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 바디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8
헨릭 시엔키에비츠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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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의 조신 페트로니우스는 "고상한 판관"으로 알려진 탐미주의자인데 그에게는 비니키우스라는 집정관 조카가 있다. 어느 날 비니키우스가 페트로니우스에게 자신이 리기 족 출신의 리기아라는 여성에게 반했는데 , 플라우티우스 장군과 그의 아내 그레키나 폼포니아가 양녀로 삼고 친딸과 같이 귀애한다고 말한다. 플라우티우스 장군은 깐깐한 성품으로 네로의 눈 밖에 난 인물이고, 그의 아내인 그레키나 폼포니아는 당시 로마의 문란한 여인들과 달리 한 남편만을 섬기고 있는 여성이었다. 페트로니우스는 비니키우스를 대동하여 플라우티우스의 집을 방문하는데, 리기아 역시 다시 만난 비니키우스에게 어렴풋한 연정을 느낀다.

조카가 리기아에게 푹 빠진 것을 알게 된 페트로니우스는 네로로 하여금 리기아를 궁전으로 불러들이게 하는 한편 그녀가 아름답지 않다는 편견을 심어주어 그녀를 네로 자신이 탐하지 않도록 꾀를 쓴다. 그 후 네로에게 리기아를 비니키우스의 집으로 보내도록 하여 그녀를 조카의 정부가 되도록 일을 도모한다. 궁전으로 끌려들어간 리기아는 비니키우스가 자신을 집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네로의 문란한 연회에 참석한 비니키우스는 만취하여 리기아를 함부로 대하여 그녀를 절망하게 만든다. 리기아는 괴력의 사나이 우르수스와 기독교인들의 도움을 받아 비니키우스의 집으로 가던 중 구출되고, 리기아를 빼앗긴 사실을 알게 된 비니키우스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자신을 오랫 동안 섬기던 노예들마저 때려 죽이거나 노역장으로 보내버린다. 

한편 황후 포페아는 궁전에서 리기아를 우연히 보고 그녀의 미모에 질투와 위기감을 느낀다. 그러던 차에 황녀가 아프게 되자 리기아가 저주를 내려 아픈 것이라며 그녀를 해칠 계략을 짜낸다.

 

페트로니우스는 비니키우스에게 리기아를 모종의 세력들이 도와준 것이 틀림 없고 아직 로마에서 도망치지 못한 것이 확실하니 노예들을 풀어 수색한다면 머지 않아 그녀를 다시 잡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여자 노예인 에우니케를 비니키우스에게 주려 하나 리기아에게 온통 마음이 쏠린 조카는 이를 거절한다. 페트로니우스는 에우니케를 달라는 다른 조신들의 요구에 문득 에우니케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자 노예들과 난잡한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에우니케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한다. 에우니케는 페트로니우스를 사랑하는 자신의 신세를 상담하기 위해 킬로 킬로니데스라는 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를 페트로니우스와 비니키우스에게 소개시켜 준다.

킬로 킬로니데스는 철학자를 자처하는 자로 행색은 초라하나 말솜씨가 좋고 잔꾀가 많은 자로 리기아가 어디에 있는지 자신이 능히 알아낼 수 있다고 장담한다. 킬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리기아가 그린 물고기 모양의 표시가 그리스도교의 암호라는 것을 단서로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접근한다.

그런데 킬로는 한 때 도적들과 내통하여 글라우쿠스라는 의사를 배신하여 그의 일가족을 몰살시킨 전력이 있는데, 그리스도교도들 사이에 글라우쿠스가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이 그에게 정체를 들킨다면 곤란한 상황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우르수스에게 글라우쿠스가 유다와 같은 자라며 죽일 것을 부탁하고 성격이 단순하고 순박한 우르수스는 비분에 젖어 그러겠다고 맹세한다.

킬로는 그리스도교도들이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를 보기 위해 오스트리아눔에서 모인다는 것을 알게 되자 비니키우스에게 이를 알리고 그들은 얼굴을 가린 채 그곳에 참가한다. 그곳에서 리기아를 발견한 비니키우스는 이성을 잃을 지경이 되고, 킬로의 충고를 무시한 채 유명한 검투사 크로톤을 대동하여 리기아가 숨어 지내는 거처를 습격한다. 하지만 크로톤은 우르수스에게 죽임을 당하고 비니키우스 역시 팔이 부러지는 상처를 입는다. 비니키우스는 글라우쿠스와 크리스푸스 장로, 그리고 리기아의 간호를 받아 건강을 차츰 회복하자 자신에게 딴 뜻이 없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없어진 자신을 찾을 것을 우려하여 킬로를 불러 편지를 전하려는데, 그때 글라우쿠스가 킬로를 알아보아 킬로의 정체가 드러난다. 글라우쿠스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신이 저지른 죄를 용서하듯이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길 바란다'며 킬로를 용서한다. 하지만 비니키우스는 킬로를 산채로 뜰에 매장해버리라며 화를 낸다. 킬로는 자신을 용서한 글라우쿠스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그 점은 비니키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복수를 하기는 커녕 용서를 해주고 도움을 주는 그리스도 교도들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리기아는 그리스도에 대해 비니키우스에게 이야기하였고 비니키우스는 그 신이 리기아가 믿는 신이므로 공경 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리기아에게 품었던 사랑과 증오가 조금씩 그 성격이 바뀜을 느끼게 된다. 페트로니우스는 리기아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순결한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로마의 집정관이며 명문가 출신인 비니키우스는 로마의 세계지배권을 인정하기는 커녕 대단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그들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리기아는 비니키우스에게 다시금 애틋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자신을 부모로부터 떨어뜨려 놓고 네로 황제와 더불어 음란한 연회를 벌이던 비니키우스에게 마음이 기우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어겼다고 느낀다. 광신적인 성향이 있는 크리스푸스는 리기아가 더러워 졌다며 은신처에서 떠나라고 한다. 하지만 베드로가 주님께서는 혼인 잔치에 참석하여 신랑 신부를 축복한 적이 있으며 리기아와 같이 깨끗한 처녀를 벌하는 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비니키우스와 맺어질 때가 아닌 것 같으므로 리기아가 떠나는데 동의한다.

 

비니키우스는 리기아가 다시 자신을 떠나자 무척 상심한다. 그녀에 대한 감정이 사랑과 증오를 반복하는 것도 여전했고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도 자신과 리기아를 떨어뜨려 놓는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비니키우스는 황제 네로가 주최하는 연회에 참석하는데 거기서 황후 포페아가 얼굴을 베일로 가린 채 비니키우스를 유혹한다. 그녀는 베일을 벗겨서 자신이 누구인지 맞춰보라고 하는데 페트로니우스가 그 순간 끼어들어 비니키우스를 빼낸다. 페트로니우스는 황후가 비니키우스를 유혹하였지만 비니키우스가 이를 뿌리쳤으며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였으므로 그녀는 더욱 리기아를 죽이려 할 것이고 비니키우스 역시 좋지 못한 일을 당하리라 걱정한다.

그 즈음 또다시 킬로가 리기아의 소식을 가지고 비니키우스를 찾아온다. 비니키우스는 킬로가 글라우쿠스에게 한 짓이 생각나 그에게 체벌을 가하고 킬로는 이에 앙심을 품는다. 리기아의 거처를 알게 된 비니키우스는 또 다시 리기아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베드로와 바오로 들을 만난다. 비니키우스는 자신이 권력을 이용하여 리기아를 데려갈 수도 있었지만 그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잘못을 뉘우친다. 집안으로 들어온 리기아에게 베드로는 여전히 비니키우스를 사랑하는지 묻고, 리기아의 대답에 베드로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축복해준다.

 

네로는 안티움으로 가서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시인된 면모를 드러내보이고 싶어했으므로 조신들을 대동하여 여행을 떠난다. 비니키우스 역시 네로와 동행하게 되어 리기아와는 한동안 떨어져 있게 된다. 이제 차츰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비니키우스를 찾아온 바오로가 페트로니우스와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바오로는 페트로니우스에게 '만약에 네로가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는 사랑의 교리를 받아들인다면 현재의 세계가 어떻겠는가' 하는 질문을 하지만 탐미주의자인 페트로니우스는 바오로의 얘기에 대해 '도무지 내게는 맞지 않는군'이라며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안티움에서 네로는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싶었고, 그런 점에서 시와 예술에 능한 페트로니우스의 칭찬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페트로니우스의 주가는 상승한 반면 근위대 사령관 티겔리누스의 지위는 떨어졌다. 티겔리누스는 네로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던 중 네로가 트로이 전쟁과 불타는 도시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으로 미루어 네로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티겔리누스는 네로의 환상을 현실로 만들 것을 충돌질하고 네로는 로마에 불을 지른다. 비니키우스는 리기아가 걱정되어 네로의 곁을 떠나 로마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킬로를 만난다. 킬로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있는 동굴을 비니키우스에게 알려 주는데 동굴에서는 광신적인 크리스푸스가 종말이 가까왔다며 사람들의 공포심을 부추기는 광신적인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베드로가 온유하고 평화로운 말로 사람들을 어루만진다. 리기아가 피신해 있는 석공의 집으로 간 비니키우스는 그곳에서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는다.

민심이 흉흉해지고 곳곳에서 약탈이 자행된다. 성난 군중들은 폐허가 된 로마의 책임이 네로에게 있다고 느꼈고 이에 네로와 조신들은 분노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길 원한다. 킬로는 황후와 티겔리누스에게 붙어 권력의 단맛을 보는 한편 비니키우스에게 복수하고자 했고, 이에 그리스도교인들을 팔아 그들이 로마에 불을 질렀다고 꾸며낸다. 페트로니우스는 비니키우스와 리기아가 걱정되어 네로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고 그리스도교인들을 옹호하여 네로의 눈 밖에 나고 만다.

 

그리스도교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로마 화재의 원성을 돌리기 위해 원형경기장이 가장 먼저 재건축 되기 시작한다. 페트로니우스는 자신의 모든 기지와 재치로 네로의 마음을 돌리려 하지만 네로가 자신을 브루투스에 비유하자 모든 것이 끝장 났다고 생가한다. 페트로니우스와 비니키우스는 네로와 포페아의 측근에게 엄청난 뇌물을 쏟아 붓지만 성과는 없었다. 비니키우스는 그리스도께서 리기아를 반드시 구해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희망을 느꼈지만, 돌아가는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현실에서는 좌절했다.

원형경기장이 건립되자 기독교도들이 맹수들의 먹잇감이 된다. 그들은 저항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순교해갔다. 관중들이 저항하지 않는 그들을 보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자 기독교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가 하면 화형을 시켜 죽인다. 킬로는 자신이 저지른 짓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직접 눈으로 본 후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다가 글라우쿠스에게 또 다시 용서를 받자 바오로에게 세례를 받아 기독교도가 된다. 그리고 네로가 로마 화재를 일으킨 범인이라고 시민들 앞에서 고발한 후 잡혀가 고문당해 혀가 뽑히고 만다. 페트로니우스는 기독교도들은 순교를 통해 저항하고 있다고 말하고, 조신들은 두려움을 느낀다. 

 

마침내 우르수스가 원형경기장에 나오게 되고 잠시 후 반대편에서 들소의 뿔에 리기아가 묶여서 나타난다. 우르수스는 초인적인 힘으로 들소를 제압하고 리기아를 구출한다. 로마 시민들은 모두 리기아와 우르수스를 살려줄 것을 청원한다. 네로는 시민들의 의사에 반할 만큼 용기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살려준다. 리기아와 비니키우스는 시칠리아로 네로의 핍박을 피해 도망친다.

뛰어난 재주를 가진 탐미주의자 페트로니우스는 네로가 이미 자신을 죽이기로 마음 먹은 것을 눈치채고 에우니케와 함께 네로를 조롱하는 편지를 남기고 자살한다. 네로는 반란군에 잡혀 죽임을 당한다.

 

 

'역사소설의 거장'으로 꼽히는 시엔키에비츠는 폴란드 태생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희망적인 내용을 소설로 그려내고자 하였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애국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역사 소설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등대지기>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고, 역사소설 3부작인 <불과 검으로>, <대홍수>, <보워디욥스키 장군>은 그의 문학적 정수로 꼽힌다. 시엔키에비츠는 "역사가는 문헌과 기록의 '틈새'를 추리에 의해서 메우지만, 소설가는 그것을 직관에 의해서 메운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설가도 역사가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세계를 재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1896년에 발표한 <쿠오 바디스>는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에게 던진 질문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에서 따온 제목으로,  구상부터 자료 수집, 집필에 이르기까지 오 년이 넘는 세월이 소요되었는데 19세기에 출간된 소설 중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혀졌으며, 전 세계 5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시엔키에비츠는 1905년, 폴란드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총 74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AD 63~68년 로마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소설은 전체적으로는 권선징악의 단순한 플롯이면서도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는 놀랍도록 짜임새가 있고, 인물들을 단순하고 강렬하게 대비시키면서도 입체적 인물을 적절히 배치시킴으로서 소설 자체의 미덕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폭정을 일삼으며 지상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는 네로와 사도 베드로, 아름답지만 음탕하고 사악한 포페아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리기아, 권력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검투사 크로톤과 기독교도인 우르수스 등의 강렬한 인물 대비는 소설을 직관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하는 반면 킬로와 비니키우스와 같이 끊없이 내적으로 갈등하는 입체적 인물을 그려냄으로서 독자가 그들의 행보에 주목하며 좀 더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특이한 인물은 페트로니우스이다. 작품의 시작은 페트로니우스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페트로니우스는 탐미주이자이자 '고상한 판관'으로 불리는 조신인데, 네로의 비위를 위태롭게 맞추며 그 긴장을 즐기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바오로와의 대화 속에서 바오로의 견해가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탐미주의적 성향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고, 끝내 네로를 조롱하는 편지를 남긴 후 에우니케와 정사(情死)에 가까운 종말을 맞는다. 그가 바오로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의 기질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의 '늙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거칠 것 없는 한 생을 살았고, 로마의 미래는 자신이 아닌 비니키우스와 같은 젊은 사람들의 몫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로서는 새로운 가르침을 따르며 삶의 방식을 바꾸기엔 늦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따라서 탐미주의자로서의 죽음을 기꺼이 선택했을 것이다. 역자 최성은은 페트로니우스가 몰락하는 로마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말하는데, 네로가 아닌 페트로니우스를 지목한 대목이 무척 공감이 간다.

일주일 넘게 차분히 읽었다. 읽으면서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나오는 장면이 떠올랐다. 배교를 할 수 없어 괴로워하는 로드리고에게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니라" 하던 그리스도,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어디에 계셨냐는 질문에 "너희와 함께 아파하고 있었다"고 답하는 그리스도.

비니키우스는 그리스도에게 리기아를 구원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집착하지만, 어느 순간 리기아만을 구원해달라고 하는 것이 죄가 아닐까 깨닫고 마침내 리기아와 함께 그리스도의 뜻에 따르리라 결심한다. 기도에 즉답하는 신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아파하는 우리를 보며 충분하다고 느끼는 신이야 말로 사람의 아들로서의 신의 모습이 아닐까. 원형 경기장에서 죽음을 앞둔 신자들 앞에서 크리스푸스는 광신적인 태도로 종말이 가까왔다며 회계하라 외치며 공포를 조장하자 베드로는 그리스도는 심판하는 신이 아니라 사랑의 신이라고 말한다. 함께 아파하는 사랑의 신이기에, 인간은 불합리함을 알면서도 믿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는 기도에 응답하는 신이 유행이다. 함께 아파하는 신 따위는 별로 신통치 못한 신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영구진리의 한 귀절이라도 되는 듯 확성기로 떠들어대는 명동의 수상쩍은 무리들과 헌금 액수로 믿음이 증거된다며 어린애들을 세뇌시키는 교회, 자신만은 기도에 응답하는 신을 따로 모시고 있다며 간증 투어들 도는 목사들도 있다. 도나 기에 관심 있느냐며 접근해 제사를 지내자고 하는 자들과 그들이 다른 점이라고는 사기 치는 기교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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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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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 세이카 여자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마에시마는 양궁부 고문을 맡고 있다. 최근 들어 그에게 세 차례 살해 위협이 가해진다. 전철 승강장에서 밀려 떨어졌을 때에는 기연가 미연가 했지만 샤워 중 감전사할 뻔한 사건과 머리 위로 떨어진 화분 사건이 겹치자 살해 위협이 현실감 있게 다가 온다. 

그러던 중 교사 무라하시가 탈의실에서 청산가리로 독살된다. 탈의실은 밀실이었고 이 사건으로 다카하라 요코가 의심을 받는다. 요코는 최근 무라하시에게 담배 피우는 현장을 발각 당해 강제로 머리카락을 잘리웠다. 마에시마는 요코가 자기에게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던 사건을 떠올리며 무라하시를 살해한 것이 요코가 아니었을까 희미한 의심을 품는다. 하지만 수재인 호조 마사미가 열쇠를 통째로 바꿔치는 수법으로 밀실 트릭이 파해됨을 밝혀내자 요코는 알리바이가 입증된다.

약 10일 후 축제 이번에는 교사 다케이가 살해당한다. 마에시마가 분장하기로 한 삐에로 역할을 다케이와 바꾸어 했던 것인데, 소품인 술병이 바꿔치기 되어 청산가리에 중독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교사인 아소 교코가 용의선상에 오른다. 아소 교코는 최근 교장이 며느리로 삼겠다는 의중을 비친 이후 자신의 남성 편력을 알고 있던 마에시마를 걸림돌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아소 교코는 죽은 무라하시의 주머니에서 나온 어떤 물건 때문에 협박을 받아 진범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마에시마에 대한 네 번째 위협이 가해진다. 맹렬한 기세로 돌진해온 차가 마에시마를 죽이려는 순간 다행히 요코가 오토바이로 마에시마를 구해준다.

마에시마는 형사 오타니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뜻 밖의 인물이 범이이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여고생들은 어떤 경우에 사람을 미워할까"라는 질문에 오타니는 "애들한테 제일 중요한 건 아름다운 것, 순수한 것, 거짓이 없는 것...좀더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추억이나 꿈...반대로 말하자면, 이런 것들을 부수려고 하는 사람,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을 가장 증오한다"는 말을 한 것이다.

마에시마는 가나에에게 준 화살이 게이에게 준 화살이었다는 걸 발견하고, 합숙훈련 중 에미가 자위하는 것을 무라하시와 다케이가 우연히 보게 된 후 그들의 시선에서 수치심을 느낀 에미가 게이와 공모하여 살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에시마는 '너희들에게 가르칠 건 이제 없어'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학교를 떠날 결심을 굳힌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만취한 그날 밤, 마에시마는 낯선 남자에게 습격당해 칼에 찔리고 그 남자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자신의 아내 에미코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식 데뷔작이자 1985년 제 31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이다. 최근의 작품과 견주어 세련된 분위기는 없지만 깔끔하고 담백한 느낌으로 1985년 당시의 여고 분위기를 충실히 표현하고 있다.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은 매끄럽고 범행 동기에 관해서도 여고생 나이때에 소중히 여기는 것과 결부시킴으로서 학원물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가가 교이치로를 언뜻 연상케 하는 마에시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 마에시마는 이후 작품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듯 하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시이 다카시 감독의 <고닌 五人>의 음울한 첫 장면을 떠올릴 정도로 약간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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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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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노시보는 강남의 번듯한 건물에서 전화로 땅을 파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의 팀은 부장 한 명과 입사와 동시에 과장이 된 열 명의 팀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팀원들은 가슴에 사표를 비수나 부고처럼 품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제2의 달이 출현하자 사람들은 왠만한 일에 놀라지 않게 되었고 출근을 하지 않거나 중력을 거부하려는 것처럼 자살하는 사람도 속출했다. 무중력자들이 커밍아웃하기 시작했고, 노시보의 어머니도 쪽지만 남겨둔 채 달 구경을 하러 간다. 엄마가 사라지자 고시 준비를 하던 노시보의 형 노대보는 '모두가 위기면 아무도 위기가 아니란 얘기'라며 태연히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여성들은 달 때문인지 생리 주기가 불순해졌고, 사무실의 이 과장과 홍일점 홍 과장은 달의 새로운 출현에 맞추어 무중력 운동과 우주적 섹스에 탐닉한다.

매일같이 인터넷을 뒤지며 자신이 느끼는 몸의 이상 증상을 스스로 진단하고 병원으로 달려가곤 하던 노시보는 <심플라이프>라는 잡지의 기자로 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기자 이름이 기억 나지 않아 노시보는 그녀를 '퓰리쳐'라 부른다. '퓰리쳐'는 기사에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사건, 증거, 타이밍이 그것이고, 노시보는 지금 타이밍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라며 갖가지 검사를 받게 한다.

두 번째 달에 이어 세 번째 달이 뜨고, 엄마가 돌아온다. 돌아온 엄마는 무중력 미용실을 개업해 호황을 맞는다. 한편, 사무실의 이 과장과 홍 과장은 부장에게 사표를 집어 던진 후 티베트로 중력을 거부하는 비법을 배우겠다고 떠나버린다. 소설을 쓰던 친구 '구보'는 섹스머신을 파는 회사에 들어가 돈을 마구 벌어들인다. 

네 번째 달이 떴고, 사장은 이제 최고의 세일즈 키워드는 우주라며 부동산을 파는 대신 달을 파는 일에 골몰하며 우주인들이 먹는 스피룰리나를 상식하기 시작한다. 퓰리쳐는 노시보의 지갑에 콘돔을 끼워주며 유혹한다. 그나마 균형감각을 유지한다고 생각했던 형 노대보는 고시공부를 때려치우고 요리에 골몰하고 있고, 닭 패티시가 있다고 고백한다.

'구보'가 이상형이라던 커피숍의 어리버리한 알바생은 '구보'가 섹스머신을 팔며 서랍 속에 멈춰버린 사이 다른 소설가가 쓴 <21세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고 있었고, 노대보는 아버지에게 고시공부 때려치운 것을 고백한다. 섹스머신은 이제 유행에 뒤쳐져 '구보'는 노시보에게까지 마케팅을 했고, 엄마의 무중력 미용실 역시 장사가 되지 않게 된다. 퓰리쳐는 나를 비롯한 피실험자들의 증상을 모아 '무중력 증후군'이라는 있지도 않은 병을 만들어 내어 히트를 친다.

계속 되던 새로운 달의 출현이 일곱번째에 접어 들었지만, 달은 뜨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전에 떴다던 달도 모두 가짜라고 했다. 그렇게 달의 환락이 끝나고, 구보는 남의 차를 긁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으며, 퓰리쳐는 '만년필 증후군'이라는 새로운 특종을 만들어내기 위해 나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아버지는 형이 고등어찌개를 끓일 줄 알까 궁금해하며 화해를 시도하고, 노시보는 새로 찍은 가슴의 엑스레이 사진에 하얀 원형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그것이 의심할 나위 없는 달이라고 생각한다.

 

달이 하나뿐이 듯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정상임을 믿어 의심치 않던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달이 출현하자 모두들 비정상적인 양태를 보인다. 사람들은 그동안 가치 있다고 믿어왔던 것을 주저 없이  내팽개치거나 '무중력 판타지아'로 상징되는 쾌락에 탐닉하며 순간을 즐기는가 하면, 내밀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바리맨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언론은 그런 행동들의 패턴을 적절히 엮어 새로운 증후군들을 만들어내어 확대 재생산에 여념이 없다.  

 

꽤나 참신한 소재로 소설의 출발은 산뜻하나 엉성한 구성과 반복적인 중언부언으로 집중이 되지 않고 산만하다. 새로운 달이 뜬 후 중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양태가 현대 사회의 피곤함과 소외감에서 나온 필연적인 일탈이라고 느껴지기 보단 그 사람들의 개인적 특성으로 읽혀지고, 이를 균형잡아 줄 인물의 부재(혹은 인물 설정의 실패)는 정제되지 못한 느낌을 가중시킨다. 

한겨레문학상의 권위에 기댄 독서였기에 실망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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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1 로버트 랭던 시리즈
댄 브라운 지음, 홍성영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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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RN(유럽 입자물리학 연구소)에서 물리학자이자 사제인 레오나르도 베트라 박사가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의 눈은 도려내져 있고 가슴에는 일루미나티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연구소의 소장 막시밀리안 콜러는 경찰에 전화하는 대신 하버드대학의 종교도상학 교수이자 기호학의 권위자인 로버트 랭던에게 도움을 청한다.

로버트 랭던은 베트라 박사의 시체에 찍혀 있는 일루미나티 낙인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일루미나티는 교황청에 대항하여 과학을 통한 진리를 추구하던 비밀 결사 조직으로 갈릴레오를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와 예술가, 지성인들이 가담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루미나티는 프리메이슨과 각국 정부에도 깊숙이 침투하여 활동한 것으로 의심되었지만 현재에는 그 실체가 사라진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이제 시체에 찍힌 낙인과 함께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베트라 박사의 수양딸인 비토리아는 아버지가 최근 LHC 입자가속기를 이용, 두 개의 극세립자선을 반대방향에서 가속화 하여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은 빅뱅이론을 증명하는 것으로 신의 천지 창조 과정을 설명하는 것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 산물로 생성된 물질이 바로 반물질로 핵보다 훨씬 큰 에너지를 낼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더 큰 폭발력도 가질 수 있다고 하였다. 베트라 박사와 비토리아는 연구 성과의 증명을 위해 최근 눈에 보일 정도의 반물질을 만들어 냈고 충전 트랩에 이를 보관하였는데, 베트라 박사의 사망과 함께 반물질 트랩 역시 사라졌다.

한편 바티칸을 감시하는 무선카메라 한 대가 실종되어 행방이 묘연했는데 무선카메라가 내보내는 영상에는 반물질 트랩과 트랩을 안정화 시키는 베터리의 남은 시간이 표시되어 있었다. 스위스 근위병 사령관 올리베티는 랭던과 비토리아의 경고에 눈도 깜짝하지 않았고, 반물질의 위험성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바티칸에서는 서거한 교황을 대신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진행중이었기 때문이다. 교황의 일시적 공백 시기에 로마 교황청을 대신하는 사람은 궁무처장이다. 랭던과 비토리아는 궁무처장 카를로 벤트레스카에게 반물질의 위험을 알리는데, 그때 일루미나티의 사자를 자처하는 암살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자신이 교황 후보인 네 명의 추기경을 남치하였는데 그들을 시간 순서에 따라 하나씩 살해할 것이고, 마지막에는 반물질을 폭파시키겠다고 위협한다. 그는 아무런 협상안도 제시하지 않았고, 위협은 사실로 드러난다.

랭던은 자신이 바티칸에 열람을 신청했으나 번번히 거절당했던 갈릴레이의 책에 해답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일루미나티는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새로운 회원을 받아야 했으나 공공연하게 행동할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지를 만들었는데 그 실마리가 갈릴레이의 책 <도형 Diagramma>이었던 것이다. 랭던은 갈릴레이의 책과 관련하여 503이라는 숫자 수수께끼에 직면했었는데 우연히 수수께끼를 풀게 되었다. 503은 바로 DIII, <대화 Dialogo>, <담화 Discorsi>, <도형 Diagramma>중 세번째를 가르키는 말이었던 것이다. 랭던과 비토리아는 갈릴레이의 책에 영어로 적힌 주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문구를 발견하고 일루미나티 근거지로 안내할 실마리라고 생각한다.

 

악마의 구멍을 가진 산치오의 흙의 무덤에서

로마를 가로지른 신비의 원소들이 펼쳐졌노라

신성한 시험, 빛의 길이 놓여 있으니,

천사들이 너의 숭고한 원정길을 안내케 하라.

  

랭던과 비토리아는 유명한 조각가이자 건축가 베르니니가 일루미나티 근거지로 안내할 여러가지 조각들을 남겨두었음을 깨닫고 살인자를 잡기 위해 장소들을 찾으려 하나 번번히 한 발 늦게 되고 추기경들은 한 명 한 명 살해 당한다. 첫번째 추기경은 입 속에 흙이 잔뜩 든 시체로 발견되었고 그의 가슴에는 EARTH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두번째 추기경은 폐에 구멍이 나 있고 AIR라는 낙인이, 세번째 추기경은 불에 타 죽었고 FIRE라는 낙인이, 그리고 마지막 추기경은 익사하였고 WATER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더욱 혼란한 사실은 교황이 독살당한 것으로 판명이 된 것이다. 암살자는 비토리아를 납치하여 은거지로 사라졌고, 스위스 근위병 사령관 올리베티는 살해당한다. 부사령관 로체는 한 통의 전화를 받은 후 11시 정각에 착한 사마리아인이 나타나 이 혼란을 종식시킬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랭던은 그가 바로 암살자를 조정하는 야누스, 곧 일루미나티의 수장으로 궁무처장을 살해할 것으로 생각했다.

마침내 11시가 되고 헬기를 타고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CERN의 소장 콜러였다. 그는 자신의 휠체어에 권총을 숨겨 궁무처장을 만나러 들어갔고, 잠시 후 궁무처장의 비명이 들려 온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궁무처장의 몸에는 4가지 원소 EARTH, AIR, FIRE, WATER가 대칭으로 낙인되어 있고 그 모습이 바로 일루미나티의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궁무처장을 살해하려던 부사령관 로체는 현장에서 사살당하고, 콜러 역시 총에 맞아 죽는다. 사건은 모두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궁무처장은 극심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신이 들린 듯 군중들 앞에 나타났다가 쇼크 상태에 빠진 듯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외친다. 그는 성 피에트로가 묻힌 네크로폴리스 지하로 미친 듯이 달려 가고 그곳에서 반물질 용기를 찾아낸다. 궁무처장은 자신이 직접 헬기를 조정하여 반물질 용기를 처리하려 하고 랭던 역시 헬기에 동승한다. 채석장에 투하하려던 랭던의 계획과 달리 궁무처장은 그럴 시간이 없다고 판단하여 헬기를 하늘 최대한 하늘 높이 끌어올린다. 그리고 잠시 후, 놀라운 상황이 벌어진다. 궁무처장이 낙하산을 메고 헬기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랭던은 방수천 하나를 의지하여 지상으로 뛰어내리고 극적으로 살아난다. 그리고 콜러가 죽기 전 건내준 캠코더를 돌려보고 모든 것이 궁무처장의 연극이었음을 알게 된다. 궁무처장은 살해당한 교황이 과학에 종교를 팔아넘기려 하였고 아들이 있었다며 순결의 의무를 배신했다고 외친다. 하지만 교황은 인공수정을 통해 아들을 낳은 것이었고, 그 아들은 바로 궁무처장이었다. 궁무처장은 분신하여 죽고, 추기경들은 모든 사태를 현명히 이끌었던 모르타티 추기경을 교황으로 추대한다.

 

소설에서 궁무처장은 말한다. "과학 실험실에서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날이, 사람들에게 더 이상 믿음이 필요 없어지게 되는 날입니다!" 아이러니한 궁무처장의 이 말이 종교의 본질에 대해서 깊은 시사점을 준다. 과학을 통해 신을 증명한다면 신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궁무처장은 신이 증명되는 시점에 믿음이 없어진다고 말한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지성은 신앙의 보상이다. 그러므로 믿기 위하여 이해하려 하지 말고 이해하기 위하여 믿으라"라고 말하였고, 테르툴리아누스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Credo quia absurdum)"라고 말하였다. 만일 모든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 그것은 이해하면 그만이다. 거기에는 믿음의 영역이 개입할 소지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지성과 합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영역, 그 영역이 믿음의 영역이다.

지성과 합리의 신봉자와 믿음을 가진 신앙인의 경계가 그런 이유로 명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성과 합리가 좌절될 때, 현재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알 수 있을 것이란 자세 역시도 어찌보면 믿음이 아니겠는가. 마르크스는 헤겔의 철학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알 수 없는 다른 무언가로 대체해 놓은 거꾸로된 변증법이라 비판하였고, 이에 대해 부정하는 바는 아니지만,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종교에 이끌리는 성향 역시 이해가 된다.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는 흥미거리도 많고, 랭던의 헬기 탈출 부분을 제외하면 억지스러운 면도 별로 없다.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와 견주어, 뭔가 가볍고 속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음모론을 대하는 태도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에코는 까소봉 패거리가 성당기사단의 이야기를 꾸며 내고 이를 실제로 믿는 자들을 보여주며 음모론 자체를 희화화하는데 반해 <천사와 악마>는 음모론자들을 비판하는 척 하면서도 여러가지 비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뒤섞어 놓고 그 경계를 허무는 것은 거부한다. 왜냐하면 <천사와 악마> 역시 음모론에 기대어 소설이 성공하길 내심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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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시월의 밤
로저 젤라즈니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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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마지막 밤에 세계를 현상 유지하려는 폐쇄자와 변경하려는 개방자 사이의 게임이 벌어진다. 감시견 스너프와 그의 주인 잭은 폐쇄자로 여러차례 이 게임에 참가해왔다. 시월 한 달 동안 게임의 참여자들은 규칙에 따라 필요한 재료와 도구를 모으는데 일정한 시기가 되기 전까지는 게임의 참가자가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편에 복무하는지 알 수가 없다.

스너프는 계산자로서 게임의 참가자들을 판단하고 이를 근거로 게임이 벌어질 위치를 계산하고자 한다. 게임의 참가자들은 서로를 견재하고 자신의 진영을 감추는데, 어느 날 경찰의 시신이 잭의 집 부근에서 발견된다. 스너프는 마녀 질의 동반자인 고양이 그레이모크와 함께 시신을 숨기고, 범인은 목사임을 알게 된다. 목사는 참가자들을 차례로 살해하고 도구를 모아 힘을 비축하고 자신의 양녀마저 제물로 삼고자 한다.

게임이 종반으로 치달을 무렵 위대한 과학자가 게임의 참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죽은 것으로 판단되었던 백작이 사실은 살아있었음이 드러나면서 게임은 복잡한 양상으로 치닫는다. 잭은 질을 폐쇄자 편으로 넘어오도록 설득하지만 실패하고 마침내 마지막 날이 온다.

늑대인간 래리와 위대한 탐정의 도움으로 개방자의 시도는 실패하고 게임은 폐쇄자의 승리로 귀결된다.

 

포스트타워 6층에 있는 서울체신청 도서관에 로저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가 꽂혀있다. 나는 오랫동안 그곳에 꽂혀있는 책들이 어떤 기준으로 구입되었는지 의아해했다. 쓸만한 책들은 1년이 지나지 않아 모두 사라졌는데,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오랫동안 살아 남았고 분청이 되면서 그곳을 떠났기 때문에 아직도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남의 책을 잘 읽지 않는 버릇 때문에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를 기억만 해두고 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파주의 시공사를 방문했는데 <고독한 시월의 밤>이 보였고 사두었다가 천안 교육원에 교육을 와서 읽게 되었다.

네뷸러 상을 세 번, 휴고 상을 여섯 번 수상한 놀라운 작가 로저 젤라즈니의 마지막 작품인 <고독한 시월의 밤>은 소품의 느낌을 준다. SF 분야의 소설에 수여하는 권위 있는 네뷸러 상과 휴고 상은 종종 한 작품이 공동수상을 하기도 하고, 이 경우에 '더블 크라운'이라고 부른다. <파괴된 사나이>, <스타쉽 트루퍼스> 등 우리 귀에도 익숙한 작품이 휴고상을 수상하였고, 네뷸러상이 제정되자 <듄>이 네뷸러상과 휴고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해리 포터와 불의 잔> 역시 휴고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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