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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대 남자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쉰 여섯살의 전직 보험업자 폴 아셀방크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병에 자신도 걸려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알게 된다. 엄습하는 고통과 불면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음식물만 섭취하고, 영화를 보거나 여자를 사서 공허를 달래던 아셀방크는 어느날 문득 자신을 떠난 아내 안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는 캐나다의 노스베이 소인이 찍혀있었다.
아셀방크는 공항에서 지프를 빌리려 하지만 남아있는 차가 한 대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뷰익을 빌려 <코스텔로 웨이>라는 이름의 모텔에 투숙한다. 모텔 주인 빅터 샨드라이는 인도 출신으로 장사가 잘 됐던 과거에 집착하며 손님들에 대해 히스테릭한 반응을 나타내는 사내였다.
경찰서에서 안나를 수소문한 아셀방크는 그녀가 한 때 사이슨이라는 자연학자의 집에 머물렀음을 알게 된다. 사이슨은 아셀방크에게 안나가 자신과 함께 살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육체적 관계는 없었다는 것과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녀가 떠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최종 격투기라는 야만적인 격투기를 함께 본다면 안나의 행방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아셀방크는 자신이 알고 있던 안나가 그런 격투기 관람 취향이 있었다는 사실에 의아해 한다.
안나가 사이슨을 떠나 만난 사내는 패터슨이라는 남자였다. 패터슨은 건장한 체격의 사냥꾼으로 한 때 바이러스로 인해 심장병을 않았지만 현재는 이식 수술로 건강한 몸을 되찾았다. 서로 얽매이지 않는 조건으로 여자친구 수전과 이따금 만나 관계를 갖고 있지만 그녀가 '특별한 성적 유희'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꺼낸 뒤로 왠지 성적 주도권을 잃고 주눅든 느낌에 빠진다. 그리고 부정한 어머니와의 불편한 관계, 심장을 이식해준 남자가 강간살인범이었다는 기억 등도 패터슨을 이따금씩 괴롭히는 요인이었다.
망원경을 사서 패터슨을 관찰하던 아셀방크는 마침내 그의 집으로 찾아가 대면한다. 둘은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며 눈길을 산책 나가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폭풍설을 만나 집 안에 고립되고 만다. 불과 오십보 밖에 차가 있고 그 안에 필요한 약이 있지만 가져올 수 없을 정도로 눈보라가 몰아치고 아셀방크는 그날 밤부터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패터슨은 아셀방크를 간호하고 며칠이 지난 후 열이 내린 밤, 아셀방크는 패터슨이 보고 있는 비디오를 우연히 보게 된다. 그리고 패터슨이 얼마 전 사고로 얼음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었다던 말이 바로 자신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셀방크가 떠나고 패터슨은 수전으로부터 걱정 했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패터슨은 그 전화로 '특별한 성적 유희' 운운으로 주눅들었던 마음이 조금 풀리며 어쩌면 그녀와 결혼할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눈덮인 벌판으로 사냥에 나선 패터슨은 사슴을 발견하고 석궁을 겨냥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려던 순간, 자신의 배에 석궁이 꽂힌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눈을 들어 아셀방크를 발견하고 도망친다. 아셀방크는 패터슨을 쫓아가 칼로 숨통을 끊는다.
소설은 나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와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를 인용한다.
<하나비>에서 니시는 병에 걸린 아내와 살해당한 동료의 미망인을 위해 조폭들에게 돈을 빌리지만 갚지 못해 추격당하고 아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다. 장 폴 뒤부아는 아셀방크의 입을 빌려 <하나비>의 결말은 우리네 인생이 끝나는 모습을 눈에 확 띄게, 그리고 좀 더 앞당겨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귀레, 신의 분노>는 1560년, 황금도시 엘도라도를 찾아 나선 에스파냐 군대의 이야기이다. 선발대장인 우르수아는 아마존 강의 거센 물살로 배를 더 전진시키지 못하자 퇴각을 명령하지만, 부대장인 아귀레는 황금과 권력에 눈이 멀어 반란을 일으키고 부대를 정글 깊숙이 이동시킨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굶주림과 질병, 그리고 창과 화살 세례에 죽어나가고 무자비한 살육 장면에서 주인공인 아귀레는 '나는 늘 생각해왔다. 다른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고, 만사가 그런 식으로, 즉 사방이 피로 물든 가운데 끝나야 한다고. 우리 몸을 채우고 있는 피, 만물의 심장에 들어 있는 피. 우리는 늘 이 피에 굶주려 있으므로' 라고 말한다.
패터슨의 숨통을 끊은 아셀방크는 아귀레의 대사를 다시 떠올리고 읊조린다. 대사에 이어지는 말은 '우리는 뗏목을 탄 채 밤을 예고하는 어둠 속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다.
소설 속에서 아셀방크와 패터슨은 안나라는 여자를 끈으로 이어져 있지만, 정작 안나는 등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죽었을 것이라는 암시가 있다. 아셀방크, 사이슨, 패터슨 모두는 그녀를 그리워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모습이나 떠나간 이유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녀는 그들에게 따뜻하고 아련한 무엇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누구도 그녀를 '소유'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모두 문제를 안고 있다. 당장 아셀방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치병에 걸려 있고 나약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고, 사이슨은 '변태같은 자'라 평을 듣는 성불구자이며 야만적인 격투기에 열광하는 광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패터슨은 사이슨이 '완전한 남자'라 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강인한 이미지와 달리 심장을 이식받은 자이며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고 수전에게 주눅이 들어 있다.
<남자 대 남자>는 행복이 가까이 있다는 <파랑새>를 비아냥거린 무자비한 현실 버전 같다. 행복은 옆에 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고, 찾으러 나서면 죽어버릴 뿐만 아니라 찾는 자들끼리 살육을 벌이는 것이 인생의 참모습이라는 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이었을까. 폭풍설이 지나가면 숨겨둔 내면의 악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에스키모인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오래 들여다 보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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