역질을 하고 마쩨라트는 사내에게 싼 값으로 장어를 산다. 절대로 장어를 먹지 않겠다는 아그네스에게 마쩨라트는 장어 요리를 내놓아 큰 소동이 벌어진다. 이주 후 절대로 생선을 먹지 않을 것 처럼 보이던 아그네스가 미친 사람처럼 생선과 생선기름만을 먹기 시작하더니 얼마 후 사망한다.
어머니를 잃은 오스카르는 거구의 사내 헤르베르트와 놀기 시작하는데 그의 등은 스웨덴과 노르웨이 선원들이 입힌 상처로 온통 흉터 투성이었다. 1938년, 세금이 인상되고 폴란드와 자유시 사이의 경계가 폐쇄된 시기에 헤르베르트는 새로운 직장을 얻는다. '목각의 니오베' 저주 때문에 아무도 박물관 수위직을 맡지 않으려 하여 헤르베르트는 쉽사리 직장을 구하지만 얼마 후 헤르베르트는 목각의 니오베에 메달려 교미를 하려고 시도하며 도끼질을 하다가 목숨을 잃고 만다. 음악가인 마인은 기마대의 트럼펫 주자로 변하여 전처럼 멋진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다가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들을 죽이는가 하면, 폴란드인을 멸시하던 장난감 가게의 주인 마르쿠스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돌격대에 의해 습격당한다.
<2부>
1938년 11월 5일 마르쿠스의 장난감가게가 문을 닫는 상징적인 사건과 더불어 많은 것이 변화한다. 39년 9월 1일 오스카르는 전차를 타고 얀을 찾아간다. 얀은 폴란드 우체국을 사수하는 임무를 저버리고 집으로 도망쳤다가 오스카르가 북을 고쳐달라고 하자 마음을 바꿔먹고 우체국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도망치려 했다는 것을 알고 냉담하게 대한다. 방어가 실패하고 마침내 우체국이 점령당하자 오스카르는 진입해온 방위대원에게 아버지 얀을 가르키며 그가 순진한 자신을 폴란드 우체국에 끌어들여 비인도적 방법으로 방탄에 이용했다고 말하며 유다와 같은 연기를 한다. 얀은 군사재판에 회부당하여 사형당하고 쟈스페 묘지에 묻힌다.
마쩨라트는 헤르베르트의 동생 마리아를 고용하여 집과 가게를 돌보도록 하는데 마리아는 오스카르를 잘 돌봐 주었고 장사에도 수완을 보인다. 40년 여름이 지나고 선갈퀴 비등산을 매개로한 관능적인 장난이 마리아와 오스카르 사이에 있다가 마침내 성관계까지 갖게 된다. 둘 사이의 관계가 있은 지 열흘 후 오스카르는 거실에서 마쩨라트와 관계 중인 마리아를 발견한다. 얼마 후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마쩨라트와 마리아는 결혼한다. 마리아를 되찾고 아이를 낙태시키려는 헛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오스카르는 채소상 그레프의 아내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그레프는 동성애자이고 보이스카웃 대원이었으나 보이스카웃이 해체되고 전쟁이 자신의 젊은 남자 애인들의 생명을 빼앗아가자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었다. 42년 9월 제6군(軍)이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했다는 뉴스가 나올 무렵, 그레프가 자살한다.
그리고 오스카르는 베브라와 재회한다. 그는 자신의 탁월한 식견과 달리 나치의 선전부대에 배속된 대위가 되어 있었다. 함께 있는 난장이 여자 로스비타와 파리에 유혹 당한 오스카르는 나치의 선전부대와 함께 공연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베브라의 연인인 로스비타와 육체 관계를 맺고 베브라에게 들키기도 하지만 어쩐 일인지 베브라는 별 감정이 없이 그들을 대한다. 44년 6월 콘크리트 견학을 간 오스카르는 그곳에서 수녀들을 학살하는 나치 부대를 목격한다. 전쟁이 나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급기야 로스비타가 공습에서 사망하자 오스카르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웃들의 사망소식이 여기저기서 전해질 무렵 오스카르는 성심교회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후계자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고 유리를 깨뜨리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서 '먼지떨이들'이라 불리는 느슨한 반정부 세력의 지도자가 된다. 44년 여름부터 정부 건물들을 습격하여 물품들을 철취하고, 급기야 성심교회를 습격하여 예수의 상을 절단하다가 체포된다. 하지만 세 살 모습의 오스카르는 이번에도 체포를 면하고 오히려 유괴당한 어린아이 역할을 기꺼이 떠맡는다.
전쟁의 막바지에 러시아군이 진주하여 가게를 점령하자 마쩨라트는 자신의 당원 배지를 숨기려고 한다. 하지만 오스카르가 당원 배지를 러시아군이 보는 앞에서 마쩨라트에게 돌려줌으로서 마쩨라트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마쩨라트를 매장하는 날 오스카르는 성장하기로 결심한다.
<3부>
단찌히를 뒤로 하고 마리아의 언니 구스테 쾨스터가 살고 있는 라인란트까지 열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오스카르는 몹시 앓았으며 그 사이 10센티미터 가량이 자라난다. 구스테의 집에서 마리아는 인조 벌꿀을 팔고 쿠르트는 부싯돌을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간다. 오스카르는 묘석을 다듬고 글자를 세기는 일에 매력을 느껴 코르네프의 밑에서 일을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돈벌이가 호전되고 맞춤 옷까지 얻어입게 되자 오스카르는 곱추임에도 불구하고 그럴싸한 모습이 된다. 47년과 48년 겨울 몇명의 아가씨와 관계를 맺으면서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오스카르는 마리아에게 구혼하지만 거절당한다.
통화 개혁이 시행된 후 오스카르는 모델 일을 얻게 된다. 곱추인 오스카르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은 인기가 있었고 돈벌이로도 손색이 없었다. 얼마 후 콘크리트 참호에서 수녀들을 학살하던 랑케스 상병이 화가가 되어 오스카르와 재회하고 180센티미터에 가까운 여자 모델 울라를 알게 된다. 곱추인 오스카르와 키가 큰 울라는 짝을 지어 모델일을 하게 되는데 화가들로부터 인기를 끌게 된다. 오스카르는 마리아로부터 독립하여 방을 얻는다.
오스카르는 허름한 방 한 칸을 세내어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도로테아와 뚱뚱하고 게으른 뮌쩌(클레프)를 알게 된다. 도로테아에게 연정을 품은 오스카르는 그녀에게 패티쉬즘적인 집착을 하게 되고 어느 날 밤에는 그녀를 덮치기까지 하지만 오스카르의 실제 모습을 본 도로테아가 관계 맺기를 거부하고 다음 날로 짐을 싸서 나가버린다. 오스카르는 클레프, 숄레 등과 재즈 밴드를 결성하여 '양파 켈러'라는 곳에서 음악을 연주한다. '양파 켈러'는 단지 양파를 썰면서 눈물이 나오면 속엣 얘기를 하며 마음껏 눈물을 쏟아낸다는 별 것도 아닌 카페였지만 인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카페 주인 시무가 열두 마리의 참새만 잡는다는 원칙을 깨고 열세 마리째 참새를 잡은 날 사망하고, 되시 박사라 자칭하는 신사가 오스카르에게 단독 계약을 제안하자 '양파 켈러'를 떠난다. 그리고 다시 베브라를 만나는데 그는 음반기획사의 사장이 되어 있었다.
오스카르의 음악은 큰 반향을 일으켜 음반이 날개 돋힌 듯이 팔렸지만 클레프 마저 오스카르가 배신했다며 냉담하게 대하다가 집을 나가버리고, 오스카르는 간호사와 클레프의 방까지 빌려 쓸쓸히 살아간다. 어느 날 개를 임대해 산책을 나간 오스카르는 개가 물어온 여자 시체에서 떨어져 나온 무명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틀을 뜨는가 하면 그 앞에서 기도까지 한다. 고트프리트는 신문에 이름이 실리기 위해 오스카르를 고발한다. 무명지의 임자는 도로테아 간호사인 것으로 밝혀지고, 오스카르는 고트프리트의 고발 가치를 높여주고자 파리로 도주하고 그곳에서 검거된다. 하지만 법원은 오스카르의 정신이 이상하다는 판정을 내려 정신병원에 감금시키고 2년이 흐른 지금, 오스카르는 30회째의 생일을 맞는다.
새로운 단서가 잡혀 재판이 재개되어 진범이 밝혀질 것이고 오스카르는 자신의 30회 생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삶에 두려움을 심어주며 함께 했던 검은 마녀가 이제는 정면으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소설 속 오스카르가 성장하길 멈춘 1927년에 태어난 귄터 그라스는 14세 때에는 히틀러 소년단에 편입되었고, 17세 때에는 전차병으로 참전한다. 1946년 전후에는 판화와 회화, 금속 조각술을 공부하며 재즈 그룹 맴버로 활동했으며, 1959년 <양철북>을 발표한다.
소설은 귄터 그라스의 자전적 경험이자 당시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독일의 이야기이다. 오스카르가 경험하는 갖가지 국면은 상징과 비유로 읽힌다.
오스카르는 세 살이 되면서 스스로 성장하길 멈추는데 그 이유가 '정치가가 되거나 식료품업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며, 자신의 작은 양철북 치는 것에 골몰한다. 정신은 계속 성장하지만 육체는 세 살에 머물렀기 때문에 오스카르는 나치즘의 광기가 독일 전역을 휩쓸 때에 물리적인 합류가 불가능 하였고, 국외자적인 지위를 획득하여 타인의 삶을 관조하듯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주어를 '나'로 쓰지 않고 '오스카르'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인 듯 하다.
여기서 문제시 되는 것이 얀과 아그네스의 불륜이다. 얀은 자신이 선택한 조국 폴란드가 그렇듯 허약하고 나약한 인물인데 아그네스와 매주 목요일 방을 빌어 불륜을 저지른다. 오스카르는 그들이 어떤 짓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은 불륜인가? 얀이 자신의 진짜 아버지일 경우 그들의 행위는 불륜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합법적인 행위로 볼 수도 없다. 법적인 아버지와 생물학적인 아버지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육체의 성장을 멈춰버린 유아적인 오스카르의 모습은 나치즘의 모습으로 읽힌다.
또 한가지 아이러니 한 점은 오스카르가 두 아버지와 아그네스 모두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그네스는 자신의 불륜을 성당에서 고해하고 그 관계를 끊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오스카르가 북을 치고 소동을 피워 고해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고, 여행에서 뱀장어를 보고 심한 구역질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뱀장어가 소설 속에서 어떤 여인이 자위 도구로 사용되었던 이야기를 함으로서 아그네스의 욕망을 상징 한다. 아그네스는 자신의 욕망에서 구역질을 느낀 것이다. 그녀는 이주일 후 뜻밖에도 생선과 생선기름에 탐닉하다 죽고 만다. 고해의 시도가 좌절되고 욕망이 승리하여 육체마저 잠식당하는 것이다. 이는 독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독일이 나치즘으로 가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 한때 카우츠키라는 사회주의계 대부가 있던 시절 독일은 유럽 어느 국가보다도 진보적인 국가였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 마저 세계 대전에서 자국의 전쟁 공채 발행을 지지하고 제국주의로 돌아서고, 결국 나치즘이라는 광적인 국가민족주의에 까지 이르게 된다.
얀은 공포심에 우체국 방어를 포기하고 도망쳤다가 오스카르 때문에 우체국으로 되돌아갔고 이것이 직접적인 사형의 이유가 된다. 뿐만 아니라 방위군이 몰아닥치자 오스카르는 거짓 밀고마저 자행한다.
마쩨라트는 러시아군 앞에서 오스카르가 당원 배지를 건네주자 그것을 삼켜서라도 없애려고 하고 러시아 군에게 수상하게 여겨진 결과 사살 당한다.
오스카르를 사람들은 세 살의 어린이 모습이기 때문에 모든 사건으로부터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건에서 오스카르는 결백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베브라의 존재가 오스카르의 '죄 있음'을 더욱 부각시킨다. 베브라는 오스카르의 정신적인 스승이었고 날카로운 사회인식을 하는 예술가로 그려지지만 그는 결국 나치의 선전부대 장교로 복무하고 오스카르를 부추기며 오스카르 역시 그를 따라 나선다. 수녀를 학살하는 나치 군인을 등장시키고, 그들에게 전쟁에 이기라고 고무했던 것이 바로 베브라와 오스카르 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마쩨라트가 죽은 뒤 오스카르는 성인이 된다. 마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극복하고 어른이 되는 것처럼 마쩨라트의 사살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오스카르는 성장을 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동안의 오스카르 행동에 대한 당연한 결과 기형적 곱추가 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그의 아들일지도 모르는 쿠르트에게 아버지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돌팔매질을 당한다. 양파를 자르면서 울음을 흘리는 사람들을 통해 독일인들이 억눌려 있는 죄의식들을 분출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그 가게의 사장은 불길한 열 세번째 참새를 쏘아 죽임으로서 사망하고 만다. 욕망의 과잉이 불행을 초래했다는 것을 또다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도로테아의 사체에서 나온 손가락을 오스카르는 보존하고 숭배한다. 보존한다는 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청산한다는 것, 극복한다는 것은 잊지 않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로부터 오스카르는 재판을 받고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이것은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지금까지 오스카르는 단 한번도 자신의 행동으로 벌을 받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로 벌을 받는다. 즉 죄를 짓는 것과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 역사 속 개인에게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독일의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결백할 수가 없으며 무죄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귄터 그라스는 독일의 비극적 역사를 <양철북>의 오스카르라는 개인을 통해 비유와 상징으로 이야기한 것에 그치지 않고 1961년부터 10년간 정치에 참여했으며, '작가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선언이나 저항을 표시해서는 안 되고,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의 정신적 우월감을 버리고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2010년 10월에 독일 뮌헨과 프랑크푸르트, 로텐부르크를 구경한 일이 있다. 독일 여행을 할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시가지의 건물들이 낮고 어두컴컴하며 오래된 건물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가이드가 독일은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많이 맞아 새로 지은 건물이 많은데, 교회 이상 높이로 건물을 짓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건물들이 낮다고 설명해 주었다.
마지막 날 500년 역사를 가졌다는 호프집에 들를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 모인 거구의(정말 독일인은 야만적인 인상이 들 정도로 모두들 거대했다) 사내들과 건강한 얼굴 빛깔을 한 마찬가지로 거구의 여인들이 순진하게 노래를 합창해 가며 술을 마시고, 사진을 찍는 우리들을 향해 미소를 보낼 때 과연 저들의 어떤 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독가스를 살포하게 했을까 하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개인 의지의 합산이 곧 집단 의지는 아니지만, 집단 의지가 역사 속에서 행동으로 표출된 이후의 개인 의지란 무력할 개연성이 다분하다는 것을 <양철북>을 읽으면서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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